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정리 : 이순석 ETRI 커뮤니케이션전략부장

ETRI(한국전자통신연구원·원장 이상훈)에서는 일주일에 한 번 자발적 학습 커뮤니티인 새통사(새로운 통찰을 생각하는 사람들)가 열립니다. ETRI 연구자들이 일반 국민과 선후배 연구자들을 대상으로 새로운 디지털혁명에 과감하게 도전하는 기술들을 탐색하고 고민해 주제발표하는 자리입니다. 새통사에서 나온 이야기들을 가감없이 전달드리고자 참가자들이 직접 정리한 내용을 공유합니다. 미래 우리에게 다가올 새로운 기술은 무엇이며, 이를 대비하는 연구원들의 자세와 각오는 어떠한지 글로 만나보세요. [편집자주]

새통사 89차 모임은 ETRI가 마련한 인문학강좌 중에서 '나는 고작 한번 해봤을 뿐이다'의 저자 김민태 EBS PD와 새로운 방식으로 세상 살아가기에 대한 생각나누기를 해보는 뜻깊은 시간이었다.

세상의 수많은 가치 중에서 지극히 일부분만의 주관적 가치와 또 지극히 일부분의 객관적 가치들만이 기반으로 하는 상상력의 한계 세상에서 무의식적으로 경쟁하며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세상의 본질과 또 그 속에 숨어있는 가치를 향유하는 새로운 방법론을 실천하고 또 그 실천의 경험을 나누는 소중하고 큰 울림있는 시간이었다.

특히 칙칙함이 막연해 있는 우리 출연연에게 도래하는 새로운 유기체적 세상을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라는 길을 나눠보는 시간이었다.

◆성공이란 무엇인가?

사람들은 누구나 성공을 꿈꾼다. 불행하게도 통념적인 현대에 있어서 성공이란 잣대는 몇가지가 되지 않는다. 돈과 명예라는 잣대가 거의 절대적인 가치를 지닌다. 모두가 '나, 이런 사람이야!'라고 자랑하지 못해 안달이다.

돈이 神인 자본주의에서 돈 중심적 가치관은 세상의 많은 부분을 수직계열화 시켜왔다. 마슬로우가 말하는 욕구 5단계(생리적 욕구, 안전 욕구, 사회적 욕구, 존중 욕구, 자아실현 욕구)도 올라갈수록 좁아지는 피라미드 형식으로 표현한다. 위로 올라갈수록 성취하기 힘든 부분이라고 단정적으로 쇄뇌시키는 그림이 아닐까라고는 아무도 생각해보지 않는다.

왜 자아실현이 어려운 것일까? 아니 왜 자아실현이 어렵다고만 생각하게 되었을까? 자본주의 이전부터 존재했던 BC 3500년경 수메르 시대까지 거슬어 올라가는 골품제의 유지를 희망하는 세력이거나 그러한 체계에 젖어있는 사람들은 당연히 사람들 개개인의 자아실현이 달갑지 않는 것일 것임에 틀림없다.

자아실현이 어렵다는 프레임은 수메르 시대부터 인간들의 머리 속에 왜곡되어 각인되어 있는 것은 아닐까? 거꾸로 자아실현이 되면 자연스럽게 낮은(?) 단계의 욕구는 자연스럽게 해소가 된다는 발생은 억척에 지나지 않는 것일까?

현대인들은 맹목적인 목표 앞에 지금도 힘들어 하며 살고 있다. 김 PD도 '한번 해보기의 힘'을 깨닫기 전에 우리와 똑같은 삶을 살고 있었다고 고백한다. 그 맹복적임 목표가 과연 행복한 것인가? 행복으로의 길을 열러주는 것일까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부족하다.

특히나 우리는 우리 부모님 세대의 피와 땀으로 적어도 아프리카 사람들이 느끼는 생리적 욕구와 안전 욕구와 사회적 욕구에 대한 해소는 거의 대부분이 누리고 있다. 그런데 얼굴표정에서는 아프리카의 그들과 별반 차이가 없는 것 같은 느낌은 무엇 때문일까? 우리가 무엇 때문에 힘들어 하는지를 깊이 있게 고민을 해봐야 할 때가 된 것 같다.

◆우리는 과연 다르게 살려고 고민하고 있는가?

일요일 밤이 즐거운가? 아침의 기상이 즐거운가? 아침의 출근이 반가운가? 동료와의 생활이 즐거운가? 하는 일들이 즐거운가?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것이 행복한가? 행복하다면 왜 행복한가? 또 그렇지 않다면 왜 행복하지 않는가? 행복하지 않고 즐겁지 않다면 그것을 바꿔 볼 생각은 하고 있는가? 그 생각을 실행할 행동을 해보고 있는가?

땅만 쳐다보고 살아가는 것이 아닌가? 내가 하고 있는 일의 의미를 되새겨보거나 확인해보려는 노력은 하고 있는가? 내가 해야 마땅한 일은 놔두고 하고 남들이 하는 일을 뺏고 있는 것은 아닌가? 남들은 세계를 앞장서 확장해가며 다른 사람의 숨 쉴 공간을 만들어 주며 보람을 느끼고 있는데 난 어떻게 하고 있는가? 나에게 익숙한 일을 반복적으로 되풀이만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우리가 생각해보지 못했던 모르고 있는 가치들을 발굴해내어 새로운 세상을 확장해가고 있는 사람들을 관찰은 하고 있는가? 왜 그들은 우리가 알고 있는 가치를 두고 우리와 경쟁하지 않는데도 새로운 가치를 기반으로 수많은 세상의 기회들을 선점하고 있는가? 우리와 그들의 차이는 무엇인가?

왜 그들은 보는데 우리는 보지를 못하는 것일까? 보지를 못하는 것이 아니라 보지 않는 것은 아닐까? 옥상에 올라가보면 더 멀리까지 세상이 보이는 것을 알지만 흐릿한 세상 속을 고민하는 것은 우리의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은 아닐까?

우리는 최근에 무언가 색다른 것을 하거나 새로운 행동을 시도해 본 적이 있는가? 매년 매달 매일 반복되는 일상을 벗어나는 다른 행동을 해본 적이 있는가? 시도를 해본 적이 있는가? 전혀 새로운 경험을 요구하는 외부의 요청을 받아 본 적이 있는가? 그것을 어떻게 처리했는가? 간사는 지난 주의 한 기억이 떠오른다.

모 신문사로부터 포럼의 패널토의 사회자 요청을 받았지만 영어 울림증과 귀차니즘의 발동으로 깔끔하게 거절했다. 여러분들은 어떠신가 궁금해진다. 그 사회자 제안을 받아 들였더라면 지금쯤 흥미로운 시간들과 함께 하고있을 것이 분명하지만 나의 편한 일상을 택한 관계로 그저 그런 시간들로 일상이 채워지고 있다.

김 PD는 어느 날 있었던 조그만 계기를 단지 15분의 걷기를 통해서 새로운 시도를 결행하면서 변화가 시작되었다. 새통사도 마찬가지다. 어느 날 오후 커피 한잔 먹으러 들렀던 휴게실에서 만난 한 선배님의 호통을 즐겁게 실천한 것이 오늘 89차의 모임까지 이어질 수 있게 되었다.

지금 출연연에서 일어나는 많은 움직임이 과연 새로운 움직임인가? 정권 교체기에 했었던 일상과 무슨 차이가 있는 것 인가를 구분해 낼 수 있다면, 지금의 움직임의 효과성을 예측할 수 있을 것 같다. 새로운 행동이 있어야 새로운 변화가 야기된다. 그 새로운 변화가 들불처럼 일어나기 위해서는 한 가지 허들이 있다.

◆세상이 연결되어 있음을 믿는가?

그 허들은 연결이다. 우리는 과거와는 우리 조부님들이 상상할 수 없는 세상에 살고 있다. 사회적 욕구 실현의 허들이 매우 낮아진 환경에 살고 있다. 물리적 환경이 그렇다는 것이다. 물리적 환경이 그러하다는 것이 인간의 정신세계에 많은 영향은 끼치겠지만 절대적인 것은 여전히 아니다. 그러나 그런 물리적 환경이 정신적 환경의 허들을 극복하는데 매우 낮은 에너지만 필요하게 만들어져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자연법칙에 따르는 세상은 멱함수법칙에 따르는 연결이 자연스럽다. 멱함수법칙이 지배하는 연결 세상은 크고 작은 허브들이 존재한다. 일종의 정신적 지주 역할을 담당한다. 강하지는 않지만 자연스러운 정신적 교감에 따른 무리를 이루게 마련이다.

자연법칙을 능가하는 초연결의 세상으로 흘러가면 그 연결 네트워크에 멱함수 법칙이 유지될 지 의문이긴 하지만, 사람들간의 연결고리, 사람과 사물과의 연결고리, 사람과 사물과 환경과의 연결고리는 더욱 자유롭고 제약이 없어지는 상황으로 치달을 것이 자명해 보인다.

그런 연결네트워크와 순간생활권을 이야기 할 정도의 빠른 소통속도가 만들어 내는 새로운 가능성은 인간의 머리에서 상상할 수 없다. 인간의 뇌 세포 속에 기억되어 있는 수많은 기억들을 자주 들뜨게 하여 기억들끼리의 무작위적인 만남을 유도할 때 창의성이라고 부르는 새로운 것이 발현되는 것과 동일한 이치다. 인간이 상상할 수 없는 무한의 가치 세상이 존재할 것이라는 이야기다. 이러한 이유로 도래하는 세상 속에는 '수확체증의 법칙'이 지배한다고 이야기 하고 있다.

그 믿음이 있다면 어떻게 하든, 엄청난 가치의 하나는 거머지고 행복해 질 수 있다는 있는 믿음이 있다면 지금 새로운 용기를 내 볼 수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고인이 된  시티브 잡스도 박경림씨도 그런 심리적 안전을 마음 속에 담고 있었던 것이 아닌가? 김 PD님은 주장은 하지 않지만 그런 믿음이 있음을 넌저시 말씀해주신다.

어느 날 저녁의 한 제안이 있었고 또 연초에 작정했던 하나의 계획을 실천하며 느꼈던 전혀 새로운 느낌 하나 페북에 남겨놓은 느낌 하나... '한 정거장 일찍 내리기 –뇌가 뛰고 위장의역동을 느낀다'라는 남긴 타임라인의 한 줄이 건강한 몸을 만드는 계기가 되고 사람을 만나는 즐거움을 발견하게 책을 읽은 재미를 느끼게 하고 메모를 하며 인덱싱하는 나름의 의식을 만들면서 스스로 밝아지는 자신의 변화를 이야기 하신다. 참 부럽다.

◆작은 실천의 성공 경험이 성장의 사이클을 만든다.

실천이라는 단어는 행동이다. 무엇이든 일상과는 다른 뭔가를 실행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런 실천만이 일상을 유지하려는 보수적 마음을 흔들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예를 들어 주신 '의료윤리' 관련 모 기자의 연결의 힘을 위력을 감상해 보시면 좋겠다. 어렵고 멀게만 느껴졌던 유명 PD 한 분을 만나는 것을 포기하려다가 책을 하나 사고 페이스북 친구 신청을 하고 직접 만나게 되고 원하는 바를 성취하는 모습이 '난 단지 한번 해봤을 뿐이다'라는 말씀 속에 하시고 싶은 말씀들이 다 들어 있다.

다시 한번 스티브 잡스의 말을 되뇌어 보자. "현재가 미래로 연결된다는 믿음이 인생의 모든 차이를 빚어낸다. 그 믿음 속에 그냥 무작정 한번 해보기를 시도하고 그 시도가 생각지도 않았던 작은 변화를 셈세하게 느끼고 간직하며 그것의 소소한 즐거움을 느낄 수 있다면, 또 다음의 새로운 무모한 시도가 가능해진다. 그런 경험의 축적은 스스로를 성장시키는 지름길이며 그 속에 행복이 있다."

글을 잘 못 쓴다라는 생각보다는 쓰다보면 늘겠지 하는 생각 바쁘다는 생각보다는 작은 기쁨을 맛보게 되면 다른 수가 생기겠지 하는 마음가짐과 실행이 중요하다. 많은 사람들이 쓰고 싶은 것이 있다면 그 어떤 실행은 무모하지 않다는 믿음이 생기길 소망해 본다. 또 그러한 믿음이 인생을 바꾸고 세상을 변화를 이룰 수 있다는 믿음을 가져보시길 소원해보게 된다.

분명 여러분들에게도 그 어떤 언젠가 있을 것이다. 또 세상과 연결되어 있다. 그 관련성은 점들의 연결이다. 고속도로가 아님을 기억하자. 뚜벅뚜벅 한걸음 한걸음들의 점들의 연결이다. 고속도로에서는 결코 보이지 않는 엄청난 가치들의 세상이 있음을 기억하자. 그런 믿음이 생긴다면, 지금 자리에서 일어나 뭔가를 해보자. 아무 생각없이... 한가지 권한다면 무작정 걸어 보시라. 뇌가 뛰고 위장의 역동을 느끼실 수 있을 것이다. 시도하지 않는다면 코 앞에있는 기회는 절대 나의 것이 될 수 없음을 기억하자.

◆토론해야 할 주제들은 여전히 많고

새통사의 네트워킹 시간까지도 결국 세상을 사는 방법론내지는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에 되는 이야기들이 계속 이어졌다. 우리 사회에 엄연히 존재하는 중대한 문제인 것 같다. 자본주의적 시각과 인본주의적 시각의 미묘한 차이가 항상 논쟁의 중심 화두이고, 인문사회적 관점의 시간과 과학기술적 관점의 시각이 평형선을 걷고, 산업사회적 시작과 초연결사회적 시각과의 충돌이 일어나고, 후발국적 시각과 카오스적 시각이 견해의 차이를 내보인다.

제4차 산업혁명이든, DX든, IDX든 새로운 세상을 준비함에 있어서 선진국의 사례를 쌑쌑이 면밀하게 분석하여 우리의 길을 찾아야 한다는 생각과 디지털지능화를 통한 우리의 목적과 목표 설정을 통한 우리의 접근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생각이 맞선다.

전자는 새로운 시장이 거의 다 선진국들에게 선점 당했다는 시각에서 출발하여 틈새시장을 찾아야 한다는 관점이고, 후자는 새로운 시장은 수확체증의 법칙이 지배하는 무한시장이기에 우리가 잘 할 수 있는 것을 중심으로 얼마든지 새로운 시장 창출이 가능하다는 관점에서 출발한다.

멋진 논의 주제임에 틀림없다. ETRI가 내놓은 제4차 산업혁명을 위한 국가대전환전략인 IDX전략은 후자의 시각에 좀 더 가깝다는 것이 간사의 생각이다. 디지털지능화는 분명 새로운 비즈니스 방식의 창출이고 새로운 일하는 방식의 탄생을 기반으로 전사회구조의 변혁을 유도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여, 선진국의 사례에서 이른바 뼈대를 읽을 수 있는 것만으로 족하지 않나 싶다. 새로운 구조를 만드는 것이기에 모두 함께 개방하고 공유하고 협업하는 형태의 새로운 일하는 방식이 필요하다. 이 새로운 일하는 방식은 연결의 믿음이 중요한 덕목이다. 그 믿음을 제공하는 굳건한 공통 플랫폼이 필요한 이유다. '그냥 해보기'는 발걸음이 가벼워야하기 때문이다. 아이디어만 있으면 반나절 정도의 뚝딱거림만 있으면 그 가능성을 실험해 볼 수 있게 하는 것이 중요하지않나 싶다.  

인문사회적 관점에서 나라의 정책을 세우면 과학기술이 실현을 해주면 된다는 관점과 과학기술이 세상의 방향성을 지배하기에 방향성과 나라의 정책 수립단계에서부터 함께 고민해야 한다는 관점이 맞선다.

후자는 우리나라가 힘들 때 취했던 방법이고 전자는 우리가 살만해지면서부터 지금 해왔던 방식이다. 우리가 왜 수많은 경제정책과 과학기술정책을 시도 해도잘 먹히지 않는 이유는 세상이 뉴노멀(new normal)시대로 가서이기 때문이 아니라 세상의 움직이는 작동방식을 잘못 읽고 있기 때문이다라는 것이 후자의 시각이다.

주력산업이 ICT와 만나면 해결될 것이라는 관점과 만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만나서 새로운 개념을 창출해야 한다는 관점이 마주한다. 전자는 지난  9년동안 줄곧 해왔던 방식이고 지금도 그런 시각이 팽배해 보이는 것이고 후자는 주력산업이 일하는 방식과 비즈니스하는 방법에 대한 전면적인 변혁을 추구하는 것이다.

예를들면 마트에 로봇을 도입해서 자동화하는 아마존 고(Amazon Go)가 전자라면 후자는 마트에 로봇을 도입해서 고객의 만족도를 로봇 도입이전보다 1만배 더 향상시키는 것을 지향한다.

이러한 방향성 속에서는 인공지능을 공부하거나 인공지능의 수준이 어디까지 와 있나를 확인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인공지능을 통해서 우리가 어디까지 새로운 개념을 확장할 수 있을 것인가를 함께 고민해보는 시간이 더 중요하다. 51개의 출연연들이 해야 할 일이 아닌가 싶다. 실현은 그저 행동의 문제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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