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준연, 내년 키블저울 완성···플랑크 상수 활용한 kg 실현
이광철 박사 "재정의 이후 타국 의지 안하려면 키블저울 개발 서둘러야"

이 박사는 kg 표준 재정의 이후 자국의 힘으로 질량 표준을 이루기 위해서는 키블저울 개발을 서둘러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진=박은희 기자>
이 박사는 kg 표준 재정의 이후 자국의 힘으로 질량 표준을 이루기 위해서는 키블저울 개발을 서둘러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진=박은희 기자>
"1kg이 1kg이 아니다?"

지난 2015년 한국표준과학연구원은 프랑스에 있는 국제도량형국(BIPM)으로부터 보고서를 받았다. 1kg 표준으로 알고 있던 기준이 달라졌다는 것. 표준연 kg 원기를 교정했던 국제킬로그램 원기가 닳아 가벼워진 탓에 우리 원기 값을 수정해야 한다는 것이 요지였다. 

변화된 1kg 기준 원기 값은 불과 35μg(마이크로그램‧100만분의 1g). 머리카락 1개 질량인 100μg 보다 작은 수치로 정밀한 측정을 하는 과학자도 느낄 수 없는 수준이지만, 기준이 변했음에는 분명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질량 표준 단위인 1kg은 현재까지 국제 kg 원기를 기준으로 하고 있다. 1889년 만들어진 kg 원기는 물 1L 질량을 기준으로 백금 90%와 이리듐 10% 합금으로 만들어져, 금고에 보관 중이다. 

130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원기가 세상 빛을 본 것은 단 3번. 주변 환경과의 반응을 최소화 하고 있지만 실제 물체로 kg 기준이 분동으로 만들어졌기에 사용 중 마모나 공기 이물질 흡착 등에 따라 질량이 늘거나 줄 수 있다.  

"표준연은 5년마다 국제도량형국이 보유한 질량표준기와 비교해 그 값을 갱신하는데요. 국제도량형국이 우리나라 kg 원기를 교정했던 원기가 닳아있던 것을 뒤늦게 발견했죠. 이후 2007년과 2012년에 교정했던 표준연 kg 원기 값을 수정해야 했습니다. 그 변화가 아주 미미하긴 하지만 원기 질량이 변했다는 것은 궁극적으로 단위 기준이 흔들렸다는 것을 증명한거죠."

이광철 한국표준과학연구원 역학표준센터 박사가 설명한 질량 표준 재정의가 필요한 이유다. 

1990년 초부터 불거진 질량 단위 재정의는 현재 변하지 않는 물리 상수인 '플랑크 상수'를 활용해 결코 변치 않는 새 기준을 만들기 위한 노력이 한창이다. 국제도량형총회(CGPM)는 내년에 질량 1 kg에 대한 새로운 정의를 결의할 예정이다.

◆ 국내 순수 기술 제작 '키블저울'

질량 표준에 새롭게 사용될 플랑크 상수 단위는 J(줄)·s(초)다. 에너지와 일의 단위인 J을 kg과 m, s 같은 국제단위계 단위로 변환하면 플랑크 상수 단위는 kg·m²·s⁻¹이 된다. 

플랑크 상수를 정확하게 측정하면 이미 결정된 길이와 시간 단위를 이용해 역으로 kg을 정의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현재 플랑크 상수는 6.6260 070 150(69)×10³⁴kg·m²·⁻¹까지 구해져 있다. 괄호 안의 숫자가 아직 미정으로 BIPM이 내년에 확정, 오는 2019년 공표할 예정이다. 

표준연이 개발한 키블저울 일부 모습. <사진=박은희 기자>
표준연이 개발한 키블저울 일부 모습. <사진=박은희 기자>
단위 재정의를 이루기 위해서는 두 가지 이상의 실험을 통해 플랑크 상수 값을 구해야 한다. 미국, 캐나다 등이 와트 밸런스라 불리는 '키블저울'로, 독일은 규소 원자를 활용해 정확히 1kg에 해당하는 공을 만들어 플랑크 상수를 측정하는 데 성공했다.  

"처음 연구팀의 연구 목표는 두 가지였어요. 하나는 단위 재정의 이전에 플랑크 상수를 측정해 kg 재정의에 기여하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키블저울을 이용해 kg을 실현하는 기술을 개발하는 것이었죠. 재정의에 기여하지 못한 아쉬움은 있지만, 재정의 기여보다 더 중요한 것이 그 이후입니다. kg 정의가 바뀌게 되면 키블저울이 없는 나라는 다른 나라에서 kg 기준을 가져와야 하니까요." 

표준연이 키블저울 개발에 나선 건 지난 2012년. 영국, 미국 등 선진국과 비교해 30년 이상 뒤처진 출발이지만 연구진의 낮밤을 가리지 않은 연구로 지금은 선진국 그룹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

키블저울 개발 연구자는 이광철 박사와 김동민 박사, 우병칠 박사 등 총 3명이다. 연구팀이 저울의 메인시스템을 구성하고 측정에 필요한 전기·속도·길이 등 측정시스템은 동료 연구자들의 도움을 받고 있다. 

키블저울은 전기의 힘을 중력으로 환산해 계산한다. 1㎏짜리 물체를 저울에 올려놓고 자석을 이용해 수평 상태를 유지하도록 한 뒤 이때 전자기력을 측정하면 1㎏에 해당하는 전자기력 수치를 얻는다. 이 수치를 물리학 방정식에 넣으면 플랑크 상수를 알 수 있다.  

"키블저울 개발팀이 구성되고 미국에 가서 키블저울이 만들어 지는 과정을 공부했어요. 하지만 미국도 완성 단계가 아니었고, 개발 과정을 봐도 그들의 숨은 노하우까지 알아차리기는 힘들었죠. 결국 우리만의 기술로 만들 수밖에 없었어요."  

전 세계적으로 키블저울은 아직까지 연구단계로 장비 부품 하나까지도 연구팀 스스로 만들어 가야 하는 상황. 연구팀은 3년에 걸쳐 설계도를 완성하고 필요한 장비 부품과 시스템을 구성해나갔다. 

이 박사는 "연구팀도 키블저울 시스템을 만들어 본 경험이 없었으니 쉽지 않은 일이었다. 시행착오만이 키블저울을 완성하는 답이었다"며 "설계 당시에는 생각하지 못한 기술적 오류가 이어져 이를 해결하는 데 시간을 많이 보냈지만 실패를 여러 번 반복하며 성공에 한 발짝 다가갈 수 있었다"고 말했다. 

특히 키블저울은 중력에 민감한 반응해야 해 유연한 구조가 필수다. 무빙 모드에서는 순수직선 운동을 해야 하는데 이를 구현하는 설계가 만만치 않았다. 

이 박사는 "피스톤 가이드와 판 스프링 가이드를 이용해 순수 직선 운동을 하도록 설계를 했다. 하지만 조립 후 순수직선 운동이 되지 않았다"며 "이후 당시 함께 연구하던 김명현 박사가 전자기력 구동기를 이용해 수평방향 움직임을 제어하자고 제안했다. 지금은 수직 방향으로 20 mm 움직일 때 수평방향 움직임을 6um 이내로 줄였다"고 설명했다. 

연구팀은 올해까지 실험을 통해 키블저울 시스템을 정비하고 내년 이후에는 미국, 프랑스, 캐나다 등과 측정값을 비교해 나갈 계획이다. 내년까지 키블저울 1×10⁻⁷ 질량 불확도로 세계 5위권, 2019년 8×10⁻⁸ 질량 불확도로 세계 3위권에 안착하고, 2020년까지는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을 도출할 예정이다.

◆ 표준연, "키블저울 활용 kg 구현과 보급 목표"

이 박사가 표준연이 개발 중인 키블저울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사진=박은희 기자>
이 박사가 표준연이 개발 중인 키블저울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사진=박은희 기자>
"질량 표준이 기술 개발에 장애물이 되서는 안 됩니다."
"키블저울을 완성 못하면 표준 재정의 이후 타국에 의지해야 합니다."

이 박사는 표준은 산업체 요구보다 항상 빨라야 함도 강조했다.

그는 "산업체에서 표준에 대해 불편을 느끼는 순간 문제가 된다. 산업체가 불편을 느낀다는 것은 표준인의 잘못"이라며 "표준이 제 역할을 못하면 산업체가 흔들린다. 이는 사회적 손실로 이어지는 만큼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미리 준비를 해야 한다. 표준인의 역할"이라고 말했다. 

산업체가 응용할 수 있는 표준은 최소 30년 전에 만들어 져야 한다는 이 박사. 키블저울 개발을 서두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30년 후 현재 표준을 바탕으로 새 산업을 만들어 내기 위해서는 키블저울 개발을 빠른 시간 내 완성해야 합니다. 표준이 장애가 돼 기술 개발에 차질을 빚으면 안 되니까요."키블저울이 완성되면 산업체에 미칠 파급 효과도 클 것으로 예상된다. 

플랑크 상수를 이용해 1kg을 정확하게 잴 수 있으니 1kg 미만 혹은 1kg 보다 큰 질량 표준 저울도 개발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 박사는 아직 먼 미래일 수 있지만 가능성은 충분하다고 자신했다.

그는 "지금은 산업체 분동을 교정 받기 위해서는 연구원을 찾아야 한다. 하지만 플랑크 상수를 이용한 키블저울이 만들어지면 미니 표준저울을 만들 수 있어 1mg 혹은 1kg 보다 큰 질량을 재는 저울을 만들 수 있게 된다"며 "산업체도 스스로 저울을 만들고 자체 교정도 가능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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