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치호 단장 "새로운 과학기술계 기술사업화 모델 필요"
KIST 기술사업단, 2017년 75억 기술 실시금액 기록

#1 1978년, KIST와 선경화학(現 SKC)이 '폴리에스테르 필름 제조' 기술을 공동 개발하며 전량 수입에 의존했던 VHS 비디오테이프 시장의 판도를 바꿨다. 당시 원천 기술은 미국과 영국, 프랑스, 일본 등 4개국만 보유하고 있었다.

#2 1991년, ETRI가 신생 벤처기업과 CDMA 방식의 이통통신 공동개발을 시작, 1996년 상용화에 성공했다. 이를 통해 벤처기업이 글로벌 기업으로 폭풍성장했으니, 그 이름이 '퀄컴(Qualcomm)'이다. 

현재 KIST에선 폴리에스테르 필름 제조 기술 개발과 같은 기술사업화가 연평균 30건 이상 진행 중이다. 기술사업단(단장 최치호)을 중심으로 사업화가 진행되는 데 지난해 기술료만해도 75억원을 기록했다. 전년대비 27%가 상승한 실적이다.

최치호 기술사업단장은 "기술사업화는 금전적인 가치를 넘어 KIST 기술의 가치와 성장 가능성을 다시금 확인하는 데 의미가 크다"고 말했다.  

◆기존 과학기술계 구조 깨는 新 기술사업화 모델

최치호 기술사업단장은 과학기술계의 새로운 기술사업화 모델을 제시했다.<사진=KIST 제공>
최치호 기술사업단장은 과학기술계의 새로운 기술사업화 모델을 제시했다.<사진=KIST 제공>

기술사업단은 기존 과학기술계 선형 구조를 깨기 위해 노력 중이다. '대학의 기초연구 → 연구기관의 응용연구 → 기업의 산업화'로 이루어진 선형 구조에서 벗어나 산·학·연이 초기 설계부터 함께 방향을 설정하고 협업하는 '삼중 나선 구조'가 모델이다.

최 단장은 "최근 KIST의 기술료가 상승한 주요 원인이 바로 이 협업 모델의 작동이다"라며 "기존 선형 구조는 초기 연구에만 최적화되어 있어 사업화 단계에선 종합적인 생산성이 떨어진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혁신 기술이 중소기업으로 이전되고 체화되며 경쟁력 있는 기업 생태계가 만들어져야 한다"라며 "더 많은 부가가치를 창출하고, 이를 바탕으로 소득 주도 성장으로 이어지는 선순환 구조를 구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재 주요 선진국의 경우 기술사업화 전문 회사가 역할을 수행하는 구조다. 최 단장은 "우리나라 역시 단순히 기술이전으로 끝나는 것이 아닌 적극적 기술사업화가 이뤄져야 한다"며 "이를 위해 전문 프로그램과 조직을 구축하고 재원을 확보하며 노하우를 축적하고 규모를 키워나가는 것이 선행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글로벌 기술사업화 추진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최 단장은 "베트남에 건립 중인 V-KIST는 KIST의 글로벌 기술사업화의 핵심 거점이 될 것"이라며 "글로벌 기술사업화 플랫폼으로써 현지 실증 연구와 사업화를 통해 베트남을 비롯한 동남아 진출이 이루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홍릉 단지 역시 바이오 특화 클러스터로써 해외 진출의 중요한 기반"이라며 "향후 바이오 분야 기술사업화 전진기지로써 파리와 런던 같은 바이오 전진기지로 활용할 것"이라고 피력했다. 

◆단어 하나에 가치가 변한다···기술사업화 전문 인력 必

박병수 기술사업화실장(왼쪽)과 최종상 연구성과확산팀장(오른쪽)은 기술사업화에 대한 인식이 점점 변하고 있음을 실감하고 있다.<사진=이원희 기자>
박병수 기술사업화실장(왼쪽)과 최종상 연구성과확산팀장(오른쪽)은 기술사업화에 대한 인식이 점점 변하고 있음을 실감하고 있다.<사진=이원희 기자>
박병수 기술사업화실장은 기술사업화에 전문 인력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연구논문 평가, 특허 획득 절차 진행, 기술이전 기업 탐색 등 자잘해 보이는 움직임 하나하나에 기술에 대한 평가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에 전문 변리사의 역할이 중요해 지고 있다는 것.

박 기술사업화실장은 "2000년대 초반에는 ETRI(한국전자통신연구원) 정도만 변리사 인력을 구성해 운영했다"며 "이후 기술사업화가 확대됨에 따라 전략적 기술사업화를 위해 변리사 인력 확보는 필수가 되었다"고 말했다.

그는 "기술사업화 체계가 업그레이드 되며 특허의 질이 상승하고, 이를 바탕으로 대형 기술이전이 있었다"며 "동일 기술이라도 기술사업화 과정에 따라 경쟁력과 협상력이 달라진다"고 설명했다.

현재 KIST의 기술사업화 담당 변리사는 2명. 변지형 변리사는 KIST 연구자들의 연구 결과들을 꼼꼼히 파악하여 기술사업화에 중요한 역할을 수행 중이다.

변 변리사는 "기본적으로 기술이 상용화될 수 있는지, 또 시장에서 가격 경쟁력이 있을지를 판단한다"며 "연구와 논문, 특허, 계약 등 하나의 기술이 협상 단계부터 평균 10개월이란 시간을 거쳐 기술이전 계약으로 이어진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연구 데이터가 논문에서 우수한 결과를 보이지만, 실용화 단계에선 많은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있다"며 "기술사업화까지 포함한 연구 설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하마터면 공든 탑이 무너질 뻔한 에피소드도 있다. 당시 기술 개발자였던 연구자는 개발기술을 유튜브에 올리기 전에 변 변리사에게 문의를 한 적이 있었는데, 연락을 받은 변 변리사는 한 걸음에 달려가 기술의 중요성을 파악하고 유튜브 동영상 올리는 것을 차단하고 신속한 특허출원을 먼저 진행했다. 자칫하면 특허 출원 전에 우수한 기술이 공개될 수 있었던 상황, 다행히 특허로 먼저 출원하고 권리를 보호하여 기술이전에 성공하여 하나의 에피소드로 마무리 된 적이 있었다. 

변 변리사는 "이제는 연구자들이 먼저 찾아오는 경우가 많다"며 "기술사업화에 대한 연구자의 인식이 변화하고 있고, 기술사업화를 염두에 둔 연구가 자연스럽게 자리 잡고 있다"고 말했다.

박 실장은 "새로운 기술이 시장에 보급되고, 기업이 만들어지면 경쟁력이 상승할 뿐만 아니라 일자리 창출로 이어진다"며 "단순 기술료가 아닌 과학기술계 선순환 구조에 기여하는 출연연의 기본 임무 중 하나"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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