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덕단상]과학계 인사 난맥상···인사권에 민감한 정부 왜?
"과학기술계 현장 결정, 믿고 키우는 방향으로"

KIST(한국과학기술연구원)가 '매우 우수' 평가를 받게 되면 정부출연연구기관 기관평가에 새로운 역사가 쓰이게 된다. 그동안 '매우 우수'를 받은 출연연은 없었다. 첫 사례다. 

기관평가 '매우 우수'라는 의미는 현 원장 체제의 경영 연속성을 3년 더 보장받을 수 있다는 의미다. 이사회에서 3분의 2 찬성 의견을 얻으면 연임이 가능하다. 

그런데 KIST의 '매우 우수' 평가가 과학계의 선례로 남을 수 없는 위기에 처했다. 정부가 나서 제동을 걸었다. 미래창조과학부가 재평가 판단을 내리고 검토에 나선 것. 평가를 주관했던 국가과학기술연구회는 미래부 지시를 받고 부랴부랴 추가 조치를 취하고 있다.

연구현장에서는 이같은 미래부의 결정에 도무지 납득할 수 없다는 반응이다. 이번 사례로 어느 때보다 정부의 '민낯'을 고스란히 목격하게 된다고 말한다. 심판이 아닌 '제3의 숨은 평가자'가 되어 최후 결정권을 직접 지휘하는 모양새이기 때문에 나오는 말이다. 

이번 기관평가에서 절차상 특별한 문제 없이 진행된 전문평가위원회의 활동에 대해 미래부가 특별한 이유 없이 재검토를 요청을 한 것은 아예 드러내놓고 직접 평가에 개입하겠다는 의지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규정상 미래부의 상위평가는 평가가 적정했는지의 여부나 절차 과정상의 문제만 보게 돼 있다. 평가 내용까지 들여다 보려는 것은 미래부의 권한 밖이다. 평가위원들의 전문성을 무시하고 재검토를 조치한 자체가 월권 행위이자 또 다른 형태의 '권위주의'로 현장에서는 받아들여지고 있다. 과학정책의 현장 착근과 신뢰를 강조하면서도 정작 과학기술계 전문위원회가 내린 결정에서는 정부의 입장을 관철시키려는 극명한 모순이다.

현장에서는 '평가위원회가 가동되면 뭐하나 결국 정부가 정하는데' '연구회나 연구재단은 허수아비인가. 존재하면 뭐하나. 기관장 인사도 정부 입맛대로, 연구소 평가도 정부가 정하는데' 등등의 푸념들이 공공연하게 나돈다. 

상황은 다르지만 최근 KISTEP 기관장 선임에 관한 이사회의 결정을 미래부가 뒤집은 것도 같은 맥락에서 해석된다. KISTEP 뿐만 아니라 한국과학창의재단을 비롯한 일련의 과학기술계 기관장 인사의 난맥상도 따지고 보면 미래부의 책임이 크다. 현장 과학자들은 얼마남지 않은 이 정권에서 미래부가 마지막 보은인사의 책임을 맡아서 상황이 이렇게 꼬이게 된 것이라고 관측한다.

오늘의 깨진 신뢰보다 내일의 신뢰가 더 걱정된다. 정부가 나서 과학기술계의 전문성을 외면하며 결정권을 좌지우지 하는 선례들이 반복되는 한, 정부와 현장은 가까워질 수 없다. 현장과의 정책적 괴리가 심해질 수 밖에 없다.  

과학과 기술(Science & Technology)을 이야기 할 때 T를 기술 대신 신뢰(Trust)라고도 이야기 한다. 그만큼 과학계는 정부와 과학자간, 대중, 또 내부의 신뢰가 중요하기 때문에 이런 표현이 공감을 얻는다. 

좋은 나라 지수(Good Country Index)를 창안한 사이먼 안홀트(Simon Anholt)는 핀란드·덴마크·스웨덴같은 노르딕 국가들을 세계에서 가장 좋은 나라로 꼽으면서, 이들 나라는 정부에 대한 국민적 신뢰가 전폭적이라고 평가한다. 정부가 국민을 믿고, 국민이 정부를 절대적으로 신뢰하며 인류 공동의 선(善)을 추구하는 나라가 좋은 나라라고 정의하는 것이다. 

과학기술계를 인정하지 않고, 과학기술자들로부터 신뢰받지 못하는 한국의 정부는 과연 지속가능할 수 있을까. 현장과의 신뢰를 잃어버리고 있는 미래부가 과연 10년, 100년 미래 대계를 바라보고 과학기술 정책을 펼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당장 조만간 치러질 대선 후 차기 정권에서 미래부가 살아남을 수 있을까 심히 우려된다. 

미래부만의 문제는 아니다. 신뢰는 주고 받는 법이다. 과학기술계 내부 문화도 근본적으로 정화되어야 한다. 서로를 인정하지 않고 끌어내리는 과학기술인들의 내부 파편화된 문화는 정부의 현장 신뢰지수를 무너뜨리는 핵심 동력이기 때문이다.

과학자들이 모래알처럼 흩어져 자신의 안위만을 모색하고, 과학계 전체의 안위에 무심한 자세는 고쳐져야 한다. 하나의 팀으로서 서로를 배려하고, 존중하는 문화가 과학계에는 약하다.
 
KIST 문제에 대해 다들 속으로는 아니라고 생각하면서도 나서는 사람은 찾아보기 힘들다. 내 일이 아닌 한 나서지 않는 문화가 개선되지 않으면 과학계는 계속 사회에서 스스로를 외톨이로 만들게 된다. 이러한 전략적 마인드의 부재는 연구에 있어서도 비효율을 가져온다. 서양 과학계에서 가장 중시하는 동료 평가(peer review)가 작동하지 않게 되기 때문이다.
 
과학계가 늘 연구주권을 말한다. 그런데 그 연구주권은 동료의 문제를 내 문제로 인식하고 나설 때 가능해진다. 민주화는 개인의 자유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사회의 자유가 보장될 때 가능한 것이다. 그리고 이는 저절로 되는 것이 아니라 연대를 통한 저항이 있을 때 가능한 것이라고 역사는 말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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