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ST 양자정보연구단, 새로운 효율적 양자컴퓨터 검증 방법 제시
개방형 연구사업 통해 국내 최고 양자전문가 협업 연구
1대多 양자암호통신 시험망 구축 성공

한상욱 박사(왼)와 조영욱 박사(오)는 거짓말 같은 이론을 미래의 현실로 만들어 나가고 있다.<사진=이원희 기자>
한상욱 박사(왼)와 조영욱 박사(오)는 거짓말 같은 이론을 미래의 현실로 만들어 나가고 있다.<사진=이원희 기자>
일반 컴퓨터가 0과 1의 값을 갖는 비트 단위로 정보를 처리하고 저장하는 것과 달리 양자 컴퓨터는 0과 1의 상태를 동시에 갖는 큐비트(qubit) 단위를 쓰며 기존 디지털 컴퓨터의 한계를 뛰어 넘을 것으로 알려져 왔다.

양자컴퓨터가 디지털컴퓨터의 성능을 앞지르는 '양자 우위(Quantum Supremacy)'의 분기점은 50큐비트. 그런 가운데 지난해 11월 IBM이 50큐비트 양자컴퓨터 프로토타입을, 올해 1월 인텔이 CES 2018에서 49큐비트 양자 칩을 각각 공개하며 치열한 경쟁을 예고했다.

우리나라는 SK텔레콤이 지난해 6월 유선 통신망을 통한 장거리 양자암호통신에 성공했으며, KIST가 올해 초 50m 거리의 무선 양자암호통신에 성공했다. KIST는 이어 지난 19일 KT와 일대다(1:多) 양자암호통신 시험망 구축에 성공하며 국내 양자정보통신 기술의 성장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양자암호는 이론상으로 절대 깨질 수 없는 암호체계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고전물리학의 관점에서는 설명이 불가능한, 거짓말 같은 양자 현상을 이용한 양자암호는 전세계적으로 활발한 연구가 이뤄지고 있다. 그런 가운데 국내에서도 KIST 양자정보연구단(단장 문성욱)에서 거짓말 같은 기술을 현실로 만드는 연구가 진행 중이다.

◆ 국내 최고 전문가들과 한국만의 양자컴퓨터 원천기술을 찾는다

구현된 양자게이트를 측정하는 방식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조영욱 박사. 설명하는 것도 양자정보연구단의 고민이다.<사진=이원희 기자>
구현된 양자게이트를 측정하는 방식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조영욱 박사. 설명하는 것도 양자정보연구단의 고민이다.<사진=이원희 기자>
전세계적으로 양자컴퓨터 연구가 활발하다. 특히 IBM과 인텔, 구글 등에서 연구 중인 '초전도 큐비트'와 미국 메릴랜드 대학교, 오스트리아 인스브럭 대학교 등에서 연구 중인 '이온 큐비트'가 양자컴퓨터 기술 연구의 선두주자로 꼽힌다.

우리나라는 상대적으로 부족한 인프라와 자본 속 독자적인 원천기술을 찾아가고 있다. 조영욱 양자정보연구단 박사에 의하면 KIST에서 개발 중인 광자·원자 하이브리드 큐비트는 현재 주로 연구되고 있는 여러 큐비트 시스템의 장점을 합치고, 단점을 보완한 기술이다. 

이를 위해 KIST는 개방형 연구사업(ORP, Open Research Program)을 진행 중이다. 김윤호 POSTECH 교수, 신희득 POSTECH 교수, 배준우 한양대 교수, 김상인 아주대 교수 등 국내 최고 양자정보기술 전문가들과 머리를 맞대며 협업이 이뤄지고 있다. 

조 박사는 "초전도 또는 이온 큐비트와 같은 큐비트 시스템은 뚜렷한 장점을 가지고 있지만, 단일 물리계를 이용한 방법에는 한계가 존재한다"며 "무작정 대세를 따라가기보단 우리 연구 환경에 맞는 최적의 전략을 선택해 스케일업하며 원천기술을 연구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조 박사는 양자컴퓨터에서 사용되는 '양자게이트'를 검증할 수 있는 새로운 방법도 최근 제시했다.

기존 양자게이트는 CT를 촬영하듯 단위별로 쪼개서 검증해야 했다. 특정 양자게이트 행렬 원소를 검증하기 위해서는 해당 원소가 속한 행과 열의 인풋(input)을 바꿔가며 검증하는데, 큐비트가 1개 늘어날 때마다 원소의 수가 지수적으로 증가하기 때문에 검증에 오랜 시간이 소요됐다.

조 박사는 이론상 구현된 양자게이트 행렬에서 0의 값을 가지는 원소들이 존재하는 점을 이용해 필요한 특정 원소의 곱셈값만 측정할 수 있는 검증 방법을 개발했다. 이를 이용하면 검증에 필요한 값만 선택적으로 단시간에 측정할 수 있다. 큐비트가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단축효과는 크다.

연구팀은 양자역학의 '불확정성의 원리'에 따라 측정하면 양자상태가 붕괴되며 결과값이 달라지기 때문에 이를 최소화하는 약한(weak) 양자측정방법을 이용했다.

조 박사는 "이번에 개발된 검증방법은 양자컴퓨터 연구의 기초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할 수 있는 기술이다"라며 "다가오는 양자기술의 미래 속에서 우리만의 기술로 경쟁력을 확보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 양자암호가 무엇이길래?···"처음엔 거짓말인줄 알았다"

최근 무선양자암호통신 실험과 일대다 시험망 구축에 성공한 한상욱 박사는 ‘협업’의 힘을 성공요인 중 하나로 꼽았다.<사진=이원희 기자>
최근 무선양자암호통신 실험과 일대다 시험망 구축에 성공한 한상욱 박사는 ‘협업’의 힘을 성공요인 중 하나로 꼽았다.<사진=이원희 기자>
"양자컴퓨터와 양자암호를 비롯해 양자물리학 기반 연구를 처음 접했을 때 거짓말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만큼 제가 기존에 알고 있던 고전물리학의 범위에서는 이해하기 힘들지만,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는 분야입니다.(웃음)"

한상욱 박사는 웃픈(?) 고민거리를 털어놓았다. 바로 주변 지인들과 전자공학 동기들에게 양자정보 연구에 대해 '설명하는 것'이다. 양자컴퓨터의 압도적인 속도, 양자암호의 뚫리지 않는 보안체계에 대해 설명하다가 기본 이론부터 시작해야 하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한 박사는 현재 지식정보사회와 다가올 미래 사회에선 양자컴퓨터의 빠른 연산속도 못지않게 양자암호의 정보보안을 강조했다.

그는 "기존 암호체계는 당장 내일이든 또는 수천년 후든 깨진다. 반면 양자암호는 이론상 '깨지지 않는다'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며 "정보가 중요해질수록 양자암호는 필수가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물론 보완점도 명확하다. 한 박사는 "과학적인 이론 규명과 실제 상용화는 다르다. 실용화 단계에서 기술적으로 구현해내지 못한다면 암호기술로써의 의미가 사라진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또한 현재 비용적인 부분에 있어서 보급화가 어렵지만, 암호체계가 필수적인 특수분야를 시작으로 보급화가 이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연구팀은 KT와 지난해 6월 'KIST-KT 양자통신 응용연구센터'를 개소하며 양자암호통신 상용화를 위해 호흡을 맞추는 중이다. 또 최근 구축에 성공한 일대다 양자암호통신 시험망의 경우 KT가 운영 중인 광케이블망을 활용한 결과다.

조 박사와 한 박사는 "양자기술은 자연스럽게 미래에 자리잡을 것"이라며 "우리나라의 양자기술도 빛을 볼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물론 설명도 열심히 해야 할 것(웃음)"이라고 입을 모아 말했다.

양자정보연구단에서 실험중인 하이브리드 큐비트.<사진=이원희 기자>
양자정보연구단에서 실험중인 하이브리드 큐비트.<사진=이원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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