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료 망언에도 과학계는 침묵···언론 뒤 숨어 뒷담화
"과학계 스스로 나서지 않으면 관료왕국 개혁 요원"

"공무원이 되면 힘이 생긴다. 출연연 등 소관기관 사람들도 나이어린 사무관 말에 꼼짝 못한다."

인사혁신처 공무원의 최근 이같은 발언이 과학기술계에서 뜨거운 감자다. 일부 언론 보도와 SNS로 퍼져나가면서 연구자들 뿐만 아니라 일반 대중들도 어이없어했다. 

더군다나 해외 우수인재를 채용하는 과정에서 공개적으로 나온 이같은 발언은 국가 망신격으로 회자되고 있다. 여전히 정부 관료가 권력으로 사회를 지배한다는 사실을 만천하에 공표한 꼴이 된듯하다. 행사 참석자들도 어처구니 없어했다는 후문이다. 

인사처는 감사팀에 조사 의뢰를 했고 사실관계를 파악하는 조치를 취하고 있지만, 당사자가 부적절한 표현을 인정하고 해명하면서 일단락되는 모양새다. 하지만 한 공무원의 실언이라고 넘기기에는 너무 꺼림칙하다. 얼마 전 한국 사회를 들썩이게 했던 교육부 고위간부의 '민중은 개돼지' 발언과 별반 다를게 없어 보인다. 상위 1% 뽑힌 사람들이 나머지를 종으로 보는 가치관으로 의심하지 않을 수 없고, 때문에 그냥 넘어가서는 안될 문제로 여겨진다.

한국의 공무원들은 현장의 과학기술인들을 전문가로 과연 제대로 대우해주고 있을까? 대우는 둘째치고 잘 소통하고 있을까? 겉으로는 관료들이 과학자들을 국가의 미래라면서 잘해준다고 이야기 하지만, 현실은 많은 관료들이 과학자를 무시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인사처 관료의 이번 발언도 이같은 문화의 연장선상에서 나온 결과물이라 볼 수 있다.

이번 발언은 사실 과학기술계가 분노할 만한 일이다. 하지만 보도와 소식을 듣고도 과학계 전반은 침묵한다. 어떤 이는 엄연한 현실인데 뭘 그리 반응하느냐고 시큰둥해 하기까지 한다. 

언제나 그랬듯 과학자를 대표하는 시민단체나 조직들은 반응이 없다. '과학계를 대변하는 단체들이라도 관료조직에 경고를 보내거나 어떤 목소리를 내는 정도의 조처를 취해야 하지 않을까?'하고 연구자들은 기대해 보지만 어느 누구도 나서는 이 없다.  

다수의 연구자들은 과학계가 침묵하는 이유에 대해 관심이 없기 때문이라고 본다. 자기 연구과제 연구비를 획득하는게 가장 우선순위로 사는 그룹이기에 연구 자존심 보다는 자기 보신이 우선이기 때문이다. 과학계 공동체고 뭐고 모두 배부른 이야기다. 일각에서는 사무관은 고사하고 주무관에게도 쩔쩔매는 기관장이 수두룩하다고 폄하하기도 한다. 

공무원이 있는 과천이나 서울을 향한 지방 과학자들의 출장 러시가 이어지고, 담당 공무원 지시로 급작스런 보고서를 대신 작성하느라 밤샘하는 상황 등 뭔가 연구자들이 관료에 대해 불합리하다는 것을 느끼지만 개별적으로 저항하지는 않는다. 그랬다간 자신에게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는 불안감 속에 당연히 그래야만 하는 것으로 반복된다. 연구생태계가 늘 관료중심으로 돌아갈 수 밖에 없다고 단정해 버린다. 수긍하며 살자는 이야기다. 그게 현실이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야 한다고.  

그러면서도 뒤에서는 관료들의 불합리한 행태가 수두룩하다면서 고쳐져야 한다고 지적한다. 규제‧권위로 군림했던 관료들로 인해 규제천국이 된 과학기술계의 현실을 비판하고, 4차 산업혁명이라는 정체불명의 시대흐름 키워드도 읽지 못하는 관료들을 비꼰다. 예산권이나 인사권과 같은 절대 기득권을 놓치 않는 관료왕국의 벽을 깨야한다고 성토한다.

문제는 그 성토가 수면 아래서 그것도 개별적으로 이뤄진다는 점이다. 이러한 현상을 두고 일부 연구자들 사이 스스로를 '비열한' 한국 과학계라고 정의한다. 뒷담화만 많지, 케케묵은 문제를 정면으로 돌파하는 법이 없다는 것.

앞과 뒤가 다르다. 자신들의 연구생태계 문제를 이야기 하지 않으면서 대신 누가 좀 고쳐달라는 의미로 밖에 해석되지 않는다. 언론이나 누군가의 뒤에 숨은 느낌이 짙다. 한국에서 연구자 생활을 꿈꾸는 미래세대에게 심히 부끄러운 이야기일 수 있다.

이번 일을 계기로 과거 연구현장 취재 패턴을 재고하게 됐다. 매번 과학자들의 하소연을 들으면서 단순히 관료의 무지나 갑질이라고 생각하고 그동안 연구자를 감싸주는 보도를 하려고 노력했는데, 그게 어쩌면 본인을 비롯한 과학기자들의 실수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 나아가 우리나라 과학자들은 얼마나 연구 본질에 대한 탐험심을 갖고 있는지 의구심이 들면서, 적당히 자기 연구과제만 수행하는 환경을 즐기는 것 아닌가 하는 의문마저 생긴다.

그러면서 드는 한 생각. 
'과학자들이 자신의 문제를 자기 힘으로 풀지못하였기에 한국 과학계가 지금과 같은 문화 형성을 자초한 것은 아닐까?'

우리는 최근 촛불 사태에서 불합리한 것에 분개하거나 이야기 하지 않으면 변하는게 없다는 큰 사회적 깨달음을 얻었다. 대통령이 잘 뽑혀 관료사회가 개혁될 것이라고 절대 기대하지 않는다. 역대 어느 정권도 관료왕국을 혁신하는데 실패했다. 

과학시민의 살아있는 의식이 깨어나지 않으면 건강한 연구생태계는 요원하다고 본다. 연구생태계를 건강하게 바로잡아 나가기 위해 다양한 이슈의 공론화가 필요하고, 여러 방법론이 나오도록 왕성한 대화와 논의를 펼쳐야 한다. 그 선봉에는 과학자가 나서야 한다. 과학계 시민의식이 깨어나야 한다. 그래야 4차 산업혁명이든 무엇이든 과학계나 국가의 합리적 질서가 세워져 나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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