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은 별 수만 년 비밀 찾아···"기초 있어야 응용도 발전"

[과학청년 부탁해 ㉝]김효선 천문연 박사, 대만서 별 진화 연구 시작
국제 연구진 이끌며 페가수스자리 별 3차원 구조 첫 관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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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효정 기자 - 2018.08.27

왼쪽 사진 아래가 2006년 허블망원경으로 처음 존재가 드러난 페가수스LL. 오른쪽은 2017년 네이처 에스트로노미 표지사진에 실린 페가수스LL. <사진=NASA, 김효선 박사 제공>왼쪽 사진 아래가 2006년 허블망원경으로 처음 존재가 드러난 페가수스LL. 오른쪽은 2017년 네이처 에스트로노미 표지사진에 실린 페가수스LL. <사진=NASA, 김효선 박사 제공>

'늙은 별' 이야기는 사진에서 시작해 사진으로 끝났다.

김효선 한국천문연구원 박사는 박사후 연구과정 지도교수가 보여준 별 사진 한 장에 빠져들었다. 페가수스자리에 있는 늙은 별 '페가수스LL'이었다. 희미한 선이 달팽이 껍질 모양으로 중심을 대여섯 바퀴 감고 있었다. 

"이렇게 규칙적인 무늬를 만든 별은 그때 처음 봤어요. 뚜렷한 형태가 없는 다른 별과는 분명 차이가 있었죠. 완벽한 모양을 한 이 별을 더 알고 싶어 늙은 별 연구를 시작하게 됐어요."
 
그로부터 7년 뒤, 김 박사가 관측한 페가수스LL의 숨겨진 내부 구조 사진이 네이처 에스트로노미(nature astronomy) 표지논문에 실렸다. 11년 전 페가수스LL의 존재가 처음 밝혀질 때부터 궁금증을 모았던 나선무늬의 이유를 밝혀낸 것이다.
 
김효선 박사는 "젊은 연구자라면 다양한 사람들과 대화를 하고 늘 새로운 것을 배워야 한다"고 말했다. <사진=한효정 기자>김효선 박사는 "젊은 연구자라면 다양한 사람들과 대화를 하고 늘 새로운 것을 배워야 한다"고 말했다. <사진=한효정 기자>

◆ 새내기 연구자, 국제 연구진 이끄는 천문학자로
 
"별도 생(生)과 사(死)가 있어요. 늙은 별은 죽기 전, 재산을 환원하듯 탄소와 산소 등 무거운 물질을 내뿜어요. 탄소와 산소는 생물을 구성하는 물질이죠. 결국, 별의 진화는 '생명이 어떻게 시작됐냐'는 질문과 연결돼요. 늙은 별 연구가 그래서 재밌어요."
 
김 박사는 대학에서 물리학을, 대학원에서 천문학 은하 이론을 전공했다. 늙은 별의 진화 연구를 시작한 때는 대만 중앙연구원에서 박사후 연구과정을 밟으면서다.
 
그를 대만으로 부른 사람은 로랄드 탐(Ronald Taam) 교수였다. 그는 김 박사의 지원서를 보고 이론 연구와 관측 연구를 연결해보자고 제안했다. 김 박사는 "흥미로운 제안이었고 이를 계기로 이론에서 관측으로 연구 영역을 넓히게 됐다"고 회상했다.
 
늙은 별 연구는 김 박사에게 새로운 분야여서 공부할 것도 많았지만, 조금씩 천체 관측과 분석에 재미를 붙였다. 그는 "멀리 떨어진 세상에 있는 천체를 작은 망원경으로 관측하는 것만으로도 놀라운데, 별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아내는 연구는 매력적이었다"고 말했다.

당시 대만 중앙연구원에서 늙은 별을 연구하는 사람은 거의 없어, 초반에는 김 박사 혼자 연구했다. 그러다 점차 다양한 전공 연구자들을 끌어모아 공동 연구를 할 정도로 성장했다. 연구실에만 머물지 말고 다른 연구자와 교류할 수 있게 뒷받침해 준 지도교수의 역할이 컸다.
  
"학생 때는 학문을 보는 시야가 좁았는데, 대만에서 많은 사람과 이야기하며 천문학을 보는 시각을 넓히고 힘을 얻었어요. 돌이켜보면 새내기 연구자였던 저에게 꼭 필요한 시간이었죠."
   
페가수스LL의 3차원 구조를 밝힌 것도 국제 공동연구로 이룬 성과다. 이 과제에는 대만 중앙연구원의 천문연구소, NASA 제트추진연구소, UCLA 대학의 연구진이 참여했다. 김 박사는 총 책임자이자 제1저자다. 
 
2013년 4월, 대만에서 동료 연구원들과의 저녁 식사. 오른쪽 첫 번째에 앉은 사람이 김효선 박사다. 김 박사는 "대만에 처음 갔을 때는 외롭기도 했지만, 나중에는 함께 할 동료들이 생겼다"고 말했다. <사진=김효선 박사 제공> 2013년 4월, 대만에서 동료 연구원들과의 저녁 식사. 오른쪽 첫 번째에 앉은 사람이 김효선 박사다. 김 박사는 "대만에 처음 갔을 때는 외롭기도 했지만, 나중에는 함께 할 동료들이 생겼다"고 말했다. <사진=김효선 박사 제공>

◆ 페가수스LL의 비밀, 타원 궤도
 
이 프로젝트는 '페가수스LL이 어떻게 완벽에 가까운 나선 모양을 만들었느냐'는 궁금증에서 시작됐다. 김 박사와 연구진은 이 별이 쌍성을 이뤄 궤도 운동을 하기 때문이라고 가정하고 시뮬레이션을 진행했다. 예측이 맞는지는 '알마(ALMA)'라는 전파망원경으로 관측해 확인했다.
 
인터뷰 중 김 박사는 노트북을 꺼내 별의 3차원 영상을 보여줬다. 왼쪽에는 알마로 관측한 페가수스LL이, 오른쪽에는 연구팀이 예측한 구조가 있었다. 두 구조는 지구에서 보이는 한 각도에서뿐만 아니라 거의 모든 각도에서 일치했다.
 
페가수스LL을 알마(ALMA)로 관측한 사진(왼쪽), 시뮬레이션으로 예측한 구조(오른쪽). 영상은 유튜브에서 볼 수 있다. https://www.youtube.com/watch?v=uKlWt6aG_EA <사진=김효선 박사 제공>페가수스LL을 알마(ALMA)로 관측한 사진(왼쪽), 시뮬레이션으로 예측한 구조(오른쪽). 영상은 유튜브에서 볼 수 있다. https://www.youtube.com/watch?v=uKlWt6aG_EA <사진=김효선 박사 제공>

늙은 별은 우리 눈에 납작한 2차원으로 보이지만, 90도 돌리면 전혀 다른 3차원 구조가 보인다. 중심에 있는 쌍성이 특정 궤도를 돌면서 자신이 방출하는 물질을 휘젓기 때문이다. 김 박사팀은 그 궤도가 원이 아닌 타원이라는 사실을 밝혔다. 나선 팔 한쪽에 갈라진 모양이 단서였다.
 
"페가수스LL이 나선 한 바퀴를 만드는 데 700년이 걸려요. 한평생 관찰해도 궤도의 특성을 알아낼 수 없죠. 우리는 한 번의 관측 결과를 컴퓨터 시뮬레이션과 비교해 별 하나가 수만 년 동안 어떤 운동을 하고 있었는지 찾아냈어요."
 
그동안 천문학자들은 페가수스LL의 규칙적인 나선 모양 때문에 쌍성이 원 궤도를 돈다고 여겼다. 연구 결과는 생각보다 많은 늙은 별이 타원궤도를 돌고 있다는 가능성을 제시했다.
 
쌍성이 타원궤도를 따라 움직인다면, 둘은 가까이 붙어 반응할 수 있다. 따라서 이번 발견은 소멸하는 별이 다양한 모양을 만드는 이유를 찾아가는 한 단계로 평가된다.
 
"기초연구에서는 답이 있는지조차 모르고 문제를 푸는 경우가 허다해서 좌절할 때가 많아요. 우리가 세운 가설이 맞는다는 것을 증명했을 때 느낀 희열이 다시 나아갈 힘을 줬어요."
 
◆ 기초 연구자 많아지길···늙은 별 연구팀 꿈꾼다
 
천문연으로 자리를 옮긴 지 10개월이 된 현재, 김 박사의 고민은 함께 일할 사람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그는 "돈 되는 연구에 관심이 집중되다 보니 천문학을 공부하려는 연구자도 줄어드는 것 같다"며 기초과학의 중요성을 언급했다.
 
"오래 걸리지만, 기초가 있어야 응용도 발전할 수 있어요. 대표적인 예로 현재 모든 휴대폰에 부착된 CCD 카메라는 1990년대 천문학 망원경이 발달하며 만든 결과물이죠. 또, 기초연구는 지적 호기심을 충족시키는 과정이기도 합니다. 없다고 못 사는 건 아니지만 삶의 질을 높여주죠. 더는 선진국에서만 할 수 있는 학문이 아니에요."
 
김 박사는 별의 진화 연구를 이어갈 계획이다. 연구자는 부족하지만, 대만에서처럼 여러 사람을 만나 함께 할 연구가 있는지 찾고 있다.

그는 "혼자 하는 연구는 한계가 있다"며 "늙은 별 연구팀을 이뤄 아직도 모르는 게 많은 별의 비밀을 함께 풀고 싶다"고 말했다.

김효선 박사가 칠레 아타카마 사막에 있는 알마(ALMA) 간섭계 사진을 보여줬다. 알마는 60개가 넘는 안테나로 별 하나를 관측한다. 작동은 전문가만 할 수 있다. 전문가는 김 박사의 요청대로 페가수스LL를 관측하고 사진을 보내주는 역할을 담당했다. 관측 시간을 얻으려면 제안과 경쟁 과정을 거쳐야 한다. <사진=한효정 기자> 김효선 박사가 칠레 아타카마 사막에 있는 알마(ALMA) 간섭계 사진을 보여줬다. 알마는 60개가 넘는 안테나로 별 하나를 관측한다. 작동은 전문가만 할 수 있다. 전문가는 김 박사의 요청대로 페가수스LL를 관측하고 사진을 보내주는 역할을 담당했다. 관측 시간을 얻으려면 제안과 경쟁 과정을 거쳐야 한다. <사진=한효정 기자>

◆ 김효선 박사는
 
서울대학교에서 물리학으로 학사를, 천문학으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박사 과정에서 은하의 움직임을 연구했다. 2009년 대만 중앙연구원 산하 ASIAA(ACADEMIA SINICA Institute of Astronomy and Astrophysics)에서 박사후 연구과정을 밟으며 늙은 별 관측·분석 연구를 시작했다. 2017년 10월부터 한국천문연구원에서 전파천문본부 선임연구원으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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