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 '과학과 기술 1월호' 발췌
글 : 박범순 KAIST 과학기술정책대학원 교수

하버드대학교 캠퍼스 지도. 대학 소속의 건물은 노란색, 정원 및 잔디밭은 짙은녹색으로 표시되어 있다. 상가 및 거주 지역은 회색으로 표시됨.<출처 : 하버드
하버드대학교 캠퍼스 지도. 대학 소속의 건물은 노란색, 정원 및 잔디밭은 짙은녹색으로 표시되어 있다. 상가 및 거주 지역은 회색으로 표시됨.<출처 : 하버드
하버드대학교를 가보지 않더라도 캠퍼스 지도를 보면 특이한 점을 발견하게 된다. 대학과 상가, 거주지역이 혼재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대학 건물과 잔디밭, 정원 등 캠퍼스 공간을 별도의 색깔로 표시하는데 어디가 정문이고 후문인지 알 길이 없다.

하버드 지하철역 주변 상가도 캠퍼스 일부처럼 보이고 공원, 극장, 교회, 카페, 맥줏집, 심지어는 캠퍼스를 가로지르는 찰스 강마저 대학의 한 공간으로 느껴진다. 대학과 도시가 오랜 시간 함께 성장했기 때문이다.

◆ 하버드대학교와 케임브리지 시

1930년대 하버드 스퀘어 모습을 담은 포스트 카드. 당시 전차역 자리에 지금은 지하철역이 있다. 왼편에 상가 건물이 보이고 오른편에 대학 건물이 있다.<출처 : Digital Commonwealth>
1930년대 하버드 스퀘어 모습을 담은 포스트 카드. 당시 전차역 자리에 지금은 지하철역이 있다. 왼편에 상가 건물이 보이고 오른편에 대학 건물이 있다.<출처 : Digital Commonwealth>
미국 최초의 대학인 하버드대학교는 1636년에 설립되었다. 설립자는 한 개인이 아니고 청교도 정착민 지도자들이었다. '메사추세츠 만 식민지(Massachusetts Bay Colony)'라는 영국 국왕의 인허가를 받은 자치정부의 의회가 목회자 양성을 목적으로 대학을 설립하기로 결정했는데 설립 당시의 이름은 '뉴 컬리지'였다.

2년 후 젊은 목사인 존 하버드(John Harvard)가 죽기 전 장서와 재산의 절반을 기부하면서 대학의 이름이 하버드대학교로 바뀌었다.

하버드 대학이 위치한 캠브리지 시도 1636년에 세워졌다. 이에 앞서 1630년에 세워진 보스턴 시를 중심으로 주변에 정착민들이 거주하는 도시가 여러 개 형성되기 시작되었는데 이 중에서 찰스 강 건너편 현재 하버드 스퀘어 지역에 있는 곳을 '뉴 타운'이라고 불렀다.

존 하버드를 비롯하여 다수의 청교도 지도자들이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교 졸업생이었기에 이를 기념하여 1638년에 도시의 이름이 케임브리지로 바뀌었다.

◆ 대학과 현실 세계

이처럼 하버드대학교와 케임브리지 시는 시작부터 공동 운명체의 관계를 유지해왔다. 대학은 도시에 정체성을 부여하고 도시는 대학에 행정편의를 제공해왔다. 대학의 발전은 도시개발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며 시민의 경제활동 및 문화행사도 대학을 중심으로 이뤄지는 경우가 많다.

대학 캠퍼스 밖에 '대학가'가 별도로 형성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마치 '대학가'가 캠퍼스 일부처럼 느껴질 정도로 학업과 일상 생활이 연계되어 있음을 볼 수 있다. 마찬가지로 대학에서 열리는 세미나, 강연, 포럼 등 각종 행사에 시민들이 자유롭게 참석하여 토론할 수 있다.

또한, 강 위에서 조정 훈련을 하는 사람, 강변에 조깅하거나 벤치에 앉아 있는 사람들을 흔히 볼 수 있는데 누가 학생이고 누가 주민인지 구분이 쉽지 않다. 잠시 방문하는 관광객, 학부모도 이 공간을 함께 나누는 주인처럼 보인다.

한 도시에서 학업과 일상이 인위적으로 구분되어 있지 않고 긴밀히 연계되다 보니 중세에 세워진 유럽의 대학도시를 연상하기 쉽다. 하지만 미국의 케임브리지는 영국의 케임브리지와 크게 다른 점이 있다.

바로 강 건너에 오랫동안 미국의 정치, 경제, 문화의 중심지 역할을 해온 보스턴이 있다는 사실이다. 케임브리지와 보스턴의 근접성이 무엇을 의미할까? 지금도 런던에서 차를 타고 한 시간 넘게 가야 도착할 수 있는 영국의 케임브리지는 현실과는 동떨어진 세계와 같은 느낌을 강하게 준다.

옥스퍼드도 마찬가지이다. 이에 비해 미국의 케임브리지는 현실 세계와 거리를 두고 있지만 멀리 있지 않다. 상아탑의 이상은 오히려 지극히 현실적일 수 있음을 말해준다.

◆ 시대의 변화를 읽는 눈

실제로 하버드대학교는 시대의 변화를 읽어가며 성장했다. 목회자, 정치가와 같은 지도자 양성이라는 큰 목표는 유지해가면서 사회에서 필요로 하는 의과대학(1782년), 신학대학(1816년), 법과대학(1817년)을 설립했고 20세기에 들어서는 비즈니스 스쿨(1908년), 보건대학(1913년), 정부의 정책을 다루는 케네디 스쿨(1936년) 등을 설립했다.

이중에서 의과대학, 비즈니스 스쿨, 보건대학의 캠퍼스가 보스턴에 자리한 것은 지역사회의 요구에 적극적으로 부응한 결과로 보인다.

한편, 미국에서는 최초로 과학 및 그 응용 분야를 가르치는 '로렌스 과학대학(Lawrence Scientific School)'이 1847년 하버드대학교에 설립되었다. 하지만 얼마 후 매사추세츠 공과대학(MIT)이 보스턴에 신설되면서 공학교육과 연구의 중심이 그쪽으로 옮겨갔다.

1914년 MIT를 캠브리지 시로 이전하는 계획과 함께 아예 하버드대학교의 응용과학 프로그램들과 합쳐 공과대학으로 만들자는 안이 적극적으로 논의되었다. 하지만 이 계획안이 반대에 부딪히자 하버드대학교는 공학 분야를 독자적으로 키우는 방향으로 선회했고 1934년부터는 대학원 학위 프로그램을 작은 규모로 시작했다.

21세기 들어서는 대규모 기부금을 받아 비즈니스 스쿨 아래쪽에 별도의 공대 캠퍼스를 조성하고 프로그램을 확장하고 있다. 이로써 본격적으로 MIT와 치열하게 경쟁하면서 협력하고 함께 발전하는 생태계가 조성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하버드대학교가 특정 분야의 지식을 가르치고 연마하는 전문 대학원들을 설립하면서 시대의 요구에 부응했다면 학부에서는 가능하면 학과의 구분 없이 폭넓은 공부를 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했다.

현재는 기존의 학문 분야의 경계를 인정하는 '전공(Major)'라는 말 대신에 '중점필드(Concentration)'라는 용어를 사용하여 학부생들이 졸업요건으로 49개의 중점필드 중에 최소한 하나를 선택해 과정을 이수할 수 있게 했다.

예컨대, '화학', '물리', '역사', '영문학'과 같은 전통적인 학문 분야를 중점필드로 선택할 수 있지만, '화학과 물리', '과학과 역사', '역사와 문학' 등 복합학문을 선택할 수 있는 여지를 두었다.

실제로 학부 과목은 약 3900개 정도 개설되어있는데 학생들은 '중점필드' 뿐만 아니라 '서브필드(Subfield)'를 선택하여 수강 과목을 짤 수 있는 자유가 있다.

◆ 지혜를 구하는 문

하버드대학교 캠퍼스 안으로 들어가는 길에 있는 25개 문 중의 하나인 덱스터 게이트. 입구 윗부분에 'Enter To Grow In Wisdom'이란 경구가 보인다.<사진=과학과 기술 제공>
하버드대학교 캠퍼스 안으로 들어가는 길에 있는 25개 문 중의 하나인 덱스터 게이트. 입구 윗부분에 'Enter To Grow In Wisdom'이란 경구가 보인다.<사진=과학과 기술 제공>
하버드가 추구하는 학부 교육의 궁극적인 목표는 무엇일까? 대학원에서 필요한 전문지식의 기초를 쌓는 것일까? 기업이나 정부에서 필요로 하는 인재를 양성하는 것일까? 학부 4년 동안 학생들이 무엇을 배우고 나가길 바랄까?

이에 대한 답은 관점에 따라 다양하게 제시될 수 있을 것이다. 한 가지 답은 하버드대학교의 캠퍼스로 들어가는 덱스터 게이트 위에 쓰여 있다. 영문으로 'Enter To Grow in Wisdom'인데 이에 대해 두 가지 해석이 가능하다. '들어와서 지혜로운 사람으로 성장하라'는 해석과 '지혜로운 사람으로 성장하기 위해 들어와라'는 해석이 모두 가능하다.

여기서 내 눈길을 끈 것은 '지혜'라는 단어의 사용이었다. 대학 4년 동안 학제 학생들은 치열하게 경쟁하고 공부하는데 그들이 얻어야 할 것은 지식이 아니라 지혜라는 것이다.

1901년에 세워진 덱스터 게이트(Dexter Gate)에 새겨진 이 경구는 당시 대학 총장이었던 찰스 엘리엇(Charles Elliott)의 말로 알려져 있다. 엘리엇은 40년간 총장직을 수행하면서 학부생의 수업 선택권의 확대, 즉 전공 선택과목의 증설에 큰 영향을 준 사람으로 하버드대학교가 연구중심 대학으로 성장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 지혜를 얻은 후에는?

덱스터 게이트를 통해 캠퍼스 바깥으로 나가는 쪽에 새겨진 경구. 'Depart To Serve Better Thy Country and Thy Kind'라고 쓰여 있다.<사진=과학과 기술 제공>
덱스터 게이트를 통해 캠퍼스 바깥으로 나가는 쪽에 새겨진 경구. 'Depart To Serve Better Thy Country and Thy Kind'라고 쓰여 있다.<사진=과학과 기술 제공>
덱스터 게이트를 통해 캠퍼스 바깥으로 나가다 보면 또 다른 경구를 발견할 수 있다. 'Depart To Serve Better Thy Country and Thy Kind.' 마찬가지로 두 가지 해석이 가능할 텐데 결과론적인 방법으로 약간 의역을 해보면 다음과 같다.

"떠나서 조국과 민족에 더 나은 봉사를 해라" 다시 말해 개인의 영욕을 쫓지 말고 사회에서 필요로 하는 사람, 봉사하는 사람이 되라는 것이다. 이것이 지혜를 얻은 사람이 현실 세계에서 해야 할 것이라는 말이다.

돌이켜 보면 대학 4년은 기대와 아쉬움, 희열과 고통이 교차했던 짧은 기간처럼 느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억의 강도는 그 어느 시기보다도 강한 것 같다. 내 자신은 대학 생활을 통해 얼마나 지혜로운 사람이 되었는지는 잘 모르겠으나 그 이후에 지식을 쌓고 나누는데 원동력이 된 점은 확실하다.

지혜와 지식의 경계는 어디일까? 지혜로운 사람의 지식은 약이 되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의 지식은 독이 될 수 있음을 쉽게 볼 수 있는 세상에서 찰스 엘리엇의 경구를 되새길 필요가 있다.

지혜가 단순히 더 많은 지식을 얻는 수단으로 전락한 것은 아닌지. 지식의 습득으로 지혜가 성장하고 있는지.
 

◆ 박범순 KAIST 과학기술정책대학원 교수(parkb@kaist.edu)

박범순 KAIST 과학기술정책대학원 교수.
박범순 KAIST 과학기술정책대학원 교수.
서울대학교 화학과 졸업 후 동대학원에서 과학사 석사학위, 미국 존스홉킨스대학교에서 과학사 박사학위를 받았다.

미국국립보건원(NIH)에서 박사후연구원으로 일한 바 있다. 현재 생명과학 및 의료 정책과 역사, 법과 과학의 관계 등에 대해 연구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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