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하이퍼카미오칸데 국제공동연구진, 한국에 설치 제의
우리의 이득은? 최소 2조원 절감·선도적 연구 가능
김수봉 서울대 교수 "후배들 선도적 연구 절호의 기회"

하이퍼카미오칸데 국제공동연구진이 한국에 중성미자 검출실험연구소 설치를 제안했다. 일본은 중성미자검출실험연구소 건설을 통해 2번의 노벨물리학상을 수상한 바 있다.<사진=슈퍼카미오칸데 홈페이지>
하이퍼카미오칸데 국제공동연구진이 한국에 중성미자 검출실험연구소 설치를 제안했다. 일본은 중성미자검출실험연구소 건설을 통해 2번의 노벨물리학상을 수상한 바 있다.<사진=슈퍼카미오칸데 홈페이지>
일본 측 요청으로 우리나라에 한국형 '하이퍼카미오칸데' 중성미자 검출실험연구소 설치 기회가 생겼다. 우리나라에 설치되면 한국중성미자관측소(KNO, Korean Neutrino Observatory)라는 이름이 붙여지게 될 전망이다.
 
일본은 '카미오칸데→슈퍼카미오칸데'를 통해 2번의 노벨물리학상을 수상한 바 있다. 한국에 3번째 하이퍼카미오칸데가 설치돼 공동연구를 하면 우주 미지의 영역을 풀어냄과 동시에 노벨상도 노려볼만한 연구성과가 나올 것으로 기대된다.
 
카미오칸데 역사를 살펴보면, 고시바 마사토시(小柴昌俊) 동경대 특별명예교수가 카미오칸데를 통해 1987년 2월 마젤란 성운에서 일어난 초신성 폭발로 지구로 날아온 중성미자를 파악하는 것에 성공, 2002년 노벨물리학상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이후 그의 후배인 카지타 타카아키(梶田隆章) 도쿄대학 우주선연구소장이 2세대 카미오칸데인 '슈퍼카미오칸데'를 통해 우주를 이루는 기본 입자인 중성미자의 진동을 발견, 중성미자가 질량이 있음을 밝혀 2015년 노벨물리학상을 수상했다.
 
일본은 3세대 카미오칸데인 '하이퍼카미오칸데'를 설치해 중성미자의 다음문제를 풀 계획을 갖고 있다. 그런 가운데 카지타 교수 등 하이퍼카미오칸데 국제공동연구진이 하이퍼카미오칸데 설치를 우리나라에 제안해왔다. 일본 정부의 연구비 지원 규모에 맞춰 25만 톤의 검출기를 두 대 나누어 짓기로 했는데, 한 대는 일본에 나머지 한 대를 한국에 짓자는 것이다.

김수봉 교수는 KNO 후보지로 대구 비슬산과 경북 보현산을 선정했다. 현재 선행연구를 통해 더 적합한 지역을 찾고 있다.<사진=김수봉 교수>
김수봉 교수는 KNO 후보지로 대구 비슬산과 경북 보현산을 선정했다. 현재 선행연구를 통해 더 적합한 지역을 찾고 있다.<사진=김수봉 교수>
 
이 제안을 받아들이면 우리가 독자적으로 중성미자 검출실험연구소와 가속기를 짓는 것 보다 약 2조 가량 절약이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후보지는 대구 비슬산과 경북 보현산이다.
 
이 일을 추진하고 있는 김수봉 서울대 교수는 "중성미자 연구 변방에 있던 우리나라가 최근 연구성과를 내며 세계의 주목을 받은 만큼 국제적 경쟁력을 보유하게 될 것"이라며 "계속해서 이 분야에 선도적 역할을 하며 중성미자의 남은 난제들을 해결하려면 시설확보가 중요하다. 이번 공동연구는 비용과 국제협력 등 다방면에서 좋은 기회"라고 말했다.
 
◆ 왜 한국인가···우리 이득은?
 
해당 연구가 처음 제시된 것은 17년 전인 2000년의 일이다. 고등과학원에서 열린 중성미자 관련 학회에 유명학자들이 모였다. 중성미자와 관련된 이야기는 뭐든 좋으니 허심탄회하게 풀어내는 자리에서 김수봉 교수는 일본의 중성미자 빔을 이용한 검출 장치를 한국에 건설할 것을 제안했다.
 
이를 진지하게 받아들인 카지타 교수는 약 3년간 김 교수를 비롯해 한국, 일본, 미국, 유럽 등 중성미자 관계자들과 함께 공동세미나를 개최하며 한국에 검출장치 설치 가능성을 타진해보기 시작했다. 구체적인 방향까지는 나오지 못했지만 결론은 한일 모두에게 '긍정적'이었다.

긍정적인 결과를 도출했지만 3세대 카미오칸데 건설에 막대한 비용이 드는만큼 일본정부도 쉽게 추진을 하기 어려웠다. 그 즈음 카지타 교수가 중력파 망원경 리더로 자리를 옮겼고, 김 교수도 리노연구단을 구성해 영광에 실험시설을 짓느라 해당 연구결과는 그대로 중단되고 말았다.

그러길 몇 년. 카지타 교수가 노벨상을 수상하면서 상황이 호전됐다. 하이퍼카미오칸데 건설에 속도가 붙기 시작했다. 하이퍼카미오칸데 국제공동연구진의 재논의가 있었고 한국에 건설하는 안이 또 한 번 도출됐다.

(왼쪽부터)김수봉 교수와 카지타 교수.<사진=김지영 기자>
(왼쪽부터)김수봉 교수와 카지타 교수.<사진=김지영 기자>
 
우리나라 과학계에 긍정적인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다.
 
우선 일본의 J-PARC(일본양성자가속기)를 우리가 활용할 수 있다는 점이다. 카미오칸데와 같은 중성미자 검출실험연구소를 제대로 운영하기 위해서는 J-PARC와 같은 거대한 가속기 시설이 필요한데, 건설비만 최소 2조 원 정도 든다. 유럽의 CERN 가속기는 약 10조 원의 예산이 투입돼 만들어진 것이다.
 
하이퍼카미오칸데 국제공동연구진의 제안대로 한국에 중성미자검출기를 건설하면 우리나라에 새로운 가속기를 짓지 않아도 일본 J-PARC(일본양성자가속기)에서 만들어져 날아오는 중성자빔으로 검출해 파동의 성질을 민감하게 측정하고 볼 수 있다.
 
또 먼 거리에 따른 중성미자 변환 세밀 측정이 가능하다. 일본은 하이퍼카미오칸데를 슈퍼카미오칸데로부터 2~3km 떨어진 곳에 지을 계획을 갖고 있다. J-PARC로부터 거리는 약 300km. 중성미자 변환 세밀측정을 하기엔 짧은 거리다.

김 교수는 "미국 페르미연구소가 미래를 걸고 추진 중인 'DUNE'실험은 검출시설로부터 빔까지 거리가 1300km"라며 "하이퍼카미오칸데 국제공동연구진이 미국과 경쟁을 해야 하는데 300km는 길지 않은 거리"라고 설명했다.
 
반면, 한국에 두 번째 검출기를 설치하면 거리를 3배 늘릴 수 있다는 것이 김 교수의 설명이다. 그는 "한국에 검출시설을 설치하면 1100km를 날아온 중성미자 빔을 관찰할 수 있다"며 "한국과 일본에서 동시에 중성미자를 검출함으로써 관측 오차를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빔의 위치와 비용 절감도 긍정적 효과로 꼽을 수 있다. J-PARC가 중성미자 빔을 쏘는 방향은 한반도를 향해 있다. 일본은 긴 열도를 갖고 있어 큐슈인근에 두 번째 검출기를 설치하면 1000km 정도의 거리가 나오지만 J-PARC의 빔의 방향을 바꾸는데도 돈이 많이 든다.
 
일본은 25만 톤 첫 번째 하이퍼카미오칸데 건설 사업에 약 5500억 원이 필요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일본이 건설을 계획하고 있는 곳이 탄광지대이기 때문에 카드뮴이 섞인 돌을 처리하는데 많은 비용이 필요하기 때문. 반면, 우리나라는 대부분 화강암지대로 같은 시설이라도 일본보다 저렴하게 지을 수 있다.
 
이 외에 일본 측과 우리나라측 연구진들이 각자 중성미자검출을 위한 독자적인 연구 장비 기술 등을 보유하고 있어 연구시설을 구축하는데도 큰 예산을 들이지 않아도 될 것으로 보인다. 김 교수는 일본의 예산의 3분의 2 정도로 충분히 건설 가능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J-PARC가 중성미자 빔을 쏘는 방향은 한반도를 향해 있다. 한국에 두 번째 검출기를 설치하기 최적의 장소인 이유다.<사진=김수봉 교수>
J-PARC가 중성미자 빔을 쏘는 방향은 한반도를 향해 있다. 한국에 두 번째 검출기를 설치하기 최적의 장소인 이유다.<사진=김수봉 교수>
 
◆ '우주 생명탄생' 실마리 푼다
 
하이퍼카미오칸데 국제공동연구진은 최근 좋은 소식이라며 김 교수에게 한 통의 메일을 보내왔다.
 
'일본의 25만 톤 첫 번째 하이퍼카미오칸데 건설 사업이 18일 문부과학성에서 결정한 대규모 기초학문 사업에 선정돼 재무성에 예산을 신청할 수 있게 됐다'는 내용이다. 김 교수는 이 소식을 바탕으로 KNO 지하시설 구축 비용 산정 등 제안서에 들어갈 자료들을 준비 중이다. 특히 학계의 단합된 힘을 모으는데 애쓰고 있다.
 
사실 김 교수는 이전부터 KNO사업을 위해 동료들과 함께 고군분투해왔다. "지난 6월부터 KNO후보지 2곳의 지반탐사를 추진 중으로 리포트 준비하고 있다"고 말한 그는 중성미자 검출실험연구소에 채울 물을 정수하기 위한 업체 선정부터 건설 비용계산, 정부부처와의 협업을 위한 미팅 등 정신없는 1년을 보냈다. 계획대로만 된다면 KNO는 2025년 구축을 완료해 최소 30년 동안 활용될 예정이다.

KNO을 통한 연구에서 김 교수는 우주의 탄생, 그리고 생명이 탄생할 수 있었던 실마리를 풀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그에 따르면 가속기를 사용해 소립자의 성질을 연구한 결과 물질과 반물질이 똑같이 존재했다가 그 균형이 깨지면서 갑자기 반물질이 어디론가 모두 사라져 현재는 물질만이 존재하는 세상이 됐다는 것을 알았다. '왜 반물질이 사라졌을까'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은 아직도 풀리지 않고 있다.
 
그는 "반물질이 사라지지 않았다면 우주가 팽창하면서 모든 물질과 반물질이 만나 소멸해 우주 공간은 빛으로만 가득 찬 세상이 됐을 것"이라며 "반물질이 사라진 이유, 그리고 우리가 탄생할 수 있었던 실마리를 KNO에서 풀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 연구시설 없어 서러웠던 날···"후배들 선도적인 연구 절호의 기회"
 

중성미자 연구는 몇 천억에서 수십조의 기초연구비가 필요한 분야 중 하나다. 막대한 연구비가 들다보니 선진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시설이 부족했다. 젊은 시절 김 교수는 연구시설이 없어 해외 연구소를 전전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2000년대 들어 중성미자 연구 집단인 리노연구진을 이끌면서도 가속기가 없어 힘들었지만 연구진 모두가 고군분투한 덕에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연구성과를 낼 수 있었다. 리노연구진은 대형 가속기없이 한빛원자력발전소 인근 산악지역에 시설을 구축해 원자로에서 방출되는 중성미자를 이용해 연구하며 2012년 유령입자라는 별명을 가진 중성미자의 질량차이를 측정하는데 성공했다. 이 연구결과는 1300여회 인용될 정도로 과학계의 많은 관심을 끌었다.
 
지난해에는 중성미자의 가장 가벼운 질량과 가장 무거운 질량 차이가 전자 질량의 약 10억분의 1정도로 매우 적다는 것을 규명, 물리학의 난제로 남아있는 우주의 물질과 반물질의 비대칭성을 알아내는데 한 걸음 다가서게 했다.
 

리노연구진.<사진=김수봉 교수>
리노연구진.<사진=김수봉 교수>

리노연구진이 이 시설에서 연구할 수 있는 남은 시간은 약 4년이다. 계속 머무르며 연구해도 얻을 수 있는 데이터가 한정돼있기 때문에 새로운 검출시설을 설치해야한다. 정년을 앞둔 김 교수는 이곳에서 검출되는 데이터를 분석하는 것을 끝으로 연구생활을 마칠 계획을 갖고 있다.
 
은퇴를 앞둔 김 교수가 2025년에 완공될 KNO 건설에 고군분투하는 것은 후배들이 이 분야를 주도하기 위한 후속연구를 할 수 있는 발판이 절실하기 때문이다.
 
이미 후속연구를 위해 나주 금성산 지하에 새로운 검출시설을 설치할 것을 몇 차례 제안, 선행연구를 진행했지만 지원길이 막혀 중단할 수밖에 없었던 그는 "KNO 건설은 절호의 기회"라고 말했다.
 
그는 "중성미자연구의 변방국이었던 우리나라가 영광시설을 통해 세계선도그룹과 어깨를 나란히할 실력을 갖게 됐다"며 "2025년이면 이미 은퇴했을 시기지만 시설이 잘 구축된다면 후배들이 30년 이상 이 분야의 선도적인 연구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이 이번 계획의 가장 큰 목표"라고 말했다.
 
또 그는 "KNO건설은 두 나라가 시설을 공동으로 쓰는 것으로 국제협력에서도 큰 의미를 가진다"며 "이 시설을 활용하기 위해 국제공동연구진 300~400여명이 우리나라에 머물며 연구를 하게 됨으로써 국제적인 연구허브가 되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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