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박기영 사례, 실패 통해 배우는 계기로

글 : 익명의 과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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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 2017.08.11

박기영 신임 과학기술혁신본부장이 임명 4일만에 사퇴했다. 통수권자의 인사는 중요한 정치적 메시지이고 실수도 있을 수 있다. 이번 일을 침소봉대 하기보다 우리 모두가 이 일에 '공도 있고(원인 제공)'  '과도 있다'는 것을 생각하며 이 글을 쓴다.

우리사회가 직면한 위기는 과학기술정책의 실패와 밀접한 상관관계에 있다. 4차 산업혁명은 경제, 산업, 노동 등 국정운영 전반에 걸쳐 중요한 키워드가 되었지만, 그 이면에는 우리 사회가 갖고 있는 미래사회에 대한 불확실성과 불안감이 존재한다. 그리고 우리 산업과 경제 체질이 지식기반 산업, 전문가 중심주의로 전환하지 못하면서 해외의 빠른 혁신에 뒤쳐지고 힘들어질지 모른다는 불안감도 함께한다.

이러한 현실 이면에는, 거대한 국가 R&D 재정이 부처이기주의와 국가대전략 부재 속에서 나눠먹기와 단기성과 주의, 경제성을 대체할만한 가치와 연구철학을 제시할 민간의 주체성 부재 (혹은 국회의 견제기능 부재)에 책임이 있다 할 수 있으며, 연구자의 한 사람으로서도 작지 않은 책임과 고통을 통감하고 있다.

국가 R&D 기획-운영 프로세스의 입체적인 재설계가 필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과학기술을 통한 우리사회와 미래의 재설계는 각 부처들의 예산확대 경쟁을 위한 정치적인 명분으로 소모되는 데에 그치는 현재의 경로를 이탈하기 어려울 것이다. 화려한 수식어는 항상 따른다. 신성장동력, 산업경쟁력 제고, 산업생태계 육성, 과학기술 기반조성, 시범사업, 실용화, 인프라 육성 등.

과학기술인들이 꿈과 사명감을 갖고 뼈를 깎는 심정의 자기개혁이 필요함은 분명하지만, 이것 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거센 도전이 우리 앞에 있는 것이다. 이러한 배경 위에서 우리사회가 직면한 위기를 과학기술을 통해 해결할 리더십의 자질은 어떠해야 할지 생각해 보자.

◆ 국가 과학기술정책의 본질과 새로운 리더십

과학기술정책은 그 본질상 선진국에서도 해답을 잘 찾지 못하는 본질적 도전 요소들이 있다. 그리고 이러한 요소들은 리더십의 탁월성과 정책결정 시스템의 민주성에 의존한다.

현장경험이 중요하고 과거의 경험을 넘어설 비전도 중요하다. 노무현 정부시절 과학기술혁신본부의 운영은 그 자체로 참신하고 혁신적인 도전이었다. 그러나 이젠 그보다 더 혁신적인 시스템 즉, 현장중심, 사람중심, 연구자 중심의 위임형 과학기술정책이 필요하다. 그 때의 경험만 아니라 그 이후의 수많은 혁신 시도를 성찰적으로 재조명하고 입체적으로 분석-이해해야 한다. 다행히, 현 정부는 과학기술거버넌스 개혁의 어려움을 이해하고 전면적인 개혁의 시점을 내년으로 유예한 것으로 알고 있다. 이러한 신중함이 중요하다.

실패로부터 일어나야 하지만, 무엇보다 윤리적이고 자기 성찰적이어야 한다. 과학기술의 불확실성과 잠재력은 수많은 실패를 감수할 것을 요구한다. 더 중요한 것은 실패로부터 교훈을 얻어 재도전과 재도약의 기회 제공이 중요하다. 이것은 대통령도 강조한 바다. 그러나 이 모든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윤리성에 기반한 성찰능력에 있고 그 실패를 개인만 아니라 사회적 자산으로 재활용 하고자 하는 의지이다.

누구도 보지 못한 가치와 위험을 감지하고 스스로 뛰어드는 자기 희생정신도 필요하다. 과학기술계의 리더는 국가적 사명감과 공공의식이 최우선에 있어야 한다. 그래야 누구도 보지 못한 가치와 위험을 먼저 감지하고, 기존 경로의 이해관계자들의 저항을 뚫고서 개혁을 선도할 수 있다. 현재 기존경로의 최대 이해관계자들이 누구인가? 과학기술인들을 도구화하여 부처 예산 확장 경쟁에 이용하고, 성과 홍보에 “동원”하는 부처와, 그렇게 부처들이 경쟁할 수 밖에 없도록 내어 몰고 있는 기재부, 그리고 그 기재부의 행위 기제를 방관한 국가 리더십의 부재와 국회의 견제기능 부재이다.

세력과 정치성에 의존하지 않고 비전과 수평적 리더십에 의존해야 한다. 과학기술인을 도구가 아닌 목적으로, 국가 미래를 위한 귀한 자원으로 활용하려면 그에 걸맞는 비전과 수평적 리더십이 관건이다. 박 교수가 지난 날 보여준 과학기술계의 원로의 지지를 '동원'하는 구태는 현 정권이 지향하던 개혁적인 행보와 어울리지 않았다. 한 사람의 사퇴로 마무리 될 것이 아니라, 새로운 시대를 열어갈 리더십은 세력과 정치성에 의존하지 않고 비전과 수평적 리더십에 의존해야 한다.

톱다운과 바텀업 연구의 적절한 균형을 지향하되, 현장위임과 경로다양성 제공이 필요하다. 선진국은 과학기술역량의 유지와 연구자들의 보호, 그들의 성장경로와 국가사회의 이익을 일치시켜 가는 다양한 경로의 제공에 공을 들인다. 황우석 사태와 같이 소위 '뜨는 연구자'에 몰빵하는 식의 적폐적 연구정책은 곤란하다. 톱다운과 바텀업의 균형은 구호로 해결될 수 없는 어려운 숙제이다.

평가와 감사가 아닌 방향성 제시와 걸림돌 제거에 두 단계 앞서야 한다. 과학기술에 대한 투자는 커지는데, 정책방향 제시와 국가차원의 통합적인 전략과 조정이 부실하면 성과 책임에 불안해 질 수 밖에 없고, 그로 인해 현장 연구자들에게 더욱 가혹한 평가와 감사에 의존하게 되는 악순환이 시작된다. '질적 평가', '맞춤형 감사' 등 모든 것이 허명이다. 리더가 집중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이해해야 한다.

◆ 과학기술 정책을 이끌 리더십의 중요성과 민주주의가 있는 과학의 필요성을 생각한다

우리가 직면한 이러한 도전과 위기를 고려할 때에, 현장을 이해하고 현장 위임형 국가 R&D 체제로 전격적인 시스템 재설계가 필요할 뿐 아니라, '선택과 집중'이라는 명분으로 대형국책과제 발굴을 위해 출연(연)을 옥죄고, 홍보와 개혁 모양새 실적용으로 소비하는 기존 경로의 되풀이를 경계해야 한다. 수평적인 토론과 숙의에 기반한 세밀한 전략과 지속 가능한 정책이 중요하다.

지난 박근혜 정부에서 커다란 실험을 했던 국가과학기술연구회가 제 기능을 다하지 못한 것은, 이사장을 비롯하여 이사회가 정치적 간섭과 영향력 아래 있었기 때문이고 명시적 권한이 주어졌다 하더라도 우리 사회를 지배하는 권위주의적 압박과 문화가 작용했을 것으로 예상한다.

한 나라의 과학기술 수준은 민주주의 수준과 정비례한다. 아니 보다 정확히 표현하자면 과학기술이 국가사회에 끼치는 공헌은 관료주의와 반비례하고 국가의 정책적 리더십에 정비례한다. "국가가 지원하되 간섭하지 않는다" 것이 선진국의 공통된 과학기술정책철학으로 자리잡은 이유는 여기에 있다.

지난 광화문 행진에서 수많은 과학기술인들이 외친 구호를 우리는 기억한다. 과학이 있는 민주주의와 민주주의가 있는 과학. 대통령 탄핵이라는 매우 비싼 사회적 비용을 치르고 탄생한 새정부에서, 이번 박교수 임명-사퇴의 사태는 개혁의 과정을 다시 한번 성찰하는 계기로 작용하길 바래본다.

이번 실패를 통해 정치에 의해 오염된 과학기술계에 대한 실상을 성찰하고, 과학기술 현장의 리더십을 재건하는 일에 전환점이 되길 기대한다. 대통령은 과학기술 발전이 국민들에게 '꿈을 파는 도구'가 아니라, 진정한 국가경제발전의 초석이 됨을 다시 한번 확인해 주고 출연(연)의 주체성과 자율성을 강화할 수 있는 탁월한 리더십 임명을 위해 보다 세심한 살핌을 주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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