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공주 이화여대 교수, 지난달 INWES 회장 6년 임기 마무리
"여성과학인 위상 높여 나갈 것"···"사람 중심된 사회 돼야"
이공주 이화여대 약학과 교수가 지난달 세계여성과학기술인네트워크(INWES) 회장직에서 내려왔다. 꼬박 6년을 봉사한 그는 우리나라 여성 과학자의 위상을 높이고 국가 간 인적 네트워크를 강화하는 데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INWES는 과학·기술·공학·수학 등 4개 분야 여성과학기술인의 국제 교류·협력 단체다. 순수 NGO 단체로 여성과학기술인 관련 단체와 기관, 대학, 기업, 개인 회원까지 전 세계 60개국 25만여명이 회원으로 가입돼 있다. 유네스코의 공식 NGO 파트너이며, UN 경제사회이사회의 특별 자문 단체이기도 하다.
이 교수는 지난 2011년 아시아인 최초로 INWES 3대 회장에 선임, 이후 연임돼 지난 달까지 6년 동안 INWES를 이끌었다.
"캐나다와 영국에서 1, 2대 회장을 맡았어요. 그들은 오랫동안 여성과학기술인회 역사를 기반으로 역할을 잘 했기에 우리도 잘 할 수 있을까 고민이 많았죠. 그래도 우리는 어려운 시절을 거쳐 선진국으로 발전한 경험이 있고, 1세계와 3세계를 모두 잘 이해하고 있어 세계를 잇는 중심역할은 잘 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습니다."
수장으로 가장 역점을 둔 사업은 지역 네트워크(Regional Network)를 강화하는 것이었다. 회장으로 선임된 그 해에 바로 한국·일본·호주 등 아시아 11개국이 참여한 APNN(Asia Pacific Nation Network)을 구성했다.
이를 기반으로 여성과학인 단체가 없던 타이완, 몽골, 베트남 등에서 조직이 만들어 질 수 있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또 APNN 국가의 여성과학기술인 현황을 분석하는 등 젊은 여성과학기술인 캠프를 만들어 주기적으로 모임도 운영했다.
사실 그가 지역 네트워크를 강화한다고 했을 때 반대 의견도 만만치 않았다. 지역 네트워크가 커지면 상위 조직 운영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우려에서였다.
이 교수는 "1, 2대는 식량·환경 문제 등에 관심이 많았다. 이도 중요한 이슈지만 대륙 간 관심사가 다르고 서로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상황이라 지역 네트워크를 형성하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다"며 "몽골, 타이완 등에서 조직된 새로운 단체들은 국내·외적으로 여성과학기술인의 역할을 확대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고 말했다.
이후 2014년 케냐·세네갈·나이지리아 등 아프리카 국가를 중심으로 한 ARN(Africa Regional Net work), 그 다음해에는 유럽 내 국가들이 참여한 INWES Europe을 구성했다.
그는 "아프리카는 워낙에 땅 덩어리도 크고, 국내 간 비행기 값도 비싸 왕래가 쉽지 않다. 국가별로 지역 네트워크가 만들어지니 서로에게 힘이 됐다"며 "유럽 여성과학자도 지난해 처음으로 연차 주주 총회를 갖고 지역 네트워크를 강화하고 있다"고 밝혔다.
◆ "여자 과학인이 제 역할 할 수 있도록"
1993년 조직된 대한여성과학기술인회(KWSE) 창단멤버이기도 한 그는 "KWSE를 만들 당시만 해도 같이 유학을 하고 같은 박사학위를 했어도 남자는 정규직으로 여자는 임시직 연구자로 취업이 됐다"며 "여자 연구자가 소수이기도 했지만 차별받는 것이 당연시 돼 있었다"고 회고했다.
KWSE가 조직돼 활동이 시작되며 2002년 여성과학기술인을 위한 적극적 우대조치(affirmative action)가 제도화 됐으며, 여성과학기술인 쿼터제 관련법이 통과됐다.
"처음엔 같이 모여 전공얘기도 하고 서로 도울 수 있는 부분이 있으면 돕자는 소박한 취지로 시작됐는데 조직 틀을 갖춰가다 보니 그동안 보이지 않았던 문제가 보이기 시작했어요. 조직이 생기니 목소리도 낼 수 있을 뿐 아니라 과학기술예산을 편성하는 국가차원의 회의에도 KWSE 회장이 들어가게 됐어요."
KWSE 6대 회장을 맡았던 이 교수는 2005년 제13차 세계여성과학기술인대회(ICWES) 조직위원장으로 활동하며 한국 여성과학기술인의 위상을 한껏 높였다. 이 대회의 성공적 개최는 INWES의 3대 회장이 되는 결정적 계기가 되기도 했다.
"리더 한 사람이 잘 한다고 해서 모든 게 잘 되지는 않아요. 여러 사람이 힘을 모았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죠. KWSE가 쌓아온 경험이 세계여성과학기술인대회를 성공적으로 이끌 수 있었고요. 동시에 한국 여성과학인의 역할과 이들에 대한 인식 변화도 가져왔습니다."
INWES를 이끌며 어려움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자원봉사지만 본업만큼이나 일이 많았다. 그는 "일로 봤으면 못했지만 가치로 여겼기에 가능했다. 함께 한 이들이 없었다면 지금까지의 변화도 없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 교수는 이제 INWES를 뒤에서 돕는 조력자로 활동할 계획이다. 여성 과학인이 연구현장에서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는 힘을 기르고, 환경을 조성할 수 있도록 힘을 보태려 한다. 차별이 없고 지속적인 연구가 가능한 환경. 이는 INWES가 추구하는 목표이기도 하다.
그는 "회장에서 내려왔지만 3년 동안은 전 회장 자격으로 참여해야 한다. 해병대처럼 한번 INWES 멤버는 영원하다"며 "경험치가 임계점을 넘으면 새로운 도약이 될 수 있다. 그간의 경험을 바탕으로 조언하고 여성과학인의 역할 확대에 도움을 주고자 한다"고 피력했다.
교수 정년 역시 3년 남았다는 이 교수는 "차별이 없는 사회는 여성과학인만을 위한 것은 아니다. 사회 전체에 대한 발전을 의미한다"며 "네트워킹을 통한 집단지혜가 가능하고 다양성이 인정되는 사회가 될 수 있도록 새판을 짜야 한다. 경쟁보다는 협력으로 새로운 지식을 생산해 좀 더 나은 사회로 발전할 수 있도록 기여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후배 여성과학자들에게 대한 조언도 잊지 않았다. "가정과 연구를 모두 잘 하기는 힘들어요. 하지만 분명한 건 연구여건이 조금씩 좋아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좋은 아이디어가 공유되고 열심히 하면 누구든 잘하는 사람이 될 수 있죠. 그런데 과학은 시간이 좀 더 걸립니다. 단시간에 운 좋게 잘 되는 경우가 없으니 긴 호흡이 필요합니다. 연구자는 포기하지 말아야 하며 이 사회 역시 이들이 포기하지 않도록 지원과 격려를 해줘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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