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기부, 현장 의견 통해 7월말~8월중순 개선안 제안 예정
현장연구자들 "과기계는 물론 국가 역량 후퇴 올 것"

정부가 연구과제중심제도(PBS) 개선에 속도를 내고 있다.

과기부는 7월 초중순까지 연구 현장 이야기를 듣고 7월말이나 8월 중순 PBS 제도 개선 안을 내놓을 예정이다. 6월 초 과기부는 출연연 관계자 몇몇과 현장간담회를 가졌다. 현재는 출연연별 연구자와 연구지원 인력에게 의견을 수렴 중인 것으로 알려진다.

PBS 제도 개선이 거론 된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이 제도는 1995년 정부출연연구기관의 인력과 인건비 부족 문제를 해결하고 선의의 경쟁으로 연구 역량 향상, 연구책임자의 권한 강화, 예산집행 투명성을 높인다는 취지로 도입됐다.

그러나 20년 넘게 PBS 제도가 운영되면서 연구현장에서는 우려의 목소리가 점점 커지는 게 사실이다. 국가연구개발 중심기관인 출연연이 당장 인건비 확보를 위해 과제 수주에 치중하면서 과도한 경쟁은 물론 단기성과로 질적 하락을 초래했다는 지적이 다수다. 지나친 경쟁은 출연연간, 연구자간 소통 단절과 사기저하, 연구현장의 피폐로 이어졌다. 

또 인건비와 연구비 확보를 위해 단기의 다수 과제에 참여하며 연구에 집중할 수 없는 상황이 반복됐다. 연구 지속성이 단절되며 전문성도 떨어졌다. 선도적 연구와 복합적 요소로 발생하는 이슈에 대응하기 위한 융합연구 패러다임에서 뒤쳐지는 결과를 초래했다.

PBS 도입 이후 이런 문제들이 지속되며 지난 20년간 우리나라의 과학기술 역량이 축적되지 못하는 원인으로 작용했다는 게 연구현장의 진단이다.

◆PBS 개선안, 인건비 100% vs 기관별 차별화 vs 블록펀딩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이하 과기부)는 올해 1월 대통령 업무보고에서 현장 의견을 통한 'PBS 제도 개선안'을 내놓겠다고 발표하고 TF팀 운영에 들어갔다.

본지가 확보한 자료에 의하면 거론되고 있는 PBS 제도 개선안은 세가지다. 인건비 100% 출연금 지급 안, 기관별로 특성이 있으니 인건비 비중을 차별화하는 Post-PBS 안, 정부 출연금을 블록펀딩으로 지급하고 비목간 전용을 자유롭게 하자는 안 등이다.

과기부는 인건비 100% 출연금 지급안에 부정적 입장이다. 당장 5400억원의 추가 정부 R&D 예산이 필요하다는 분석에서다. 또 기관별 다른 특성으로 객관적인 총 인건비 산정기준을 마련하기 어렵고 100% 지급시 연구비 관리, 인력관리, 연구수당 제도 등 추가 개편 논의가 요구된다는 게 과기부의 주장이다.

두번째 안에 대해서도 과기부는 현장 불만이 지속될 것으로 예상하는 분위기다. 세째안은 방만 운영으로 연구비 부족 사태가 발생하거나 국회와 감사원의 예산집행지침과 감사를 뒤따를 것이라는 의견을 내놓고 있다.

하지만 연구 현장에서는 다른 입장이다. 추가 예산없이 인건비의 100%를 출연금으로 지급할 수 있다는데 의견이 모아진다.

현재 출연연의 인건비 재원은 정부출연금(인건비, 사업비(인건비+직접비), 경상비)과 외부수탁과제(인건비(내외부), 직접비, 경상비), 기술료, 기타(이자수입) 등이다.

정규직의 인건비는 정부출연금의 인건비와, 외부수탁과제 인건비 내부에서 지급되는 구조다. 비정규직은 외부수탁과제 인건비 외부 금액으로 충당한다. 경상비는 간접비로 기관운영과 지원 인력 인건비 등 연구 지원 전반에 사용된다. 기관별 조율을 통해 인센티브로도 지급된다.

과기부 자료에 의하면 25개 출연연의 인건비 재원 비중은 출연금 51.9%, 정부수탁 39.0%, 민간수탁 9.1%다. ETRI, 한국항공우주연구원, 국가핵융합연구소를 제외한 인건비 재원 비중도 출연금 58.1%, 정부수탁 31.6%, 민간수탁 10.3%로 정부와 민간이 9대1 구조다.

PBS 제도 도입 이전(1989년 기준)의 출연연 인건비 재원은 정부와 민간이 5대 5정도 였다. 제도 도입 이후 출연연의 인건비 재원은 출연금, 정부수탁, 민간수탁 비중이 6대 3대 1 수준으로 정부과제가 많아지고 있다.

연구자들은 "출연연 출범 초기 산업 연구 지원이 많아 민간 비중이 높았지만 국내 산업이 발달하면서 출연연 미션에 맞는 국가R&D 방향으로 가고 있는데 현재 환경은 인건비 수주를 위해 여러 과제에 참여하면서 연구 지속성과 역량이 떨어지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어 연구자들은 "출연금과 정부수탁과제 등 출연연 인건비 대부분이 정부 예산이므로 지금처럼 과도한 경쟁보다 인건비 100%를 보장함으로써 해야 할 연구에 집중 할 수 있는 여건 조성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 연구자들 "이대로는 과기계, 국가 과기역량 후퇴"

"지금처럼 이과제 저과제 소형 과제로 인건비 벌면 먹고사는데는 지장없다. 하지만 과학자는 연구소에 먹고 살려고 온 게 아니다. 각자 꿈도 있고 국가적 이바지 역할도 목표로 하고 있는데 지금 현실은 점점 멀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이는 결국 과학계는 물론 국가의 과기역량 후퇴로 이어질 것이다."(A 출연연 연구자)

"PBS 도입시기 이론은 투명성과 연구권한이 연구책임자에게 넘어온다는 장점이 있지만 기관간 담쌓기가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가 있었는데 현실이 됐다. 이는 결국 과도한 중복연구 문제를 낳았고 연구자간 소통 단절로 이어졌다."(B 출연연 연구자)

현장 연구자들이 가장 우려하는 점은 과학기술계의 역량 하락이다. 또 국가의 과기역량이 축적되지 못하면서 빠르게 변하는 과학기술 패러다임에서 도태될 수 있다는 점이다. 특히 중국이 집중투자로 기술우위에 서는 등 국내외적 급속한 변화 속에서 국내는 여전히 제도적 문제에 매몰돼 있어 안타까움이 크다.
 
C 박사는 "연구 역량을 키우기보다 인건비 벌기위해 부처 다니면서 과제 수주하고 인건비 벌면 책임자는 역할을 다했다는 입장이다. 젊은 연구자들은 업무 과중에 시달리며 역량을 키울 수 없는 구조가 반복되며 쉬운연구, 보여주기 연구가 만연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과제 책임자들은 인건비 확보를 위해 7년이 걸리는 연구도 과제 기간이 3년으로 나오면 기획서에 그렇게 적는다. 당연히 연구 부실로 이어진다"면서 "지금은 무엇이 문제냐 보다 어떻게 바꿀까를 논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다른 연구자는 "지난해 과제 3개중 메인은 1개였고 나머지는 메인을 유지하기 위한 인건비 확보 충당용이었다"면서 "이런식으로는 연구에 집중할 수 없다. 중구난방으로 인력과 에너지가 투입되는 상황이고 기간 끝나면 흩어지고 연구 역량이 쌓일 수 없는 구조다. 예산을 제대로 정리하면 예산 증가없이 인건비 보장도 가능하고 해야할 연구에 집중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출연연의 D 박사는 "고등학교 시기 대통령이 연구소를 방문하는 거 보면서 과학자의 꿈을 키우고 국가에 이바지 해야겠다는 사명감을 가졌는데 지금은 잘 모르겠다"면서 "지금의 과학기술은 복잡하다. 다이슨 청소기 기술은 혁신이라 할 수 있는데 중국은 이를 금새 따라하고 있다. 우리는 지금 미래를 고민해야 하는데 본질에서 벗어나 있는 상황"이라면서 우려했다.

PBS 제도 개선을 더 이상 정치권에 기대지 말고 연구자 내부 혁신으로 가야한다는 쓴 소리도 나온다.

과기정책 연구자 E 박사는 "PBS 개선을 정부에 기대는 것은 이미 타이밍이 지났다. 연구소 내부의 자기혁신 동력만이 PBS제도 개선을 이끌 수 있다. 마곡밸리 등이 부상하면서 대덕에는 한파가 올것이다. 인지도와 명예상의 한파"라고 꼬집으며 연구자 내부 자성을 역설했다.

출연연의 F 박사는 과기정책의 기본 철학이 지켜지길 희망했다. 그는 "인건비, 직접비 개선의 문제를 넘어 연구자가 연구에 몰입할 수 있는 환경과 문화가 조성되어야 한다는데 방점을 둬야 한다"면서 "바네바부시의 과기정책 기본철학 5가지 원칙이 지켜지길 희망한다"고 말했다.

한편 바네바 부시의 과기정책 기본철학 5가지는 ▲연구의 안정성 확보를 위한 예산과 기간의 보장 원칙 ▲Agency의 전문성 및 시민성 확보 원칙 ▲Agency의 직접연구금지와 권한 위임의 원칙 ▲수탁기관의 완전성 자율성 부여의 원칙 ▲연구기관의 독립성과 자율성 보장의무의 원칙 등이다.

다음은 출연연의 연구자가 한국과학기술정책에 철학이 담기길 기대하며 바네바 부시의 과기정책 기본철학 5가지를 정리한 내용.

Science The Endless Frontier
A Report to the President by Vannevar Bush, Director of the Office of Scientific Research and Development, July 1945

Five Fundamentals

(1)(연구의 안정성 확보 원칙 : 예산과 기간) Whatever the extent of support may be, there must be stability of funds over a period of years so that long-range programs may be undertaken.

(2)(Agency의 전문성 및 시민성 확보 원칙) The agency to administer such funds should be composed of citizens selected only on the basis of their interest in and capacity to promote the work of the agency. They should be persons of broad interest in and understanding of the peculiarities of scientific research and education.

(3)(Agency의 직접연구금지와 권한위임의 원칙) The agency should promote research through contracts or grants to organizations outside the Federal Government. It should not operate any laboratories of its own.

(4)(수탁기관의 완전한 자율성 부여의 원칙) Support of basic research in the public and private colleges, universities, and research institutes must leave the internal control of policy, personnel, and the method and scope of the research to the institutions themselves. This is of the utmost importance.

(5)(연구기관의 독립성과 자율성 보장의무의 원칙) While assuring complete independence and freedom for the nature, scope, and methodology of research carried on in the institutions receiving public funds, and while retaining discretion in the allocation of funds among such institutions, the Foundation proposed herein must be responsible to the President and the Congress. Only through such responsibility can we maintain the proper relationship between science and other aspects of a democratic system. The usual controls of audits, reports, budgeting, and the like, should, of course, apply to the administrative and fiscal operations of the Foundation, subject, however, to such adjustments in procedure as are necessary to meet the special requirements of resear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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