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의 날 기념식, 대통령은 수도권 대기업 챙기고 연구 현장 방치
IBS 상징성 불구 '국장'이 축사, 의미 훼손···현정권 과학계 무시 행보
서울로 인재 집중 불보듯...대덕 등 긴장감 갖고 대책 세워야

2018년 4월20일 과학의 날 기념식 등 일련의 과학 행사는 두고두고 회자될 '사건'이 될듯 하다.

과학계 최대 기념일이 역대 최악의 과학경시 '참사'(?)로 기억될 가능성이 짙기 때문이다.

이날 서울과 대전에서는 희비가 완전히 갈렸다. 다소 무리가 있는 개념이지만 정부가 주도하는 공적 과학은 주저 앉았고, 기업이 주도하는 사적 과학은 우뚝 섰다.

정의를 제1의 가치로 내세우고,지방자치와 균형발전을 통치의 근간으로 삼는다는 문재인 대통령 스스로가 앞장선 일이기에 더욱 우려되는 상황이다. 

서울과 대전에서는 이날 각기 과학 관련 행사가 열렸다. 서울에서는 오전에 마곡 지구에서 LG 사이언스 파크 개장식이 열렸다. 대전에서는 오후에 기초과학연구원(IBS) 본원 개원식과 과학의 날 기념식이 연이어 열렸다.

그러나 행사는 대조적이었다. 마곡단지 준공식과 다름 없지만 LG 행사라고 불려도 좋은 서울 행사에는 문재인 대통령과 유영민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 등이 참석했고, 대전 행사에는 IBS 개원식의 경우 축사를 장관이나 차관이 아닌 국장이 했다. 과학의 날 기념식에서는 한국을 오늘날과 같은 반석위에 올려 놓은 과학기술 유공자들에 대한 유공자 지정 증서 수여식도 열렸으나 씁쓸했다. 진심으로 노고에 감사한다는 어떤 제스처도 없었기 때문이다. 

20일의 상황을 접하며 연구 현장을 관찰하는 국민의 한 사람으로 무엇인가 운동장이 기울어졌다는 느낌을 갖게 되고, 왜 그렇게 됐고, 앞으로 미칠 영향은 무엇인가 등등을 생각하게 된다.

2008년 정부수립 60주년 국민 여론 조사에서 한국이 오늘날의 번영을 이루는데 가장 큰 기여를 한 분야로 과학이 꼽혔다. 여기에서 말하는 과학은 정부출연연구소가 주축이 된 공적 과학이 주연이고, 기업이 주축이 된 사적 과학이 조연이다.

광복과 연이어 터진 전쟁으로 폐허속에서 번영의 싹을 틔운 것은 공적 과학이었다. 1966년 설립된 KIST가 불모지에서 연구개발이란 것을 뿌리내리게 했고, 1971년 설립된 KAIS(현 KAIST의 전신)가 차세대 인력을 양성하며 한국 과학은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월남전 참전의 대가 중 하나로 한국에는 연구소가 설립된다. 1인당 국민 소득 200달러 정도에 불과한 나라에서 과학기술을 하겠다고 한 것이다. 최빈국 대열에 있는 나라가 연구소를 설립하겠다니 얼마나 허황(?)된 이야기였겠는가? 그러면서도 우리는 미국이 제안한 기초전문 연구소가 아닌 돈 버는 산업 중심 연구소를 선택해 과학을 시작한다. 국내에는 인재가 부족해 해외 인재를 유치하러간 최형섭 당시 KIST 원장은 "노벨상 받는 기초 연구할 사람은 미국에 남고, 지금 우리에 필요한 돈 버는 연구를 할 사람들은 함께 고국으로 가자"고 호소했다.

과학자는 대다수가 우주의 본원에 대한 연구를 하고 싶어한다. 그러나 국가는 당장은 먹고 살게 없어 돈 버는 연구를 해야했다. 그런 세월을 반세기 정도 지나고 경제적 번영을 이룬 다음 우리도 이제는 기초연구를 하겠다고 설립한 것이 현재의 IBS이다. IBS는 시작은 MB정부때 하고, 기반은 박근혜 정부때 다졌으며, 본격적 활동은 문재인 정부에서 하게 된 셈이다. 

그런 정권을 초월하는 장기적 안목이 필요함에도 20일의 IBS 개원식은 참으로 실망스러웠다.대한민국이 선진국만이 할 수 있는, 우주의 근원을 밝히고 인류에 기여할 수 있는 기초연구를 시작하는 잔치를 벌여도 좋은 자리였다. 그러나 잔치의 주인 가운데 한 축인 정부측 대응은 소홀하기 짝이 없었다.

대통령은 수도권 대기업을 찾아가 실리콘밸리가 안부럽게 됐다고 축사를 하고, 장관은 그 행사를 챙기느라 개원식에는 오지도 않았다. 차관은 참석했지만 자리를 비웠다. 이유는 총리 마중이었다. 총리는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나 공식행사에는 못오고, 공식행사뒤 2부로 마련된 기념비 제막식에 잠깐 들르는 형식을 취했다. 이런 연유로 축사를 국장이 하게 됐다.

정부 측의 무개념 대응으로 IBS가 갖는 역사적 의미는 빛바랬다. 건국 70여년만에 기초과학을 하게 됐다는 과학자들의 벅찬 감정은 찬물을 뒤집어 썼다. 명예를 소중히 여기는 과학계에 대한 모욕이라는 주장도 있다. 일부에서는 MB때 시작한 것인만큼 참석하기 싫었던 것이 아니냐는 풀이도 한다. 그렇게 속좁은 대통령에, 정권의 눈치만 보는 과기 관료라고는 생각은 안든다. 만약 대통령이, 청와대가 그런 정무적 판단을 했어도, 직업 관료로서 누구보다 과학을 잘 이해하고 뼛속 깊이 과학만이 우리의 살 길이라는 것을 아는 관료들은 그랬으면 안된다. 그런데 그런 일이 벌어졌다.

과학의 날 기념식 전후에도 납득 못할 일이 벌어졌다. 정부는 과학기술 유공자를 우대하겠다며 법을 만들었고, 우장춘 박사 등 32명을 선정했다. 그 가운데 10분이 생존 인물이고, 그 중 8분이 이날 기념식에 참석해 유공자 증서를 받았다. 오늘날 번영된 한국을 이루는데 누구보다 큰 역할을 한 영웅들이다.그런데 이 분들게 책임 있는 정부 인사가 밥 한 번 사고 고견을 듣기 위한 자리를 마련했다는 이야기를 듣지 못했다. 과학계에서는 청와대에 유공 인증서 수여를 대통령이 직접 해주기를 요청했다. 그러나 바쁘다는 이유로 차일피일 미루다가 결국 과학의날 기념식에 총리가 수여하는 것으로 정했고, 결국 대통령과의 만남은 불발됐다. 

문재인 정부는 취임초부터 과학기술을 중시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는 이야기를 현장에서 많이 해왔다. 연구현장에서는 뜬소문으로 여기고 싶어 했다. 각종 발언에서 과학을 중시하겠다는 말을 해왔기 때문이다. LG 사이언스 파크 개원식에서 '사람이 미래다'라고 방명록에 썼다. 하지만 말과 다르게 현실에서는 홀대 혹은 무시가 드러나며 연구현장에서는 실망의 기운이 역력하다.

LG 사이언스 파크는 우리 과학의 빛나는 성과라고 할 수 있다. 드디어 우리나라도 정부 주도 연구에서 기업 주도 연구가 활성화되고, 그로 인해 제조업 중심 국가에서 연구개발 중심 국가로 업그레이드 되며 세상에 없는 것을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그런데 왜 하필 이날 개장식을 해야했고, 대통령은 과학중심 대전을 외면하고 마곡으로 달려갔을까? 청와대에서 대통령이 참석한다고 하면 LG에서도 얼마든지 날짜를 달리 잡았을 것으로 보인다.그럼에도 왜 청와대는 이날을 택일했을까?

LG 참석은 여러모로 사려 깊지 않은 행동으로 과학계에서는 받아들인다. LG와 삼성 등 대기업 중심의 연구개발이 의미가 크기는 하다. 25개 과학관련 정부출연연의 총 연구인력은 1만5000명 수준이다. 그에 비해 LG가 마곡만 2만2000명이고, 삼성도 국내외 9만이 넘는 연구인력이 있다. 출연기관들이 기재부에서 정해주는 TO에 손발 묶여 있을 때 기업들은 치고 나가며 정부규모를 훨씬 뛰어넘는 인력을 고용하고 새로운 제품을 내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기업들의 연구는 30대 대기업  그룹 가운데 상위 10여곳에 그칠 뿐 나머지 대기업과 중견기업, 그리고 대부분의 중소기업은 연구개발에 거의 손을 못대고 있다. 이들의 연구개발을 지원하고, 기초 연구를 해야 하는 것은 결국 대덕 등에 위치한 출연연의 몫이다. 그 출연연 과학자들과 카이스트 교수, IBS 연구원 등 공적 연구를 하는 과학자들에게 대통령은 격려와 응원을 해야했으나 그렇지 못했다.

실리콘밸리가 부럽지 않다는 발언도 대통령 본인의 지방균형 발전 철학과 연관지어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실리콘밸리가 어디에 있는가? 미국의 경제 중심인 뉴욕과 수도인 워싱턴에 있는가? 미국의 주변이었던 서부에 있다. 과거 궁벽한 곳이었으나 기술과 인재가 결부되며 미국의 성장엔진이 된 것이다.

마곡 단지는 한국 경제에 상징적 의미도 있으나 한계도 동시에 드러내는 곳이다. 서울이기 때문이다. 인재가 수원 이남으로는 내려오지 않으니 대기업들이 서울에 연구소를 만든 것이다. 이 연장선상에서 앞으로 예상되는 것은 인재의 서울 집중이다. 과연 대통령이 말하고 바라는 지방균형발전이 이런 것인가?

현대중공업 회장을 역임하고 이번에 과학기술인 유공자로 선정된 민계식 박사는 말한다. 돌이켜보면 우리나라 조선업이 경쟁력을 잃게된 시발점은 우수한 인재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서울을 벗어나지 않으려고 해 수도권에 연구소를 두게 된 것이라고. 연구소와 제조 현장이 멀어지며 소통에 지장이 생겼고, 시장을 선도하는 연구는커녕 흐름도 못따르며 경쟁력을 잃게 됐다는 것이다.

연구개발은 그나마 수도권 중심에서 조금 벗어나 있던 영역이었다. 대덕연구단지가 수도권 밖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제 앞으로는 그것도 장담할 수 없다. 우수 인력의 서울 집중을 대통령이 나서서 독려하는 셈이 됐으니 지역의 연구개발은 더욱 어려움에 처할 것으로 보인다.

미국의 실리콘밸리가 보여주듯 대통령은 몇십년 앞을 내다보는 행보를 해야 한다. 서부란 오지가 새로운 중심지가 되는데는 100년 가깝게 걸렸다. 대덕이나 지방이 새로운 성장엔진이 되려면 시간이 걸린다. 그 기간 동안 리더는 투자하고, 기다려주어야 한다. 대통령은 빛과 같은 존재이다. 빛은 이미 밝은 곳을 비추는 것이 아니라 상대적으로 소외되고 어두운 곳을 비추며 미래를 내다 보도록 해야하지 않을까? 

과학계에서는 다른 한 편 정권의 홀대 내지 무시를 받는데는 본인들에게도 책임이 있다는 지적도 있다. 세상을 뒤흔들 결과를 내놓아야 하나 그렇지 못했다. 자신만의 연구에 주력했지 연구 생태계나 문화를 만드는 일은 남의 일로 간주했다. 과학이란 무엇이고, 연구자의 덕목은 무엇인지와 같은 연구의 기본을 생각할 겨를은 없었고, 과제에만 집중했다. 산업 현장이나 외국의 연구 일선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동향을 파악하는 것보다는 근무 환경을 따지는데 더 신경을 쓰기도 했다. 원로 및 중견 과학자간의 소통도 많지 않았고, 특히 미래를 이끌 젊은 과학자들에 대해 별 신경을 쓰지도 않았다. 융합의 시대라고 말은 하지만 대덕연구단지내 다른 연구소와의 담은 20년전과 비교해 그닥 낮아지지 않았다. 대덕연구단지는 모여 있으나 함께 이야기하는 마당이 없다. 과학자들이 요구도 하지 않았다. 연구자가 아니라 샐러리맨이 됐다. 등등.

지난 20일의 씁쓸함은 결코 해프닝이 아니다. 가볍게 생각하고 넘어가면 병이 더 깊어진다. 대통령과 장관 등 정부도 이번 일을 계기로 과학에 대해 더 고민하고, 과학계도 건강한 생태계를 만들기 위해 시선을 더 높일 필요가 있다. 언론으로서도 지적만 하는 것이 아니라 해결책을 찾는데 일조토록 하겠다. 한반도를 둘러싼 주변은 시간이 갈수록 냉혹해진다. 지금은 갈등할 때가 아니라 힘을 합칠 때이다. 대통령의 관심을 연구 현장에서는 요구한다. 동시에 과학계도 정부의 호의에 의존하지 말고 자강할 수 있는 심각한 고민과 행동이 요구된다.

저작권자 © 헬로디디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