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 1명이 세상 이끄는 시대 아니야"···융·복합 교육통해 협업능력 키워
손 총장, 기업인들에게 "인재가 남아있을 만한 기회와 환경 만들자"


손상혁 DGIST 총장은 "DGIST의 융·복합 교육 시스템을 통해 4차 산업혁명을 선도하고, 지역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과학인재를 양성하겠다"고 말했다. <사진=조은정 기자>
손상혁 DGIST 총장은 "DGIST의 융·복합 교육 시스템을 통해 4차 산업혁명을 선도하고, 지역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과학인재를 양성하겠다"고 말했다. <사진=조은정 기자>
"DGIST가 한국을 대표하는 대학으로 성장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하지만 앞서 지역에서 사랑받고 지역민이 자랑스러워하는 대학을 만들고 싶습니다. 지역을 넘어 국가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우수한 두뇌집단인 대학이 제 역할을 해야 합니다."
 
취임 1년을 맞은 손상혁 DGIST 총장의 시선 끝엔 지역이 있었다. 지역 발전이 국가의 미래를 노래하는 '희망가'가 될 수 있다는 생각에서다. 최근 발표한 'DGIST Innovation 2034'에서도 손 총장은 지역 성장을 위한 DGIST의 역할을 강조한 바 있다. 

'서울 토박이'로 알려진 그가 지역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손 총장과의 인터뷰를 통해 그의 생각을 자세히 들었다. 

 대구와 연고 1% 없던 美 대학교수, 지금은 '지역과 함께' 강조

손 총장은 1981년 미국으로 유학을 가기 전까지 서울에서 나고 자랐다. 당연히 DGIST가 위치한 대구와는 연고가 없다.
 
그런 그가 26년간 몸 담은 미국 버지니아 대학 교수직을 뒤로 하고 DGIST를 택해 왔다. 그는 "미국 지역 대학 교수로 있으며 한국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일이 없을까 생각했다"며 "DGIST를 통해 지역 인재를 길러 낼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오로지 과학인재에게 우리나라 미래가 달렸다는 믿음으로 나라를 책임질 인재를 육성하고 싶었다"고 덧붙였다. 

지난 2월 대구 달성군 현풍면 거리에는 미국 드라마에서나 볼 법한 풍경이 펼쳐졌다. 올해 첫 학부 졸업생을 배출한 DGIST가 지역사회와 함께 하는 대학문화를 만들고자 학위 수여 퍼레이드를 펼쳤다. 학생들도 지역에 기여해야 한다는 손 총장의 뜻이 반영된 행사이기도 했다. 
 
지역사회에 기여하고자 하는 마음이 큰 것 같다고 묻자, 손 총장은 "자기가 서있는 곳의 뿌리를 알아야 한다. 지역에서 먼저 사랑받는 학교가 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의 가르침이 학생들에게도 닿았을까. 학생들도 지역 봉사에 열정적이다. 어느 날은 손 총장에게 한 지역민이 다가와 "DGIST 학생들이 여기 봉사활동 자주 와요"라고 했단다. 손 총장은 "그만큼 지역과 학생들이 서로 신뢰가 쌓이고 있다"며 "지역 주민들이 DGIST가 우리 지역에 있다는 사실을 자랑스러워할 날이 오길 바란다"고 기대했다.

손 총장에게 '지역'은 '희망'과 동의어다. 첫 학부 졸업생 중 지역에 남은 학생 수는 많지 않지만, 그 속에서 희망을 엿봤다. 

"학생들에게만 '지역에 남아 있으라'라고 강요하는 건 옳지 않죠. 그래서 기업인들에게 주로 이런 이야기를 많이 해요. 학생들이 지역에서도 충분히 성장할 수 있는 발판을 먼저 만들어줘야 남아있지 않겠냐고요."

2018 DGIST 졸업 퍼레이드 현장. 지역사회와 함께 하는 대학문화를 만들었다.<사진=DGIST 제공>
2018 DGIST 졸업 퍼레이드 현장. 지역사회와 함께 하는 대학문화를 만들었다.<사진=DGIST 제공>
 전공 칸막이 없고, 학생들 스스로 연구주제 선택해···"융복합 인재 양성"
 
손 총장의 교육 철학에 대한 고민은 DGIST 교수 제의를 수락한 후부터 계속됐다. 그는 "'학생들에게 어떤 교육이 필요할까' 부터 먼저 고민했다"며 '객관식, 암기 위주의 한국식 교육이 학생들의 창의성을 짓누른다'는 외국 전문가들의 지적을 떠올렸다.
 
"뛰어난 천재 한 사람이 세상을 이끄는 시대는 지났습니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주어진 문제의 답을 찾는 것 보다, 스스로 문제를 찾아내는 힘이 중요합니다. 앞으로 어떤 문제가 발생할지 예상을 할 수 없는 시대가 오고 있습니다. 과거에 통용된 것과 다른 방식으로 지식을 창출하고 융합할 수 있는 인재가 필요합니다."
 
손 총장은 인터뷰 동안 '지역'과 함께 '사람'을 강조했다. <사진=조은정 기자>
손 총장은 인터뷰 동안 '지역'과 함께 '사람'을 강조했다. <사진=조은정 기자>
손 총장의 교육 철학 핵심은 학문 간 장벽을 없애고 학생들 간 협업을 중시하는 융·복합 교육에 있다. 인재 양성 혁신은 DGIST의 융복합 교육을 발전시킨 ‘혁신적 이공계 교육 2.0’ 완성을 인재 양성 혁신을 모색한다.

DGIST가 시행하고 있는 '무학과 단일학부' 시스템과 그룹형 연구 프로젝트인 'UGRP(Undergraduate Group Research Program)' 교과 모두 이러한 손 총장의 교육 철학과 맥을 같이 한다.
 
학부 입학생은 융·복합대학 기초학부로, 특정 전공을 갖지 않고 폭넓게 학문을 배우게 된다. 이후 3, 4학년 때 자신의 진로와 적성에 맞춘 전공심화 과목을 이수하도록 하고 있다. 특히 3학년부터는 그룹 연구 프로젝트인 'UGRP' 교과를 통해 학생들이 실질적인 연구 경험 기회를 쌓을 수 있게 했다.
 
'UGRP'의 핵심은 학생들의 협업과 자율성이다. 5명 내외로 그룹을 이룬 학생들 스스로 연구 주제를 정하고, 교수와 연구원, 외부 전문가 등으로 꾸려진 공동지도교수단과 연구를 수행한다.
 
"학생들은 자연스럽게 도전적이고 적극적인 연구 자세를 갖추게 됩니다. 이렇게 잘 훈련된 학생들은 난제에 부딪혀도 '모르겠습니다'가 아닌 '모르지만 한번 해보겠습니다'라고 답합니다. 이런 학생들을 어느 교수가 반기지 않겠습니까?"
 
실제로 올해 첫 학부 졸업생 90% 가량이 대학원에 입학해 학업을 이어간다. 손 총장은 "DGIST 출신 대학원생들의 적극적인 자세에 담당 교수들도 호평 일색"이라며 웃었다.
 
DGIST의 실험적인 교육 시스템은 타 이공계특성화 대학의 좋은 사례가 되고 있다. 이미 무학과 단일학부제를 벤치마킹한 포스텍은 무학과 과정을 심화전공 선택 전의 탐색 과정으로 운영하고 있고, KAIST도 융합 교육을 통해 학부 경쟁력 강화 전략에 나섰다.
 
손 총장은 "다른 대학 총장님이 '좋은 건 같이 하자'라고 말한 적이 있다. KAIST나 포스텍 등 다른 이공계특성화 대학에서 벤치마킹하고 싶은 교육과정이 굉장히 많다"며 "대학끼리 경쟁이 아닌 과학 인재 양성을 위해 서로 좋은 영향을 주고받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인터뷰 동안 '지역'과 함께 '사람'을 강조했다. "많은 사람들이 우리나라가 어렵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그 난관을 뚫고나갈 수 있는 희망에는 '사람'이 있습니다. 과학기술계뿐 아니라 그 어떤 상황에서도, 준비된 인재가 육성되고 있다면 그 자체로 희망이 아니겠습니까? DGIST 출신 학생들이 지역과 국가의 희망이 될 수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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