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청년, 부탁해⑤]이정진 KAI 연구이사···'미디어 기술' 한 우물
"대학 시절 불 꺼지지 않는 연구실 좋았다···실제 산업에 쓰이는 R&D 맛봐"

대한민국 미래를 위해 젊은 과학자의 역할이 더욱 중요해지고 있습니다. 최근 젊은 과학자들이 사회의 주역으로 속속 진입하며 자유로운 사고와 도전적인 마인드로 대한민국의 남다른 미래를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대덕넷은 어려운 연구 환경 속에서도 뜨거운 연구 열정을 펼쳐가는 과학 청년 50명을 발굴해 인터뷰 시리즈로 연재합니다. 대덕넷은 '과학 청년 부탁해 위원회'를 구성했습니다. 구성원은 과학기술계 산·학·연·관 전문가 10여명입니다. 전문가분들께 과학자 50명 선정과 관련해 다양한 의견과 조언을 참고하고 있습니다.[편집자의 편지]

이정진 KAI 연구이사는 젊은 과학은 '설레임'이라고 표현했다. 젊은 과학자들이 만들어낸 연구 성과들이 국민과 산업계에 설레임으로 다가가길 바라는 마음에서다.<사진=박성민 기자>
이정진 KAI 연구이사는 젊은 과학은 '설레임'이라고 표현했다. 젊은 과학자들이 만들어낸 연구 성과들이 국민과 산업계에 설레임으로 다가가길 바라는 마음에서다.<사진=박성민 기자>
질풍노도 중2병을 앓고(?) 있는 평범한 남자 중학생. 누구도 못 말린다는 사춘기를 겪고 있는 그에게 조금은 특별한 사랑이 찾아온다. 상대는 또래 여학생도 아이돌 여가수도 아니다. 바로 'SF(공상과학)'다.

그는 청소년 시절부터 SF 장르에 푹 빠졌다. 현란한 영상 속에서 자신이 주인공이 되는 상상을 멈추지 않았다. 생동감 넘치는 입체 애니메이션과 가상세계를 연출하는 3D 게임에 빠져 학업은 뒷전으로 미뤄뒀다. 수능 날까지 게임을 하느라 컴퓨터 키보드를 놓지 못한 그에게 'SF덕후'라는 별명이 자연스럽게 붙었다.

SF와 사랑에 빠졌던 남학생은 '영상 그래픽 기술' 전문가의 꿈을 꾸기 시작한다. 해를 거듭할수록 어렸을 적 꿈을 변함없이 지켜간다. 자신이 원하는 분야에 한 우물만 파왔던 그는 곧 대학·대학원에 진학했고 마침내 영상 그래픽 기술 전문가로 거듭난다.

영상 그래픽 기술 전문가의 꿈을 꾸기 시작한 지 10년이 지난 뒤 그의 명함에는 '공학박사'라는 타이틀이 새겨진다. 좌충우돌 청소년기를 겪은 주인공은 이정진 KAI 연구이사다.

이정진 연구이사는 지난해부터 대덕 소재 KAI(대표 김영휘) 기업에서 연구를 총괄하고 있다. KAI는 영상 그래픽 기술 R&D와 산업화를 전문으로 하며 KAIST를 졸업한 11여명의 졸업생들이 똘똘 뭉쳐 만든 스타트업이다.

◆ 대학 시절 '미래의 단편'을 훔쳐봤다···'연구에 미친' 한 신입생

"대학 시절 사람의 형태를 3차원 영상으로 복원하는 가상현실 연구를 처음으로 맡았죠. 마치 남들이 모르는 미래의 단편을 훔쳐보고 있다는 기분이었습니다. 이날 이후 주말에도 쉴 틈 없이 연구에 몰두했습니다. 연구실에서 연구하는 자체만으로 행복했습니다."

VR 장치를 소개하며 이 연구이사의 대학 시절 품었던 연구 열정을 회상했다.<사진=박성민 기자>
VR 장치를 소개하며 이 연구이사의 대학 시절 품었던 연구 열정을 회상했다.<사진=박성민 기자>
이정진 연구이사는 2005년 숭실대학교 미디어학부로 진학했다. 예술영역과 기술영역이 공존하는 미디어학부에서 영상 그래픽 기술을 전공하기로 마음먹는다.

그러면서 신입생 시기부터 직접 학과 교수들을 찾아다녔다. 연구실 보조업무에 동참시켜달라는 어리광 아닌 어리광까지 부리며 연구 열정에 불을 지피기 시작했다. 그의 치기(?)를 기특하게 본 교수가 그에게 기회를 줬다.

처음으로 접한 연구는 가상현실. 연구에 대한 흥미를 북돋웠고 SF덕후의 기질이 생생하게 발휘됐다. 새로운 영상 그래픽을 만든다는 것 자체가 아름답게 보였기 때문이다.  

그가 있는 실험실은 말 그대로 불이 꺼지지 않는 실험실이었다. 밤낮, 주말을 가리지 않았다. 중·고등학교 때보다 대학에서 학업 열정이 더욱 높았다.

실험실 연구 활동뿐만 아니라 영상 그래픽 기술에 관심 있는 학생들을 모아 미디어학부 내에 처음으로 동아리까지 만들었다. 디지털 콘텐츠와 기술을 바탕으로 자유로운 표현의 영상을 연구하는 소모임이다. 이들은 게임 영상과 애니메이션을 만들며 프로젝트 베이스의 과제를 하나하나 성공시켜 나갔다.

그는 "연구라는 것이 새롭고 멋진 일이라는 것을 대학 시절 깨달았다. 무엇보다도 연구를 재미있고 신나게 임한다면 미래의 한 틈을 엿볼 수 있다는 확신을 얻었다"라며 "단순히 커리어를 올리기 위해 연구에 접근하는 것이 아니라 확고한 비전과 목표를 위한 연구를 해나가겠다"고 다짐했다.

◆ "실제 산업에 쓰이는 R&D 맛보고 대학교수직 목표 접었죠"

이정진 연구이사는 대학생까지만 해도 영상 그래픽 관련 대학교수직이 목표였다. 급변하는 시대의 흐름에 맞춰 영상 그래픽 기술을 연구하고 후학들에게 지식을 전파하고 싶은 마음이 강했다.

그는 공학과 예술을 추구하는 학문을 심층적으로 공부하기 위해 대학원 진학을 택했다. 그가 선택한 대학은 KAIST. 하지만 2010년 KAIST 문화기술대학원에 진학 이후 대학교수직의 목표는 180도 바뀌었다. 실제 산업에 쓰이는 영상 그래픽 기술만 집중적으로 개발하겠다는 목표로 전향했다.

이 연구이사는 KAIST 문화기술대학원 박사과정 시절 'KAIST 창의상'을 수상한 바 있다. <사진-박성민 기자>
이 연구이사는 KAIST 문화기술대학원 박사과정 시절 'KAIST 창의상'을 수상한 바 있다. <사진-박성민 기자>
그는 대학원 입학 이후 새로운 연구 철학이 정립됐다. "연구는 새로운 가치를 만드는 것이다. 일단 저질러라"라고 귀가 닳도록 조언한 KAIST 문화기술대학원 원장이자 지도교수인 노준용 교수의 영향이 컸다.

그동안 노준용 교수는 '실제 산업에 쓰이는 R&D' 성과를 톡톡히 만들어 냈다. 2002년부터 2006년까지 세계 3대 특수효과 전문회사인 할리우드 리듬앤휴즈 스튜디오에서 그래픽 사이언티스트로 활동했다.

이뿐만 아니라 슈퍼맨, 리턴즈, 가필드, 80일간의 세계일주 등의 세계적 영화에도 참여하며 영상 그래픽 기술을 영화 산업에 접목·응용시켜왔다.

대학원 실험실에서의 R&D 성과가 산업에 활용되는 사례를 자연스럽게 봐왔던 이 연구이사도 산업에 쓰이는 R&D 성과를 맛보게 됐다.

2012년 기존 카메라로 찍은 영상을 3D 영상으로 바꾸는 '입체변환기술'을 개발했고 이는 김지훈 감독 작품인 '7광구' 영화의 클라이맥스 영상에 적용됐다.

그는 "영상 그래픽 기술이 실제 산업에 활용될 때의 맛을 봤다. 자신이 개발한 기술이 산업계 현장에 쓰일 때 감동은 배가 된다"라며 "아주 작은 분야라도 산업에 영향을 미치는 연구를 지속하고 싶다. 열정과 흥미가 있다면 지속가능성이 보장된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이런 성과를 바탕으로 그는 KAIST 재학 중 탁월한 창의성을 발휘한 학생에게 주어지는 'KAIST 창의상'을 지난해 2월 수상하기도 했다. 컴퓨터 그래픽스 분야에서 다수의 SCI 저널논문과, 국내저널논문, 학회논문 발표, 국내외 특허 출원, 기술이전 등 다수의 연구 성과를 인정받았다.

또 2016년에는 한국컴퓨터그래픽스학회에 신진연구자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VR 분야에서 고품질의 360도 영상을 제작하고 관람하는데 필요한 획기적인 기술을 연구한 창의성을 높이 평가받았다.

그는 "영상 그래픽 기술의 상품화에 더욱 박차를 가하며 산업에서 기술 가치를 확인할 것이다. R&D를 자산화해나갈 것"이라며 "KAI가 구글·페이스북 등의 기업처럼 R&D 중심으로 가치를 전달하도록 만들겠다. 남들보다 먼저 미래를 그려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이 연구이사는 젊은 과학은 '설레임'이라고 정의했다. 그는 "젊은 과학자들이 만들어내는 연구 성과들이 산업계에 설레임으로 다가가길 바란다"라며 "연구란 정답이 없는 새로운 일이다. 시행착오를 수도 없이 겪어나가며 한국의 영상 그래픽 미래를 차츰 만들어 나가겠다"고 자신했다.

이정진 연구이사는 대학·대학원 시절 다수의 SCI급 저널논문을 발표해 KAIST 창의상을 수상한 바 있다.<사진=이정진 연구이사 제공>
이정진 연구이사는 대학·대학원 시절 다수의 SCI급 저널논문을 발표해 KAIST 창의상을 수상한 바 있다.<사진=이정진 연구이사 제공>

이정진 연구이사 연구팀이 개발한 영상 그래픽 기술을 실제 산업체에 적용하는 모습.<사진=이정진 연구이사 제공>
이정진 연구이사 연구팀이 개발한 영상 그래픽 기술을 실제 산업체에 적용하는 모습.<사진=이정진 연구이사 제공>
◆ 이정진 KAI 연구이사는?

이정진 연구이사는 지난 2005년 숭실대학교 미디어학부에 입학해 2010년 졸업했다. 이후 KAIST 문화과학기술대학원에서 2017년 2월에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학위 중 2016년 8월 영상 그래픽 기술 R&D와 산업화를 전문으로 하는 KAI의 운영진에 합류, 현재까지 연구이사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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