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 청년, 부탁해①]이지수 ETRI 연구원 "적정기술로 인류 삶 바꾼다"
캄보디아 여행서 과학자로 고민···사회적 약자 위한 기술연구 매진

대한민국 미래를 위해 젊은 과학자의 역할이 더욱 중요해지고 있습니다. 최근 젊은 과학자들이 사회의 주역으로 속속 진입하며 자유로운 사고와 도전적인 마인드로 대한민국의 남다른 미래를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대덕넷은 어려운 연구 환경 속에서도 뜨거운 연구 열정을 펼쳐가는 과학 청년 50명을 발굴해 인터뷰 시리즈로 연재합니다. 대덕넷은 '과학 청년 부탁해 위원회'를 구성했습니다. 구성원은 과학기술계 산·학·연·관 전문가 10여명입니다. 전문가분들께 과학자 50명 선정과 관련해 다양한 의견과 조언을 참고하고 있습니다.[편집자의 편지]

이지수 ETRI 연구원은 '따뜻한 기술로 사회적 약자를 돕겠다'는 인생의 도전을 내걸었다.<사진=박성민 기자>
이지수 ETRI 연구원은 '따뜻한 기술로 사회적 약자를 돕겠다'는 인생의 도전을 내걸었다.<사진=박성민 기자>
"대학원 시절 캄보디아 여행에서 인생의 전환점을 맞았어요. 제대로 된 책 한권 없는 빈곤한 환경 속에서도 캄보디아 주민들은 뜨거운 학구열을 보였죠. 당시 무릎을 '탁!' 치며 결심했습니다. 따뜻한 기술로 인류의 삶을 바꾸는 과학자가 되겠다고요."

따뜻한 기술 개발을 위해 '무한도전'을 펼치고 있는 이지수 ETRI(한국전자통신연구원) 지식이러닝연구실 연구원. 올해 만29세로 ETRI 입사 3년이 조금 넘는다. 파릇파릇한 신입 과학자이지만 그의 연구 철학과 열정은 어느 누구보다 확고하고 뚜렷하다.

그가 학창시절부터 사회적 약자를 위한 과학자가 되겠다는 거창한 꿈을 꾼 것은 아니다. 과학을 좋아하는 평범한 학생이었을 뿐이다. 

대학원 시절 친구들과 떠난 캄보디아 여행이 그의 인생 항로를 바꾸는 계기가 됐다. 일본 도쿄대학교 석사과정 재학 당시 그는 일본인 친구들과 캄보디아로 여행을 떠났다.

앙코르와트 도시에서 유적지를 둘러보고 남은 시간을 이용해 홀로 자전거를 빌려 현지인이 사는 마을로 무작정 향했다. 그는 그곳에서 '진짜 캄보디아'를 만났다.

이지수 연구원이 캄보디아에서 만난 또래 스님들.<사진=이지수 연구원 제공>
이지수 연구원이 캄보디아에서 만난 또래 스님들.<사진=이지수 연구원 제공>
흙먼지 날리는 길가에 나뭇가지로 대충 지은 가옥, 반질반질 낡은 옷을 걸친 어린이와 책 한권 없는 집안 내부. 빈곤한 환경 탓에 어린이들은 학교에 제대로 다니지 못했고 심지어 무상 교육을 받기 위해 일부러 스님의 길을 선택한 어린이도 다수였다.

이지수 연구원은 당시 심각한 고민에 빠졌다고 고백했다. '지금 무엇을 위해 연구하는가?'라고 자문자답이 깊어졌다. 그리고 일본에서 석사 과정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와 '모두가 행복해지는 따뜻한 기술을 개발하겠다'고 굳게 다짐한다. 이후 따뜻한 기술을 연구하기 위해 정부출연연구기관인 ETRI로 진로를 선택했다.

◆ 첫걸음 쉽지 않다 "'KAIST 국경 없는 공학자회' 인연"

이지수 연구원이 사회적 약자를 위한 연구의 배경을 설명하고 있다.<사진=박성민 기자>
이지수 연구원이 사회적 약자를 위한 연구의 배경을 설명하고 있다.<사진=박성민 기자>
ETRI에 입사한 그는 바로 사회적 약자를 위한 연구를 시작하려 했으나 쉽지 않았다.

새로운 프로젝트를 위한 연구비 마련과 목표를 함께할 동료 연구자를 찾기에 어려움이 있었다. 마침 지인으로부터 KAIST의 '국경 없는 공학자회' 동호회를 소개받게 됐다.

'국경 없는 공학자회'는 KAIST 학생들이 네팔 산간지역에 있는 Nangi 마을을 매년 방문해 현지 주민들에게 필요한 물건이나 기술을 만들어 주는 일이 주된 임무다.

당시 이지수 연구원은 주저 없이 동아리 지도교수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동아리 유일한 외부인이자 직장인으로 참여하게 됐다.

사회적 약자를 위한 첫 걸음이었다. 1년 동안 동아리 활동을 하며 불안전한 전기 공급과 경제적인 이유로 세탁기를 사용하지 못하는 네팔 주민들을 위해 폐자전거를 이용한 세탁기를 만드는 등 크고 작은 기술들을 현지인에게 제공했다.

이 연구원은 "실제로 국경 없는 공학자회에 활동하는 학생들은 빈곤한 마을 사람을 위해 없던 재능을 만들어 기부한다"라며 "곤경에 처한 이웃을 돕기 위해 자신이 가진 재능 말고도 없는 재능이라도 만들어서 도우려는 정성이 더욱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국경 없는 공학자회 활동을 통해 구성원들과 동일한 목표를 공유하고 진심이 통한다면 전공 분야가 아니더라도 어떠한 일도 해낸다는 것을 알게 됐다"라며 "ETRI에서도 각자가 지닌 전공 분야의 틀을 깨고 따뜻한 기술이라는 목표를 공감한다면 세상을 아름답게 만드는 기술이 나온다는 확신을 하게 됐다"고 덧붙였다.

◆ "시각장애인 직접 찾아다녔죠" 진정성 공감으로 다수 기술 선봬

그는 "앞으로도 사회적 약자를 위한 기술연구에 매진할 것"이라고 포부를 밝혔다.<사진=박성민 기자>
그는 "앞으로도 사회적 약자를 위한 기술연구에 매진할 것"이라고 포부를 밝혔다.<사진=박성민 기자>
"ETRI에서 연구한 지 2년이 지날 무렵 원내에 시각장애인을 위한 보조공학기술 관련 연구프로젝트가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전공 분야와 전혀 다른 일이지만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들었죠. 부서까지 옮기며 시각장애인을 위한 연구를 시작했습니다."

그는 그동안 수많은 시각장애인을 직접 찾아 나섰다. 갑작스러운 과학자의 접근에 낯설게 대응했던 시각장애인들도 이지수 연구원의 진정성에 마음의 문을 열기 시작했다.

이 연구원은 시각장애인들의 관점으로 주변을 바라보며 그들에게 필요한 기술 수요를 찾아냈다. 특히 기존 책을 시각장애인도 볼 수 있는 음성변환 프로그램을 포함해 다양한 전자책 플랫폼을 개발했다. 전자책 플랫폼 기술은 현재 국립장애인도서관에서도 사용되고 있다.

또 그는 연구개발 과제에 포함되지 않는 따뜻한 기술을 개발하기 위해 ETRI 내에 '사회적 약자를 위한 따뜻한 기술 AOC' 연구모임을 만들어 이끌고 있다. 따뜻한 기술 연구에 공감하는 과학자들이 머리를 맞대고 다양한 기술을 만들어내는 모임이다. 

그동안 모임 구성원들은 사회적 약자를 위한 따뜻한 기술을 선보였다. 시각장애인용 스마트폰 바코드 인식 앱 개발을 비롯해 3D프린터를 활용한 수학 교과서 입체 도형 학습 자료, 겨울에도 따뜻하게 지내는 저가형 원격 보일러 제어기 등을 개발했다.

그는 따뜻한 기술 연구를 위해 원내 동료뿐만 아니라 외부의 따뜻한 마음을 가진 과학자들과도 협력을 도모하고 있다. 특히 경상북도 경주에서 오랫동안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기술을 개발하는 손문탁 JIT(Joy Institute of Technology) NGO단체 박사와 함께 개발 도상국 주민들을 위한 기술을 개발 중이다.

그는 "앞으로도 사회적 약자를 위해 각계각층 전공의 연구자들과 협업해 더욱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어가고 싶다"라며 "적정기술이 인류의 삶을 바꿀 수 있을 것이라 확신한다. 앞으로도 따뜻한 기술을 만드는 도전을 멈추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시각장애인 대학생들과 면담하는 이지수 연구원.<사진=이지수 연구원 제공>
시각장애인 대학생들과 면담하는 이지수 연구원.<사진=이지수 연구원 제공>

KAIST의 '국경 없는 공학자회' 활동 모습.<사진=이지수 연구원 제공>
KAIST의 '국경 없는 공학자회' 활동 모습.<사진=이지수 연구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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