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관희 KIST 박사, 극미량 소변으로 전립선암 진단기술 개발
미국 국방성도 기술에 관심···"오진율 높은 전립선암, 정확 진단기술 개발할 것"

"전립선암 발병률은 과거 10위에서 최근 4~5위로 껑충 뛰었습니다. 고령화가 되면서 발병비율이 계속 높아지고 있어요. 그런데 현재 진단법은 정확률이 떨어져 과진료를 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오진 비율을 줄이고 전립선암 맞춤형 치료법이 필요한 이유죠."
 
이관희 KIST 의공학연구소 생체재료연구단 박사는 최근 분주한 하루를 보내고 있다. 지난달 '극미량의 소변으로 전립선암을 진단할 수 있다'는 연구성과 보도가 나간 후 연구실로 문의전화가 끊임없이 걸려온다. 연구가 어느 정도 진행됐는지 묻는 전화도 많지만, 본인이 전립선암이 맞는지 아닌지를 진단해 달라는 문의가 이어지고 있다.
 
'병원에 가서 진단하면 되는 게 아니었나?'
 
전립선암 검사는 시간도 오래 걸리는데다 병원에서 검진을 해야 하기 때문에 번거롭다. 특히 환자의 혈액을 채취해 혈액 내 PSA 농도가 높은 환자를 의심 군으로 분류 후 따로 조직검사 등을 진행하는데 조직검사까지 마친 환자 중 전립선암으로 진단받는 비율은 고작 18%다. 82%는 혹시 모를 발병률 때문에 과진료를 받게 되는 셈이다. 이관희 박사에게 물밀듯 걸려오는 전화는 높은 오진과 조직검사 등 환자들의 불안감으로 해석된다.
 
지난해 발표된 중앙암등록본부 자료에 의하면 전립선암은 남성에게 발생하는 암 중 5위를 차지했다. 연령대로는 70대가 43.3%로 가장 많지만, 최근에는 연령대가 낮아져 50대에서도 발생빈도가 증가하고 있다. 미국에서는 남성발병 전립선암 비율이 1위로 가장 높다.

 환자들과의 통화에서 더욱 연구개발 필요성을 느끼는 이관희 박사는 "혈액 내 PSA 진단에서 발견되는 82%에 이르는 오진이 없는 진단법을 꼭 개발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관희 박사팀 연구실 모습.<사진=김지영 기자>
이관희 박사팀 연구실 모습.<사진=김지영 기자>
 
◆ 환자 고통 불편 없는 검체 '소변'이 적격…'맞춤형 유전자 치료'까지 도전
 
"소변에는 염이 많이 섞여있고 뭘 마셨느냐에 따라 배출하는 게 달라 표준화가 쉽지 않아요. 하지만 비뇨기계 질병인 만큼 소변에서 더 잘 찾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이관희 박사는 전립선암 진단을 위해 인체에서 나오는 다양한 검체들을 고민했다. 소변은 염이 많이 섞여있는데다 방금 뭘 마셨는지에 따라 배출하는 것이 달라 표준화가 어려웠지만, 이관희 박사는 미래 집에서 사용자 스스로 전립선암을 자가 진단하는데 사용자의 고통과 불편이 없는 '소변'이 가장 적합한 대상이라고 생각했다.
 
이 박사팀은 전립선암에서 특이적으로 발현된다고 알려진 융합 유전자를 소변에서 검출해 보기로 했다. 암의 진행 단계에 따라 융합유전자의 종류가 달라지는 만큼 동시 다중검지를 위해 길이가 서로 다른 바코드 DNA를 사용했다.
 
바코드 DNA는 수만 가지 상품의 종류를 바코드 하나로 구분하듯 수천 종의 병원균을 한 번에 진단해주는 기술이다. 바코드 DNA를 금 나노입자에 부착시켜 신호를 증폭시켜주면 찾고자 하는 융합유전자가 마치 바코드처럼 길게 찍혀 나와 바코드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금 나노입자를 이용한 융합유전자 검지 모식도.<자료=KIST 제공>
금 나노입자를 이용한 융합유전자 검지 모식도.<자료=KIST 제공>
 

환자 소변 내 존재하는 융합유전자 검지 결과 및 다양성.<자료=KIST 제공>
환자 소변 내 존재하는 융합유전자 검지 결과 및 다양성.<자료=KIST 제공>
연구진은 바코드 DNA를 금 나노입자에 부착해 신호를 증폭시키고 마지막 검지 단계에서 물질이 전기장에서 이동하는 전기영동법을 통해 바코드 DNA를 길이에 따라 분리, 소변 내 존재하는 융합유전자를 고감도로 동시에 3종 이상 검사하는 데 성공했다.
 
3종 이상의 정확한 융합 유전자 검출법을 개발한다면 전립선암 맞춤형 유전자치료도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이관희 박사는 "같은 전립선암이라도 어떤 유전자가 엉켰느냐에 따라 항암제가 환자에게 적합할 수도, 적합하지 않을 수도 있다"면서 "우리 기술은 소변검사를 통해 어떤 유전자들이 엉켜 융합유전자가 만들어졌는지를 확인할 수 있는 만큼 추후 정확한 진단과 더불어 맞춤형 유전자 치료도 가능할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 전립선암 넘어 방광암·신장암 진단 도전
 
이번 연구성과는 KIST와 서울아산병원 비뇨기과 김청수 교수팀, 미국 존스홉킨스대학 Peter Searson 교수팀과의 공동연구를 통해 가능했다. 서울아산병원으로부터 전립선암 환자들의 여러 임상 샘플을 지원받아 가장 적합한 검사체를 발견할 수 있었는데, 앞으로 환자 수를 더 늘려 통계 유의성을 확보할 계획이다.
 
미국 존스홉킨스대학 연구진은 이관희 박사와 함께 더 많은 융합유전자를 발견해내고 싶다는 의사를 밝히기도 했다. 목표는 7개다.
 
물론 난제도 존재한다. 인종에 따라 발견되는 융합유전자가 다를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이 박사는 "인종에 따라 암의 발병률, 잘 듣는 항암제가 다르기 때문에 기술이 전 세계적으로 범용되기 위해서는 다양한 인종을 대상으로 테스트를 해봐야한다"고 말했다. 그는 더 다양한 논의를 위해 그는 다음 달 미국으로 출장을 떠난다.

이관희 박사(왼쪽)는 현재 하루 이상 걸리는 전립선암진단을 1시간 안에 가능토록 연구개발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사진=김지영 기자>
이관희 박사(왼쪽)는 현재 하루 이상 걸리는 전립선암진단을 1시간 안에 가능토록 연구개발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사진=김지영 기자>
 
흥미로운 것은 해당 기술에 미국의 국방성이 관심을 보이고 있다는 것. 미국은 현역 군인, 전역군인을 상당히 우대하는 나라로 알려져 있다. 전역한 군인, 파견나간 남성 군인들의 질병 등을 현장에서 빠르고 정확하게 진단하고자 기술에 관심을 갖는 것으로 보인다. 이 박사팀과 Peter Searson 교수팀, Ballentine Carter 교수팀은 미국 국방성에 해당 과제를 지원해 연구비를 확보할 계획도 갖고 있다.
 
이 박사팀은 향후 전립선암뿐 아니라 방광암, 신장암 진단에도 도전할 계획이다. 특히 방광암의 경우 소변이 암조직과 직접 닿아 있다가 배출되는 만큼 신뢰도 있는 검진이 가능할 것으로 기대된다.
 
그는 "방광암은 재발이 가장 심한 암 중 하나다. 특히 비뇨기 관련 암은 삶의 질을 현저히 떨어뜨리는 암으로 방광암은 여성분들의 발병 비율도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며 "서울아산병원, 고대안암병원 등도 이 연구에 공감하고 있다. 한 달에 한 번씩 공부모임을 갖고 방광암을 잡기위한 유전자와 단백질 검출 연구에 대해 토론하고 있다"고 말했다.
 
 ◆ '나노 재료->바이오'에 도전한 이 박사 "두 분야 다리 역할 할 것"
 

1998년 병역특례로 KIST에 처음 온 그는 재료연구본부에서 나노재료를 연구하다 미국으로 유학길을 떠났다. 평생 매진할 연구가 무엇일까 고민했던 시기, 그는 바이오와 관련된 연구를 통해 질병으로 고통받는 환자들의 아픔을 덜어줘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나노재료를 연구하다 바이오연구로 옮겼지만 적응은 쉽지 않았다. 연구 분위기도, 쓰는 용어도 달라 애를 먹기도 했다. 다행히 지도교수의 전공이 그와 비슷했다. 재료공학과 의공학 전공자이자 의대 소속연구자였기에 상당 부분에서 연구공감대가 있었고, 병원의 의사들과 협력하는 분위기 등을 많이 접할 수 있었다.
 
융합시대로 사정은 많이 나아졌지만 순수 나노연구, 유전자 연구를 하는 사람들도 많다. 두 분야를 모두 겪어보았기에 두 연구자들 사이에서 다리역할을 하고 싶다는 그는 "각 분야가 연계돼 실제 환자들이 쓸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하는데 매진하겠다. 꼭 암이 아니더라도 개인과 사회, 경제적 부담이 가중되는 각종 질병을 간편하게 진단해 환자들의 고통을 덜어드리는데 기여하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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