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읽다!④]정종주 뿌리와 이파리 대표
"과학지식 없이 제대로 인문학 할 수 없듯, 인문학도 마찬가지"
"우리 책, 독자에게 작은 울림 주면서 사회에 변화 이끌어 주길"

우리는 과학기술을 경제발전 수단으로 받아들였다. 과학기술을 통해 지난 50여 년간 경제성장을 이뤘고 부를 축적했다. 앞으로도 과학기술의 가치를 경제발전 수단으로 한정지어야할까. 과학기술을 어떻게 바라봐야할지 백년대계를 앞두고 이젠 그 시선과 인식 자체가 변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과학기술을 경제발전 수단에 한정짓지 말고 인류의 지식과 교육, 노동, 문화 등 다양한 분야와 연결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가운데 과학과 대중을 잇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이 있다. 과학을 다양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글로 풀어내는 과학출판사 사람들이다. 대덕넷은 이들이 전하고자 하는 과학기술의 가치는 무엇이며, 과학기술 문화 선진국으로 가기 위한 작지만 진보된 행보를 조명한다. '과학! 읽다'라는 기획보도로 연재한다.[편집자 주]


정종주 뿌리와 이파리 대표 . 그는 "우리 사회에 진짜 문화적 풍토의 튼실하고 무성한 이파리가 되자는 뜻을 담아 출판사를 시작하게 됐다"고 말했다.<사진=김지영 기자>
정종주 뿌리와 이파리 대표 . 그는 "우리 사회에 진짜 문화적 풍토의 튼실하고 무성한 이파리가 되자는 뜻을 담아 출판사를 시작하게 됐다"고 말했다.<사진=김지영 기자>

"문과와 이과 구분하는거 참 바보 같아요. 전체적인 시야가 없으면 우리는 반쪽짜리 인생을 사는 것이 아닐까요. 그것이 우리가 인문학 그리고 과학책을 다루는 이유입니다."
 
출판사 뿌리와 이파리의 정종주 대표가 인문학부터 과학까지 다양한 책을 출판하는 이유는 명쾌했다. 현대사회를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지식을 공유하는 것. "과학적 지식 없이 제대로된 인문학을 할 수 없듯 인문학도 마찬가지"라고 말하는 그에게 과학책과 인문학책의 조화로운 출판은 당연한 일이었다.
 
2002년부터 책을 출판한 뿌리와 이파리는 ▲생명 ▲미토콘드리아 ▲최초의 인류 등 진화론을 중심으로 다루는 오파비니아 시리즈부터, ▲고추, 그 맵디매운 황홀 ▲돈가스의 탄생 등 인문서, 그리고 러시아어·프랑스어·영어·독일어 등 4명의 번역가들과 함께 제작한 2790쪽 대작 ▲유럽문화사 등 다양한 책을 발간해왔다.
 
"한 달에 한 권꼴로 책을 내려한다"는 그는 최근 165권째 책을 펴냈다. 그는 "우리는 아직 '구멍가게'로 장대한 청사진을 가지고 일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 기본적인 지향을 가지고 묵묵히 가다보면 의미 있는 책을 만들게 될 것"이라며 "이 책들이 독자에게 작은 울림을 주면서 사회에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고 말했다.
 
◆ 백수생활 즐기려다 출판사 차리다
 
뿌리와 이파리는 정 대표가 직접 지은 이름. 받침 없이 발음되는 이름이 마음에 든다고.<사진=김지영 기자>
뿌리와 이파리는 정 대표가 직접 지은 이름. 받침 없이 발음되는 이름이 마음에 든다고.<사진=김지영 기자>
2001년 출판업에 뛰어들어 올해로 17년째 출판사를 이끌고 있는 그는 '사회평론 길'誌에서 30년의 기자생활과 편집주간으로 활동하다 출판업을 시작했다.
 
학창시절, 전남 화순에 살면서도 광주에서 벌어졌던 일에 대해 잘 몰랐던 지난날의 창피함이 대학생 시절 학생운동을 하게 만들었고, 자연스럽게 노동운동을 하다 진보적 월간 시사종합지 기자 일을 시작했다. 그러다 IMF 이후 종합지가 휴간을 맞으면서 출판사로 전업하게된 회사의 편집주간으로 복귀했다.
 
전업을 한 출판사는 나름 이름을 날리며 승승장구 했지만 시사종합지에서 시작한 만큼 이 뿌리를 가지고 가고 싶었다. 그때 떠올린 것이 지금의 회사 이름인 '뿌리와 이파리'시리즈다. 우리사회의 뿌리 없음의 문제제기를 하는 고민이 담긴 책들을 내야한다고 생각했던 시리즈였지만 여러가지 사정으로 시작하지 못한 채 회사를 그만뒀다. 
 
일단 석 달만 놀아볼 심산이었지만 신나게 놀다가도 집에 들어갈 즈음이면 뿌리와 이파리 시리즈가 떠오르곤 했다.
 
그는 "사람의 뿌리가 뭔지, 내 삶과 우리 사회의 이파리는 무엇인지 그런 것들을 생각해 보고싶었다. 우리가 생활하면서 필요한 모든 일들 속에 역사와 문화가 있고 궁리가 들어가 있을 텐데 이런걸 들여다보고 싶었다"면서 "우리 사회에 진짜 튼실하고 무성한 이파리가 되자는 뜻을 담아 출판사를 시작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 "국내 필자와 손잡고 진화생물학 다루고 싶어"
 

뿌리와 이파리가 2007년부터 꾸준하게 출판 중인 '오파비니아'시리즈. 올 가을 뼈를 주제로 출간을 앞두고 있다. <사진=뿌리와 이파리 제공>
뿌리와 이파리가 2007년부터 꾸준하게 출판 중인 '오파비니아'시리즈. 올 가을 뼈를 주제로 출간을 앞두고 있다. <사진=뿌리와 이파리 제공>
뿌리와 이파리는 ▲인문 ▲과학 ▲좌파적 모색 등 3개의 편집부를 운영 중이다. 최근 사람부재로 과학파트는 정 대표가 직접 맡고 있다.
 
최근 과학책 출판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묻자 정 대표는 800여 페이지에 달하는 뼈 관련 원서를 들고 왔다. 이 책은 뿌리와 이파리가 2007년부터 꾸준하게 출판 중인 '오파비니아'시리즈 중 하나로 올해 출간을 목표로 작업 중이다.
 
오파비니아 시리즈는 진화생물학에 기본을 둔 책 시리즈다. 뿌리와 이파리가 과학책을 출판한다는 인식을 심어준 책이기도 하다. 이정모 서울시립과학관장이 서대문자연사박물관 관장 시절 오파비니아 읽기 강연을 진행하기도 했고, 7번째 책인 미토콘리아 시리즈는 예상외의 반응으로 많은 독자들에게 사랑을 받으며 여러 번 회자되기도 했다.
 
그는 "10권만 먼저 내보자고 시작한 게 벌써 15권 째"라며 "진화과정에 있어서 굵직한 사건과 사안을 다루는 시리즈로 30권까지 내보고 싶다"고 말했다.
 
지금까지 오파비니아 시리즈는 해외 서적을 번역해 내는 것에 그치고 있지만 그는 더 욕심내 국내 전문가를 필두로 오파비니아 시리즈를 출판하고 싶다. 특히 '진화생물학=오파비니아를 보면 된다'라는 공식이 성립될 수 있는 초석을 쌓는 것이 그의 목표다.
 
"지금은 진화생물학에 집중하고 있지만 향후 더 폭넓은 과학 주제를 선정해 국내 필자와 함께 책을 내고 싶습니다"<사진=김지영 기자>
"지금은 진화생물학에 집중하고 있지만 향후 더 폭넓은 과학 주제를 선정해 국내 필자와 함께 책을 내고 싶습니다"<사진=김지영 기자>
그는 "최대한 이른 시일 내에 국내 필자를 찾고 싶다"며 "지금은 진화생물학에 집중하고 있지만 향후 더 폭넓은 주제를 선정해 국내 필자와 함께 책을 내고 싶다"고 말했다.
 
인터뷰가 마무리되어갈 즈음, 퇴근시간이 다 되도록 편집실에는 사람이 없었다. '많은 사람을 만나야 좋은 책이 나온다. 편집자는 자리를 지키고 있으면 안 된다'는 정종주 대표의 확고한 생각 때문인지 사무실에는 필요한 몇 명의 인원을 빼놓고 모두 자리를 비운상태였다.
 
좋은 책을 출판하기 위해 '많은 사람을 만나는 것'을 좋아한다는 그는 인터뷰를 마무리하고 오늘 저녁에도 약속이 있다고 했다. "걱정 없이 책을 만드는 출판사를 만들고 싶다"는 그는 오늘도 좋은 소재를 찾고 만들기 위해 사람들을 만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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