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규직 정규직화? 과학계와 미래연구역량 고민부터

PBS에 따른 비정규직 양산, 연구와 연구인력 질적하락 야기
현장 연구자들 "일률적 안보다 출연연 특성에 따른 해법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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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은희·박성민 기자 - 2017.09.18

정부출연연구기관의 비정규직 정규직화 가이드라인 발표가 잠정 연기되면서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의 갈등만 키우고 있다. 연구현장에서는 과학계도 교육부와 같은 사태가 불거 질 것을 우려, 근본적인 대책 마련을 통해 비정규직 문제의 실타래를 풀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현장 과학자들은 비정규직 양산의 근본적인 원인으로 PBS(연구과제중심운영방식) 제도를 꼽는다. PBS 제도로 과제 수가 늘면서 비정규직 인력도 덩달아 늘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것.

1996년 도입된 PBS는 연구기관의 연구사업비 편성이나 배분, 수주, 관리 등 제반시스템을 과제와 성과 중심으로 운영하는 제도다. 연구주체 및 연구팀 간 경쟁을 촉진하려 도입됐지만 실상은 성과를 중시하며 단기 연구에 치중하게 되고 장기적 연구 성과의 도출에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PBS 제도로 연구 책임자들은 연구보다는 과제 수주에 집중하고 그 빈자리는 비정규직이 채워 연구를 이어가는 형태로 흐르고 있다. 일손 부족을 이유로 비정규직을 뽑고 있지만 결국 이는 비정규직 규모를 키우는 주된 원인이 되고 있다. 

국가과학기술연구회에 따르면 소관 25개 정부출연연구기관 예산(2016년 12월 기준) 4조7969억원 중 정부 출연금은 1조8632억원으로 38.8%, 자체수입 61.2%(2조9930억원)로 구성됐다.

이는 전체 출연연 예산 중 38.8%만 정부가 보장하고 나머지는 연구자들이 정부·민간 위탁사업을 통해 인건비를 포함한 예산을 확보해야 한다는 의미다. ETRI 14.1%, 항우연 17.4%, 원자력연 28.7% 등 몇몇 출연연의 출연금 비중은 20%를 넘지 않는다. 과제 수주에 집중할 수 밖에 없는 구조다.

출연연 한 연구 책임자는 "사업을 따야 하니 연구에 집중하기 보다는 과제를 기획하고 관계자를 만나러 다니는 경우가 많아 비정규직 연구자들이 연구를 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며 "여러 과제에 연구입력을 투입하다 보니 비정규직 연구자는 계속해서 늘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PBS로 인한 비정규직 양상은 연구기관의 우월성 하락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지적한다. 연구원 특성을 살린 연구가 아닌 과제 수주에 따른 연구에 집중하니 연구의 질적 수준은 자연스럽게 떨어질 수밖에 없다.

연구 책임자는 "정규직 공채는 소수 인원 선발에도 수백 명이 몰리지만 비정규직은 공고를 하면 지원자가 부족한 경우가 많다. 뽑는 입장에서는 당장 연구할 인력이 필요하니 실적에 관계없이 인력을 선발하게 된다"고 밝혔다. 

이어 그는 "우리나라 R&D 비용이 20조원에 이르는데 PBS가 지속될 경우 돈은 낭비되고 연구 결과는 안 나오는 연구 형태로 변질될 것"이라며 "출연연의 치부를 드러내는 것 같지만 PBS를 통한 연구는 연구의 질적 하락만 낳을 뿐"이라고 덧붙였다. 

PBS에 따른 비정규직 확대는 향후 취업 절벽, 기회 불균형 등 또 다른 사회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낳고 있다.  

출연연 관계자는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는 전체 정원을 어떻게 할 지 계획을 통해 다뤄져야 한다. 일방적으로 비정규직을 늘리면 신규 채용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며 "출연연에서 일했다는 이유만으로 비정규직을 정규직화 하면 형평성도 해칠 우려가 크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국가 R&D와 먹거리 창출을 위해서는 비정규직을 줄여나가야 함은 맞다. 하지만 연구기관의 특성이 있는 만큼 일률적으로 하면 안 되고 연구기관에 자율성을 줘야 한다"며 "이와 함께 인력 TO도 함께 늘려야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해 나갈 수 있다"고 강조했다.

비정규직 정규직화 제도는 결국 힘없는 출연연 목조르기라는 의견도 제시됐다. 익명의 연구자는 "문 정부가 가시적인 고용창출 성과를 보여주기 위해 출연연을 택했다"라며 "특수목적의 출연연을 무시한 격이다. 정권이 바뀌면 다른 방법으로 출연연 흔들기에 들어갈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는 이어 "과학계와 국가의 미래 먹거리를 고민하는 정권은 없다. 이는 결국 연구자들이 연구에 집중하지 못하며 과학계의 질적 하락으로 이어진다"며 "일자리정책에 따라 연구환경을 뒤흔들기보다 성과 창출을 통해 일자리가 늘어날 수 있는 정책과 해법 찾기 고민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정부의 일괄적인 가이드라인보다 '기관 차원 비정규직 정규직화 기회 제공' 방안도 제시됐다. 기관 차원에서 정규직 실력을 갖춘 비정규직에게 일종의 테스트 제도를 운용해 정규직으로 전환할 기회를 제공하자는 안이다.

출연연의 책임급 연구자는 "지난 1990년대 일부 출연연에서 비정규직이 실력을 보여주면 검증을 거쳐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제도를 운용했었다"라며 "출연연의 평균 하향화를 막을 수 있고 지속적인 일자리 창출도 가능할 것"이라고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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