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현장 "침소봉대로 연구자 사기 꺾지 않아야"
과기부 "다음주 대응 방향 나올 것, 정부 개입보다 내부 자정문화 필요"

"WASET사태가 과학기술계의 일반적인 현상은 아니다. 윤리 의식이 부족한 일부 연구자가 벌인 일이지만 재발방지를 위해 과학기술계 전체에서 이를 부끄럽게 여기며 풍토를 바꿔나가야 한다."(출연연 연구자)

"의심스런 학회 출장과 저널에 논문 게재는 법적인 문제보다는 윤리적 차원이다. 정부의 제재보다는 앞으로 같은 사례가 반복되지 않도록 과학기술계 내부에서 자정문화를 만들어 가야한다."(과학기술계 관료)

가짜 학회와 저널로 평가되는 WASET 논란이 여전한 가운데 과학기술계 내부에서 자정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WASET 학회에 참여하고 저널에 논문을 게재한 연구자의 일벌백계도 필요하지만 반복되지 않도록 연구자 스스로 올바른 연구 윤리와 문화가 확산되도록 해야한다는 의견이 다수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교육부와 협력해 대학 교수와 정부출연연구기관 연구자 중 최근 5년간 가짜로 많이 회자되는 WASET과 OMICS 학회 출장, 관련 저널 논문 게재 여부를 조사 중이다.

대덕넷 취재 결과 당초 9일까지 전수조사를 마칠 예정이었으나 대학쪽에서 시간이 더 필요하다고 요청, 늦어지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전수 조사에 참여중인 관계자에 의하면 기관명, 저자, 논문 주제 등 정확한 식별이 쉽지 않다. 특히 한국이름의 영문 표기가 제각각으로 당사자를 명확히 지적하기까지 시간이 걸리는 상황이다.

과기부는 전수 조사가 끝난 뒤에도 관련 교수, 연구자의 법적 처벌은 어렵다는 입장이다. 실제 법을 위반한 것도 아니고 연구비를 유용한 것으로 단정짓기 애매하기 때문이다.

과기부 관계자는 "의심스러운 학회, 저널도 부실하지만 학회와 저널 기준을 갖추고 있어 그들을 가짜라고 확정하기 어려운게 사실"이라면서 "다음주께 의심스러운 학회와 저널 대응 방향이 나올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법의 문제로 보기보다 윤리 문제가 80%다. 정부에서 전수조사에 들어가니 대학교수, 연구자 스스로 부끄러워 한다"면서 "이번 사례를 통해 올바른 연구 윤리와 도덕성 문화가 확산되길 기대한다"고 강조했다.

◆"연구자 간 학회, 저널, 평가 정보 공유로 스스로 자정 문화 만들어야"

과학계에서 의심스런 저널은 1200여개에 이른다. 과학분야 전문사서 제프리 빌(J. Beall)이 가짜(fake) 저널 리스트(일명 Beall's List)를 작성한 바 있다. 하지만 빌의 리스트 역시 개인적 판단으로 논란의 여지를 안고 있다.

학회는 그나마 정확한 정보도 없는 상황이다. 알려진 전세계 학회만 해도 5만여개로 이들의 진짜, 가짜 여부를 일목요연하게 분석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게 관계자의 설명이다.

최근에는 사업측면에서 학회와 저널이 만들어지는 추세다. 교묘하게 기준을 맞춰 가짜와 진짜의 판단이 더욱 어려워졌다. 연구자 입장에서는 더욱 세심한 주의가 요구된다.

출연연의 A 박사는 "출장을 다녀온 연구자는 제대로 된 학회인지 아닌지 안다. 연구자들이 컨퍼런스에 다녀오면 학회 평가와 보고를 통해 의심스런 학회는 다른 연구자가 가지 않도록 정보 공유도 필요하다"면서 "이를 리스트해 과학기술계에 공유하며 연구자 스스로 자정 문화를 만들어 가는 것도 좋겠다"고 제안했다.

기관의 평가 제도 변화도 제기됐다. 출연연의 B 박사는 "기관마다 다르겠지만 질보다 양을 중시하는 기관의 연구자 중 연구윤리 의식이 결여된 연구자는 이를 충분히 악용했을 수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암암리에 진행되다가 수면위로 올라온 것이다. 연구 윤리와 도덕성 풍토를 만들어 갈 계기가 되어야 한다"면서 "KIST의 경우 SCI 영향력 지수(IF) 25% 이하인 논문은 논문평가에서 제외된다. 논문보다 학회를 중시하는 분야는 우수 학회로 확인되는 학회만 인정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 "연구자 통합 ID 필요···연구자 사기 꺾는 일 없어야"

"우리나라는 동명이인도 많다. 지금 시스템에서는 이름과 기관, 논문 저자를 정확히 매칭하기가 어렵다. 와셋에서 한국인 논문을 조사하고 그중 관련 논문을 추출해 저자를 확인하는데 시간이 걸린다."

연구자별 논문 등 구별 시스템 마련 의견도 나왔다. 출연연의 C 박사는 "한국명을 영문으로 표기하는 방식이 제각각이다. 약어로 표기되면 더욱 어렵게 된다"면서 "기관간 협력을 통해 논문 저자의 통합 ID 등 식별할 수 있는 체계 마련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이는 정보보호 등 여러문제와 얽혀 모두의 협력이 필요한 문제"라고 덧붙였다.

출연연의 D 박사는 연구현장의 성과 관리 부실 문제, 윤리성과 도덕성 등 문제의식을 갖는 내부 결의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이번 사태가 외력에 의해 처벌 수위가 결정되고 자정작용이 논의되면 자율 운영 역량이 없는 사회로 낙인찍힐 수 있다"고 우려하면서 "연구자간 논의를 통해 스스로 자정 문화를 만들어 갈 수 있어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E 박사는 전체 중 1%도 안되는 문제 연구자로 침소봉대 하는 지금의 상황을 경계해야한다고 조언했다. 그는 "내부적으로 윤리위원회, 자체 감사 등 움직임이 있다"면서 "연구회 등에서 문제 발생 원인을 분석하고 대응책을 마련할 필요도 있다. 이번 일로 연구자의 사기를 꺾는 일이 있어서는 안된다"고 역설했다.

한편, 과기부는 다음주부터 전수조사 결과를 통해 대응 방향을 마련하고 9월께 한국학술지인용색인(KCI)에 준하는 가이드라인을 배포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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