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공계인들 시국 선언 등 현실 참여 새로운 움직임
다양한 독서 긴요...과학계 민주화 이루고 역사 주체돼야

건강하다. 위기가 새로운 발전의 기회가 될 수 있음이 온몸으로 느껴진다. 민주주의를 우리 손으로 실현해감에 현장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눈빛을 나누며 공감한다. 나라와 역사의 진정한 주인이 되는 길을 한 발 한 발 밟아나아가고 있음에 피붙이 모두가 뿌듯해한다.

12일 광화문 시위 소회이다. 사람의 물결로 발디딜 틈 없었고 자신의 의지대로 운신하기 어려웠다. 그럼에도 마음들은 풍족했다. 사람들이 이렇게 많이 모인 것을 본 것은 오랜만이다. 80년대 대통령 선거때 여의도 등에서 세 과시로 백만 대중이 모였다. 그런데 그 때는 동원이 많았다. 2002년 월드컵이나, 2008년 소위 광우병 시위, 2012년 싸이 시청 공연 등 때도 모였으나 이렇듯 많지는 않았다.

많기만 한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얼굴이 진지하고 그러면서도 밝은게 이전과는 다르다. 3대가 같이 와 촛불을 둘러싸고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고, 어린아이들 데리고 온 젊은 부부들도 많다. 중년 얼굴의 사람들도 많다. 교복 차림의 중고등생도 그렇지만 멋낸 젊은 여성들도 많다. 평생 데모에는 안나올 법했을 표정과 차림의 사람들이 넘쳐난다. 못보던 시위 현장 풍광들이다.

새로운 시위문화가 만들어 지고 있다. 악 쓰고,시위대와 구경꾼으로 나뉘고, 복잡해진 교통에 일반인은 불평하고, 때로는 술판이 곁들어지고, 마지막에는 경찰과 충돌하며 폭력이 난무하는 ,시위의 고정관념이 이날 공중으로 산산히 흩어졌다.

1백만명이란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모였고,한 밤에 진행됨에도 이성을 잃지 않고 질서정연하며,주변의 상가는 평소보다 오히려 더 북적이며 정상적으로 상행위를 한다. 해학적으로 각자 주장을 표현하고 공감하고 나눈다. 마치 정치 축제이다.

세상에 이런 나라가 얼마나 있을까?

아랍의 봄에서도 보았고, 선진국인 미국이나 프랑스, 영국 등등에서도 이런 대중 모임은 나중에 약탈이나 방화 등 폭력으로 연결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그럼에도 12일의 시위는 평화로웠고,한 명 한명의 참여로 만들어 가는 민주주의가 무엇인지를 모두는 체감했다. 질서 유지에 나선 경찰도, 기존의 관행을 깨고 청와대 바로 앞까지를 시위 장소로 허용한 법원도, 모두가 같은 나라의 이성적 국민임을 믿었고, 그 믿음은 사실로 입증됐다.

박근혜 대통령의 낮은 자존감에서 비롯된 최순실 등 측근들의 국정 농단으로 벌어진 현 사태는 시위문화에도 새 옷을 입혔지만 과학계에도 새로운 움직임이 일어나게 했다.

과학계는 우리 사회에서 게임 체인저가 된 적이 없다. 조선시대에는 중인으로 양반들 뒤치닥거리를 했다. 일제 때는 기술자로는 양성됐으나 세상을 만드는 과학자로는 성장할 수 없었다. 해방 되고 경제개발을 시작하면서는 근대화 역군으로 대우는 받았으나 새로운 시대를 만드는 주역까지는 안됐다.

과학계 스스로도 이런 대우에 만족해 했다. 연구할 수 있는 여건만 되면 주변 정세가 어떻게 전개되든 개의치 않았다. 80년대 민주화 운동 과정에서 이공계생들의 참여도는 극히 저조했다. 권위주의 시대에 학내에서 데모가 있고, 시국 선언이 있어도 대부분은 인문계 학생과 교수들 몫이었지 이공계 학생과 교수들은 대개 쓸데없는 짓 한다며 외면했다.

인권이 유린되고 특정 집단이 독재해도 경제만은 이상이 없어야 하고, 이를 위해 과학기술이 중요하다는 공감대가 사회에 형성돼 있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이공계 스스로도 관심을 끊은 대목도 있다. 어떤 혼란 상황에서도 이공계 연구비는 확보됐고, 취업자리는 보장됐다. 문과와 이과란 구분은 이과생들에게 정치와는 거리를 두게 했고, 세상이 흔들려도 강의 듣고, 연구실에서 밤샜다. 그 힘으로 우리 사회가 오늘날의 부를 일구게 됐다는 것도 분명히 맞다.

그런데 이공계의 정치, 사회 무관심은 2만 달러 이후 한계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2만 달러까지는 리버스 엔지니어링으로 남의 기술을 가져와 부를 만드는 것이 가능하다. 하지만 3만 달러, 4만 달러는 독창성이 없으면 안된다. 독창적이 되려면 종합적 사고 능력을 가져야 하고, 안되는 것에 도전도 해야하며, 무엇보다 공감 능력이 중요하다. 이 세 가지는 한국의 이공계가 극히 취약한 것이다. 게임 체인저가 되기 보다는 만들어진 판에서 능숙하게 되는데 열중하다보니, 이전 보다 상위 버전의 게임에서는 무기력하게 됐다고 할까?

이런 과학계에 변화의 흐름이 일어나고 있다. 연구실에서 자기 일만 하던 사람들이 사회 문제에 관심 갖기 시작했다.

학생들이 먼저 움직였다. KAIST, UNIST, DGIST, GIST, 포항공대 등 연구 중심대학 학생들이 시국선언을 했다. 교수들도 호응했다. KAIST 교수들이 시국선언을 했다. 이런 일들이 대개 개교이래 처음이다.

무엇이 이들로 하여금 현실에 참여하게 했을까? 어찌보면 우리 과학계는 제 2의 패러다임을 맞이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제 1의 패러다임은 해방이후 개발연대부터 2만 달러까지의 시기이다. 그것은 '이기심'에 기반해 이공계로서의 역할을 하는 것이다. 대표적인 내용이 이과와 문과의 '분리'. 교육부터 둘을 철저히 나누었고, 그에 따라 이후 인생 행로도 달랐다.

이과는 문과에 기웃거리는 것을 스스로 금했고, 그러면서 이과는 인류 기여란 이상은 책상속에도 없었고, 상당수가 취업과 대우란 외형에 방점을 두었다. 그도 의미는 있었다. 아무 자원이 없는 한국에서 과학은 국부 창출의 필살기였다. 방법론도 비교적 간단했다. 외국의 기술을 가져다가 국산화하면 되는 것이었다. 그래서 다른 나라보다 싸게, 빠르게 복제품을 만들면 일정한 시장은 확보되는 시기였다. 이공계의 기본과 기초를 다지는 시기였다고도 할 수 있다.

이 시기 정책 결정자들은 이공계를 우수 인력으로 여겨 상대적으로 풍족한 대우를 해주었다. 스스로 사고하고 생각하기 보다는 시키는 일을 정확하게 하는 것이 이공계의 미덕이기도 했다. 자기 생각이나 다른 시도는 일부의 사람에게는 허용됐으나 대부분은 사람들은 주어진 여건에서 최적의 해를 찾도록 하는 임무가 주어졌다. 이 힘으로 80달러 국가는 40여년이란 단시일내에 2만 달러 국가로 발돋움했다.

그런데 이 패러다임에 이상징후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대표적인 것이 현시대의 화두인 4차 산업혁명. 논리적으로는 3차 산업혁명까지 우등생으로 잘 추격한만큼 관성으로라도 4차 산업혁명에도 연착륙해야 한다. 그러나 지금의 한국 과학계는 무기력하다. 연구비는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투입됐지만 눈에 띄는 성과는 없고, 더 큰 문제는 미래가 밝아보이지도 않는다는 것이다. 새로운 패러다임이 필요함에도 우리는 변화를 못하고, 기존의 관행만 반복하고 있는 것에 이유가 있는 것이 아닐까? 새로운 패러다임이 요구된다는 목소리가 연구 현장 곳곳에서 나온다.

제 2의 패러다임은 '이타심'에 기반한 공동체와의 공존이고, 단순화시키면 문과와 이과의 '경계 파괴'이다. 서양 학문에는 둘의 구분이 없다. 자유롭게 넘나든다. 물리학 박사가 철학 박사 학위를 갖고 있기도 하고, 역사학자가 생물학 전공자이기도 하다. 우리에게는 낯설지만 그들에게는 일상사이다.

우리에게 구분이 있는 것은 서양 문명을 빨리 복사하기 위해 일본이 140여년전에 만든 문과 이과 분리를 식민 정책의 일환으로 받아들인 것이다. 해방되고도 현실상의 필요도 있었고, 그 필요성이 소멸한 이후도 관행적으로 따라하고 있다.

문과가 이과를 모르니 과학과 관련된 정책 결정이 파행적이다. 일관성이 없고, 의사결정권자에 가까운 이공계 사람의 취향에 따라 급변한다. 이과가 문과를 모르니 인류 삶의 기여란 연구의 가치는 도외시되고, 당장 돈이 되는 연구가 선호된다. 연구실내의 민주화와 과학계의 자유로운 토론, 그에 기반한 기발한 발상 등은 기대하기 어렵다. 현실 사회에 대한 공감력도 매우 떨어진다.
 
인간이 지녀야할 기본 가치, 학문하는 이유 및 즐거움과 지식인의 역할, 세계 과학사는 물론이고 우리보다 근대화에 성공한 일본 등의 과학사, 급속한 발전을 이루고 있는 중국의 과학사, 폐허에서 오늘의 발전을 가져온 선배 과학자들의 노력, 한국 사회가 오늘날에 이르기까지의 과정, 민주주의의 기본 가치와 노블레스 오블리쥬, 한 세대 앞을 내다보는 미래 설계와 인류의 고향인 우주에 대한 학습 등등을 알아야 한다.

이 과정에서 반드시 있어야 하는 것이 이공계인들의 다양한 독서를 통한 축적이다. '축적의 시간'이란 책과 비슷한 맥락으로 이공계 학생들의 인문 축적이 필요하다. 그러려면 교수들도 다양한 독서를 해야 하고, 연구자들도 주변을 성찰할 수 있는 독서와 지긋한 사색을 통해 자신들의 내공을 두텁게 해야한다.

이런 측면에서 최근의 사태는 살아있는 교과서이다. 이 사태의 해결을 전문가라고 자처하는 정치인 및 운동권 등에만 맡겨놓지 말아야 한다. 이공계 사람들이 과학 지식과 과학적 사고를 바탕으로 시민으로서 행동하며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 바로 결과가 나오지는 않겠지만 과정에 참여하는 것만으로도 공부도 되고, 사회적으로도 의미있는 축적의 계기가 될 것이다.

이공계인들은 진리에 다가서는데 인문계보다 유리하다. 축적된 지식을 이해할 수 있는 수학과 물리란 언어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갖고 있는 이공계 지식을 기반으로 현실 문제에 대해서도 관심 갖고 참여할 때 이 시회에 진정한 민주주의를 만들어 내는데 큰 역할을 할 것이고, 그럴 때 이공계가 원하는 연구환경도 마련될 것이다.

유럽과 미국, 일본의 시민 혁명이 성공한 큰 이유 가운데 하나는 이공계 지식인들의 연구 및 생산활동을 통한 물적 토대 마련이다. 우리 사회도 이공계 사람들의 헌신과 활약으로 물적 토대가 튼실하게 쌓아졌다. 그러나 그동안 이공계는 생산에는 기여했지만 스스로가 게임 메이커가 아니었기에 배분에는 관여하지 못하고, 자신들이 만든 것의 일부를 배분 받았다.

이제는 달라져야 한다. 이공계도 현실 문제에 관심 가져야 한다. 이공계 사람들도 민주주의가 무엇인지, 대한민국은 어떤 역사를 갖고 왔으며, 한반도에 바람직한 국가는 어떤 것인지,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 환경은 어떻고 바람직한 미래는 어떤 것인지 등등에 대해 관심을 갖고 원하는 세상이 현실이 되도록 행동할 필요가 있다. 게임 체인저가 되어야 한다.

그런 맥락에서 최근의 이공계 시국선언은 상징적 사건이고, 새로운 패러다임으로의 일보(一步)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이 기반이 되어 과학행정 민주화와 기관장 선임 등 연구 현장 민주화, 과학자들의 참여를 통한 연구전략 마련 등등 연구환경이 보다 과학자 친화적으로 마련되기를 기원한다. 연구 현장에서 과학자들도 정년에 관계 없이 몰입해 연구하며 탁월한 성과를 내 스스로도 만족하고, 이공계가 역사의 주체로 역할하게 되기를 국민의 한 사람으로 두 손 모아 바란다.

12일 저녁 서울 지하철 1호선 시청역에서 사람들이 내려 집회장소로 가고 있다.여기서부터 많다.<사진=이석봉>
12일 저녁 서울 지하철 1호선 시청역에서 사람들이 내려 집회장소로 가고 있다.여기서부터 많다.<사진=이석봉>

촛불을 사러 사람들이 줄서 있다.<사진=이석봉>
촛불을 사러 사람들이 줄서 있다.<사진=이석봉>

대한문 앞 포장 마차의 이름이 해학적이다.<사진=이석봉>
대한문 앞 포장 마차의 이름이 해학적이다.<사진=이석봉>

시청 앞 집회 모습.<사진=이석봉>
시청 앞 집회 모습.<사진=이석봉>

초가 수북히 쌓여있다.<사진=이석봉>
초가 수북히 쌓여있다.<사진=이석봉>

외국인이 여유롭게 앉아 시위를 구경하고 있다.<사진=이석봉>
외국인이 여유롭게 앉아 시위를 구경하고 있다.<사진=이석봉>

어느 단체 사람들이 촛불을 켜놓고 앉아있다.<사진=이석봉>
어느 단체 사람들이 촛불을 켜놓고 앉아있다.<사진=이석봉>

세종대왕 동상에서 광화문 네거리를 향해 본 모습.<사진=이석봉>
세종대왕 동상에서 광화문 네거리를 향해 본 모습.<사진=이석봉>

시위 비용 마련을 위한 즉석 모금도 벌어졌다.<사진=이석봉>
시위 비용 마련을 위한 즉석 모금도 벌어졌다.<사진=이석봉>

현 사태를 희화화한 그림.<사진=이석봉>
현 사태를 희화화한 그림.<사진=이석봉>

청년들이 쓰레기를 모으며 거리를 깨끗하게 만들고 있다.<사진=이석봉>
청년들이 쓰레기를 모으며 거리를 깨끗하게 만들고 있다.<사진=이석봉>

세종문회회관 앞 모습.<사진=이석봉>
세종문회회관 앞 모습.<사진=이석봉>

세종문화회관 옆에 걸린 민주주의 상징 문구.<사진=이석봉>
세종문화회관 옆에 걸린 민주주의 상징 문구.<사진=이석봉>

가족들이 많이 나와 기념사진을 찍는 등 시위는 흡사 축제였다.<사진=이석봉>
가족들이 많이 나와 기념사진을 찍는 등 시위는 흡사 축제였다.<사진=이석봉>

많은 인파로 거리 상인들은 대목을 맞았다.100만이 한밤에 모였음에도 약탈이 없이 오히려 장사가 잘되는 나라.자랑스러워해도 되지 않을까?<사진=이석봉>
많은 인파로 거리 상인들은 대목을 맞았다.100만이 한밤에 모였음에도 약탈이 없이 오히려 장사가 잘되는 나라.자랑스러워해도 되지 않을까?<사진=이석봉>

학생들의 대통령 하야와 관련한 퍼포먼스.<사진=이석봉>
학생들의 대통령 하야와 관련한 퍼포먼스.<사진=이석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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