[인터뷰]이재옥 기계연 위촉 책임기술원 "후배 기술원에게 전수"
1990년대 실험일지 일기장에 기록···2000년대 본격 연구노트 작성

이재옥 기계연 플라즈마연구실 책임기술원이 "축적은 실험의 힘"이라고 강조했다.<사진=박성민 기자>
이재옥 기계연 플라즈마연구실 책임기술원이 "축적은 실험의 힘"이라고 강조했다.<사진=박성민 기자>
2000년대 초반 한국기계연구원의 플라즈마 연구실. 연일 실험에 몰두하고 있는 한 기술원(테크니션)의 표정이 어둡다. 똑같은 환경에서 실험을 진행하지만, 결과는 매번 다르게 나오기 때문. 실험의 연속성이 없는 것.

답답한 마음에 지난 수개월의 연구노트를 책상 위에 펼쳤다. 실험에 실패한 날과 성공한 날을 구분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실험에 실패한 날의 날씨는 맑았고, 성공한 날에는 비가 왔다. 습도의 문제였다. 기술원은 습도를 조절해 플라즈마 전원 접지 문제를 하루아침에 해결했다. 연구노트의 단순한 날씨 기록만으로 며칠 동안 골머리를 앓던 문제를 잡아냈다.

연구노트의 주인공은 이재옥 한국기계연구원 플라즈마연구실 책임기술원. 그는 기계연 플라즈마연구실이 처음 탄생했을 때부터 지금까지 근무하고 있는 유일한 정규 기술원이다. 우수한 연구지원을 위해 만학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하기도 했다.

그는 1981년 기계연에 처음 발을 디뎠다. 당시에는 연구노트 개념조차 없었다. 개인 일기장에 실험일지를 기록해왔고 2000년대 무렵 체계적인 연구노트가 속속 나오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연구노트를 수기(手記) 해왔고 현재까지 단 한 건의 실험기록도 빼놓지 않고 있다.

최근 3년 동안 수집해온 연구노트.<사진=박성민 기자>
최근 3년 동안 수집해온 연구노트.<사진=박성민 기자>
그의 연구노트는 더욱 꼼꼼해지기 시작했다. 이미 수십여권을 넘긴 연구노트는 그의 삶에 대한 발자취와 같다. 전자 연구노트를 사용할 법도 하지만 여전히 그는 노트에 직접 기록하는 것을 고집한다.

20년 가까이 작성해온 연구노트들은 어느덧 그의 분신(分身)이 됐다. 연구노트는 그의 책상에서 가장 가까운 책장에 가지런히 정리돼 있다. 손만 뻗으면 바로 열어볼 수 있다. 그가 직접 손으로 작성한 기록들은 1년, 5년, 10년, 15년 전 그날의 연구상황을 더욱 실감 나게 설명하고 있다.

◆ "기록이 결국 연구 결과"···연구자들 토론내용까지 축적

"2000년 당시 독일·미국의 '기록'에 대한 개념은 한국과 달랐습니다. 이들은 실험의 일관성을 유지하기 위해 연구노트의 작성이 당연시되고 있었죠. 실험 결과의 재현성을 위해 매우 꼼꼼한 기록을 중요시했죠."

이재옥 기술원이 연구노트 작성 에피소드를 설명하고 있다.<사진=박성민 기자>
이재옥 기술원이 연구노트 작성 에피소드를 설명하고 있다.<사진=박성민 기자>
이재옥 기술원은 1986년 독일 기술감리기관인 '튜프하노바'(TÜV HANNOVER)에 1년 동안 기술연수를 다녀왔다.

2006년에는 미국 '로스앨러모스 국립연구소'(Los Alamos National Laboratory)에서 단기연수를 마쳤다.

그는 "해외 과학기술 선진국들은 실험장치 설계·제작·설치·운전 등을 비롯해 주변 유틸리티까지 모든 것들을 매일 기록한다"라며 "보잘것없다고 생각되는 데이터들이 일관성을 가지며 실험 결과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배웠다"고 소회했다.

그의 연구노트는 실험 데이터는 물론 아이디어와 노하우가 수록된 귀중한 원천자료다.

그는 그동안 작성한 연구노트가 단순한 기록을 넘어 기술·지식의 축적과 전수로 과학기술계에 기여할 수 있길 바라고 있다.

이 기술원은 "실험 결과를 정리해서 팀원들과 협의하고 미비점·문제점·개선점을 기록한다. 심지어 토론내용까지 축적하고 있다"라며 "어려운 실험일수록 자세하게 적는다. 기록의 축적으로 연구의 연속성이 이어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 "연구 윤리는 스스로 만드는 것"

그는 "연구 윤리는 스스로 만드는 것"이라고 강조한다.<사진=박성민 기자>
그는 "연구 윤리는 스스로 만드는 것"이라고 강조한다.<사진=박성민 기자>
"실험에는 위험요소가 존재하므로 항상 두 명 이상이 참여합니다. 현장에서 즉시 작성되는 연구노트에 불필요한 조작을 막을 수 있죠. 숫자 단 1개도 다르게 표기하지 않습니다. 연구 윤리는 스스로 만드는 것이죠."  

이재옥 기술원은 연구노트와 연구 윤리의 연계와 중요성도 강조했다.

그는 "연구노트는 차후 연구 윤리와 관련돼 확실한 증거자료로 뒷받침되기도 한다"며 "연구노트가 연구 진실성 입증을 위해 사용된다. 연구윤리를 위반하지 않는 사전 예방 효과가 있다"고 말했다.

이 기술원은 연구노트를 '아이디어 자극 샘물'이라고 표현했다. 그는 "기술 사이클이 10년 단위로 돌아가는 가운데 과거의 연구 테마가 현재의 테마와 맞을 수 있다"며 "과거 실험일지를 돌아보며 새로운 아이디어를 자극받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3년~5년 전의 실험 결과는 머릿속에 남지 않기 마련이다. 연구노트를 활용한다면 과거 실험의 기록을 알 수 있다. 현재의 실험에서 시행착오를 현저하게 줄일 수 있다"라며 "연구는 하루아침에 성공하는 경우가 드물다. 다양한 연구결과를 축적했을 때 빛을 볼 수 있다. 축적은 실험의 힘"이라고 단언했다.

저작권자 © 헬로디디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