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의 시작, 나노 ⑩]'액상 나노 코팅제' 개발 배규석 벡스 대표글로벌 반도체 파운드리도 놀란 공정·비용·품질 혁신···"좋은 분들이 도와주신 덕"

단위의 명칭 '나노'가 미래 산업의 기초를 포괄하는 대명사가 됐습니다. 4차 산업혁명시대 핵심 요소인 센서와 기초 소재, 디스플레이, 바이오에 이르기까지 나노는 산업발전의 필수 융합 조건입니다. 과학기술의 메카 대전 대덕연구단지에는 일찍이 나노 관련 산업이 자리 잡아 성장하고 있습니다. 다양한 연구소와 지자체의 지원, 무엇보다 기업의 치열한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입니다. 하지만, 아직도 많은 기업들이 나름의 애로점을 안고 있습니다. 점차 치열해지는 나노산업의 각축장에서 기업들이 생존할 방법은 없을까요? 특유의 경쟁력으로 성과를 보이는 유망 나노기업을 찾아 숨겨진 노하우를 조명합니다. <편집자의 편지>
 

 

'액상 나노 코팅제'로 반도체 웨이퍼 가공 혁신을 부른 배규석 벡스 대표. <사진=윤병철 기자>
'액상 나노 코팅제'로 반도체 웨이퍼 가공 혁신을 부른 배규석 벡스 대표. <사진=윤병철 기자>
"올해 3월 중국반도체전시회에 이 제품으로 참가했는데, 대만 TSMC 임원이 '유레카!'를 외치더라고요. 우리가 개발한 액상 코팅제가 기존 필름 보호제를 대체할 수 있다고 판명한 순간이었습니다."
 
빅데이터를 수집·가공하는 인공지능이 4차 산업혁명의 핵심이라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인공지능은 반도체 칩에서 구현된다. 반도체 칩은 고도의 집약된 기술과 혁신이 지속돼야 시장에서 살아남는다. 혁신은 발전에 무뎌진 기존 영역이 이종 영역과 융합했을 때 탄생하기도 한다. 이 같은 이종융합 혁신이 반도체 가공 분야에 등장했다. 혁신의 주인공은 '액상 나노 코팅제'를 개발한 나노소재 중소기업 벡스(대표 배규석)다.
 
◆ 액상 나노 코팅제가 '반도체 웨이퍼' 가공분야 혁신 불러와
 

 

웨이퍼에 도포된 액상 나노 코팅제는 진공압력 조절로 400~780나노미터 사이 막을 형성한다. <사진=윤병철 기자>
웨이퍼에 도포된 액상 나노 코팅제는 진공압력 조절로 400~780나노미터 사이 막을 형성한다. <사진=윤병철 기자>
반도체는 모래 등으로 만든 실리콘 재질의 얇은 원판 '웨이퍼(Wafer)'를 만드는 것에서 시작한다. 웨이퍼에 수십 개의 반도체 IC칩을 박아 가공 전 회로 기판을 만든다. 기판은 가공 저항을 줄이고 박리성을 높이기 위해 웨이퍼 뒷면을 연마한다. 그리고 회전하는 날로 웨이퍼를 절단해 개별 반도체 칩을 만든다.
 
웨이퍼 가공 시 파편이 발생해 칩 보호제로 특수 필름을 써왔다. 그러나 보호용 필름도 100% 웨이퍼 손상을 막을 수 없다. 위에 필름을 덮어도 칩과 칩 사이 빈 틈이 남는다. 틈은 웨이퍼 절단시 파편이 끼고 칩과 칩이 맞부딪히며 기판 자체가 깨지는 여지를 남긴다. 때문에 웨이퍼 가공 공정에서 불량률은 감수하되 비율을 줄이는 것에 주목해 왔다.
 
그런데 전혀 다른 용도의 소재가 이 문제를 단번에 해결했다. 어디에나 스며들 수 있는 액상 나노 코팅제다. 이 액은 분사하고 진공 압력으로 건조하면 질긴 막이 된다. 막은 곧 필름 역할을 하는데, 중요한 차이는 나노 소재 액체라 미세한 틈에도 스며들 수 있어 칩과 칩 사이를 막아준다.
 
질긴 막으로 사방이 촘촘히 보호된 칩과 웨이퍼는 절단 가공시 직접 상처를 받지 않는다. 파편에 노출되지도 않고, 뒷면을 연마할 때 강한 힘으로 눌러도 칩 이탈을 방지한다. 부가적인 효과로 건조가 빠르고 물에 담그면 막이 쉽게 떨어진다. 필름 건조 때 쓰이던 자외선 쪼임도 열풍으로 충분하다. 기존 웨이퍼 가공 6단계 공정이 4단계로 줄었다.

비용도 혁신적으로 줄었다. 액상이라 원형 웨이퍼에 직접 도포하기 때문에, 사각 면적을 쓰는 필름보다 재료를 40% 정도 절약한다. 수출가로 웨이퍼 당 필름은 한 장에 4000원, 액상 코팅제는 1100원으로 비용을 70%이상 낮춘다. '데드존 볼'이라는 웨이퍼 미가공 영역을 추가 가공 없이 절단이 가능해 웨이퍼 사용율도 높인다.
 
올해 3월 중국반도체전시회에서 벡스의 액상 나노 코팅제를 본 대만 TSMC 임원은 "유레카!"를 외쳤다. TSMC는 세계 반도체 파운드리(위탁생산) 시장을 주름잡는 글로벌 기업이다. 배 대표는 "당시 보람을 평생 잊지 못할 것"이라고 회상했다.
 

 

필름을 대체한 액상 코팅제가 공정과 비용을 줄이고 제품 질을 높이는 효과. <자료=벡스 제공>
필름을 대체한 액상 코팅제가 공정과 비용을 줄이고 제품 질을 높이는 효과. <자료=벡스 제공>
시장의 수요가 알아본 액상 코팅제, 20억원대 고정 매출 2018년부터 '70억원' 이상으로
 
"디스플레이 보호용 코팅제가 반도체 가공용으로 이어질 줄 누가 알았겠어요. 일이 잘 되려니까 좋은 분들이 나타나 연달아 도와주시더라고요." 
 
액상 코팅제는 원래 디스플레이 보호용으로 개발됐다. 2006년에 창립된 벡스는 반도체용 세정제와 자동차부품을 주력 생산해왔다. 2012년을 기점으로 스마트폰 수요가 폭발하면서 주요 부품인 전면 패널도 생산이 급증했다. 이에 대응하고자 벡스는 디스플레이용 액상 마스킹 코팅제를 2014년에 만들었다.
 
당시 배 대표는 코팅제를 천안에 있는 LCD공장에 납품하러 갔다 우연히 만난 지인에게 제품 소개서를 건냈다. 지인은 소개서를 앞 건물에 있는 N반도체사에 전달했다.
 
마침 웨이퍼 보호 필름의 한계를 벗어나려던 N사는 벡스의 액상 코팅제를 접하고 필름 대체제의 가능성을 알아봤다. 미세한 틈까지 밀착하는 유연함과 질기면서도 단단한 고정력, 건조가 쉽고 박리가 편한 용이함 등 필름보다 상대적인 우수성이 충분했다. 무엇보다 재료비가 저렴했다.
 
N사는 벡스를 찾았고, 웨이퍼에 걸맞는 소재 연구를 더해 2015년 현재의 나노소재 액상 코팅제가 탄생했다.
 
액상 코팅제 소문은 삽시간에 국내 반도체 업계에 퍼졌다. 벡스는 지난해 모 반도체 공장과 액상 코팅제를 공급계약 하면서 '다른 자매 공장에는 함구해 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배 대표는 "그만큼 우리 제품이 시장성이 있다는 증거"라고 여겼다.
 
그동안 벡스는 기존 제품으로 20억원대 매출에 머물러 있었다. 그러다 올해 코팅제 공급계약이 국내외에서 이뤄지면서 오는 2018년 매출이 70억원, 2019년에는 300억원, 2020년에는 500억원 대로 급상승을 전망한다.
 
재료효율성이 낮았던 반도체 웨이퍼 가공 분야에서, 고체 평면 필름을 액상 나노 코팅재로 바꾼 선도적 시도에 시장이 답한 쾌거다.
 

 

중국전시회에서 대만TSMC와 벡스 제품의 공정 테스트 협약을 맺었다. <사진=벡스 제공>
중국전시회에서 대만TSMC와 벡스 제품의 공정 테스트 협약을 맺었다. <사진=벡스 제공>
한국탄소나노산업협회 교류 통해 액상 코팅제 개발 큰 도움···'방사능 제염' 등 새로운 영역 도전
 
 
직원들의 꿈이 성장하는 장이 벡스의 경영 목적이다. <사진=윤병철 기자>
직원들의 꿈이 성장하는 장이 벡스의 경영 목적이다. <사진=윤병철 기자>
세정제만 35년을 연구한 배 대표는 독일 화학회사인 헨켈(Henkel)의 국내 합작회사에서 공장장을 역임하다 벡스로 건너와 2012년부터 대표이사가 됐다.
 
배 대표는 왕성한 활동가다. 지역에서 여러 모임에 참여하며 새로운 기회를 찾는다. 특히 한국탄소나노산업협회 모임은 가장 큰 공을 들인다. 협회와는 2기 전국 모임부터 시작했다. 모임에는 다양한 나노기업들이 모이는데, 분야는 달라도 상당한 자극을 주고 융합할 기회도 얻을 수 있다. 2주 전에도 한국탄소나노산업협회 모임에서 만난 다른 기업들과 공동연구 협의를 하고 왔다.
 
배 대표는 "매년 수차례 한국탄소나노산업협회 분과별 모임과 공동모임에서 얻은 기술과 시장 정보가 원료 수급에 큰 도움이 됐다"며 "협회사업으로 액상 코팅제 샘플비용도 지원받았다"고 밝혔다. 

벡스는 또 다른 패러다임 전환에 도전하고 있다. 액상 코팅제로 방사성 오염물질도 제거할 참이다. 현재는 방사성 물질을 만진 장갑이며 보호복도 전부 준저준위 방사성폐기물로 전량 폐기한다. 원자력 시설 장치의 제염은 폐수며 폐기물 발생 등 그 비용과 수고가 상당하다. 원전 폐기물을 두고 인적·물적 비용과 사회적 갈등이 엄청나지만, 방사능 이슈는 '모두가 괜찮다고 할 때까지' 극복하기 어렵다.
 
회사가 한국원자력연구원과 멀지 않아 이 문제를 심히 여기던 차에, 지인의 도움으로 원자력연과 KAIST의 전문가를 만날 수 있었다. 그들에게 배 대표는 "폐기물로 모두 버리는 낭비 대신 코팅제만 제거하면 어떨까?"란 제안을 했고, 실효성이 인정돼 가칭 '방사능 코팅 제염제'가 2020년 등장을 목표로 착실히 개발 중이다.
 
"알고 보니 전 세계 원전 폐기시장의 10%가 제염제 시장입니다. 나노 코팅제의 새로운 시장이죠. 사명 벡스(BEst Chemical Solution)의 실현입니다."
 

 

벡스는 중국·대만·싱가폴 등 해외시장을 확대하고 있다. 2020년 매출 500억원을 전망한다. <사진=윤병철 기자>
벡스는 중국·대만·싱가폴 등 해외시장을 확대하고 있다. 2020년 매출 500억원을 전망한다. <사진=윤병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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