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뭄의 실패학①]'물 문제 해결' 과학적 접근 현상 분석
"문제해결 국가적 의지도 전략도 없다" 지적···전략·네트워크·지속성 부재
"프로젝트 중심 연구풍토···현장 어려움 함께 느끼며 문제 풀어야"

댐이 마르고 땅이 갈라졌다. 100년 만의 대가뭄이다. 매년 가뭄 문제가 반복되고 있는 가운데 농업 뿐만 아니라 산업까지 막대한 피해를 입고 있는 가뭄에 대한 근본적 대응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많다. 극심한 가뭄의 문제는 비단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전 세계적으로 기후변화로 인한 가뭄에 시달리고 있다. 대덕넷은 '가뭄의 실패학' 주제로 ▲가뭄 관련 과학계 현상 분석 ▲해외 물 문제 해결 사례 ▲국내 전문가·연구팀 조명 ▲전문가 대안 등의 순서로 기획기사를 연재한다.[편집자주]

매년 반복되는 극심한 가뭄으로 농업은 물론이고 산업·식량문제 등에 미칠 파급효과가 심각해지고 있다.
매년 반복되는 극심한 가뭄으로 농업은 물론이고 산업·식량문제 등에 미칠 파급효과가 심각해지고 있다.
지독한 가뭄 속에서 한반도 논과 밭이 거친 숨을 몰아 쉬고 있다. 올해 전국 평균 누적 강수량이 평년의 56% 수준. 중부권은 100년만의 가뭄을 3년 연속 앓고 있다. 농업·공업 용수가 태부족한 상황이 가속화되고, 밭작물은 가뭄 탓에 바짝 말라버린 지 오래다. 

정부는 가뭄문제를 해결하겠다며 매년 수백억원의 예산을 쏟아 붓고 있지만 아직은 백약이 무효하다. 국가적 대응은 나날이 실질적 대안이 없어 허약해 지고, AI(조류독감) 타격까지 입은 한반도의 자연생태계는 좀처럼 건강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언제 어디서 가뭄 피해가 확산될지 모르는 불확실한 환경에 노출된 농민이나 국민들은 하늘에서 단비만 내리길 기원하는 형국이다. 

그런 가운데 가뭄문제의 기술적 해결 주체가 되는 과학기술계조차 가뭄 문제해결을 위한 근본적 접근이나 시스템 구축 노력이 없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고 있다. 일각에서는 농민 뿐만 아니라 과학계도 하늘만 바라보는 '천수답' 시대와 똑같은 대응을 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 가뭄문제 해결 R&D 태부족

국가적으로 물 문제 해결에 '전략적 과학기술' 카드가 드러나지 않는 모양새다. 물은 식량과 에너지 생산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는 요소인 동시에 대체가 불가능한 필수자원임에도 불구하고 물 관련 연구·투자 수준이 열악한 상황이다. 

한국연구재단의 국내 물 관리 관련 과제 목록.<자료=한국연구제단 제공>
한국연구재단의 국내 물 관리 관련 과제 목록.<자료=한국연구제단 제공>
한국연구재단에 따르면 지난 2013년부터 올해까지 진행되고 있는 물관리 관련 R&D 수행 국내 연구과제는 총 30개 수준. 전체 R&D비용은 22억6500만원이다. 

미래창조과학부 과제로 23개 연구팀이, 교육부 과제로 7개 연구팀이 참여하고 있다. 서울대를 비롯해 연세대·경희대·한양대 등 대부분 대학 중심으로 소액과제 형태로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연구과제 특성을 살펴보면 물 관리 관련 요소기술 개발이 대부분이며, 가뭄이나 물 관리 총체적인 문제해결을 꿰는 연구활동은 보이지 않는다. 지난해 환경부 R&D 과제 세부 항목에도 물 관리 큰 틀을 담당하는 과제는 찾아볼 수 없다.

최승일 고려대 환경시스템공학과 교수는 "정부를 비롯해 과학계·산업계 모두 물 문제 해결을 위한 '큰 맥'이 없다. R&D 투자 현황을 보면 물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의지가 보이지 않는다"라며 "자료를 토대로 국내 물 문제 해결 상황을 냉철하게 바라보면서 과학적으로 실효성 있는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꼬집었다.

◆ 연구 '지속성'도 '연속성'도 없다

국가 사회문제 해결형 과제는 지속성·연속성이 무엇보다 중요한 요소다. 특히 매년 끊이지 않는 가뭄 문제는 중장기적인 연구로 실질적 해결을 해나갈 수 있어야 하는 연구 리더십이 필요하다.

하지만 한국연구재단 자료에 따르면 가장 오랜 기간 진행된  과제는 5년으로 3개 과제 뿐이다. 이외 대부분의 과제는 2년에서 3년 남짓 단기 과제들이다. 물관리 관련 R&D 수행 국내 연구팀 30개의 과제 평균 연구는 3.1년 내외다.

산업계 물 관련 한 전문가는 "정부 산하 과학계·산업계에서 물 문제 해결에 대한 커다란 맥락이 없으므로 전략·네트워크·지속성·연속성 등이 보장되지 않는다"라며 "단편적으로 제안되는 대책들은 장기적 가뭄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과학적인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경고했다.

◆ 현장에 과학자도 안보인다···'문제해결 네트워크'도 없다

물 문제 해결을 위한 '큰 맥'이 부재하다 보니 근본적 전략과 네트워크까지 형성될 수 없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무엇보다 물 관련 전문가들은 과학계가 현장 수요형 연구에 접근하지 못한다고 지적한다. 지자체 차원에서는 차량을 이용해 먼 거리에서 물을 공급하는 방안을 내놓는 등 다양한 제안이 제시되고 있지만, 대부분 임시방편에 불과하다는 지적이다.

물 문제 해결 민간단체 관계자는 "관공서를 중심으로 물 문제 해결 심포지엄이 주기적으로 진행되고 있지만, 그곳에는 과학기술계는 보이지 않는다"라며 "과제 중심으로만 진행되는 과학계가 사회문제 해결을 위해 발벗고 나서야 한다"고 주문했다.

국내에서 물 문제 해결을 위해 전문가들이 100명 이상 참가하는 대규모 심포지엄도 주기적으로 개최된다. 하지만 이러한 논의의 장에서 과학자 그룹은 찾아보기 힘들다.

국토교통부와 한국수자원공사는 최근에도 '건강한 물순환 도시를 위한 저영향개발 제도화 방안' 주제 포럼을 개최한 바 있다. 기후변화로 자연적인 물순환이 왜곡됨에 따라 발생하는 지하수 고갈 등의 다양한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전문가들이 머리를 맞대고 토론을 펼치는 자리였다. 대학교수와 정부 관계자, 지자체 관계자들만 참여해 논의했을 뿐 과학자는 없었다.

한국수자원공사를 비롯해 여러 지자체와 해당기관들이 '가뭄, 물 위기 대응방안' 등의 주제 세미나들을 열지만 과학기술계의 접근과 교류는 거의 이뤄지지 않고 있다.

이상협 KIST 물자원순환연구단장은 "낙동강을 가운데 두고 환경운동가들과 농민들이 데모를 하고 있다. 환경운동가는 '물의 질'을 요구하고, 농민은 '물의 양'을 요구하고 있다"라며 "물 문제는 양과 질이 함께갈 수 없고 균형을 맞춰야 한다. 과학자들이 정확한 사실적 데이터를 국민에게 제공하면서 균형을 유지해야 할 의무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과학자와 지역·지역민은 연결돼야 한다. 과학자들이 국민의 고통을 함께 느끼며 사회적 문제를 하나씩 풀어나가야 한다"라며 "과학자들이 사회에 필요한 이유를 찾고, 역할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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