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윤기준 KAIST 과학기술정책대학원 박사과정생(ykjstp@gmail.com)
출처: 과총 '과학과 기술' 4월호 발췌

윤기준 KAIST 과학기술정책대학원 박사과정생은 KAIST 건설 및 환경공학과 졸업 후 과학기술정책으로 석사학위를 받았다.<사진=과총 제공>
윤기준 KAIST 과학기술정책대학원 박사과정생은 KAIST 건설 및 환경공학과 졸업 후 과학기술정책으로 석사학위를 받았다.<사진=과총 제공>
지난해 말 IBS(기초과학연구원)가 1단계 건립을 마치고 대전 엑스포 과학공원 터에 자리를 잡았다.

IBS는 그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물리학, 화학, 수학, 생명과학, 지구과학, 융합학문 등 과학의 근간을 이루는 기초 학문을 연구하는 전담 연구기관을 표방하며 설립되었다.

총 28개 연구단이 소속되어 활동하고 있으며 추후 연구단 규모를 50개까지 확장할 계획이다. 그러나 IBS는 그간 위상과 규모에 걸맞은 건물을 가지지 못하고 있었다.

설립 전인 2009년부터 위치와 형태를 놓고 많은 논의가 있었고 2011년 설립된 이후에도 행정 조직은 대덕 KT 연구센터에 연구단은 전국에 퍼져 있어 온전한 기능을 수행하기 어려웠다.

이번 1단계 건립을 계기로 IBS는 행정조직과 본원 연구단을 한데 모아 원활히 소통해 더욱 뛰어난 연구성과를 내겠다고 다짐하며 2단계 건립을 위한 종합 기본 계획 작성에 돌입했다.

◆ 기술 역시 과학연구에 핵심적 역할 수행

당연한 말이지만 IBS에는 실험기구가 필요하다. 과학이 점차 고도화됨에 따라 많은 사람들은 실험기구라고 하면 전자 현미경과 같이 복잡한 장비를 생각한다. 그러나 실험기구에는 그러한 장비만 있는 것이 아니라 선반, 코일, 스프링처럼 단순해 보이지만 실험마다 달라서 규격화하기 어려운 경우도 많다.

이러한 기구는 실험의 편의성을 증대시켜 연구원이 더 큰 성과를 낼 수 있도록 돕기도 하며 특히 실험물리 연구의 경우 실험을 위한 전용 기구를 제작해야 하기에 부품의 질이 실험의 질을 결정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과학의 발전이 기술의 발전을 부른다는 고정관념을 가지고 있는데 항상 그런 것은 아니다. 실험기구 모양을 결정하고, 적당한 재질을 고르고, 쇠를 깎으며 아크릴을 절단하는 '기술'이 과학 연구에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하기 때문이다.

◆ 전문성 요구되는 실험기구 제작

좋은 연구에는 좋은 기구가 필요하지만 이를 쉽게 구하기는 어렵다. 실험기구를 만드는 일도 나름의 전문성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피펫이나 습도조절기처럼 여러 실험에 사용할 수 있는 기구는 기성품을 구매해서 사용해도 큰 문제가 없지만, 실험에 따라서 특수 제작된 전용 기구가 필요한 경우 문제가 된다.

실험 목적에 맞는 기구를 만들기 위해서 기구 제작자는 재료를 깎고 붙이고 연마하는 기술뿐만 아니라, 연구자가 어떤 실험을 하는지 이해하고 목적과 실험 과정에 맞는 재질을 고르고 모양을 디자인할 수 있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연구자와의 긴밀한 소통 또한 중요하다. 세상에 없던 기구를 제작하는 일이기에 필연적으로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고, 빠르게 해결 방안에 대해 논의해야하기 때문이다.

◆ IBS에 내부 공방을 만들면 어떨까?

그렇다면 IBS에 공방을 만드는 것은 어떨까? 2단계 건립 사업을 논의하는 지금이야말로 새로운 시설을 검토하는 데 적기다. 실험기구를 내부 공방에서 제작하면 연구에 큰 도움이 될 수밖에 없다.

앞서 말했듯 좋은 실험기구를 만들기란 어려운 일인데 내부 공방에서 경험을 쌓은 제작 전문가가 상주한다면 좋은 기구로 인해 연구의 수월성과 질에서 큰 향상을 기대할 수 있다. 내부 공방이 주는 이점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실험기구를 외부 업체에 주문할 때 연구자가 지는 부담은 작지 않다. 연구비 지출로 인한 각종 서류처리는 물론이고 외부 업체와의 비효율적인 서면, 전화 소통을 감수해야하기 때문이다.

제작 기간이 늘어나는 일도 다반사다. 디테일이 중요한 실험기구의 경우 업체와의 즉각적인 연락이 중요한데 한정된 인력으로 여러 일을 처리하는 외부 업체의 사정상 적은 수량만을 제작하는 실험기구에 우선순위를 둘 수 없기 때문이다.

'실험'이나 '전용'이라는 이름이 붙는다는 이유로 터무니없이 높은 가격을 책정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내부 공방은 경험 많은 실험기구 제작자를 육성할 뿐 아니라 과학자와 기구 제작자간의 소통을 원활하게 하여 좋은 실험기구를 저렴한 값에 빠르게 확보할 수 있도록 도울 것이다.

◆ 공방은 지역사회와 연구기관 잇는 가교될 수 있어

IBS에 공방을 만드는 일은 지역사회와 연구기관이 밀접한 관계를 맺는다는 점에서 연구원을 벗어나는 의의를 지닌다. 대전은 대덕연구단지, KAIST, 엑스포 과학공원 등이 위치해 '과학도시'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기관과 시설을 제외하면 대전에서 과학에 관련된 무언가를 찾기는 어렵다. 대덕연구단지와 KAIST는 뛰어난 연구 역량을 가지고 있음에도 '대전의 섬'이라는 표현이 있을 만큼 지역과 연계가 많지 않다.

연구단지의 설립 목적이 전국적으로 부족한 기업 연구 역량을 보충하기 위함이었기 때문이다. 중앙정부에서 대전에 연구단지를 만든 이유는 대전이 전국에 연구 성과를 확산하기 쉬운 교통의 요지이기 때문이지 대전과 과학기술 사이에 특별한 이해관계가 있어서가 아니다.

이러한 태생적 요인으로 인해 지금까지 대덕과 대전은 깊은 관계를 맺고 있지 못했으나 최근 과학기술과 지역사회의 관계에 대한 고민이 깊어짐에 따라 새로운 시도가 늘고 있다.

KAIST는 2016년 지역 현안에 관련된 연구주제 27개를 선정했고 대덕연구단지 소재 출연연, KAIST와 대전발전연구원 소속 인사들이 모여 앞으로의 협력 방안에 대해 논의하기도 했다.

IBS 공방은 지역사회와 연구기관을 잇는 다리가 될 수 있다. IBS의 규모를 생각해 보았을 때 내부 공방에서 모든 실험기구 수요를 감당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공방은 실력있는 지역 업체와 연구자를 연결하는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

실험과 제작 양쪽에 전문성을 가진 공방 인력이야말로 이러한 일을 수행하는 데 적합하다. 마침 IBS 본원에서 아주 멀지 않은 지역에 각종 재료를 가공하는 업체가 널리 포진해 있다.

공방이 이들 업체와 IBS를 훌륭히 연결해 준다면 실험기구 제작 네트워크는 IBS에 머무르지 않고 연구단지 전체와 대전으로 확장될 수 있다. 단순한 지리적 공존을 넘어 지역사회와 연구기관이 서로의 발전에 기여하는 순환 관계를 구축하는 것이다.

◆ 연구원을 채우고 꾸미는 일에 공방을 포함하자

김두철 IBS 원장은 2018년 신년사에서 "우리가 지은 본원 연구원 역시 앞으로 우리의 연구, 일하는 모습, 관계, 문화에 큰 영향을 미칠 것"이라며 "연구원 건물을 채우고 꾸미는 일에 힘을 다해야"한다고 말했다.

IBS는 단순한 연구기관이 아닌 대한민국의 연구 문화를 선도해야 하는 기관이다. 실험이 점차 고도화됨에 따라 주문제작형 실험기구의 중요성이 점차 커진다면 향후 더 많은 연구 기관에 내부 공방이 필요할 수 있다.

그러나 공방은 설치한다고 저절로 굴러가지는 않는다. 운영에 대해 치열한 고민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IBS가 선도적으로 공방을 운영해 어떤 규모로 어떻게 설치하고 운영할 것인가? 에 대해 나름의 답을 내놓는다면 향후 대한민국 과학계가 큰 도움을 얻으리라 생각한다. '연구원 건물을 채우고 꾸미는 일'에 공방을 포함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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