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정문구 안전성평가연구소장

정문구 안전성평가연구소장.<사진=안전성평가연구소 제공>
정문구 안전성평가연구소장.<사진=안전성평가연구소 제공>
지난 한해 우리 사회는 온통 가습기살균제로 떠들썩했다. 정부의 승인을 받아 기업이 판매한 제품의 유해성으로 많은 소비자들이 막대한 피해를 입었고, 대다수의 국민이 충격에 빠졌다.

그동안의 검찰 수사와 국회 특조위 운영 등으로 사태 해결과 예방방안이 점진적으로 마련되고 있다. 가습기살균제가 유발한 피해와 개인별 질환의 범위, 화학물질 안전성에 대한 검증 시스템개선, 피해자들에 대한 보상방안 마련, 집단소송제, 징벌적 손해배상제도 등 사태와 관련한 다양한 해결책과 예방방안이 심도있게 논의되고 있다.

과학기술계 중에서도 특히 화학물질에 대한 독성과 안전성을 연구하는 연구소에서 이러한 참사가 발생한 원인을 과학기술적으로 짚어보고, 어떠한 기술적 공백이 이러한 참사를 유발했으며 이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어떠한 기술을 개발하고 연구해야 하는지를 깊이 고민해 볼 시점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국가 법체계상 의약품이든 화학물질이든 이에 대한 안전성 검증을 해야 할 의무는 해당 물질을 사용해 수익을 얻으려고 하는 자가 부담하도록 규정되어 있다. 정부는 해당 물질의 용도를 고려한 안전성 검증이 과학적인 방법으로 적절하고 충실히 수행되었는지를 확인한 후 안전성에 문제가 없다고 판단되는 경우에 한해 이를 등록·승인하는 구조로 되어 있다.

이번 가습기살균제 사태의 중대한 원인은 이를 제조·판매한 기업이 해당 물질의 안전성 검증을 충실히 하지 않았거나 유해성을 알면서도 이에 대한 과학적 검증 연구 등을 수행하지 않고 이를 은폐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부실한 안전성 검증을 정부당국이 심사과정에서 밝혀지지 못한 것에 부차적인 원인이 있을 것이다.

심사과정상의 문제는 당연히 향후 의약품이나 화학물질을 규제하고 심사하는 정부기관의 역량과 규모 등을 지속적으로 개선·확대해나가는 방향으로 진행해야 한다. 한국의 경우 선진국 규제기관에 비해 전문인력의 규모와 조직이 턱없이 부족한 형편이다.

일부 보도 등에 따르면 우리나라 정부당국의 심사인력 1인당 허가건수는 미국․일본 등 선진국에 비해 대략 10배 가까이 많다. 시장에 진출하는 개별 화학물질 마다 다차원적이고 치밀한 안전성 검증·심사가 수행될 수 있는 수준으로 기관·조직·전문인력의 규모를 확대하고 역량을 개선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할 것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사태를 유발한 과학기술적인 문제요인은 무엇인가?

과학기술적 요인을 고찰해보기 위해서는 보다 본질적인 측면에서 이 사태를 바라볼 필요가 있다. 기업의 비윤리적인 경영행태는 차치하더라도 왜 기업이 제품의 유해성으로 소비자의 생명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안전성 검증의무를 충실히 이행하지 않았으며, 정부는 왜 국민의 안전과 관련된 중대한 사안을 놓쳤는가라는 문제가 있다. 

수입을 하거나 국내에서 직접 개발한 새로운 물질을 시장에 내놓기 위해서는 안전성에 대한 충분한 평가가 수반돼야 한다. 그리고 이 안전성을 평가하는 대표적인 방법이 실험동물을 활용한 안전성평가시험이다. 이러한 안전성평가시험은 대부분 비임상시험관리기준(GLP, Good Laboratory Practice)이라는 정해진 틀속에서 정부로부터 지정받은 시험기관에서 수행해야만 한다.

비임상시험관리기준(GLP)이란 인체에 미치는 위협을 미리 검증하는 안전성평가시험이 높은 신뢰도를 유지할 수 있도록 해당 시험의 실험조건과 원칙, 실험을 운영하는 인프라, 조직, 인력 등을 엄격한 기준과 원칙하에 두고, 이에 기반한 실험결과만을 올바른 결과로 간주하는 관리체계다. 즉, 이러한 GLP 시험을 운영하는 시험기관은 이 GLP 체계에 부합하는 조직·인력·인프라를 항상 유지하기 위해 엄청난 노력과 비용을 부담하게 된다.

따라서, 화학물질의 안전성을 평가하기 위해서는 고가의 동물실험을 필수적으로 수행해야 하며, 특히 GLP 기준에 부합하는 안전성 데이터의 생산을 위해서는 더 많은 비용부담이 뒤따르고, 또한 장기간에 걸쳐 매우 다양한 항목의 시험․연구를 수행해야 한다.

어떻게든 제품을 신속하게 개발하여 시장에 내놓아야 하는 기업의 입장에서 이렇게 많은 비용․시간․노력이 소요되는 안전성평가시험은 큰 부담이 될 것이며, 당연히 기피하게 되는 측면이 존재할 것이다.

특히, 가습기살균제의 흡입독성을 검증할 수 있는 흡입독성시험은 이러한 안전성평가시험중에서도 고난이도 시험에 해당하며, 시험수행을 위해서는 대규모의 인프라투자 등이 전제돼야 하므로 비용과 기간적인 측면에서 더욱 부담스럽게 받아들여졌을 것이다. 

모든 과학기술은 항상 이를 사용하는 사용자가 편리한 방법으로 진화한다. 예전 특정한 장소에서 제한적으로만 사용되던 전화, 컴퓨터, 인터넷 등은 이제 장소, 공간이라는 제약에서 완전히 탈피해 '모바일'이라는 새로운 개념을 창출하였고, 항상 사람이 조정해야 했던 기계는 이제 점점 똑똑해져 스스로 알아서 일하는 모습으로 바뀌어 가고 있다.

이렇듯 세상이 과학기술을 기반으로 급변하는 이 시대에도 현재 화학물질의 안전성 검증은 고전적인 프레임속에 머물러 있는 것이 현실이다.

실험동물을 활용한 독성시험의 주요 프레임은 30년전이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았으나, 의료보건기술의 발전으로 인한 다양한 진단기술 등은 프레임 자체를 변화시키기 보다는 프레임속으로 녹아들어 오면서 오히려 독성평가시험은 더욱 복잡하고 어려워지고 있는 현실이다.

화학물질 안전성 평가와 관련한 본질적인 문제는 여기에서 찾아야 한다. 즉, 비용과 시간의 제약에서 탈피한 손쉽고 간단하면서도 GLP 체계에서의 신뢰성을 보장받을 수 있는 결과를 창출할 수 있는 새로운 기술이 개발되어야 한다.

최근 동물실험의 윤리적 문제, 신약개발의 효율성 문제 등의 해결을 위해 다양한 대체독성평가기술, 독성예측기술의 연구가 전세계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또 OECD에서도 이러한 새로운 기술을 국제적인 표준으로 일부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러한 독성평가기술의 새로운 트렌드는 동물실험 윤리, 신약개발 비용 보다는 더욱 본질적인 목표인 '인류의 안전하고 건강한 삶'을 위해 더욱 심각하고 진중하게 추진돼야 한다.

비용과 시간의 제약에서 탈피한 안전성평가시험기술은 보다 더 많은 화학물질이 안전성 검증을 받을 수 있도록 할 수 있으며, 기업들의 경우에도 안전성 검증비용을 최소화시킬 수 있으므로 이를 소홀히 하거나 기피할 필요가 없어진다.

오히려 최초 사업기획단계에서부터 안전성문제를 미리 고려할 수 있음으로 인하여 제품개발 등을 더욱 효율적으로 추진하도록 할 수 있다. 나아가 국민들은 지금보다 훨씬 더 안전한 제품과 환경속에서 삶을 영위해나가도록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안전성평가기술에 대한 투자는 항상 국가연구개발 분야에서 후순위로 분류되어 왔다. 줄기세포, 유전자치료제 등 글로벌 혁신신약에 많은 투자가 진행되어 온 과정에서도, 나노물질 등 새로운 화학물질이 지속적으로 개발․양산되는 과정속에서도 항상 이러한 물질을 더욱 안전하게 검증하고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기술에 대한 투자는 외면되어 왔다.

하지만 최근 가습기살균제 참사는 '안전성평가기술'과 같은 안전분야 기술개발투자가 규제완화정책, 산업적 파급력의 부족, 관련 시장의 협소성 등의 사유로 경시되었을 때 어떠한 문제점이 발생할 수 있는지를 명확히 보여줬다.

안전분야 기술투자는 사고가 발생했을 경우 발생하는 영향과 피해 대상자가 어떻게 되는지를 중요하게 판단해 평가돼야 한다. '투입-산출'을 사고발생 가능성과 연계해 실제 가치를 평가하는 방법으로 판단해서는 안된다.

즉, 아무리 가능성이 낮다고 할지라도 발생할만한 충분한 개연성이 있다면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보장한다는 차원에서 과감히 추진되고 투자돼야 하는 것이 올바른 방향과 정책이라고 생각된다.

우리는 데이터가 곧 지능이 되고, 사물과 사물이 필요한 정보를 공유하고 활용하는 제4차 산업혁명의 중심에 있다. BT와 IT분야의 과학기술은 눈부신 발전을 이뤄내고 있고, 새로운 기술은 끊임없이 개발되어 사용되고 있다. 국가가 발전할수록 안전에 대한 국민의 요구수준은 증가하며, 안전에 대한 규제수준이 증가할수록 이에 대한 사회적 비용도 증가한다.  

따라서, 안전에 대한 규제는 항상 '최고 수준' 보다는 사회적 비용을 고려한 '적절한 수준'에서 결정되는 역설이 존재한다. 이러한 역설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비용 부담에서 벗어날 수 있는 새로운 과학기술적 방법이 개발돼야 한다.

21세기 새로운 의약물질과 화학물질 등 안전이 규명되지 못한 신기술 속에서 삶을 영위해야 하는 우리 인류가 반드시 해결해야 하는 문제이며, 과학기술계의 중요한 과제이자 역할이 아닌가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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