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성봉 대표 "과학 즐길권리 모두에게 제공해야"
한국판 메이커스 운동 시도···"과학을 낯설게 함으로 신선한 감각 대중에 전할 것"

우리는 과학기술을 경제발전 수단으로 받아들였다. 과학기술을 통해 지난 50여 년간 경제성장을 이뤘고 부를 축적했다. 앞으로도 과학기술의 가치를 경제발전 수단으로 한정지어야할까. 과학기술을 어떻게 바라봐야할지 백년대계를 앞두고 이젠 그 시선과 인식 자체가 변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과학기술을 경제발전 수단에 한정짓지 말고 인류의 지식과 교육, 노동, 문화 등 다양한 분야와 연결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가운데 과학과 대중을 잇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이 있다. 과학을 다양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글로 풀어내는 과학출판사 사람들이다. 대덕넷은 이들이 전하고자 하는 과학기술의 가치는 무엇이며, 과학기술 문화 선진국으로 가기 위한 작지만 진보된 행보를 조명한다. '과학! 읽다'라는 기획보도로 연재한다.[편집자 주]

'문화적 행위로 과학 바라보기'
'과학을 문화로 해석하기'

"문화적 행위로서 과학을 바라보는 것을 좋아합니다. 과학을 인문사회에 자꾸 붙이는 이유입니다. 과학을 문화로 해석함으로써 인문독자들에게도 눈에 띄는 과학을 내놓고 싶습니다."

18년 동안 출판사를 이끌어온 한성봉 동아시아 출판사 대표의 과학책 출판 신념은 확고했다. 문화적 행위로 과학을 바라보기는 '과학덕후 외에 많은 사람이 과학을 즐길 권리를 가져야한다'에서 출발했다. 그가 말하는 과학과 문화의 콜라보는 과학이 과학자들만의 전유물이 아님을 느끼게 한다. 

동아시아 출판사는 과학과 인문학의 경계를 뛰어넘으며 다양한 책들을 소개하는 등 최근 몇 년 사이 주목받는 출판사다. 한 대표는 "돈 보다 화제가 되는 과학으로 사람들 입에 과학을 오르내리게 만드는 것이 더 즐겁다"고 말한다.

과학을 문화로 해석하는 한성봉 대표. 그는 "돈보다 화제가 되는 과학을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사진=김지영 기자>
과학을 문화로 해석하는 한성봉 대표. 그는 "돈보다 화제가 되는 과학을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사진=김지영 기자>
 
한국문학을 전공한 그는 마흔 살에 출판사 창업에 뛰어들었다. 이미 굴지의 출판사들이 자리 잡은 시장에서 출판업계에 발을 들인다는 것 자체가 도전이었다. 그러나 서울 대형서점의 초라한 과학서적 코너를 본 그는 '창업'을 마음먹었다.

"과학서적 코너에 갔더니 다 대학 교재더군요. 일본에서 생활한 적이 있었는데, 일본 서점에는 정말 다양하고 재밌게 읽을 수 있는 과학책들이 많았어요. 한국 출판계에도 아직 열리지 않은 시장이 있구나, 바로 이거다 싶었죠." 

1985년 일본에서 4~5년간 생활하며 느꼈던 과학에 대한 재미를 많은 사람과 공감하고 싶었다. '우리나라에서도 과학책 독자가 많아지면 좋겠다'는 생각은 동아시아 출판사가 어떤 출판사보다 발 빠르게 과학서적을 독자들에게 소개하는 원천이 되고 있다. 

◆ "글 쓰는 연구자 발굴, 출판사가 해야 할 일" 

"1970년대 태어난 과학자들은 서구의 과학을 문화나 텍스트로 직접 받아들인 세대입니다. 연구자들이 과학을 인문·철학적 안목으로 바라보고 글을 쓸 수 있도록 하는 것은 출판사가 해야 하는 중요한 일 중 하나입니다."
 

한 대표는 지금 우리나라를 '대중과학 르네상스'라고 표현했다. 이 르네상스가 언제까지 이어질지 아무도 담보할 수 없다. 이에 한 대표는 '우리만의 과학책을 읽고 만드는 시스템 구축'을 강조하며 국내 과학저자 발굴에 힘 쓸 것을 피력했다.<사진=김지영 기자>
한 대표는 지금 우리나라를 '대중과학 르네상스'라고 표현했다. 이 르네상스가 언제까지 이어질지 아무도 담보할 수 없다. 이에 한 대표는 '우리만의 과학책을 읽고 만드는 시스템 구축'을 강조하며 국내 과학저자 발굴에 힘 쓸 것을 피력했다.<사진=김지영 기자>
일본은 다양성이 추구되는 나라 중 하나로 과학서적의 종류가 광범위하다. 애니메이션 등 캐릭터 시장의 강점을 적극 활용한 것이 특징이다. 과학과 캐릭터를 접목한 책들은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한다. 콘텐츠가 신선함 그 자체일 경우가 많다.

반면 우리나라의 과학서적인 한정적이다. 한 대표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물리, 생물, 화학 등에 과학 서적이 편중돼 있고, 팔리는 책 외에는 손을 못 대는 것이 현실이다. '대중과학의 르네상스'라고 말할 정도로 과학책이 차고 넘치는 시대지만, 2000년대 초 스타과학자 발굴로 다양한 과학책 등 대중과학 붐은 금방 꺼졌다. 언제까지 르네상스가 이어질지 그 누구도 담보할 수 없다.

대중과학의 르네상스를 이어나가기 위해서 그는 "우리만의 과학책을 읽고 만드는 시스템과 문화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 대표는 국내 저자를 발굴하고 브랜딩하는 것에 많은 공을 들이고 있다. 

서양과는 달리 우리나라는 과학적 글쓰기 전통역사가 길지 않다. 먹고 살기 위해 과학기술을 들여온 탓에 과학기술 자체를 돌볼 여유도, 과학적 글쓰기도 어려웠다. 그동안 과학자들이 글을 쓰기 어려웠던 이유다.  

그러나 그는 1970년대 태어난, 현재 한창 현장을 뛰고 있는 과학자들이라면 충분히 과학 글쓰기가 가능하다고 봤다. 그는 "지금 현장에 있는 과학자들은 서구의 과학을 문화나 텍스트로 직접 받아들인 세대"라며 "과학을 인문·철학적 안목으로 보고 글을 쓰는 세대는 우리에게 많은 영향을 끼칠 것이다. 그들이 글을 쓸 수 있게 하는 것은 굉장히 중요한 일"이라고 설명했다.

동아시아출판사가 출간한 과학서적들.<사진=김지영 기자>
동아시아출판사가 출간한 과학서적들.<사진=김지영 기자>
동아시아 출판사의 글쓰는 과학자 발굴 시작은 동아시아 출판사의 이름을 알린 '정재승의 과학콘서트'라고 볼 수 있다. 인문과 철학, 과학의 넘나들음이 주목을 받은 것도 이 책부터다.

이후 동아시아 출판사는 이광연의 수학플러스, 이종필의 아주 특별한 상대성이론 강의, 과학하고 앉아있네(이정모의 공룡과 자연사), 김대식의 빅퀘스천 등 여러 과학서적 발간을 통해 과학 저자 발굴을 적극 나서고 있다. 한 대표의 생활 상당 비중이 과학자들과의 만남이다.

2014년 개봉한 인터스텔라 시사회 이후 우주론을 강의하는 이종필 교수와 합작해 한국 개봉일시에 맞춰 책을 출판하는 등 기획력과 기동력, 편집력에서도 강한 면모를 보이고 있다. 출판한 책도 과학매대가 아닌 인문매대에 진열한다. 과학을 문화적 행위로 바라보는 행위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한 대표는 "킵슨의 인터스텔라라는 책도 나왔지만 우리는 한국의 과학자가 영화를 보고 책을 내는 것 자체가 문화라고 생각한다"며 "여전히 번역된 과학서적 판매율이 더 높지만 국내 저자들이 글을 쓸 수 있는 장(場)을 마련하고 싶다. 그게 출판사가 해야 하는 일"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동아시아 출판사의 80%는 국내 저자들이 쓴 책들이다.

◆ "한국판 메이커스 만들겠다"
 

일본에서 판매 중인 어른을 위한 과학 잡지 '어른의 과학'. 한 대표는 한국판 어른의 과학을 출판할 계획을 갖고 있다. <사진=구글이미지 캡처>
일본에서 판매 중인 어른을 위한 과학 잡지 '어른의 과학'. 한 대표는 한국판 어른의 과학을 출판할 계획을 갖고 있다. <사진=구글이미지 캡처>
일본에는 '어른의 과학(大人の科学)'이라는 아주 두꺼운 잡지가 판매되고 있다. 이 잡지에는 이안리플렉스 카메라, 가습기, 플라네타리움 등을 만들 수 있는 키트가 함께 들어있는데, 어른들에게 꽤 인기가 있다.
 
한국에는 어른을 위한 한국판 메이커 잡지가 없는 상황이다. 여기에 한 대표가 도전장을 내밀었다. "한국판 메이커스를 만드는 것이 오랜 꿈이었다"는 그는 "인공지능 등이 발전하면서 사람이 개인을 위해 쓸 수 있는 시간이 많아질 것으로 본다. 그럴수록 우리는 손끝으로 많은 것을 해야한다"며 "첫 책 발간 목표는 8월이다. 2~3달에 한 권의 책을 출판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한 대표는 전집류가 많은 어린이 과학책을 단행본 형태로 제작해 발 빠른 책 출판을 시도하는 것, 대중에게 읽을 거리를 제공할 수 있는 빅히스토리, 크리스퍼 유전자가위를 대중에게 소개하는 일 등 다양한 출판 계획을 갖고 있다.
 
그는 "'낯설게 하기'라는 말이 있다. 낯섦이 오히려 신선한 감각을 준다는 뜻으로 과학을 낯설게 해 많은 사람에게 신선한 감각을 전해주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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