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소통창구 일원화 통보로 출연연 결과 발표조차 못해
과학계 "의사결정 과정에 과학계 배제...단체들 제목소리 못내"

심각한 국가안보 위기에도 솔루션의 핵심 기술을 보유한 과학계가 수단으로만 활용되면서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북한의 6차 핵실험으로 국민의 불안감이 고조되는 가운데에도 과학계는 목소리를 내지 못했다.

ADD(국방과학연구소)는 3일 북한 함경북도 길주군 풍계리에서 인공 지진파 감지됐다는 기상청 발표이후 비상망이 가동됐다.

간부진과 관련 인력이 속속 연구소로 출근, 사진 자료를 통해 북한의 핵실험 기술 분석에 나섰다. 하지만 분석 결과 발표에는 나서지 않았다.

대국민 소통 창구가 국방부로 일원화 되면서 공식 발표는 정부가 맡았다. 과학기술을 단지 수단으로 보며 국가안보 정책면에서 전문가의 의견을 배제하고 있는 것이다.

ADD 관계자에 의하면 법령체계에 의해 연구현장에서 연구개발을 제안해도 외면당하기 일쑤다. 무기체계 개발 아이디어를 현장에서 제안하면 정부의 예산 관련 부처는 무기개발 후 효용성부터 따진다. 그러면서 필요한 기술개발도 제대로 이뤄지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한국지질자원연구원 역시 북한의 6차 핵실험 이후 갱도 붕괴로 추정되는 추가 지진을 감지했지만 공식 발표는 없었다. 기상청이 지진 분석 결과의 혼란을 막는다는 차원에서 지난 7월 공문으로 창구 일원화를 통보했기 때문이다.

지질자원연에 의하면 6차 핵실험으로 규모 5.7의 1차 인공지진 감지 후 30분 후  규모 4.1의 추가 지진이 났던 것으로 확인된다.

중국 지진국과 미국 지질조사국(USGS)도 북한의 6차 핵실험으로 인공지진이 발생한 지 8분이 지난 뒤 추가 지진이 일어났다고 발표하면서 갱도 일부가 붕괴됐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추가 지진은 발표되지 않았던 게 사실이다. 기상청은 2차 지진을 감지하지 못했고 공식 발표도 없었다.

출연연의 한 과학자는 "출연연은 인건비 하나도 해결하는게 버겁다. 국가 위기에도 예산권을 쥐고 있는 정부에 목소리를 낼 수 없는 구조"라고 지적했다.

과학계 관계자는 "우리는 정부에서 수위를 정하고 간다. 과학기술은 거기에 따르는 수단이다. 핵개발이 원천 봉쇄돼 있어 아쉬움이 크다"고 말하면서 "우리와 비슷한 환경의 이스라엘은 즉각적이다. 과학자가 아니라 국민의 입장에서 봐도 답답하다"고 토로했다.

그는 이어 "우리는 무기개발 시 국가계약법을 따라야 한다. 투명성이 지나치게 강조되면서 국가예산 법령체계에 따라 진행해야 한다"면서 "여러단계의 의사결정 과정에 따라 우선순위에서 밀리고 탈락할 수 있다. 의사결정 과정도 국방과학 기술 전문가보다는 부처나 행정 중심"이라고 우려를 표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방위사업체계를 지적했다. 그에 의하면 군통수권자가 위급상황의 솔루션을 위해 사업착수를 지시해도 절대 진행 될수 없다는 것.

그는 "위기 상황에 군통수권자의 지시가 이뤄지는 곳은 북한과 이스라엘 뿐이다. 우리는 기본적으로 안보위기 의식이 배제돼 있다"고 꼬집었다. 그는 이어 "현재 4000억원 규모의 국방과학기술 예산과 2800여명의 국방 연구인력으로는 국가안보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면서 "국가 과학기술 역량이 총동원되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안보 위기에도 과학계 누구도 제목소리 내지 못해

과학기술이 수단으로 이용되는 상황에서도 여전히 수동적인 과학계의 입장도 지적된다.
  
국내 과학기술계를 대변하는 단체들은 이번 북핵 사태에 누구도 제 목소리를 내지 않았다. ADD, 지질자원연, KINS 등 역할을 하고 있었지만 정부의 지시에 따라 국민과의 소통은 없었다.

정부는 과학기술계의 전문성을 수단으로 이용했고 과학계는 당연하다는 듯이 잠자코 있었던 것으로 해석된다. 몇몇 과학계 인사가 개인 SNS를 통해 과학계의 역할을 주문했을 뿐이다.

9.11 테러로 안보 위기를 겪은 미국의 과학계를 보자. 9.11 테러 이후 미국 과학한림원장, 공학한림원장 등이 직접 나서서 국가안보 과학기술정책 전문가들을 중심으로 위원회를 구성했다. 그러면서 연구개발 프로그램과 연구전략 보고서를 작성, 대통령에게 전달했다.

과학자총회(AAAS)와 미국 국립과학재단도 9.11 테러이후 예방 관련 연구의 필요성을 정부에 제안했다. 국가적 안보 위기 시기에 과학기술계가 적극 나서서 정부에 문제 해결 방안을 제시하며 소통에 나선 것이다. 국민적 신뢰도가 높아지는 것은 당연하다.

과학계의 한 인사는 "국가안보는 국내외 위협으로부터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고, 국토와 민주주의 같은 가치나 제도를 보존하는 것"이라면서 "국방과학의 발전이 국가안보를 강건하게 하는 선도적인 역할을 할 때 그 나라가 안보 선진국으로 도약하는 지름길이 될 것이다. 과학계에서 이런 목소리를 낼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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