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이정숙 생명연 생물자원센터 박사···'대변 미생물 육아맘' 스토리
"2023년까지 '장내 미생물 은행' 목표···건강한 성인 800명 분변 연구"


건강한 한국인의 대변에서 미생물을 연구·관리하는 '미생물 육아맘' 이정숙 박사.<사진=박성민 기자>
건강한 한국인의 대변에서 미생물을 연구·관리하는 '미생물 육아맘' 이정숙 박사.<사진=박성민 기자>
한 여성 박사가 매일 그들(?)에게 찾아가 안부 인사를 전한다. 행여 다친 곳은 없을까 맘졸이며 세심하게 살핀다. 건강하게 무럭무럭 자라나라고 애정을 쏟아 마음까지 전한다. 자식을 돌보는 것처럼 보이지만 자식은 아니다. 자녀만큼 소중한 존재란다.

남다른 사랑을 듬뿍 받고 있는 주인공은 사람의 '똥'속 미생물들이다. 일반 미생물도 아닌 다른 사람들의 '대변'에서 채취한 미생물을 자식처럼 돌본다는 괴짜 박사. '똥'속 미생물들의 엄마로 불리는 이정숙 한국생명공학연구원 생물자원센터 박사의 이야기다.

대변 미생물 육아맘(?)을 만나기 위해 찾아간 곳은 한국생명공학연구원 전북 정읍 분원. 이곳 생물자원센터에는 대변에서 채취한 미생물부터 일상생활에서 접하는 미생물들까지 무려 1만6000여 종의 미생물들이 관리되고 있다.

생물자원센터에는 이정숙 박사를 중심으로 10여 명의 연구자가 애정을 모아 한국인의 '똥'속 미생물을 연구하고 있다. 이들은 2023년까지 '장내 미생물 은행'을 만든다는 목표를 가지고 있다. 한국인 분변 속 미생물을 확보해 전국의 모든 연구자가 활용할 수 있도록 지원체계를 구축할 계획이다.

SF영화에서 냉동인간을 만들 듯이 '냉동 미생물'을 만들기도 한다. 냉동 상태가 끝나면 정상 미생물로 돌아온다. 생물자원센터에는 30년까지 냉동 중인 미생물도 있다.<사진=박성민 기자>
SF영화에서 냉동인간을 만들 듯이 '냉동 미생물'을 만들기도 한다. 냉동 상태가 끝나면 정상 미생물로 돌아온다. 생물자원센터에는 30년까지 냉동 중인 미생물도 있다.<사진=박성민 기자>
인간의 몸에는 100조개의 미생물이 존재한다. 이는 세포 수의 10배에 달하고 몸무게의 최대 3%를 차지한다. 유전자로 따지면 인간 유전자보다 미생물들의 유전자 총합(마이크로바이옴)이 100배 많다. 미생물은 입·코 등에서도 발견되지만 95% 이상은 장내에서 살고 있다.

장내 미생물은 대변을 통해 쉽게 얻을 수 있기 때문에 '똥'속 미생물을 이용한 연구가 가장 활발하다. 최근 미생물이 비만·당뇨병·우울증·치매·암 등과의 연관성까지 밝혀지면서 연구계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 "미생물 죽이지 않고 보존하는 것이 '미생물 육아맘'의 임무!"

"생물은 희귀종·멸종위기종이 존재하죠. 한 번 씨가 끊기면 다시 복원하기 어려운 생물도 있죠. 미생물도 마찬가지입니다. 세계적으로 매년 700여 종이 발견되고 있지만, 이들을 관리하지 않으면 사라져버리죠. 미생물을 죽이지 않고 보존하는 것이 저의 임무입니다."(웃음)

이정숙 박사가 '한국인 대변 은행'의 목표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사진=박성민 기자>
이정숙 박사가 '한국인 대변 은행'의 목표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사진=박성민 기자>
이정숙 박사 연구팀은 분당서울대병원, 바이오기업 천랩과 지난 2016년 말부터 '한국인 대변 은행' 구축에 나섰다.

분당서울대병원은 건강한 한국인 분변 샘플을 확보해 이정숙 박사 연구팀에게 보낸다.

연구팀은 '똥'속에서 미생물을 분리·배양한다. 최적의 미생물 환경을 만들고 애지중지 키워낸다.

미생물 하나하나 죽이지 않고 건강한 미생물로 보관한다. 이후 미생물 DB가 만들어지면 천랩이 메타게놈 분석을 맡는다.

연구팀은 그동안 건강한 성인 200여 명의 대변 샘플을 받았다. 장내에서 분리한 미생물은 270여 종이다. 종 구분 없이 미생물 하나하나 순수하게 분리된 객체수만 4500주가 넘는다.

연구팀은 대변 은행이 구축될 때까지 800여 명의 대변에서 미생물을 채취할 계획이다.

인간의 장에는 유산균처럼 공기 중에서도 잘 사는 미생물이 있지만 산소가 닿으면 바로 죽어버리는 절대혐기성 미생물이 대부분이다. 염증과 관련된 미생물 중에 절대혐기성들이 많다. 연구팀은 절대혐기성 미생물에 주목하고 있다.

산소를 만나면 죽는 미생물 때문에 대변 확보에서부터 채취까지 모두 공기가 없는 밀폐된 진공 속에서 이뤄져야 한다. 이같은 고된 연구도 미생물 육아맘의 애정을 꺾지 못한다.

이정숙 박사는 "생애주기에 따른 대변 미생물 채취도 계획하고 있다. 어린이부터 노인까지 다양한 샘플을 얻어낼 것"이라며 "건강한 한국인의 장내 미생물의 분포도를 분석하고, '똥'속 미생물 실물 자원을 필요한 연구자들에게 지원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 "미생물도 감자·토마토·고기 먹죠···애정 없인 못 키워"

이정숙 박사가 생물자원센터의 미생물 관리 공간을 소개하고 있다.<사진=박성민 기자>
이정숙 박사가 생물자원센터의 미생물 관리 공간을 소개하고 있다.<사진=박성민 기자>

"미생물 하나하나 다루는 방법이 모두 다릅니다. 적어도 2~3달 관심을 가져야 자라는 미생물도 있죠. 생물과 같이 아끼고 보살피면 살아나고, 관심 없이 방치하면 곧장 죽어버리죠. 부모의 마음으로 대하는 이유입니다."

미생물에 대한 애정이 묻어난다. 미생물마다 생존하고 번식하는 환경은 모두 다르다. 최소 4℃부터 90℃까지 미생물이 살아가는 조건은 각양각색이다. 미세한 산소를 넣어줘야만 생존하는 까다로운 미생물까지 모든 미생물이 육아맘의 보살핌 대상이다.

그는 "일각에서는 우스갯소리로 미생물 보존·관리가 3D 업종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기계가 아닌 사람의 손으로 섬세하게 신경 써야 한다"라며 "하지만 새로운 종의 미생물을 발견하면 그만큼 기쁜 일이 없다"고 소회했다.

이어 그는 "생존력이 강한 미생물이더라도 대충 관리하면 금방 죽어버린다"라며 "가끔 미생물에게 '잘 자라다오'라고 말하기도 한다. 말 못하는 미생물이지만 사람의 마음을 고스란히 전달받고 있다"고 웃으며 말했다.

미생물이 자라는데 필요한 영양소를 첨가한 물질이 '미생물 배지'다. 미생물의 '먹이'라고 표현된다. 미생물은 감자·토마토·고기 등을 먹기도 하며 좋아하는 음식또한 다르다. 미생물이 가장 선호하는 음식을 파악해 '적합배지'를 찾아주는 일도 미생물 육아맘의 역할이다.

그는 "지구상에 발견된 세균은 1%밖에 안된다. 미생물에 대한 기술이 1%밖에 안 되는 것과 같은 의미"라며 "미생물을 채취해도 보존이 안 돼 없어지는 경우도 많다. 다양한 미생물을 발견하고, 발견된 미생물들을 모두 다 지켜내겠다"고 강조했다.

이어 그는 "최근 미생물과 질병과의 관계가 밝혀지면서 '똥'속 미생물이 제2의 장기로 인식되고 있다"라며 "한국인 표준 장내 미생물 은행을 구축해 유용한 장내 미생물의 실용화를 지원해 나가겠다"고 역설했다.

연구팀이 밀폐된 진공 상태에서 대변의 절대혐기성 미생물을 채취하고 있다. 산소가 닿으면 죽는 미생물이다.<사진=박성민 기자>
연구팀이 밀폐된 진공 상태에서 대변의 절대혐기성 미생물을 채취하고 있다. 산소가 닿으면 죽는 미생물이다.<사진=박성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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