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백승하 서울대학교 자유전공학부(물리학전공)
출처: 과학뒤켠 3호

16년도 봄, 학과 홈페이지에 독일 막스 플랑크 연구소에서 인턴을 모집한다는 글이 올라왔다. 지원 조건은 '군필자이며 고체물리, 양자물리를 수강한 학생'이었기 때문에 애초에 지원할 수 있는 사람들이 거의 없었지만, 운 좋게도 나는 위 조건들을 충족했기 때문에 면접까지 무사히 통과할 수 있었다.

평소에 막스 플랑크에 대한 동경도 있었고 노벨상 수상자도 많이 배출한 연구소였기 때문에 어떻게 연구를 하는지 직접 보고 싶었다. 1년간의 막스 플랑크 연구소에 있으면서 연구소는 어떻게 운영되고 학회는 어떻게 진행되는지, 연구원들은 어떻게 일하는지를 지켜볼 수 있었다.

◆ 독일 연구소의 행정적 구성

독일은 과학 연구소가 무척 많다. 독일 4대 연구소라 불리는 막스 플랑크 연구소, 헬름홀츠 연구소, 라이프니츠 연구소, 프라운호퍼 연구소가 있는데 위 연구소들은 사실 단일 연구소가 아니라 연구 연합회이다.

막스 플랑크 연구협회에만 83개의 막스 플랑크 연구소가 있다. 이 83개의 막스 플랑크 연구소에서는 자연과학뿐만 아니라 생명과학, 인문학 분야의 기초학문을 연구한다. 나는 그중에서 드레스덴에 있는 막스 플랑크 고체물리화학 연구소로 가게 되었다.

드레스덴은 동독 지역 작센주에 있으며 인구 50만 정도이다. 독일에서 열세 번째로 인구가 많은 도시이며 독일 통일 이후에 동서독 균형발전을 위해 연구도시로 선정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연구소도 많이 있다.

도시 남쪽에 드레스덴 공대, 막스 플랑크 연구소, 프라운호퍼 연구소, 라이프니츠 연구소 등이 오밀조밀 모여 있다. 그리고 막스 플랑크 연구소만 고체물리화학, 복잡계 물리, 분자유전학 등 총 3개나 있다. 하루는 막스 플랑크 연구소에서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 친구에게 물어봤다.

"드레스덴에 물리 연구원만 몇 명쯤 있어?"

"막스 플랑크 고체물리화학, 복잡계물리 연구원을 합치면 400명 정도 될 거고, 헬름홀츠, 라이프니츠, 드레스덴 공대 연구원들까지 모두 합치면 거의 1000명쯤 될 거야."

막스 플랑크 연구소의 행정 구성.<사진=과학뒤켠 제공>
막스 플랑크 연구소의 행정 구성.<사진=과학뒤켠 제공>
인구 50만 도시에서 물리 연구원만 1000명이면 인구비율로 따져 볼 때 서울에 물리 연구원이 2만 명 있는 셈이다. 정말 멋지고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우리 연구소는 90년대 중반 고체물리 석학인 프랭크 박사에 의해 설립되었다. 그래서 고체의 구조 및 합성, 화학 성분 분석, 상변이 등을 고체의 전반적인 성질을 연구한다. 연구는 총 4명의 단장(Director)이 각각 이끈다.

이들은 우수한 연구능력을 보여주어서 막스 플랑크 협회에 의해 임명된 사람들이다. 연구 방향이나 예산 집행 같은 중요한 결정은 단장이 내리기 때문에 단장이 연구단에 미치는 영향이 막강하다.

그래서 연구단마다 특징도 다르다. 우리 연구단은 분기마다 외부 학회를 열어 연구 내용을 발표하거나 다른 부서와 함께 학회를 열어 서로 어떤 연구를 하고 있는지 공유한다. 내 친구는 막스 플랑크 분자유전학 연구소에서 박사과정을 하고 있는데 연구단 내 친목 도모를 위해 매주 금요일 저녁마다 공짜 맥주 파티를 한다고 한다.

단장 밑에는 다섯에서 열 명 정도의 그룹 리더가 있다. 그룹 리더는 다른 그룹 리더, 방문연구원, 박사후연구원들과 협업하면서 하나의 독립적인 연구를 진행한다. 보통 소수의 대학원생을 지도하기도 한다. 대학원생은 보통 석사 과정 마지막 학기부터 연구소에서 연구하게 한다.

우리 연구소는 바로 옆 드레스덴 공대와 상호협정을 맺어서 연구소에서 연구하고 대학에서는 학점 이수하고 학위를 받을 수 있다. 독일에서의 연구소는 교육기관이 아니므로 박사학위는 그 연구소와 협약을 맺은 대학에서 받는다고 한다.

연구인력을 제외하고는 행정직원이나 기술직원들이 있다. 행정직원들은 방문연구원을 돕거나 연구원 출장, 휴가 등을 관리한다. 기술직원들은 전기회로, 기계설계, 액체헬륨 관리 등을 담당하는 일을 하며 연구를 돕는다.

◆ 막스 플랑크 연구소 생활

연구소에 출근하고 첫날은 인사과에서 갔다. 연구윤리, 계약서 등 연구 관련된 서류들을 받고 서명하고, 행정기관에 제출할 서류 작성도 도움받았다. 독일어로 된 편지 내용을 알고 싶거나, 미용실을 예약 등 사소한 것에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지 메일로 연락하면 된다고 말해주었다.

'먼나라 이웃나라 독일 편'에서 묘사된 무뚝뚝하고 직설적인 독일인을 만나게 되리라 생각했는데 정말 친절했고 많은 도움을 받았다.

다음 날은 사수와 그룹 리더를 만났다. 사수는 드레스덴 공대에서 박사과정을 하는 키가 큰 금발의 학생이었고 그룹 리더는 콧수염을 길렀고 표정이 없을 때는 아인슈타인이 중년에 남긴 사진 속 모습과 비슷했다.

나를 만나고 환하게 웃으면서 악수를 청하곤 "오느라 고생했지? 연구소 투어 시켜줄게" 하고 말했다.

회의실, 헬륨냉각실, 기계공작실 등을 보여주었는데 그 중 기계공작실이 기억에 남는다. 천장이 높고 농구코트보다 조금 넓은 건물에 파랑 멜빵바지를 입은 기술자 열 명 정도가 일하고 있었다.

서울대에 있을 때도 기계공작실 방문할 기회가 있었는데 그곳보다 훨씬 컸다. 그룹 리더는 그중 한 사람에게 나를 소개하면서 한국에서 온 인턴 학생이라 이야기해줬다. 공작실 사람들에게 날 소개해주었으니 다음에는 혼자 방문하더라도 소속 확인 절차가 복잡하지 않을 거라 했다.

공작실을 나와 연구소 뒤뜰을 지났다. 거기엔 풍경 사진이 몇 점 전시되어 있었다. 독일 공공건물은 예산의 일정 부분을 예술작품을 사는 데 써야 한다는 규정이 있단다. 보이는 저 풍경 사진도 그런 이유로 전시된 것이라고 했다.

연구를 시작하고 몇 달 후 QCNP(Quantum Criticality & Novel Phase) 학회에 참가하게 되었다. 이 학회는 우리 그룹 리더와 동료 한 분이 주최했다. 논문에서만 보던 이름들을 실제 만날 기회였는데 특히 우리 연구소 창립자인 프랭크 박사도 참석했다.

이 분은 79년도에 중 페르미온 발견 대한 논문을 한 편 썼고 그 논문이 지금까지 1800회 정도 인용되었다(보통 노벨물리학상 수상 논문들의 인용지수가 천에서 만 정도 된다).

우리 연구소에만 30명이 넘는 물리학자가 페르미온 관련 연구를 하고 있으니 거의 신 같은 존재다. 학회장에서 대부분의 발표자는 프랭크 박사에게 연구 분야를 개척해주어서 감사하다는 인사와 함께 시작했다. 학문의 창시자, 대가들이 가까이 있다는 것이 참 부러웠다.

학회장은 베를린에 있는 하넥하우스였다. 이곳은 막스 플랑크협회 소속 단체들이 학회를 열 때 쓸 수 있도록 만들어 둔 세미나 공간인데 1차 세계 대전이 끝나고 지어졌다고 한다. 지하 1층에는 아인슈타인과 막스 플랑크가 이곳에서 강연하던 흑백 사진이 걸려있다. 유서 깊은 곳이었다.

학회 첫날 낮에 발표가 끝나고 저녁에 야외 테라스에 모여서 환영회를 했다. 사수와 그룹 리더 등 여럿이서 한 테이블에 앉아서 맥주를 마시며 이야기를 했다. 그러다가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독일이 통일되던 때 이야기도 들었다.

우리 그룹 리더도 냉전 시절 동독에서 군 생활을 했었더라고 얘기해줬다. 이들이 내 나이 즈음 독일이 통일되었으니 이들 삶은 순탄하진 않았을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고 한동안은 실험, 실험, 실험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그룹 리더와 사수가 번갈아 가면서 연구를 지도해줬다. 하루는 실험에 필요한 코일 홀더를 제작해야 해서 그룹 리더와 함께 도면을 들고 공작실에 방문했다. 거기서 도면 담당자와 이야기를 나눴다.

참고로 기술자들은 김나지움(인문계 고등학교) 대신 직업학교에서 기술을 배운 사람들이기 때문에 대부분 독일어로 이야기한다. 그래서 기술자가 독일어로 말하면 그룹 리더가 영어로 설명해주었다. 내가 그린 코일홀더 설계도를 기술자에게 보여주면서 이야기를 시작했다.

"안녕하세요. 저희가 투과율을 측정해야 해서 코일을 감아야 하거든요. 이 설계도가 저희가 만들 코일 홀더에요. 적힌 것처럼 직경 10 mm, 높이 19 mm에요."

"플라스틱으로 만들 거야? 여기 있는 7개 리스트 중에 골라봐 봐."

"중성자랑 상호작용 없으면서 단단할수록 좋죠. 어떤 게 젤 단단해요?"

"1번 플라스틱이 가장 적당한 거 같은데, 중성자는 상호작용은 잘 모르겠는데 성분표를 보여줄까? 그룹 리더랑 얘기해봐."

그룹 리더와 논의한 끝에 1번 플라스틱으로 만들기로 했다.

"아 그리고 코일 홀더 양쪽 끝 원판 있잖아요. 이거 1mm보다 얇게 깎을 수 있으세요? 저흰 이게 얇을수록 좋거든요."

"예전에 0.3 mm로 깎아준 적 있었는데 연결 부분이 약하더라고. 깎는 건 가능한데 되게 조심히 다뤄야 할 거야."

"그럼 0.5 mm면 괜찮을까요?"

"그래 그 정도로 하자. 아 그리고 요기 가운데 바깥 원형 대신 사각형으로 만들어도 되니? 사각형으로 깎는 게 좀 더 정확하게 가능하거든."

"아 그건 상관없어요. 그리고 저희 이거 실험 급해서 빨리 필요하거든요. 얼마 만에 가능해요?"

"2주 정도 걸려. 좀 빠르면 1주일 안에 해 줄 수 있겠다. 다 깎으면 메일 보내줄게."

공작실 기술자들이 만들어준 코일 홀더.<사진=과학뒤켠 제공>
공작실 기술자들이 만들어준 코일 홀더.<사진=과학뒤켠 제공>
그렇게 이야기를 끝내고 돌아갔다. 그리고 <그림2>의 코일 홀더를 3일 뒤에 받았다. 이 외에도 공작실 기술자들에게 여러 번 더 도움을 받았는데 이건 사실 막스 플랑크 연구소에서만 누릴 수 있는 특권이었다.

10명의 숙련된 기술자들과 다양한 공작기계들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보통 물리실험을 할 때 가장 시간이 많이 소모되는 부분은 실험 장비를 설치하는 일인데 설치 과정 중 간단한 회로나 부품이 필요한 때가 많다.

만약 이 코일 홀더를 자체 공작실이 없는 곳에서 제작하려면 최소 몇 달은 걸렸으리라 생각한다. 먼저 예산을 올려야 하고 승인을 받아야 한다.

다음 외부 회사에 주문서를 보내야 하고 주문서를 보내면서 내가 기술자와 대화했던 것처럼 길게 이야기할 수 없다.

도면을 받고 언제까지 해줄 수 있는지 말해주는 것뿐이다. 회사는 이윤추구가 우선순위이고 이 부품처럼 사소한 것은 더더욱 우선순위가 아니기 때문에 제작 기간이 꽤 오래 걸린다.

가장 큰 문제는 외부 회사에서는 주문서만 보고 제작하기 때문에 사소한 실수를 해서 다시 만들어야 하는 일도 꽤 흔하게 생긴다. 이런 문제로 1년 가까이 실험을 멈추는 경우도 있다.

◆ 독일 연구자의 노동환경

어느 날 그룹 리더가 부모휴직을 해야 한다고 이야기했다. 독일에서는 자식이 태어나면 36개월의 부모휴직이 가능하고 그중 14개월은 유급으로 쉴 수 있다. 엄마와 아빠가 합해서 14개월의 부모휴직을 쓰는데 둘 다 최소 2개월 이상의 휴직하여야 한다는 조건이 있다.

그래서 우리 그룹 리더의 아내는 12개월을 쉬고 우리 그룹 리더는 2개월을 쭉 쉬는 대신 4개월 동안 50% 출근하는 방식으로 육아휴직을 신청했다. 육아휴직은 그룹 리더뿐만 아니라 대학원생들에게도 똑같이 적용된다. 우리 연구소에는 결혼하고 자식이 있는 대학원생이 꽤 있는데 모두 아이를 낳고 육아휴직을 했다.

내 독일 생활이 끝날 무렵 그룹 리더네 가족과 함께 바비큐 파티에서 만났다. 그래서 그룹 리더의 아내와도 잠깐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이제 셋째 딸 낳고 부모휴가를 끝내고 일터로 돌아간다고 말해주었다. 요즈음은 일주일에 하루씩 나가면서 업무 복귀를 준비하고 있다고 한다고 말해주었다.

가끔 점심시간이면 그룹 리더는 아내와 함께 셋째 딸을 유모차에 태우고 식당으로 온다. 며칠 전엔 그룹 리더가 셋째 딸이 스스로 걸을 수 있게 되었다고 엄청 좋아했다. 회사 식당에서 아빠와 엄마와 딸이 함께 점심을 먹는 상황이 내게는 매우 낯설었다.

내가 지금까지 아버지가 일하는 곳에 가본 것은 한 번이 전부이기 때문이다. 딸이 성장하는 것을 볼 수 있고 가끔 연구에 슬럼프가 오더라도 가족과 행복하게 지내면서 위로받을 수 있다면 행복할 것 같았다.

가끔 연구소 내에서 행정 일을 처리하러 가면 어떤 행정직원이 여름휴가로 다른 직원은 육아 휴직으로 1달간 자리를 비워 '급한 일이면 다른 직원을 찾아가고, 급하지 않은 일이면 돌아올 때까지 기다리세요'라는 안내를 받는 경우가 종종 있다.

'xx씨는 월수만 출근하니까 다음 주 월요일 다시 오세요'란 말도 어렵지 않게 들을 수 있다. 한국에선 상상할 수 없는 일이어서 처음에는 매우 답답했다. 그렇지만 독일에서는 '나도 유연하게 일할 수 있고, 누구든 유연하게 일할 수 있다. 그 이유로 발생하는 불편함은 당연히 감내할 수 있다.'라는 생각을 하는 것 같다. 그래서 육아휴직이나 여름휴가로 일이 느려지더라도 아무도 불평하지 않는다.

하루는 사수에게 독일에는 노동자의 권리가 잘 보장되어서 부럽다고 이야기한 적이 있다. 사수는 꼭 그런 것만은 아니라며 비정규직 연구원에 대해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독일에서는 과학기술인 고용할 때 비정규직으로 고용할 수 있는 최대 기간을 12년으로 못 박아두었다고 한다.

실제 이 법은 과학기술인의 정규직 고용을 늘리기 위해서인데 실상은 정규직 고용을 늘리는 대신 박사후연구원이나 방문연구원을 늘리는 결과를 초래했다고 한다. 우리 연구소도 연구인력 중 그룹 리더 등 소수만 정규직이다. 독일도 독일 나름의 문제가 있겠구나 하고 생각했다.

아인슈타인과 막스 플랑크가 물리를 하던 이곳에서 나도 물리를 한다는 것은 정말 행복했다. 그리고 이들이 연구하고 가정을 돌보는 모습을 보면서 많은 것을 느꼈다. 연구에서는 공작실, 기술자들에게 조언을 구하고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점이 가장 마음에 들었다.

제아무리 과학자라 하더라도 기계는 기술자들이 잘 다룬다. 기술자와 과학자가 같은 연구소에서 의견을 나누면 연구도 빨라지고 정확해진다. 그리고 그룹 리더가 딸을 키우는 모습을 보고 느낀 점도 많았다. 아빠의 육아 휴직이 당장 연구에는 도움이 안될지도 모르지만, 연구원들 행복에 도움이 된다. 행복한 연구원들이 많으면, 더 많은 학생들이 연구원이 되길 꿈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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