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이병권 KIST 원장 "4U 복합소재·천연신물질 등 신규연구 투자 구상"
정부 역할?···"부처 상관없이 자율성 갖고 연구 매진하도록 해야"

이병권 원장이 출연연 기관장 연임기준이 바뀐 이래 첫 연임에 성공했다. 그는 "KIST의 역할은 미래사회를 대비하는 것이다. 다른 데서 할 수 없는 연구를 하는 것이 우리의 역할"이라고 말했다. <사진=KIST 제공>
이병권 원장이 출연연 기관장 연임기준이 바뀐 이래 첫 연임에 성공했다. 그는 "KIST의 역할은 미래사회를 대비하는 것이다. 다른 데서 할 수 없는 연구를 하는 것이 우리의 역할"이라고 말했다. <사진=KIST 제공>
"KIST가 혼자 할 수 있는 연구는 없습니다. 정부출연연구기관이나 대학들과 경쟁이 아니라 협력해 국가를 대표하는 드림팀을 만들겠습니다."
 
정부출연연구기관 기관장 연임 기준이 바뀐 이래 처음으로 연임에 성공한 KIST(한국과학기술연구원) 이병권 원장은 대덕넷과의 인터뷰에서 향후 KIST 운영방안에 대해 이같이 밝혔다. 23대에 이어 24대 원장으로 총 6년간 KIST 사령탑을 맡게된 이병권 원장은 지난 3월 13일부터 제2기 임기를 본격 시작했다.
 
그는 내부 위상강화에 집착하지 않고 다가올 미래를 대비하기 위해 모든 것을 오픈해 연구개발에 힘쓸 것을 강조했다. 이는 그가 23대 원장을 지내면서 추진해왔던 일이기도 하다.
 
3년 전 첫 원장직에서 '차세대반도체와 로봇미디어연구소를 신설했지만, 올해는 신규 연구소 설치는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단 4U 복합소재, 인공광합성, 인공시각, 천연물신물질 개발 등에 조금 더 속도를 높인다는 계획이다. 그는 "올해 신규 조직설치보다 신규사업과 프로그램 방식의 추진을 구상 중"이라고 말했다.
 
◆ "다른 곳에서 할 수 없는 연구할 것"
 
"KIST의 역할은 미래사회를 대비하는 것입니다. 다른 조직에서 할 수 없는 연구를 하는 것이 우리의 역할입니다."
 
1966년 설립된 KIST는 최초의 정부출연연구소이자 종합연구소로 ETRI 등 많은 연구소의 모태기관이다. 철강, 조선 등 경제성장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는 연구개발을 시작으로 이제는 뇌과학, 반도체 등 미래를 선도하는 새로운 영역에 도전장을 내밀고 있다. 
 
그러나 태생부터 종합연구소이었기에 피할 수 없는 비난도 있다. 다른 전문연구소들과 차이점이 무엇이냐는 비판이다. 이 원장은 "KIST의 정체성을 확립하기까지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고 말했다.
 
KIST는 원내 기술정책연구소와 전문기관에서 발간한 미래를 위해 필요한 연구 조사를 철저하게 한 후 연구할 분야를 선정하고 있다. 그렇게 처음 시작한 것이 15년 전 꾸린 '뇌과학연구'다.
 
이 원장은 "2000년 들어 KIST의 역할에 대해 전임 원장부터 많은 고민을 해왔다. 다른 전문연구소와 겹치지 않으면서 산업계와 학계가 할 수 없는 것을 고민했고, 그렇게 시작한 대표연구가 뇌과학"이라고 평가했다.
 
현재 뇌과학은 IBS와 한국뇌과학연구원을 비롯해 서울대, KAIST 등에서 활발하게 연구되고 있으나 당시에는 생소한 분야였다. KIST가 국내 뇌과학분야를 선도적으로 이끌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출연연 사상 가장 큰 기술이전을 성사시킨 KIST 혈액치매조기진단 기술도 뇌과학연구에서 파생된 것이다.
 
이병권 원장이 생각하는 KIST의 정체성은 확고하다. 다른 곳에서 할 수 없는 연구를 통해 미래사회를 대비하는 것이다. 이 연장선상에서 2014년 원장으로 취임해 출범시킨 것이 '차세대반도체연구소'와 '로봇미디어연구소'다. 그는 "첫 취임 후 6개월 동안 고민한 것이 우리나라 미래사회를 위해 우리가 해야할 일이 무엇인가였다. 그래서 출범한 것이 두 연구소"라고 설명했다.
 
차세대반도체연구소는 인공신경반도체, 즉 AI 연구를 추진 중이다. 양자컴퓨팅과 빅데이터 등 수많은 정보를 제어할 수 있는 반도체 기술의 필요성을 예견해 작업을 시작한 것이다. 이세돌과 알파고, 제4차 산업혁명 붐이 일기전 부터 해당 연구의 중요성을 인지한 KIST가 출범을 알린 연구소다. 로봇미디어연구소는 출연연 중 KIST가 가장 잘하는 로봇분야와 AR(artificial reality),VR(virtual reality)시대의 융합을 예측해 시작한 연구소다.
 
 "KIST에도 전문가가 충분하지 않습니다. 우수한 과학자라면 외부서라도 모셔와 국가대표급 드림팀을 구성할 것입니다."<사진=KIST 제공>
"KIST에도 전문가가 충분하지 않습니다. 우수한 과학자라면 외부서라도 모셔와 국가대표급 드림팀을 구성할 것입니다."<사진=KIST 제공>
이 원장은 올해 연구소 신설보다 연속성에 무게를 두고 연구소들을 운영할 방침이다. 새로운 도전적 연구분야를 지속 발굴한다는 방침이다. 그는 "올해부터 4U 복합소재(초경량, 초고강도, 초고전기전도도, 초고열전도도)와 천연물 신물질 연구사업 비중을 늘릴 계획이다.
 
KIST는 이미 전북분원을 통해 복합소재연구를, 강릉분원을 통해 천연물연구를 수행 중이지만 우수한 연구자라면 KIST에 영입하는 등 연구를 전면 오픈할 계획이다. 연구비를 KIST가 일부 부담해서라도 연구진은 국가대표급으로 구성해 KIST의 역량이 미흡한 부분을 보완하면서 세계적 연구역량 확보에 도전하겠다는 것이다.
 
KIST는 이미 출연금 예산의 25%를 개방형 연구사업(ORP사업)에 투자 중이다. 과제별로는 연구비의 20~65% 수준까지 외부 연구기관에 개방하고 있다. 김인산 전 경북대교수와 여준구 전 항공대 총장, 오우택 전 서울대약대 교수 등이 KIST에 영입돼 활동 중이다.
 
그는 "KIST에도 전문가가 충분하지 않다. 우수한 과학자라면 외부서라도 모셔와 국가대표급 드림팀을 구성할 것"이라고 피력했다.
 
이 원장은 "출연연은 국민의 소중한 혈세를 사용해 대한민국의 미래를 준비하는 기관이다"라며 "당장 수익과 연결되지 않아 기업이 하기 어렵고, 대학에서는 개인이 단편적으로 하는 연구를 찾아서하는 일, 미래가 가져올 변화에 선제적으로 대비하고 이에 역량을 집중하는 것이 우리의 본질적 역할"이라고 정의했다.
 
◆ "정권, 정부 바뀌어도 영향 받지 않는 과기계 돼야"
 

과거 우리나라 과학기술은 정부가 이끌어나가는 형태였다. 빠른 추격자전략(패스트팔로어, fast follower)은 정부 주도 과학기술에 적합했고, 우리나라의 빠른 성장을 이끌어왔다. 그러나 이제는 1등이 살아남는 시대가 됐다. 선도주자(퍼스트 무버, first mover)가 돼야한다. 선도주자가 위해 과학계는 정부가 나서는 것이 아니라 뒤에서 밀어주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한목소리를 모은다.
 
그렇다면 과학기술에 있어 정부의 역할은 무엇일까. 이 원장은 "과학기술계가 정부부처와 관계없이 무엇보다 연구에 자율성을 가질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는 우리나라 과학계가 발전하는 데 근본적 요소이라는 주장이다.
 
특히 그는 영국의 홀데인(Haldane) 원칙과 독일 하르나크(Harnack) 원칙과 같이 기본적으로 자율에 맞기는 과학기술정책 제도가 정착되길 희망하며, "우리도 우리만의 원칙을 가질 필요가 있다"고 피력했다.

홀데인 원칙은 연구기금은 정치가가 아닌 연구기관들에 의해 결정되어야 한다는 것이며, 하르나크 원칙은 막스플랑크연구회의 연구 수행에 관련된 모든 권한을 연구자가 가지며, 정부는 예산을 지원하지만 간섭하지 않는다는 원칙이다.

그는 "우리나라보다 과학기술 역사가 훨씬 긴 유럽 같은 곳에서 이러한 원칙이 정착한 이유를 봐야한다"며 "우리나라 과학기술계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부처가 어떻든 간에 연구에 자율성을 갖고 이에 상응하는 연구를 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원장은 "우리나라도 국가과학기술연구회 등 과학기술계를 대표하는 주체가 과학기술계의 미래를 설계해나가는데 자율성과 권한이 보다 확대돼야 할 것"이라며 "선도형 R&D 시스템으로 전환하기 위해 과학기술 의사결정, 거버넌스 중심에 과학기술자가 있어야 한다"고 주문했다.
 
출연연 평가에 따른 첫 연임에 이 원장은 어깨가 무겁다고 말했다. 앞으로 주어진 3년이 지난날보다 더 빠르게 지나갈 것 같다고 한다. 그는 "KIST가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었던 이유는 구성원들의 노력과 전임 원장님들이 만들어 놓은 기반 위에서, 지난 제 임기 중 여러 대형 성과가 많이 창출된 덕분"이라면서 "첫 번째 연임 사례로 매우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 기관장 연임이 기관운영에 긍정적 영향을 미쳤다는 인식이 확산될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기울이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저작권자 © 헬로디디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