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혁진 이대 교수, 유전자 치료제 연구하다 ‘질병진단 시스템’ 개발
'2017 연구성과사업화지원 기술업그레이드 R&D과제 선정 '사업화 박차'

이혁진 이화여대 약학대학 교수는 질병의 현장진단을 더욱 신속하고 정확하게 할 수 있는 초고속 분자진단시스템을 개발, 상용화를 준비 중이다.<사진=김지영 기자>
이혁진 이화여대 약학대학 교수는 질병의 현장진단을 더욱 신속하고 정확하게 할 수 있는 초고속 분자진단시스템을 개발, 상용화를 준비 중이다.<사진=김지영 기자>
포스트잇이 '실수'에서 비롯된 히트작인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 3M사의 연구진이 강력접착제를 개발하던 중 우연히 접착력이 약하고 끈적임 없는 접착제를 개발한 것이었는데, 이 실패사례가 사내 보고되면서 추가 연구개발이 진행됐다. 그 결과 전 세계적으로 최고의 사랑을 받는 사무용품이 됐다.
 
포스트잇처럼 연구개발의 작은 실수를 놓치지 않고 의외의 성과를 내는 현장의 사례가 적지 않다. 이혁진 이화여대 약학대학 교수의 연구활동도 같은 맥락에서 주목할만한 사례다. 유전자 치료제 대량생산을 연구하던 그는 연구개발 도중 '기대하지 않던 현상'을 발견, 이를 기반으로 초고속 분자진단 시스템 '디텍트((DhITACT))'를 개발했다.
 
2014년 개발된 이 기술은 전염성 질병의 현장 진단을 더욱 신속하고 정확하게 할 수 있는 초고속 분자진단 시스템이다. 에볼라, 메르스, 지카 바이러스, 구제역, AI 등 지역 사회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치는 감염성 질병을 빠르게 진단할 수 있어 질병확산을 효과적으로 예방할 기술로 주목을 받기도 했다.
 
3년이 지난 지금 이 기술은 어떻게 됐을까. 이 교수팀은 지난 4월 국내 BT기업에 기술이전하는데 성공, 상용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연구성과실용화진흥원(원장 조용범·이하 진흥원)이 지원하는 '2017 연구성과사업화지원 기술업그레이드 R&D과제'에도 선정돼 기술사업화에 필요한 지원을 받고 있다.
 
그는 "다양한 환자샘플을 기반으로 진단 시스템에 대한 연구를 진행 중이다. 일정대로만 진행된다면 내년 하반기 시제품을 출시해 의료기기 허가를 받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 "1시간 이내 성병 진단 시스템으로 상용화 할 것"
 
"항암 유전자 치료제의 대량 생산 연구를 진행해보니 효소를 기반으로 생산 된 핵산 물질의 뭉침 현상이 발견했습니다. 젤처럼 뭉쳐서 핀셋으로 뗄 수 있을 정도가 되더라고요. 이 현상을 없애야 우리가 원하는 결과를 얻을 수 있었는데 문뜩 다르게 활용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초고속 분자진단 시스템 개발의 시작이었죠."
 
초고속 분자진단 시스템을 개발의 시작은 2012년, 그의 주 연구주제인 '유전자 치료제 대량생산기술연구'에서 시작됐다. 제조비용이 비싸 고가로 분류되는 유전자 치료제의 단가를 낮추기 위해 유전자 약물인 올리고핵산을 대량생산할 수 있는 연구에 집중하고 있었다.
 
특히 그는 실온에서 유전자를 증폭시켜 올리고 핵산을 대량으로 얻어내는데 성공했다. 이는 기존의 PCR(Polymerase Chain Reaction, 고온과 저온을 오가며 유전자를 증폭시키는 것으로 고에너지가 필요하다는 단점이 있음)없이도 유전자 증폭을 가능하게 했다는 장점이 있었다.
 
그런데 증폭 과정에서 이상 현상이 발견됐다. 긴 실타래처럼 생긴 물질이 많이 만들어지더니 엉키듯 뭉치기 시작했다.
 
그는 "계속 증폭해보니 핀셋으로 떠낼 수 있을 정도의 젤 성질을 나타냈다. 대량생산에서 뭉침은 좋지 않은 현상이었다. 다른 효소를 넣어 뭉침 현상을 극복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뭉침 현상을 극복했지만 문뜩 궁금해졌다. 뭉친 젤을 전자현미경으로 관찰하니 안이 빽빽하게 차 있는 스펀지 구조로, 즉 하이드로겔을 형성한 것처럼 보였다.
 
상용화를 준비 중인 초고속 분자진단 시스템 '디텍트'.<사진=이혁진 교수팀 제공>
상용화를 준비 중인 초고속 분자진단 시스템 '디텍트'.<사진=이혁진 교수팀 제공>
'특정 바이러스의 존재 시, 실온에서의 유전자 뭉침 현상'을 통해 그는 다양한 감염병 진단이 가능할 것으로 생각했다. 예를 들어 에볼라 바이러스에서만 발견되는 특정 바이러스 유전자 서열을 기반으로 유전자 증폭 및 이를 통한 하이드로겔 형성을 통해 유전자 뭉침이 발견된 샘플군은 환자로 분류할 수 있다는 것이다.

바로 연구에 돌입한 이 교수는 감염병 샘플을 활용해 육안으로 2시간 이내 감염여부를 간편하게 판단할 수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 감염병에서 발견되는 특정 바이러스 서열을 이용하여 유전자 증폭 시 젤처럼 뭉치면 키트 속 가느다란 관을 통과하지 못함으로써 질병 유무를 확인하는 방법이다.
 
이 교수는 "환자샘플을 채취해 진단까지 1시간 안에 다 해결할 수 있도록 연구개발 중"이라고 말했다.
 
이 교수팀은 해당기술을 지난 4월 기술 이전했다. 기업과 논의 끝에 초고속 분자진단 시스템 상용화 타깃으로 '성병 진단'을 선정했다. 현재 성병감염여부는 현장진단이 어려워 대략 이틀 정도의 시간이 걸린다. 이틀이 짧은 시간일수도 있지만 질병유무 확인까지 많은 환자들이 불안에 떠는 것이 현실이다.
 
특히 환자들에게 민감한 질병이다 보니 문자나 우편서비스를 통해 진단여부를 알리는 대신 직접 내원해 결과를 듣게 하는 경우가 많다. 이 교수는 "환자들이 두 번 오가지 않더라도 현장에서 바로 검진 후 결과를 들을 수 있는 기술의 필요성이 대두되고 있다"며 현장진단 기술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 어떤 연구자든 상용화는 꿈…"좋은 기술은 누구나 쓸 수 있어야"
 
이혁진 교수팀 연구실 모습.<사진=김지영 기자>
이혁진 교수팀 연구실 모습.<사진=김지영 기자>
"좋은 기술은 누구나 쓸 수 있어야 합니다. 기초연구를 하고 있지만, 단순 논문을 넘어 진짜 필요한 사람에게 도움이 되는 제품을 개발하고 싶어요. 대기업보다 기술 상용화 및 제품화에 관심 있는 기업과 손을 잡은 것도 그 이유입니다. 기술이전은 상용화를 위한 시작입니다."
 
이 교수는 박사 후 연구원 시절, 몸담고 있던 랩에서 처음으로 기술사업화를 진행한 경험이 있다. 기초연구는 상용화와 동떨어진 분야라는 고정관념을 깨준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그는 "좋은 논문을 쓰는 것도 좋지만 조금만 생각을 달리하면 얼마든지 상용화도 가능하다는 걸 느꼈다"며 "좋은 기술이면 누구나 쓸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진짜 제품을 만들 수 있는 기업'을 찾기 위해 여러 번 미팅을 거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진흥원의 지원을 통해 기술컨설팅 및 기업 미팅을 진행했다”는 그는 이름만 대면 알만한 대기업과의 미팅도 수없이 했다. 그 결과 직접 병리센터를 운영하며 환자샘플을 다량으로 보유한 기업과 손을 잡았다.
 
그는 "관심기술이면 일단 기술이전 받아두려는 기업들이 있더라. 우리는 진짜 제품화 할 수 있는 회사에 기술이전하고 싶었다"라며 "환자 샘플을 많이 다뤄볼 수 있어 연구자 입장에서도 많은 자료를 수집하고 분석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는 만큼 꾸준히 상용화를 위한 연구개발을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지금은 성병을 진단하는 것에 상용화 초점을 맞추고 있지만 이 교수는 해당 기술이 암 진단, 항생 내성균, 독소 등의 물질 검출에도 적용하여 다양 물질의 검출 기기가 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무엇보다 체외 진단 시장에서 가장 빠른 성장을 나타내고 있는 '분자진단'을 일부 회사가 독식하고 있는 만큼 이 교수는 "실온에서 더 빠르고 정확하게 진단할 수 있는 초고속 분자진단 시스템개발을 통해 시장을 수요를 잡는데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이혁진 교수팀. 그는 성병 진단을 목표로 상용화를 진행 중이지만 암 진단, 항생내성균, 독소 등 다양한 검출기기로 활용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사진=김지영 기자>
이혁진 교수팀. 그는 성병 진단을 목표로 상용화를 진행 중이지만 암 진단, 항생내성균, 독소 등 다양한 검출기기로 활용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사진=김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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