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AAS 현장에서 ③ 미국 과학계 커뮤니케이션을 배운다]
평등·참여·투명·질서있는 회의 운영···질문 경쟁하듯 활발
깊고 풍부한 합리적 대화로 이어져

세계 최대 과학지식 정보교류의 장 AAAS(미국과학진흥협회) 연례대회.
AAAS 2017(2월 16~20일·미국 보스턴)은 183년의 역사를 자랑하듯 정보교류의 양이 풍부하고 내용이 알찼다. 

미국을 비롯한 유럽, 아시아 등 크고 작은 나라 과학자들과 이공계 대학원생 수천여명을 불러 모은 이 현장은 최신 과학정보 학습의 장으로 유명하다. 하지만 AAAS 연례대회는 전세계 과학자들이 참여하는 대화와 논의, 교류의 장으로 더 큰 가치를 준다. 

이들의 토론, 회의, 대화 현장을 보면서 우리가 미국과 같은 과학선진국을 따라가기 힘든 이유들이 하나 둘씩 선명해지기 시작했다. 크게 일곱 가지로 압축된다. 5가지가 없고 2가지를 즐긴다. 이를 뒤집으면 우리도 활발하고 알찬 과학기술계 대화와 토론을 펼쳐나갈 수 있는 이유가 되는 것은 물론이다.

① '시크릿' 이사회는 없다···투명한 '합의'를 이룬다

AAAS 이사회 현장. 투명한 가치가 주는 신뢰.<사진=김요셉 기자>
AAAS 이사회 현장. 투명한 가치가 주는 신뢰.<사진=김요셉 기자>
AAAS 연례대회 중 AAAS 이사회가 열렸다. 지난달 19일 미국 쉐라톤보스턴호텔에서다. AAAS 이사회는 회장과 간부진을 비롯해 분과별 대표위원들이 협회 전체 운영 방향에 대해 논의하는 자리다. 한국 과학계에서는 볼 수 없는 진풍경이 눈 앞에 펼쳐졌다. 

비공개가 아니다. AAAS 이사회 회의는 전혀 비밀스럽지 않았다. 누구든 참여할 수 있다. 자료도 모두 공개된다. 다만 일반 참여자는 발언권이 제한될 뿐이다. 

회의장 입구에는 이사회 아젠다가 담긴 자료가 배치돼 있다. 회의장 앞 디스플레이에도 안건에 대한 내용이 전부 공개된다. 이날 안건은 AAAS 펠로우 위원들의 참여 확대 건이었고, 규정 개정이 이뤄졌다. 여러 사안에 대해 위원들간의 열띤 질문과 토론이 이어졌고, 즉석 투표를 통해 합의가 이뤄졌다. 일부 사안은 거의 만장일치로 통과되기도 하고, 펠로우 참여 확대 사안은 부결됐다. 모든 이사회 진행과정이 투명하게 이뤄지고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 신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② '의전'이 없다···핵심에 집중한다

AAAS 연례대회에는 유명한 과학자 뿐만 아니라 정치인, 정부 관료 등 소위 높으신 양반들이라 일컫는 VIP들이 많이 참석한다. 워낙 VIP들이 많아서일까. 높은 직위의 인사를 예우하는 일이 전혀 없다. 축사와 환영사같은 인사말도 없다. 

의전을 갖춘 행사는 찾아볼 수 없다. 각 세미나와 워크숍에서 사회자가 발표자와 패널만 간단히 소개할 뿐이다. 오로지 발표와 논의에 집중한다. 토론하는데 토론만 있지 다른 거품이 없다.

③ '격'이 없다···남녀노소 평등한 참여

다리를 꼬고 앉아도 무례한 게 아니다.<사진=김요셉 기자>
다리를 꼬고 앉아도 무례한 게 아니다.<사진=김요셉 기자>

어딜가나 격이 없다. 토론하고 대화를 나누는 환경이 자연스럽다. 검은 정장 차림 가득한 토론장은 보이지 않고, 국적과 인종이 다양하고 복장도 칼라풀하다. 자리가 모자라면 땅바닥에 앉는게 자연스럽다. 애완견과 함께 토론장에 온 참석자들도 적잖게 보인다. 

지도 교수가 옆에 있거나 누가 있어도 젊은 연구자는 스스럼없이 자신의 의견을 펼친다. 다리를 꼬고 앉거나 짝다리를 짚어도 무례한 게 아니다. 평등한 소통 관점에서 영어라는 언어도 한 몫 한다. 노벨과학상을 받은 과학자나 대통령을 보좌했던 고위급 인사도 현장에서는 참석자 중 한 명일 뿐이다. 

④ '침묵'이 없다···질문의 홍수 

질서 정연하게 줄을 서 질문을 한다.<사진=김요셉 기자>
질서 정연하게 줄을 서 질문을 한다.<사진=김요셉 기자>
질문이 끊이질 않는다. AAAS 연례대회 120여개 프로그램 중에서 침묵이 흐르는 곳을 찾아보기 힘들다. 자연스럽게 질문자들은 발언대에 가서 줄을 선다. 손을 들고 질문하는 경우도 있지만, 대개 준비된 마이크 앞에서 줄을 서 질문을 한다. 질서 정연하다. 

질문을 전투적으로 한다. 경쟁하듯 한다. 뜸들이거나 눈치보는 일도 없다. 질문이 많아 사회자가 매번 조율을 한다. 질문 경쟁 속에 서양 특유의 개척 마인드까지 엿보인다.

⑤ '지연 시간'이 없다···시간을 칼같이 지킨다

AAAS 연례대회의 각 프로그램 시간은 1시간~1시간 30분 세션이 대부분이다. 우리처럼 메인 주제발표에 이어 패널토론이 이어지는 유형은 거의 없다. 주제발표자가 별도로 없고, 3~4명 패널들의 10분 발표가 이어진다. 

시간이 균형있게 지켜진다. 사회자의 역할이 크다. 발표하는 사람도 10분 발표 시간을 잘 지키고, 질문자도 1분 내에 간단히 질문을 던진다. 시간이 길어지면 사회자가 자연스럽게 조율한다. 최종적으로 약속된 시간에 세션이 종료된다. 질문자가 많아도 정해진 시간에 마친다. 지연돼 봐야 1~2분이다. 

⑥ '뒷담화'를 즐긴다···관계의 발전, 아이디어 진화 꽃핀다

다양한 리셉션에서 뒷담화 꽃이 펼쳐졌다.<사진=김요셉 기자>
다양한 리셉션에서 뒷담화 꽃이 펼쳐졌다.<사진=김요셉 기자>
AAAS 연례대회의 꽃은 뒷담화다. 다양한 주제의 리셉션과 워크숍 등을 통해 참석자들간 대화를 이어나간다. 매일 10개의 리셉션이 진행됐고, 중간 중간 커피타임을 통한 대화의 장이 펼쳐졌다. 

패널발표가 끝나고 주제에 대한 이야기를 이어나가기도 하지만, 대개 다양한 만남을 통해 새로운 관계의 발전이 이뤄진다. 아이디어의 진화는 덤이다. 특히 리셉션에서는 맥주와 와인, 간단한 다과와 저녁식사를 겸하면서 뒷담화의 열기가 극에 달한다. 

⑦ '반응'을 즐긴다···모두가 집중 몰입 최고

모두가 집중하는 AAAS 연례대회 현장.<사진=김요셉 기자>
모두가 집중하는 AAAS 연례대회 현장.<사진=김요셉 기자>

발표자와 청중 모두 호응을 즐긴다. 딱딱하지 않고 유연하다. 발표자는 청중들의 반응을 알아보기 위해 즉석에서 질문을 하고, 청중은 손을 들어 자신의 의견을 표출하는 장면이 종종 연출된다. 공감이 가는 질문을 하거나 답변이 이어지면 객석에서 환호성이 터진다. 

발표자와 참석자들은 유연한 소통을 이어간다. 참여자가 없으면 없는대로, 많으면 많은대로 발표와 청중 서로의 반응을 즐긴다. 참가자가 소수일 경우 발표자가 단상에 내려와 물을 따라주며 더 친근한 대화를 이어가는가 하면, 행사장이 가득차면 사회자가 움직이면서 청중과 소통하는 등 유연하게 교감한다. 발표가 진행되면 청중은 발표자를 응시하고, 질문시간이 되면 질문자를 주시한다. 모두가 집중하는 분위기다. 몰입도가 높다. 

AAAS 연례대회를 참석한 김승환 포항공대 물리학과 교수는 "반응에 집중하는 힘은 과학자들의 자발적 참여에서 나온다"라며 "이렇게 깊고 풍부한 토론과 대화의 장을 만든다는게 놀랍다. 우리 과학계도 배워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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