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부산發 문화 '파격'과 대덕

철학과 음악이 함께 하는 색다른 음악회 '노자와 베토벤'
새로운 시도에 부산 시민 높은 예매율로 화답
과학 도시 대전도 높은 시선의 변화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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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 이석봉 기자 - 2018.04.04

'노자와 베토벤 2018' 시리즈의 포스터.사진 왼쪽이 지휘자인 오충근 감독, 오른쪽 철학자인 최진석 원장이다.<사진=이석봉 기자>'노자와 베토벤 2018' 시리즈의 포스터.사진 왼쪽이 지휘자인 오충근 감독, 오른쪽 철학자인 최진석 원장이다.<사진=이석봉 기자>

부산. 대한민국 제2의 도시이나 인구가 줄고 조선산업과 자동차 부품 등 산업 경쟁력이 약화되며 다음 먹거리를 고민하는 도시. 약동 보다는 쇠퇴를 이구동성으로 이야기한다.

쇠약해지는 이미지에 반전을 주는 '별볼 일'이 하나 벌어졌다. '노자와 베토벤'이 만난 것. 노자와 공자, 베토벤과 바하처럼 동종교배가 아니라 노자와 베토벤이란 이종교배가 이뤄진 것이다.

발단은 한국 사회의 지적 독립을 주창하는 최진석 건명원 원장과 부산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오충근 예술 감독의 의기 투합. 3년전 최 원장의 주체적 삶에 대한 책을 읽고 오 감독은 충격을 받는다. 수소문끝에 최 원장을 만나 3시간에 걸쳐 이야기를 나누고 바로 다음날 근무하던 대학에 사표를 냈다. 그리고 자신이 해오던 음악을 바탕으로 세상 변화를 위해 기획한 것이  '노자와 베토벤'시리즈이다.

이전에는 음악을 하며 의미 보다는 정확한 해석에 초점을 두어왔다. 그런데 최 원장을 만나며 세상에 없는 새로운 음악을 생각하게 된 것. 노자란 동양 철학자와 베토벤이란 악성의 만남을 통해 삶의 의미를 되짚어 보기로 한 것이다.

이종교배인만큼 진행 방식이나 내용도 독특하다. 지난달 31일 '노자와 베토벤 2018'의 첫 주제인 고(孤)의 공연을 보자. 먼저 주제인 '고'에 대해 대해 철학자인 최진석이 설명한다. 음악회에 지휘자만 무대에 서는 것이 아니라 철학자가 나란히 마이크를 쥐는 것.

"고독과 외로움은 비슷해 보이나 전혀 다른 의미를 지닌다. 고독은 산고와 같다. 새로운 것을 낳기 위해 혼자서 감당해야만 하는 것을 말한다. 남의 꿈이 아니라 자신의 꿈을 실현하려는 사람의 행위이다. 판단도, 그에 따른 책임도 온전히 본인 몫이다. 자신이 주체가 되는 행위이다. 이에 반해 외로움은 자신이 주체가 되는 것이 아니라 남에 종속되는 것을 뜻한다. 유행에 뒤쳐졌거나, 남의 시선을 의식하거나, 다른 사람에게 선택되지 못했을 때 느끼는 감정이다. 내 꿈을 꾸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꿈을 따라가려는 것이다."

이 특강 뒤에 오충근 감독의 음악 선곡 이유 설명과 연주가 이어진다.

"오늘의 첫곡은 베토벤이다. 베토벤은 자신보다 16년전에 태어난 모짜르트란 천재의 그늘에서 벗어나려고 무던히 애썼다. 무엇을 해도 그 사람과 비교되던 시대이다. 그런 가운데 자기 색깔을 가지려 몸부림을 쳤다. 아마 음악가로서는 치명적 장애인 귀가 멀게되는 것도 그 스트레스와 관련되지 않을까 싶다. 베토벤은 모짜르트가 죽은 지 10년뒤에야 첫 교향곡을 발표한다. 아마 실력으로는 그 전에 발표할 수도 있었겠지만 자신의 다른 색깔을 내기 위해 10년을 기다리지 않았나 여겨진다. 오늘은 베토벤이 영웅이라고 이름 붙인 교향곡 3번, 그 중에서도 영웅의 죽임을 이야기한  2악장인 장송 행진곡을 듣겠다."

음악을 듣고 2부에 다시 최진석 원장이 등장한다.

"대한민국이, 부산이 지금은 결정해야 할 시점이다. 따라하는 삶을 지속할 것인가 내 세계를 만들 것인가? 단기적인 국면에서 위기를 모면하는 전술적 삶을 살 것인가, 장기적 안목에서 판을 주도하는 전략적 삶을 살 것인가? 내 마음대로 살아가는 자유롭고 독립적이고 주체적 삶을 살 것인가, 눈치 보고 다른 사람을 고려하는 종속적 삶을 살 것인가? 자유로운 사람은 필연적으로 창의적이다. 기존의 영토와 익숙한 것과 결별하는 것이다. 불편한 것을 자초하는 것이다. 그것은 고독한 행위이다. 왜 고독을 자초하는가? 새롭고 위대해지기 위해서이다. 우리가 지금 익숙하게 쓰고 있는 물건과 제도 가운데 우리가 만든 것은 거의 없다. 자동차도, 민주주의도 다른 사람들이 만든 것을 가져다 쓰는 것이다. 그런데 이제 다른 사람의 것을 모방하고 빌려다 쓰는 시스템은 한계에 다달랐다. 우리 사회가 갈등하고, 미래 방향을 못찾아 헤매고, 주변국 눈치 보는 것이 그 때문이다. 이제 우리가 창의적이 되서 우리 것을 만들어야 한다. 부산은 종속적 도시인가, 독립적 도시인가? 부산은 부산만의 꿈을 꾸는가, 서울의 꿈을 대신 꾸는가? 이제 이 심각하게 이 질문과 해답을 고민해야 할 때이다."

이어 오충근 감독이 덧붙인다.

"베토벤이 죽고난 뒤 태어난 음악가가 브람스이다. 브람스는 20세부터 작곡을 시작하나 교향곡은 자신의 색깔을 찾기 위해 43세에 1번 교향곡이 나올 정도로 늦게 내놓는다. 그러나 그 이후 10년내에 4개의 교향곡을 내놓고 4개 모두 불후의 명곡이 된다. 브람스의 교향곡 제3번의 3악장을 듣겠다."

그동안의 음악회와는 확연히 구분되는 구성이다. 관객들의 반응은 어떨까? 어려운 철학 이야기이고, 때로는 부산을 응원만 하는 소리가 아님에도 몰입을 한다. 주의 깊게 들으며 박수와 환호,웃음이 교차한다. 

연주회에 앞서 강병인 서예가가 무대에서 '노자와 베토벤 2018' 시리즈의 주제인 고주망태를 쓰고 있다.<사진=이석봉 기자>연주회에 앞서 강병인 서예가가 무대에서 '노자와 베토벤 2018' 시리즈의 주제인 고주망태를 쓰고 있다.<사진=이석봉 기자>

노자와 베토벤의 만남은 올해가 두 번째이다. 지난해 처음 부산문화회관 기획공연으로 희로애락이란 주제로 4번의 연주회를 가졌다. 올해는 고주망태(孤酒忘態)란 주제를 택했다. 고는 고독과 외로움의 변주이다. 두번째인 주(酒)는 술이다. 고독하고 쓸쓸함을 달래기 위해 술을 마시지 않을수 없다. 술은 새로운 영감의 원천이기도 하다.

3번째는 망(忘). 괴로움을 잊으려 하는 몸부림이다. 동시에 새로운 탄생의 근원이다. 마지막은 태(態). 고독한 인간의 자신만의 삶의 태도는 무엇인가에 대한 화두를 노래하는 것이다. 세상에 없는 음악회인만큼 여느 교향악단과는 색다른 시도도 한다. 孤에서는 서예와의 만남을 가졌다. 酒에서는 소리로 바위 깬다는 판소리 명창 및 대금 연주자의 등장, 忘에서는 소프라노의 협연, 態에서는 해금과 바이올린의 이중주가 예정돼 있다.

최 원장은 최근 서강대 철학과 교수를 그만 두고 21세기 대한민국을 이끌 인재를 키우는 것을 표방한 건명원에 전념하고 있다. 그는 한국은 혁명이 필요한 상황이고, 역사는 주변부가 중심을 전복시켰다며 지방에 희망이 있다고 말한다. 문화에서는 부산을 꼽는데 그 첫 시도가 노자와 베토벤이다.

그는 대덕도 중요한 지역이라고 말한다. 과학기술에 대한 올바른 이해와 과학자들의 사회 참여가 대한민국호의 항로를 제대로 잡을 수 있을 것이라고.

연주회가 끝나고 오케스트라 단원을 만나 물어보았다. 이전의 연주와 노자와 베토벤의 연주의 차이점이 있는가? 다르다고 한다. 의미를 알게 되니 맥락과 본질에 충실한 연주를 하게된다고 답한다.

이날 연주가 끝나고 많은 사람들이 다음 연주인 '주'(7월7일) 연주회 예약을 한다. 얼핏 보니 예매율 약 70%이다. 지방에 있는 오케스트라로서는 표를 팔아 운영한다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이다.변화가 가져온 결과인가?

과학이야말로 자신만의 것을 만들어 내기 위해 고독이 필요하고, 익숙한 것에서 벗어나야 하며,창조성이 요구된다. 현장에서 만난 연구자들이 하나 같이 힘들다는 이야기를 한다. 과학자가 아니라 샐러리맨으로 전락했다는 자조적 목소리도 들린다. 연구비를 대는 국민들을 위해서도 그렇지만 연구자 스스로의 삶의 질을 위해서도 변화가 일어나야 한다. 과연 대덕에서 변화를 일으키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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