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일 KAIST서 故 신중훈 교수 1주기 추모식 열려
참가자들 고인 애도···장학기금 약정 발걸음도 이어져

"이제는 뭘하더라도 그때와 같을순 없으리오. 우리의 추억을 기억해줘. 친구여."

故 신중훈 KAIST 교수와 동갑내기 절친이었던 정하웅 교수는 평소 친구가 좋아했던 노래 가사로 마무리하며 그를 추억했다. 유족을 대표해 인사말을 전한 신평재 전 교보증권·교보생명 대표도 아들을 그리워하며 "아들이 KAIST 동료, 선후배들과 좋은 역할을 한 것 같다. 1주기를 맞아 많은 분들과 함께 할 수 있어서 감사하다"면서도 비통한 마음을 숨기지 못했다. 숙연함이 감도는 가운데 자리에 앉아 있던 추모객들도 연신 흐르는 눈물을 닦았다. 

추모식 참석자들이 추모 묵념을 하고 있다.<사진=강민구 기자>
추모식 참석자들이 추모 묵념을 하고 있다.<사진=강민구 기자>

정하웅 교수가 故 신중훈 교수를 회고하고 있다.<사진=강민구 기자>
정하웅 교수가 故 신중훈 교수를 회고하고 있다.<사진=강민구 기자>
지난 29일 KAIST 기초과학동에서는 불의의 교통사고로 영면한 고 신중훈 교수 1주기 추모식이 열렸다. 이 날 추모식에는 학생, 교수 등이 찾아 자리를 가득 메운 가운데 고인을 넋을 기렸다.

故 신중훈 교수는 지난해 9월 30일 강원도 강릉에서 열린 워크숍에 참석했다 돌아오는 길에 교통사고를 당했다. 그는 1996년 9월 당시 최연소 KAIST 물리학과 교수로 임용됐으며, '올해의 젊은과학자상', '한국공학상 젊은과학자상', 대통령 표창, KAIST 공적상 등 다수의 상을 받을 정도로 촉망받는 젊은 과학자였다. 그의 빈자리가 더욱 큰 이유다. 

하지만 이날 슬픈 분위기만 지속된 것은 아니었다. 평소 활달하고 따뜻한 인간미가 넘쳤던 고인의 성격을 반영해 추모식이 끝난 후에는 고인이 즐겨듣던 경쾌한 분위기의 힙합곡 등이 흘러 나왔다. 참가자들은 삼삼오오 모여 고인을 추억하고 이야기 하는 시간을 가졌다.

추모식의 일환으로 강의실 헌정식이 진행되고 신중훈 장학기금에 동참하기 위해 뒷편에 마련된 부스에서 장학기금을 약정하는 발걸음도 이어졌다. 

신성철 KAIST 총장은 "KAIST를 그 누구보다 사랑했으며, 천부적인 재능과 연구에 대한 집념이 뛰어난 국가 나노과학 미래를 이끌 연구자를 잃어 안타깝다"면서 "화향백리(花香百里), 인향만리(人香萬里) 처럼 그의 최선을 추구하는 삶과 이타주의 삶의 정신은 우리 뇌리에 남아 교훈이 될 것"이라고 애도했다.

◆ 신중훈 강의실 조성···연말까지 '신중훈 장학기금'도 모금

"하나~둘~셋"

KAIST 관계자들과 유족들이 흰색 커튼을 당기자 신중훈 기념 강의실의 모습이 드러났다. 유족, 동료 교수들이 고인의 학문에 대한 열정과 뜻을 기리고자 기념 강의실 헌정 사업과 장학기금 사업을 추진해 왔다. 

33.05m²(10평) 15석 규모의 기념 강의실 앞에는 신중훈 교수의 이력부터 신성철 총장과 강성모 前 총장의 애도문, 기념예술작품 등이 마련됐다. 평소 고인이 존경했던 레이 박 작가를 통해 레이저 광원을 이용한 3차원 홀로그래피 예술 작품도 설치됐다. 홀로그래피 내부에는 신 교수의 대표 연구 업적인 몰포나비 구조색 연구 결과부터 즐겨 읽던 도서, 바이크용 헬멧 등이 반영됐다. 강의실 내부는 분과 토론 등이 가능하도록 원형으로 자리가 배치됐다.

김용현 KAIST 나노과학기술대학원 학과장은 기념 강의실 헌정 사업에 대해 소개하며 "고인의 학문 열정과 주변 동료들에 대한 따뜻한 인간미를 학생들이 느끼고 열정적인 토론을 통해 창의적인 생각이 나올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강의실로 헌정 사업이 추진됐다"면서 "신 교수를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도록 홀로그래피 사진 등의 작품도 함께 마련됐다"고 설명했다.

이날 추모객들은 신중훈 장학기금(기사 하단 배너 참조) 약정에도 적극 동참했다. 지난 4월 유족들이 학교측에 기부한 금액과 지난 7월부터 진행해 온 모금액을 합쳐 '신중훈 장학기금' 모금 활동이 올해 연말까지 진행될 예정이다. 조성된 장학기금은 우수논문상과 우수졸업상으로 구분해 후학들을 위한 장학금으로 지급될 계획이다.

김은성 KAIST 물리학과장은 "학생들에게 30년간 지속적으로 지급할 수 있는 장학기금을 조성하는 것이 목표"라면서 "1차 목표 금액은 넘었지만 앞으로 더 많은 분들이 함께해주셨으면 하며 'KAIST 발전기금' 또는 '신중훈 장학기금'을 통해 참여할 수 있다"고 말했다.

KAIST 기초과학동에 들어선 신중훈 강의실.<사진=강민구 기자>
KAIST 기초과학동에 들어선 신중훈 강의실.<사진=강민구 기자>

강의실 내부는 원형으로 구축되어 있다.<사진=강민구 기자>
강의실 내부는 원형으로 구축되어 있다.<사진=강민구 기자>
◆ "주변에서 많은 도움···예술 공간으로 만들면서 치유"

"기념 강의실을 기획하다보니 치유가 많이 되었습니다. 남편이 다시 살아날 수는 없겠지만 같은 공간에서 함께 하는 느낌이었습니다. 예술이 우리 삶에 미치는 영향과 유용성에 대해 잘 몰랐는데 이제 그 의미를 좀 알 것 같습니다. 중요하고 의미있던 과정이었습니다."

이번 기념 강의실 기획부터 추모식 리플렛 제작 등은 고인의 부인 홍영은 여사가 직접 기획했다. 디자인을 전공한 그는 남편의 자유로운 영혼, 학문에 대한 열정, 동료들에 대한 따뜻한 인간미가 반영될 수 있도록 추모식을 준비했다. 

고인의 성격과 유사하다는 생각에 사다리꼴 모양의 강의실이 기념 강의실로 선택됐다. 단순한 강의실을 넘어 갤러리와 같은 예술 공간으로 재창조 되었으면 한다는 생각에 공간 배치 등 세심한 작업이 이어졌다. 
 
이 과정에서 주변의 도움이 컸다. 공무 중 불의의 사고로 유명을 달리한 신 교수를 기념하는 사업을 추진하기 위해 KAIST에서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전국 각지에서 활동하고 있는 홍 여사의 지인들의 도움도 이어졌다. 제주 소재 조안베어뮤지엄에서는 신중훈 장학기금 약정자를 위한 100개의 곰인형을 기부하기도 했다.

홍 여사는 "지난 1년전에 비해 많이 좋아지고 있지만 아직까지 충격이 가시지 않아서 하나에 집중하기 쉽지 않았다"면서 "인테리어 등 세부 내용은 주변의 지인들이 도와줘서 잘 진행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고인의 흔적들은 '기억의 상자'라는 예술 공간으로 재탄생됐다. 평소 책을 좋아하고, 부인과 딸, 아들의 사진을 체인 목걸이에 넣고 다닐 정도로 다정했고, 연구부터 운동까지 좋아하는 일을 열심히 했던 그의 흔적이 홀로그램에 반영됐다.  

홍 여사는 추모식을 준비하면서 만난 동료들을 통해 연구자간 끈끈한 관계를 느꼈다고 강조했다. 연구에 밤 낮 없는 이들의 열정과 축적한 시간이 많았었다는 것이다. 홍 여사는 "같이 이야기를 나누면 울 정도로 동료 교수들도 충격이 컸던 것 같다"면서 "자주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고 술도 한잔씩 하던 분들이 이제 잘 못 만나고 애석해 하는 것을 보면서 안타까운 마음도 든다"고 말했다. 

신중훈 장학기금 모금활동은 올해 연말까지 지속된다. 미국에서 최초로 페이팔(paypal)로 기부를 받는 등 새로운 시도가 지속되고 있다. 지난 달 29일 기준으로 1차 목표액이었던 2억원을 초과 달성하기도 했다. 이중 미국에서 기부된 금액도 4000달러(약 460만원)에 이른다.

홍 여사는 앞으로 장학기금을 계속 모금하면서 약정자에게도 지속적으로 활동 내용을 소개하고 전달할 계획이다. 그는 장학기금에 대한 예쁜 상장도 만들고 수상한 학생들과 식사하면서 이야기도 나누고 싶다는 의지를 내비쳤다. 또 이번 기념 강의실 헌정이 기부자나 애도를 위한 공간이 예술적 공간으로 재탄생되기 위한 의미있는 사례가 되었으면 한다고 피력했다. 

"주변의 도움으로 지난 1년 동안 감사하게 잘 지낼 수 있었습니다. 신중훈 강의실에서 회의도 하고 창의력이 샘솟는 공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올해 연말까지 진행되는 기부금도 많이 동참해주셔서 물리학과와 나노과학기술대학원생 뿐만 아니라 타학과 학생들까지 혜택이 주어질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3차원 홀로그래피를 통해 예술적 공간으로 재탄생된 '기념 상자'.<사진=강민구 기자>
3차원 홀로그래피를 통해 예술적 공간으로 재탄생된 '기념 상자'.<사진=강민구 기자>

고인이 연구했던 몰포나비와 안경.<사진=강민구 기자>
고인이 연구했던 몰포나비와 안경.<사진=강민구 기자>

고인이 평소 즐겨보던 책과 가족들의 사진을 담고 다녔던 체인 목걸이.<사진=강민구 기자>
고인이 평소 즐겨보던 책과 가족들의 사진을 담고 다녔던 체인 목걸이.<사진=강민구 기자>

신중훈 강의실 앞에 비치된 신중훈 교수의 이력과 추모글.<사진=강민구 기자>
신중훈 강의실 앞에 비치된 신중훈 교수의 이력과 추모글.<사진=강민구 기자>

몰포나비 구조색 연구 관련 조형물.<사진=강민구 기자>
몰포나비 구조색 연구 관련 조형물.<사진=강민구 기자>

고인의 신발과 바이크 모형.<사진=강민구 기자>
고인의 신발과 바이크 모형.<사진=강민구 기자>

故 신중훈 교수 유족들과 신성철 KAIST 총장(맨 오른쪽)의 강의실 헌정 기념 사진.<사진=강민구 기자>
故 신중훈 교수 유족들과 신성철 KAIST 총장(맨 오른쪽)의 강의실 헌정 기념 사진.<사진=강민구 기자>

식전 헌화와 분향을 하기 위해 마련된 추모 공간.<사진=강민구 기자>
식전 헌화와 분향을 하기 위해 마련된 추모 공간.<사진=강민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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