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의 시작, 나노③] 박한오 대표 "남이 안하는 것에 도전이 비결"
노령화 시대 맞는 솔루션에 집중

단위의 명칭 '나노'가 미래 산업의 기초를 포괄하는 대명사가 됐습니다. 4차 산업혁명시대 핵심 요소인 센서와 기초 소재, 디스플레이, 바이오에 이르기까지 나노는 산업발전의 필수 융합 조건입니다. 과학기술의 메카 대전 대덕연구단지에는 일찍이 나노 관련 산업이 자리 잡아 성장하고 있습니다. 다양한 연구소와 지자체의 지원, 무엇보다 기업의 치열한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입니다. 하지만, 아직도 많은 기업들이 나름의 애로점을 안고 있습니다. 점차 치열해지는 나노산업의 각축장에서 우리 기업들이 생존할 방법은 없을까요? 특유의 경쟁력으로 성과를 보이는 유망 나노기업을 찾아 숨겨진 노하우를 조명합니다. <편집자의 편지>

"4차 산업혁명의 끝은 개인 맞춤형 유전자가 기반이 된 '바이오혁명'이라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젊고 건강하게 오래 사는 방법을 찾는 데 주력할 계획입니다."

바이오 시장도 4차 산업혁명은 피할 수 없는 변곡점이다. 국내 1호 바이오벤처로 올해 창립 25주년을 맞은 바이오니아의 박한오 대표는 노령화 시대와 맞춤형 서비스에 주목했다. 

RNA 치료제와 분자진단 등 그동안 유전자 헬스케어를 위한 기초를 쌓아 온 바이오니아는 이를 기반으로 최근 스케일업에 돌입했다. 박 대표는 "지금까지는 축적의 시간이었으며 앞으로 빌딩을 쌓는 도약의 시간을 준비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한오 바이오니아 대표. <사진=바이오니아 제공>
박한오 바이오니아 대표. <사진=바이오니아 제공>
◆ 누구나 몇만 원에 유전자 검사 가능할 것

'우리 아버지가 대머리인데 나도 곧 대머리가 될까?' '왜 조금만 먹어도 살이 많이 찔까?'

유전자 검사로 개인의 체질을 알아본 후 의약품이나 식품으로 예방할 수 있다면 어떨까. 바이오니아는 유전자 맞춤형 시장 공략을 위한 첫걸음으로 오는 9월 소비자 의뢰 유전자 검사(Direct-to-Consumer) 서비스를 시작한다. 유전자 키트에 타액을 묻혀서 바이오니아에 택배로 보내면 자신이 원하는 유전자를 검사할 수 있다. 검사할 수 있는 유전자는 대머리, 체지방, 피부 노화, 카페인 분해능력 등 12가지다. 

박 대표는 "지금까지는 주로 감염성 질환 진단을 연구해왔는데 우리 삶에 필요한 유전자 진단까지 범위를 확장했다"며 "평생 누구나 한 번씩 몇만 원 가격에 유전자를 검사할 수 있도록 준비 중"이라고 설명했다. 

물론 서비스는 100% 바이오니아에서 개발한 시약과 장비를 사용한다. 박 대표는 100세 시대에 필수가 된 맞춤형 진단-치료 분야가 앞으로 가장 큰 시장을 형성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지카(뎅키, 치쿤구냐)바이러스 진단키트(좌)와 Existation48 진단장비(우). 지카바이러스 다중진단키트는 작년 WHO의 긴급승인을 받았다. 바이오니아의 진단키트는 지카 감염 실태 연구에 쓰일 키트에 첫 번째로 선정됐다. <사진=바이오니아 제공>
지카(뎅키, 치쿤구냐)바이러스 진단키트(좌)와 Existation48 진단장비(우). 지카바이러스 다중진단키트는 작년 WHO의 긴급승인을 받았다. 바이오니아의 진단키트는 지카 감염 실태 연구에 쓰일 키트에 첫 번째로 선정됐다. <사진=바이오니아 제공>
◆ 나노에서 SAMiRNA까지 

치료 분야로는 바이오니아가 2009년 자체 개발한 SAMiRNA를 활용한 연구가 진행 중이다.

SAMiRNA는 생체에서 분해되지 않는 구조를 가진 특별한 RNAi(interference)로 세포 내 유전물질의 발현을 막는다. 박 대표는 RNA 분자 한쪽에는 소수성 물질을, 다른 한쪽에는 친수성 물질을 붙여 나노구조를 만들었다. 이 구조는 RNA를 변형시키지 않고 세포 내로 전달할 수 있어 세계에서도 기능을 인정받았다. 

신약개발에 사용되던 SAMiRNA는 화장품으로 거듭날 예정이다. 화장품으로 사용해도 될 만큼 독성이 없는 안전성을 갖췄기 때문. SAMiRNA로 탈모 원인 유전자를 막는 연구도 시작됐다. 탈모방지뿐만 아니라 제모, 미백, 염색 시장 등까지 SAMiRNA 치료제의 진출 분야는 다양하다.

SAMiRNA 개발은 바이오니아가 초창기부터 해오던 나노 분야에 대한 지식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DNA를 빠르고 간편하게 추출하기 위해 개발한 '자성 나노 입자'가 나노 연구의 시작이었다.

"나노에 대해 공부하면서 SAMiRNA에 대한 영감을 얻었습니다. 남들은 RNAi에 대해 큰 관심이 없을 때 우리는 RNAi를 나노입자로 만들어 돌파구를 찾은 것이죠. SAMiRNA는 앞으로 수십 수백 가지 기능성 화장품과 신약을 만드는 플랫폼 기술입니다."

최근에는 탄소나노튜브를 이용한 나노튜브 필터와 발열 페이스트가 제품화를 준비 중이다. 나노튜브 필터는 공장과 화력발전소에서 배출되는 초미세먼지를 걸러낼 수 있다. 바이오니아의 발열 페이스트로 만든 면상발열체는 일반 면상발열체와 다르게 최대 320℃까지 고온발열이 가능하다. 바이오니아는 이 기술로 지난 7월 '나노코리아 2017'에서 조직위원장상을 받았다. 

두 제품은 대전 나노종합기술원과 서울대 융합기술원에서 전시 중이다. 박 대표는 "나노 관련 기술 특허가 있긴 하지만 바이오 사업에 비하면 초창기"라며 "나노는 10조에 이르는 시장을 형성할 중요한 소재이므로 앞으로 계속 연구해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탄소나노튜브를 이용한 나노필터 제품(AccuSEPA). <사진=바이오니아 제공>
탄소나노튜브를 이용한 나노필터 제품(AccuSEPA). <사진=바이오니아 제공>
◆ 실패 경험이 가장 큰 재산

바이오니아는 분자진단 시약과 장비 개발로 출발해 유전자 기술 관련 제품과 기술을 완전 국산화하겠다는 목표를 달성했다. 그동안 얻은 최초 타이틀만도 여러 개. 분자진단 시약부터 장비까지 자체 개발·생산한 기업으로 세계에서 로슈와 함께 손꼽힌다. 

진단 시약과 장비 자체 개발은 어떤 의미일까?

"분자진단은 전형적인 융합기술입니다. 전자공학과 광학 기술, 나노기술, 효소의 기능을 조절하는 화학 기술 등이 필요하죠. 아주 적은 양의 바이러스를 검출하는 것이 분자진단의 핵심입니다."

분자진단은 각 기술이 모두 세계 정상급 수준이어야만 최종 결과물 역시 경쟁력을 가질 수 있다. 박 대표에 따르면 국내 대기업에서도 분자진단 제품 자체 생산을 시도했다가 실패했을 만큼 자체 개발은 쉬운 일이 아니다.

바이오니아 제품도 처음부터 완벽하지는 않았다. 맨땅에서 시작했으나 진화를 거듭했기 때문에 지금의 결과를 낼 수 있었다. 박 대표는 "25년간의 실패 경험이 바이오니아의 가장 큰 재산"이라고 강조했다.

그동안 몇 가지 중요한 선택이 있었다. 박 대표는 1990년대 초 상온에서 안정한 PCR 제작, 2002년 DNA 칩 개발 프로젝트 중단 후 리얼타임 PCR에 올인, 2005년 나노 사업의 시작을 꼽았다.

그는 "바이오니아가 지금까지 올 수 있는 힘은 남들이 안 하는 것에 항상 도전하는 정신이었다"고 덧붙였다.

◆ 대전의 장점 융합해 새로운 기술 만들어야

박 대표의 경영 철학은 퇴계 이황의 '존경과 섬김' 정신이다. 존경과 섬김은 이익을 공유한다는 뜻이다. 그는 "경쟁과 비하보다는 협력하는 분위기 속에서 커뮤니티가 구축된다"며 "대전이 가진 석·박사 2만6000명과 출연연, 병원 등의 인프라가 융합하면 창의적인 성과가 나올 것"이라고 내다봤다. 

바이오니아 역시 융합을 위한 준비를 해왔다. 바이오니아에는 다양한 전공을 가진 직원들이 있다. 전자를 전공한 직원이 생명공학 관련 기계인 PCR을 다룰 줄 알고 반대로 생물학을 전공한 후 전자공학을 공부하는 직원도 있다.

박 대표는 "실제로 융합이 되려면 해당 분야에 대한 용어와 개념을 알아야 한다. 이런 인재들이 많아져야 한다"고 설명했다. 바이오니아 전체 구성원은 350여 명으로 박사 연구원이 20명, 석사·학사 연구원이 100명 이상이다.

박 대표는 대표실에 있는 시간보다 연구부서 등의 직원들을 만나는 시간이 더 많다. 새로운 생각이 떠오르면 해당 부서를 찾아가 그 자리에서 의견을 나누는 편이다. 기술에 대한 이야기 말고도 그가 늘 직원들에게 하는 말이 있다. 축적의 시간 필요성이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고 결코 포기 말고 끝까지 해라. 실패하고 다시 시도하고 또 실패하고 다시 시도해서 성공할 때까지 해라."

바이오니아 회사 전경. <사진=한효정 기자>
바이오니아 회사 전경. <사진=한효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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