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느 전문직과 마찬가지로, 과학의 역사를 처음으로 쓴 것은 과학자들이었다. 우리가 오늘날 '과학'이라는 이름으로 부르게 된 여러 가지 활동에 종사하던 이들이 차차 스스로를 사회의 다른 집단과 구별되는 '과학자'라는 특별한 집단으로 인식하기 시작했고, 과학자가 누구인지 과학이 어떤 활동인지 규정하기 위해서는 그 역사적 계보가 필요했기에 그들은 자신들의 족보로서 과학사를 쓰기 시작했다.

오늘날에도 과학, 공학, 또는 의학 교과서의 단원 첫머리에는 그 단원에서 다루는 개념과 원리들이 어떤 과정을 통해 형성되었는지 간단히 요약해 주는 짧은 글들이 실려 있다.

하지만 누가 언제 어떤 업적을 쌓았는지를 열거하는 것은 역사의 중요한 일부분이기는 하지만 그 전부가 될 수는 없다. 하나의 성공한 발명이나 발견 뒤에는 수백 또는 수천의 실패한 도전들이 숨어 있다. 그와 같은 실패와 시행착오가 담길 자리가 없는 성공의 족보만을 보고 그것을 그대로 과학기술의 역사로 받아들인다면, 이는 뿌리와 줄기를 보지 않고 꽃과 열매만을 보는 일과 다름없을 것이다.

한국의 현실을 생각하면, 이렇게 성공의 열매만을 쳐다보는 역사는 더욱 경계해야 한다. 우리가 오늘날 익히고 수행하는 과학기술 가운데 한국에서 꽃이 피고 열매를 맺은 것은 찾아보기 어렵다.

성공의 연대기로 과학기술의 역사를 이해하는 한, 과학기술의 역사는 대부분 남의 나라 이야기로 채워질 것이고 우리의 주체적인 과학기술사를 쓰는 일은 요원하다.

또한 한국의 과학기술인들은 이미 성공에 대한 압력에 지나치게 시달리고 있다. 시작하지도 않은 연구가 얼마나 큰 경제효과를 창출할 수 있는지를 '구체적으로' 숫자까지 들어 제시해야 연구를 시작할 기회라도 얻을 수 있는 것이 한국의 현실이다.

그러다 보니 연구자들은 확률은 낮지만 성공한다면 판을 바꿀 수 있는 주제보다는 판을 바꾸지는 못하지만 실패할 가능성은 없는 '안전한' 주제를 골라 연구할 수밖에 없다. 과학기술사를 성공한 연구와 연구자들의 연대기로 좁게 인식한다면, 이렇게 실패를 용납하지 않는 문화가 더욱 공고해질 우려가 있다.
 
우리가 한국 과학기술의 역사를 읽어야 하는 것은 자랑스런 과거의 역사를 떠받들기 위해서도 아니고, 각 분야의 위대한 창시자들로부터(기왕이면 나까지?) 이어져 내려오는 족보를 외우기 위해서도 아니다.

교과서에 요약된 연표에는 나오지 않는 시행착오와 실패의 이야기를 되돌아보기 위해서, 열매를 맺지는 못했으나 척박한 땅에 씨앗을 뿌리고 최선을 다해 밭을 갈았던 이들의 목소리를 되찾기 위해서, 그 수많은 못다 핀 꽃들이 거름이 되어 어떻게 오늘날의 한국 과학기술이라는 꽃이 피고 열매가 맺혔는지 알기 위해서이다. 그리고 그것을 거울삼아 실패할 수 있는 자유를 옹호하고 더 많은 실패를 감싸 안을 수 있는 문화를 뿌리 내릴 수 있어야 한다.

한국의 근대 과학기술은 대단히 어려운 상황에서 출발했다. 자생적인 토양이 없어 모든 것을 외국에서 들여와야 했으며, 무엇보다 나라가 정치적 독립을 잃는 바람에 근대적 제도와 문물이 도입되는 과정도 왜곡될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근대 과학기술의 선구자들이 남긴 업적이 동시대의 서구나 일본의 과학기술 수준과 비교하여 두드러지지 않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근대 과학기술 도입을 위한 국가적 노력도, 오늘날의 관점에서 평가하면 미숙함과 시행착오로 점철되어 있다.

그러나  '실패'라는 표현은 너무 가혹할 것이다. 오히려 선구자들이 그렇게 척박한 환경을 무릅쓰고 미리 시행착오의 선례를 남겼기 때문에 다음 세대는 조금이나마 편하게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고 평가해야 하지 않을까?

그런 점에서, 한국 과학기술의 역사는 '누가 무엇을 언제 최초로 성공했는지'를 따지는 것에서 벗어나 더 넓은 이야기를 다루어야한다. 오늘날 기억하지 못하는 기관에서, 성공하지 못한 사업에 매달렸던 이들일지라도, 거기에서 한국 과학기술이 걸어온 성공의 이면의 역사를 읽어낼 수 있고, 그 이면의 이야기를 많이 알게 될수록 우리는 실패할 자유를 더 많이 누릴 수 있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 김태호 교수는

김태호 교수
김태호 교수
연표가 바로 역사가 되는 것이 아니듯, 과학기술사는 단순한 에피소드의 나열에 머무르지 않습니다. 과학기술은 시대와 지역을 초월한 보편적 지식을 추구합니다. 하지만 그 지식을 쌓아올리는 과학기술자는 시대와 지역이라는 좌표계 안에서 실존하는 인간들입니다.

과학기술의 역사를 연구하는  김태호 교수는 유한한 인간이 무한한 진리를 추구하면서 드러날 수밖에 없는 긴장 관계에 주목하고, 과거의 과학기술을 돌아봄으로써 현재를 입체적으로 이해하고자 합니다. 이 지면을 통해 한국 과학기술이 걸어온 발자취를 돌아보고, 그 성과와 한계를 따뜻한 시선으로 균형을 잃지 않으며 이야기해 보고자 합니다.

김태호 교수는 서울대학교 화학과를 졸업하고 과학학(STS)를 전공해 박사학위를 받았습니다 한국 근현대 과학기술사를 주로 연구합니다. 1970년대 농촌의 변화를 선도한 '통일벼'의 역사, 한글 타자기의 역사, 한국 기능인력의 양성과 '기능올림픽' 등 다양한 주제에 대해 글을 써 왔습니다. 서울대학교병원과 한양대학교를 거쳐 현재 전북대학교 한국과학문명학연구소에서 '한국의 과학과 문명' 총서 발간을 비롯한 다양한 학술 활동에 몰두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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