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0만 년 전 침팬지와 같은 계통에서 갈라선 인류는 500만 년 전부터 기원 전 1만 년 전까지는 그 수를 크게 늘리지 못했다. 마지막 빙하기가 끝나자 인류는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농사와 목축을 시작한 것. 수렵과 채취 생활을 할 때는 아이를 많이 낳을 수 없었다. 노인을 보살필 수 없었다. 이동에 방해가 되었기 때문이다. 이제 아이를 얼마든지 낳아도 되었다. 아이는 장래의 노동력이었으며 노인은 아이를 보살피고 지혜를 전수하는 역할을 맡았다.

인구가 서서히 증가했다. 지난 500만 년 동안 경험하지 못한 일이다 하지만 아직 괜찮았다. 농업 기술이 개량되어 농사를 지을 수 있는 토지의 면적이 급증했기 때문이다. 인구가 늘어나도 자연을 침식하여 인간의 지배 영역을 넓힘으로써 감당할 수 있었다. 서기 원년 경에는 전 세계 인구가 2억5000만 명에 달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일본의 고체지구물리학자 이다 요시아키는 지구를 그릇에, 문명을 요리에 비유한다. 농사로 출현한 신석기 문명과 이어진 청동기 및 철기 문명이라는 요리는 지구라는 그릇을 넉넉하게 비워두었다.

그 후 인구가 절정에 달한 것은 서유럽, 중동, 아시아에서 인류의 지배 범위가 넓어질 대로 넓어져서 더 이상 넓어질 수 없게 된 사실과 관련이 있다. 이처럼 인구 증가는 인류가 지배 영역을 확대하면서 진행되었다. 르네상스와 과학혁명이 닥쳤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전혀 다른 요리법이 등장한 것이다. 1700년이 되자 인구수가 6억2000만 명까지 늘어났다. 인간의 사고 능력은 증가하였지만 사용하는 에너지는 여전히 숲이 주는 나무가 전부였다. 숲을 에너지원으로 살 수 있는 인구수는 6억 명 남짓이었다.

지구라는 그릇은 변함이 없는데 문명이라는 요리법은 끊임없이 발전했다. 산업혁명이 일어났다. 산업혁명은 증기기관으로 시작했다. 1769년에 발명된 증기기관의 연료는 석탄이다. 새로운 에너지원이 등장함과 동시에 500만 년 동안 이어져온 인구 증가 그래프의 기울기에 변곡점이 생겼다. 90년 후인 1859년에는 산업에 석유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나무라는 재생 가능한 연료에서 화석연료로 에너지 중심점이 이동하자 인구가 폭발했다.

1804년에 10억 명을 돌파했고 1927년에는 20억 명을, 1960년에는 30억, 1974년에는 40억, 1987년에는 50억, 1999년에 60억, 2011년에 70억을 돌파했다. 2016년 말에는 75억 명을 돌파하였다. 서기 원년부터 1800년 동안 겨우 4배 늘어난 인구가 그 이후에는 단 200년 사이에 7배가 늘어난 것이다. 맙소사! 1963년생인 내가 살아있는 동안에만 인구수가 두 배 이상으로 불어났다.

그런데 지구라는 그릇에는 변화가 없다. 현재 인류에게는 지배 역역을 넓힐 수 있는 미답지가 남아있지 않다. 문명은 이미 지구의 허용 범위에 육박할 만큼 자연을 침식했다.

문명이란 요리에는 숲이라는 재료가 쓰였다. 문명이 탄생하기 전에는 육상 대부분은 숲으로 덮여 있었다. 이제는 육지의 30퍼센트만이 숲으로 덮여있을 뿐이다. 극단적인 예를 보여주는 곳이 마다가스카르다. 1900년에만 해도 마다가스카르는 국토의 85퍼센트가 밀림이었다. 1950년에는 60퍼센트로 줄어들더니 2010년에는 국토의 10퍼센트만이 숲으로 남아있다.

그런데 원래 숲은 땔감이나 건축 재료가 되려고 생긴 게 아니다. 나무는 햇빛의 일부를 반사하고 일부를 흡수해서 지면에 쏟아지는 에너지를 줄여준다. 또한 빗물을 흡수한 후 서서히 방출하므로 강수량의 심한 변동을 막아준다. 잎에 흡수된 햇빛은 대기 중의 이산화탄소와 땅속의 물을 활용해 줄기, 가지, 뿌리, 잎, 열매를 만든다. 나무를 비롯한 식물의 성장은 먹이사슬의 출발점이기도 하다. 그런데 문명은 숲을 다른 데 썼다.

지구 역사상 가장 참혹한 사건은 2억5100만년 전 고생대 페름기와 중생대 트라이아스기 사이에 일어났다. 세 번째 대멸종이 바로 그것. 당시 지구 생명 종의 95퍼센트가 멸종했다. 이 대멸종의 가장 큰 사건은 숲이 사라지면서 일어난 사막화. 흩어져 있던 대륙들이 한 데 뭉쳐 초대륙 판게아가 되면서 해안선이 급격히 줄어들어서 생긴 일이다. 사막화는 기상 조건을 변화시키고, 모래를 주변에 흩뿌려 사막을 더욱 넓혔다.

현재 우리는 여섯 번째 대멸종을 경험하고 있다. 그 이유 역시 사막화다. 하지만 이번 사막화의 원인은 자연이 아니다. 문명의 발달 과정에서 인공적으로 생겨난 일이다. 악마는 혼자 오지 않는다. 우리는 사막화와 함께 온난화를 같이 겪고 있다. 지구 온난화는 문명과 지구 환경의 긴장 관계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현상이다.

온난화의 원인은 석탄과 석유를 태울 때 발생하는 이산화탄소에 있다. 기후 변동에 관한 정부 간 패널(IPCC, Intergovernmental Panel on Climate Change)은 산업혁명 이후 지구의 온난화가 진행되었고, 그 원인의 대부분이 인공적으로 배출된 이산화탄소에 있다고 결론지었다. 대기 중에 이산화탄소의 농도가 늘어남으로써 온실효과가 높아지고, 그것이 온난화를 초래했다는 것이다.

IPCC의 권고를 바탕으로 1997년에는 선진국에 대해 이산화탄소 배출량의 삭감 목표를 정한 교토의정서가 채택되었다. 그러나 이산화탄소 최대 배출국인 미국이 참여하지 않았기 때문에 실효성에는 의문이 있었다. 이에 대한 반성으로 2015년에는 개발도상국을 포함해 거의 모든 국가가 참여하는 기후정상회의(COP21)에서 파리협정이 채택되어, 온실가스의 인공적인 배출을 금세기 말까지 실질적으로 0으로 만들겠다는 목표로 2020년 이후 배출량의 삭감 기준이 정해졌다.

문명의 요리법이 마침내 바뀌는 것 같았다. 그런데 아뿔싸! 트럼프가 등장했다. 2017년 1월 26일 미국 핵과학자 단체인 '핵 과학자 회보(BAS)'는 지구 종말 시계를 지난해보다 30초 앞당겼다. 인류 종말을 자정으로 가정하고 전 세계 핵무기 보유국들의 핵 관련 정책, 지구온난화 정책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해 조정하는 지구 종말 시계는 이로써 1953년 냉전시대 이후 자정에 가장 가까이 근접했다.

BAS는 지구 종말 시계가 앞당겨진 게 미국 45대 대통령인 도널드 트럼프 때문이라고 못 박았다. "지구온난화는 중국이 미국의 경쟁력을 약화시키기 위해 벌이는 사기극"이라는 주장을 하던 트럼프는 대통령에 당선된 뒤 환경보호청장, 에너지부 장관 등에 지구온난화 회의론자들을 입각시켰다. 지난 5월 28일 폐막된 G7 정상회의에서는 파리협정에서 탈퇴하겠다는 협박을 하기도 했다. 일단은 잔류하기로 했지만 G7의 다른 나라 정상들은 결국 미국이 탈퇴할 것으로 보고 있다.

지구의 온난화가 극단적으로 진행된다면 실제로 어떤 일이 일어날까? 우선 극지방의 얼음이 모두 녹아 해수면이 상승하고 육지가 좁아질 것이다. 그런데 기온이 더욱 높아지면 반대로 바닷물이 증발하고 줄어든다. 이 시점이 되면 대기에는 수증기가 가득 차 온실효과가 더욱 높아진다. 그와 동시에 상공은 두꺼운 구름으로 덮여 햇빛의 반사율도 높아진다. 대기는 아마도 온실효과와 반사율이 균형을 이루는 적당한 상태에서 안정되고 기온의 상승도 멈출 것이다.

지구 역사에서 극지방에 얼음이 없는 고온의 시대가 오히려 더 길었다. 이 고온의 시대에도 공룡이나 포유류가 서식했다. 다시 고온의 시대가 온다면 인구가 많이 줄기는 하겠지만 그래도 인류가 존재는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지구라는 그릇 안에서 펼쳐왔던 화려한 문명이라는 요리는 사라진다. 우리는 혁신을 통해 다른 요리법을 개발해야 한다. 그런데 잊어서는 안 되는 것이 있다. 지구라는 그릇의 크기는 변하지 않는다.

◆ 이정모 관장은

이정모 관장.
이정모 관장.
이정모 관장은 자신을 사이언스 커뮤니케이터로 소개합니다. 전문적인 과학자와 과학에 흥미가 있는 시민 사이에 서 있는 거간꾼이라고 말합니다. 앞으로 과학자들이 연구실에서 하고 있는 일들이 무엇이고 그것이 시민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알려줄 생각입니다.

하지만 "과학은 어려운 것이 아니에요. 과학은 쉽고 재미나요" 같은 말은 하지 않습니다. 과학은 정말로 어렵기 때문입니다. 필자는 과학은 우리의 삶에 그리고 우리 사회에 필요하기 때문에 하는 것이고 알아야 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앞으로 무엇을 쓸지 정하지는 않았습니다. 글을 연재할 무렵에 일어나는 세상 일과 관련된 과학 이야기를 쓸 예정입니다.

이정모 관장은 대학에서 생화학을 전공했습니다. 독일에 유학 했으나 박사는 아닙니다. 귀국후 과학저술가로 활동하면서 안양대학교 교수와 서대문자연사박물관 관장을 지냈습니다. 지금은 서울시립과학관 관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달력과 권력' '공생 멸종 진화' '유전자에 특허를 내겠다고?' 같은 과학책을 썼으며 독일어와 영어로 된 과학책을 우리말로 옮겼습니다.

저작권자 © 헬로디디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