옆출연연 식당도 못가는 연구자, 대덕 물리적단절 '심각'

[연구문화①]출연연 별 출입 엄격히 통제···식당, 강연장 출입도 번거로워
커뮤니티 공간 절대 부족···서로간 벽만 쌓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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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민구 기자 - 2018.04.23

4차 산업혁명 시대가 다가오면서 '일하는 문화'도 점차 바뀌고 있습니다. 현대사회에는 기존의 단순하고 저차원적인 문제를 넘어 복잡하고, 고차원적인 문제들이 대두되고 있습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초학제적, 융합 연구 등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국내 연구문화에는 과거와 동일하게 폐쇄적이고 경직된 문화가 자리잡고 있습니다. 미국, 일본 등 주요 선진국에서는 연구자간, 대중간 등 소통에 적극 나서며 생활 속 과학, 국민과 함께하는 과학을 추구하고 있습니다. 대덕특구 정부출연기관을 중심으로 과학계 연구문화를 되짚어보고 방안을 모색하는 기획기사 시리즈를 연재합니다.<편집자 주>

#1. KAIST에서 오랜 기간 학생을 지도해 온 A 교수. A 교수는 인근 정부출연연구기관에서 열리는 다양한 행사나 교류회 정보를 알고 싶어한다. 하지만 외부 기관별로 공개하는 정보가 극소수인데다가 일일이 찾기도 쉽지 않다. 설령 행사를 찾아 연구기관에 들어가면 '이 사람이 왜 와 있는가'라는 눈치를 받는 것이 불편하다.

#2. 출연연에서 30여년 근무한 B 박사. 아시아에서 관련 분야 최고 석학으로 인정받고 있는 그는 소통과 학습을 중요시 한다. 때로는 옆 연구원 구내 식당에서 동료 연구자와 점심을 먹으면서 이야기를 나누고 자신의 연구원증으로 결제도 하고 싶은 마음이 크다. 하지만 번거로운 출입 절차로 자신의 연구원 식당만을 이용하게 된다.

#3. 젊은 연구자 C 박사. 그는 연구에서 다양한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다는 점에서 출근 외 개인 시간을 내서 외부 사람들을 만나곤 한다. 하지만 엄격한 출·퇴근 관리 시스템과 외부 강의 신고서 작성 등 행정적인 절차와 규제로 활동을 기피하게 된다.

40여년전 대덕연구단지 조성 당시에는 추격형(Fast Follower) 연구가 유효했다. 연구자들은 기존 선진국들의 연구를 모방하며 빠르게 추격하는 것이 가능했다. 별도의 소통이나 연계는 상대적으로 중요하지 않았다.

하지만 국내 연구 수준이 선진국 수준에 접어들면서 선도형(First Mover) 연구로 빠르게 변하고 있다. 게다가 인공지능, 빅데이터 등 첨단 기술의 발전에 따른 복잡다단한 문제가 많아지면서 '연결', '협업' 등의 가치가 중요해지고 있다. 소통이 연구의 필수요소가 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출연연 출입문화는 과거와 달라진 게 없다. 오히려 더욱 출입이 통제되는 시스템으로 가고 있다.  출연연들이 독립적으로 발전하고, 기관 간 경쟁도 이뤄지면서 타 기관과 단절도 심화되고 있다. 대덕 특구 구성원들은 단절된 대덕특구를 보며 이대로는 미래를 대비하기 어렵다고 우려한다.

◆물리적으로 단절···"인근 연구소 식당도 자유롭게 못가"

대덕특구에는 출연연, 대학 등이 밀집했다는 지리적 강점이 있다. 모 대학 관계자는 "10~15분 정도 자전거를 타고 이동해 KAIST, UST, 화학연, 항우연 등을 쉽게 이동할 수 있을 정도로 지리적인 강점이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연구 경쟁, 세대 간 갈등, 직종 간 갈등, 기관 중심 발전 경영 등으로 인한 연구문화는 지리적인 강점조차 무색하게 한다. 국가과학기술연구회 소관 25개 출연연이 각기 다른 시스템을 사용하면서 바로 옆 출연연에 친한 연구자를 만나러 갈 때도 까다로운 출입절차를 거쳐야 한다. 

이런 불편함에 연구자들 대부분 대화 시간을 갖으려 했다가 그냥 포기하는 경우도 다수다. 출연연마다 소통시간을 마련하고 있지만 물리적 시스템이 마련되지 않으면서 소통은 구호에 그치고 있는 형국이다. 연구회에서 출입증을 하나로 하는 작업을 진행중이지만 비용과 시간이 많이 소요되면서 변화 속도는 더디기만 하다.

여기에 커뮤니티 공간, 소통 공간 미비로 사실상 물리적인 단절도 심각하다. 출연연마다 소통, 대화 공간이 전혀 없는 상황이다. 최근 카페 등 공간이 마련되고 있지만 내외부 연구자들이 자유롭게 이용하는데는 여전히 한계가 있는게 사실이다.

출연연 D 박사는 "대덕특구에 출연연이 많은 것을 자랑하면 안되며, 솔직히 부끄러운 마음이 크다"면서 ​"같은 건물안에서도 소통이 안되는데 외부 건물이라고 되겠는가. 세대간, 직종간 소통이 안되며, 타출연연과의 연계도 거의 없다"고 지적했다.

출연연 원내에서는 주로 독립된 개인 연구실이나 파티션이 있는 단절된 공간에서 연구가 주로 진행되고 있다. 오프라인 소통은 소속 부서 회의, 세미나 등을 통해 자신이 수행하고 있는 연구 관련 소통으로 진행된다. 이 밖에는 주로 사내게시판 등 온라인 소통이 이뤄진다. 

출연연 연구자 E 박사는 "주로 온라인 사내게시판을 이용해 정보를 얻고, 타출연연 연구자나 원내 다른 연구자들과 상시로 모여 자유롭게 소통할 수 있는 공간은 마땅치 않다"면서 "점점 연구가 혼자서 할 수 없게 되는 현실 속에서 원내·외 연구자들과 자유롭게 만나고 교류할 필요성을 절실히 느낀다"고 강조했다.

외부적으로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연구자들이 타 연구소 연구자들과 자주 교류하고 싶어도 쉽지 않다. 타 출연연에 출입하기 위해서는 만나는 사람부터 목적 등까지 하나하나 절차를 밟고 왕래해야 하기 때문이다.

가령 한국지질자원연구원 연구자가 인근의 한국생명공학연구원, 한국기초과학지원연구원 등 인근 연구소에 출입하기 위해서는 별도의 출입 절차를 밟아야 한다. 해당 연구원의 식당, 도서관 이용, 공개 강연 참가 시에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각 기관별 행사가 자체 직원들에게만 주로 공지되고, 알려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 인근 연구소의 특강, 세미나 등을 원하는 이들이 있어도 정보를 일일히 찾아야 하거나, 시간 관리 시스템으로 참석이 쉽지 않다.

출연연 관련 기관에서 근무하고 있는 F 박사는 "지인을 통해 한 출연연에 유명 작가의 강연회가 열린다는 소식을 접했다"면서 "하지만 연구기관에서 출입신청을 하고, 방문증을 받아 관련 건물로 이동해야 한다는 사실에 참석을 꺼리게 됐다"고 토로했다.

한국원자력연구원, 한국항공우주연구원, 국가핵융합연구소 등 국가 보안 시설을 보유한 출연연의 경우에는 더욱 엄격한 통제가 이뤄진다. 모든 건물 출입이 사전 출입을 신청하거나 원내 직원과 함께 해야 가능하다.

KAIST 등의 과기특성화대, 국립중앙과학관과 같은 과학대중화 기관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출연연 연구자가 KAIST 도서관, 국립중앙과학관 등을 이용할 경우에도 일반인과 차이가 없다.  

출연연 D 박사는 "출·퇴근버스를 타도 인근 연구자들이 서로 인사도 안하고, 주변에 관심이 없는 것을 보며 안타까웠다"면서 "출연연 연구자들이 적어도 자신의 소속 연구원 출입증으로 인근 연구소에서 식사하는 것이 가능해져야 한다. 자주 해당 기관 연구자와 자유롭게 식사하고, 왕래하며 과학자간 교류하는 것이 융합 연구의 시작이라고 본다"고 강조했다.

◆폐쇄적·경직된 연구문화···이대로는 미래 대비 불가능

내·외부적으로 소통과 융합이 활성화되지 않는 이유에는 물리적 요소 뿐만 아니라 연구문화적인 측면도 적지 않다. 연구자들의 개인 성향, 연구 특성 등으로 소통하기를 꺼리는 경향이 존재한다. 여기에 연구비 수주 경쟁, 세대간 갈등 등으로 소통에 적극 나서지 않게 된다는 것.

출연연 C 박사는 "평가자 또는 결제 권한자 일부가 책임은 안지고 통제 제어하려는 경우가 있으며, 폐쇄적 연구를 좋아하는 경향이 있다"면서 "원내·외 다양한 커뮤니티 활동, 강연 등을 찾고, 다양한 연구자들과 교류하고 싶어도 일이 바쁘고, 경직된 연구 문화로 인해 사실상 젊은 연구자들이 근무 시간에 행사장을 찾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지적했다. 

이와 반대로 한 연구자는 "기성세대보다 우수한 젊은 연구자들이 입사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뒤쳐지는 경향이 있다"면서 "연구는 시간에 초연한 연구가 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원내뿐만 아니라 특구 내에서 수시로 다양한 분야의 연구자들이 만날 수 있는 공간도 사실상 부재하다. 범출연연 차원에서 다양한 분야 사람들이 자유롭게 왕래하며 교류할 수 있는 공간이 마땅치 않다는 것이다.

출연연 D 박사는 "R&D 건물이 보안에 철저할 필요는 있지만 식당, 도서실, 매점 정도는 공개 가능하지 않은가"라면서 "인근 연구소 사람들과 밥을 먹으면서 좋은 아이디어가 나오고, 다양한 행사를 찾으며 자연스럽게 융합할 수 있는데 서로 간 벽만 쌓아두고 있다"고 우려했다.

출연연 E 박사는 "연구자들이 파티션 또는 각방을 활용하면서 각자의 공간에 들어가버렸다"면서 "앞으로의 연구는 주어진 일만 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사람을 만나며 발품을 팔면서 얻는 아이디어가 기반이 돼야 하는데 현재로서는 미래가 어둡다"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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