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필호·천성호·홍대순 KIRD 교수, 강의비법 공개

논어를 통해 보직자로서의 일과 사명을 논하고, 연구원 경력 30년을 살려 후배들의 멘토를 자처한다. 4차 산업혁명 등 급변하는 과학기술에 대응할 인재상도 꼼꼼히 안내한다. 

과학기술인에게 꼭 필요한 내용을 골라 전해주는 강연이 연구현장에서 각광받고 있다. 

KIRD(원장 조성찬·국가과학기술인력개발원)는 전·현직 과학기술인부터 외부강사까지 해당 분야 전문가로 강연을 구성, 필수로 거쳐야 할 기본교육부터 역량 업그레이드를 책임지는 전문교육, 급변하는 트렌드를 반영한 특별교육까지 제공한다. 

이들 중 과기인들에게 높은 호응을 얻고 있는 강사 3인방의 매력적인 강의 비법을 살짝 엿본다. 

◆ 박필호 교수, 인생설계와 논어가 있는 수업 

후배양성과 연구문화 조성에 힘쓰고 있는 박필호 교수(한국천문연구원 연구위원). 그는 8년간의 공공기관 혁신 이야기가 담긴 도서도 발간했다.<사진=한효정 기자>
후배양성과 연구문화 조성에 힘쓰고 있는 박필호 교수(한국천문연구원 연구위원). 그는 8년간의 공공기관 혁신 이야기가 담긴 도서도 발간했다.<사진=한효정 기자>
군자는 특정한 용도에만 쓰이는 그릇 같은 존재가 아니라 
여러 일에 두루 통할 수 있는 그런 존재가 되어야 한다.  -논어 2편 12장-

보직자 과정의 첫 문을 여는 박필호 교수. 그의 강의는 논어로 시작해 인생설계로 끝난다. '보직자로서의 일과 사명, 실천윤리'라는 강의 안에는 박 교수의 30년 연구원 인생과 경험이 녹아 있다. 

올해로 31년째 한국천문연구원(이하 천문연)에 몸담고 있는 그는 그동안 팀장·본부장·부원장·원장까지 안 맡아 본 보직이 없다. 그렇기에 누구보다 출연연을 잘 안다. 연구직뿐만 아니라 행정직사정까지도 꿰뚫는 것은 기본이요, 출연연의 언어로 수강생들과 공감과 절망을 함께 느낀다. 박 교수는 자신을 "교수라기보다는 동료, 선후배, 경험자"라고 소개한다. 

연구원에 재직하면서 많은 사람을 만나온 박 교수지만 그는 "여전히 강의 전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것은 설렌다"고 말한다. 그의 강의를 들으러 오는 사람은 부원장 아래의 다양한 보직자들이다. 주로 자신의 맡은 역할을 제대로 해보고자 하는 사람들이 강의를 찾아온다. 보직자의 본질, 역할, 갈등 해결, 소통, 그리고 인생설계까지 강의하다보면 2시간이 모자란다.

"보직자란 내가 잘한다고 업적을 내는 자리가 아닙니다. 남이 잘하도록 도와주는 자리죠. 제가 이런 말을 해주면 수강생들은 새로운 것을 깨닫습니다. 저는 화두를 던지는 역할이죠."

박 교수는 보직자란 구성원들을 이끄는 역할뿐만 아니라 참모 역할까지 큰 시야를 필요로 하는 자리라고 조언한다. 그가 또 하나 강조하는 것은 도덕성과 연구자의 개척자 정신이다. 과학자의 사명감에 대한 조언은 수강생들의 정곡을 찌르기도 한다. 그동안 다른 교육에서 들어본 적 없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남다른 강의 덕에 별도로 강의를 요청받는 일도 종종 있다. 그의 강의를 들었던 한 보직자는 인생설계’에 대한 내용을 자신의 팀원들에게 소개해주고 싶다며 박 교수에게 연락했다. 이런 예상치 못한 수강생 요청에 박 교수는 보람을 느낀다. 

그의 인생설계 강의를 들으려면 '인생설계서'를 작성해야 한다. 박 교수가 직접 만든 인생설계서 질문지에 답을 적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나는 어떻게 살 것인가, 이 세상은 어떻게 변할 것인가, 나의 미래상은 무엇인가, 현재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가, 나의 장단점은 무엇인가' 등의 질문에서 뻗어 나온 세부 질문까지···. 작성은 어렵지만 계획한대로 이뤄진다는 것이 박 교수의 경험담이다. 그는 원장시절에도 신입직원을 대상으로 인생설계 강의를 하곤 했다. 

2005년 부원장을 맡았을 당시 그는 천문연을 바꾸기 위해 많은 고민을 했다. '교육만이 살길'이라는 생각으로 천문연의 혁신을 주도했다. 2008년 천문연 최초의 교육시스템을 설계할 때 KIRD 도움을 많이 받았다. 이때부터 시작된 KIRD와의 인연 덕에 현재 KIRD의 교수로 활동하게 됐다.

이제 은퇴까지 남은 시간은 7년 정도. 매년마다 새로 쓰는 그의 인생설계서에는 라틴댄스·하모니카 등 각양각색 '취미 배우기'와 '강의'가 적혀 있다. 그는 앞으로 과학기술계에 소통하는 리더급을 키우자는 사명감으로 강의를 이어나갈 계획이다.

"신입직원도 좋고 보직자도 좋으니 리더십과 인생설계 그리고 미래에 대한 교육을 더 많이 하고 싶어요. 남은 시간은 후배들을 교육해 출연연에 도움이 되겠다는 소박한 그림을 그리고 있답니다." 

◆ 천성호 교수, "행정원으로서 가치관, 자세 심는데 주력 했죠" 

조직도를 설명하고 있는 천성호 교수(한국원자력연구원 부장). 교육생들의 집중도는 당연 최고다.<사진=천성호 제공>
조직도를 설명하고 있는 천성호 교수(한국원자력연구원 부장). 교육생들의 집중도는 당연 최고다.<사진=천성호 제공>
"출연연 행정업무는 기획부터 예산, 총무, 인사, 구매 등 다양합니다. 그런데 이런 행정업무를 왜 해야 하는지, 행정원으로 일할 때 가져야할 가치관, 자세를 심어주기 위해 노력합니다."

한국원자력연구원에서 30년 동안 근무하며 행정 베테랑인 천성호 KIRD 교수. 그는 신입 행정원 교육을 8년 이상 진행해 왔다.

그의 수업은 경험을 통한 실질적인 교육으로 신입 행정원의 인생진로에도 큰 영향을 끼치며 최고 명강의로 꼽힌다. 비결이 뭘까.

천 교수는 기본을 중시한다. 행정원으로 가져야할 가치관, 직장인으로서의 자세부터 심어준다. 마음 자세에 따라 행정을 보는 눈과 해석이 달라질 수 있다는 생각에서다. 그러면서 불편할 수 있는 금전적인 부분도 빼놓지 않고 설명한다.

"행정에서 금전적인 부분은 빼 놓을 수 없어요. 그냥 말하는 것보다 인생의 행복을 위해 돈이 차지하는 부분을 예로 들며 어떻게 행복한 인생을 살지 이야기 합니다. 그리고 직장의 돈은 독이 될 수 있음을 강조하죠."

경험을 통한 직장생활 비법도 공개한다. 예를 들면 다른 부서로 옮기고 싶을 때 대부분은 현재 부서 업무에 불만을 토로한다. 천 교수의 비법은 전혀 다르다.

"신입 행정원이 가고 싶은 부서로 옮기기는 정말 어려워요. 그런데 비결이 있어요. 다른 부서로 옮기고 싶으면 현재 부서에서 정말 열심히 일하면 입소문이 나면서 부서장들이 서로 일하자고 제안합니다. 골라서 갈 수 있는 비결이죠."(웃음)

그는 행복한 인생을 위해 직장생활 속에서도 스스로 인생의 주인공이 되라고 조언한다. 

"24시간은 누구나 똑 같아요. 직장 생활을 남의 일하는 시간으로 보면 인생이 소모되겠지만 스스로 주인이 되어 일을 한다며 직장생활도 내 인생이 되겠죠. 그럼 불평불만을 이야기 할 시간이 없어요. 항상 최선을 다하게 되죠." 

이 외에도 천 교수는 직원으로서 부서, 팀장으로서 부서를 선택하고 구별하는 법, 동료들과 원만한 인간관계를 유지하는 비결 등 인생 경험을 통한 노하우를 아낌없이 전달하며 그의 수업은 언제나 인기가 높다.

◆ 홍대순 교수 , 꺼지지 않는 교육 안테나! 

출연연 교육에 남다른 애정을 가지고 있는 홍대순 이화여대 교수. 언제나 무엇을 더 공유할 수 있을지 고민한다.<사진=이원희 기자>
출연연 교육에 남다른 애정을 가지고 있는 홍대순 이화여대 교수. 언제나 무엇을 더 공유할 수 있을지 고민한다.<사진=이원희 기자>
"연구원 같지 않은 연구원, 그게 4차 산업혁명에 필요한 과학기술인재의 모습입니다."

얼핏 들으면 비하의 의미처럼 들릴 수 있는 말, 하지만 홍대순 이화여대 교수는 혁신이 필요한 시대에 '최고의 피드백'이라고 말한다. 무슨 의미일까?

홍 교수는 4차 산업혁명에 대해 인식의 변화를 주장한다. 우리는 흔히 인공지능이나 빅데이터, VR과 같은 기술들을 먼저 떠올리지만, 실제로는 훨씬 더 큰 잠재력과 파급력을 갖고 있다는 뜻이다.

"4차 산업혁명에 대응하는 성공적인 기업경영은 단순히 기술로 국한될 것이 아니라,  기업의 존재의 이유와 가치, 그리고 이에 기반한 사업전략, 일하는 방식, 더 나아가 채용에서부터 인재교육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의 변화를 주문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기존 과학기술인에서 더 나아간 'Beyond'의 의미를 가진 과학기술인들이 필요하죠. 마치 레오나르도 다빈치처럼 괴짜 같은 사람인 것이죠. 이들이 제대로 사고(?)를 칠수 있거든요."

홍 교수는 KIRD의 외부 강사로서 '4차 산업혁명과 파괴적 혁신'을 주제로 교육을 진행 중이다. 주로 출연연 시니어급 교육이지만 새로운 시각을 접하고자 하는 자세와 이를 실제로 반영하려 하는 개혁의지가 강하다.

홍 교수는 평소 교수로서 대학교 학생들을 가르치며, 국내외 포럼, 대기업에서 벤처기업에 이르기 까지 다양한 주제로 교육을 한다. 과학기술인들로만 구성된 KIRD 교육은 남다를 수밖에 없고, 임하는 자세 역시 남다르다.

"출연연 연구자는 기업연구자와는 또 다릅니다. 출연연 연구개발은 국가 R&D에서 마중물 역할을 통해  민간사업활성화와 산업부흥에 있어서 결정적인 역할을 수행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단순히 기술을 개발하는 것이 아니라, 해당 기술이 개발됐을 때 어떻게 사업파급효과가 진행되고, 또 이를 통해 어떻게 생태계를 바꿀 것인지. 더 나아가 국가와 인류에 어떤 영향을 끼칠 것인지 종합적으로 내다볼 수 있는 전략가다운 시각과 그림이 필요합니다."

그렇다면 그의 강의 노하우는 무엇일까? 홍 교수는 ‘생각의 축적과 담금질’을 통한 꾸준한 발전을 비결로 꼽았다.

"강의를 맡게 된 순간부터 고민을 합니다. 교육대상이 누구고, 어떤 주제를 가지고 진행되며, 제가 교육생이라면  무엇을 기대할까 등등 모든 사항을 고려해 이미지 트레이닝을 통해 시뮬레이션하며 구체화해 나갑니다. 교육생들에 최적화된 강의를 매번 만드는 것이죠."

"항상 머릿속에 화두를 들고 있는 것처럼 안테나를 세우고 있어요. 기술이 발전하고, 트렌드가 바뀌면 강사도 그에 따라 발전해야 합니다. 날마다 새로운 재료를 가지고 요리하는 교육 요리사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홍 교수는 출연연 교육에 대한 남다른 애정과 자부심도 나타냈다. 

"우리나라 최고의 과학 집단을 대상으로 교육한다는 것은 굉장한 자부심을 갖게 합니다. 제가 경험하고 생각하는 것을 공유하고, 또 그들이 가진 것을 배우며 함께 성장합니다. 그래서 항상 더 많은 것을 주기 위해 고민하고 있죠."

그에 따르면 시니어급 교육생들은 '아! 이걸 조금 더 일찍 배웠더라면!' 하는 아쉬움을 나타내고, 반대로 신임자들은 스킬 세팅 중심 교육으로 인해 자칫 '테크니션'으로만 성장할 수 있다며 비즈니스에 대한 통찰과 경영마인드 제고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교육생들에겐 '교육노트'를 만드는 것도 추천했다. 그는 "교육을 듣고 난 후 그 때는 기억하다가 내용을 잊어버리는 교육생들이 많다"며 "본인만의 노트를 만듦으로써 생각을 축적하고 현업에 적용할 것을 기재하고, 생각의 근육을 기른다면, 앞으로 시대를 선도하는 혁신의 주인공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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