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방 문제 주인의식 긴요···과학자들 머리 맞대야"

왼쪽부터 박창규 전ADD 소장, 장인순 전 원자력연 소장, 백홍열 전ADD 소장, 김용환 KIST 단장(순서없음).<사진=대덕넷 자료>
왼쪽부터 박창규 전ADD 소장, 장인순 전 원자력연 소장, 백홍열 전ADD 소장, 김용환 KIST 단장(순서없음).<사진=대덕넷 자료>
"개구리를 냄비에 넣고 물을 천천히 끓이면 그대로 삶아져 죽는다. 어쩌면 현재 한국은 북한의 1차 핵실험부터 5차까지 핵무기 불에 천천히 삶아지고 있는 개구리 신세는 아닌지 생각해 봐야 한다. 과학계는 국방에 대한 안일한 생각을 떨쳐버려야 한다."

"과학기술계와 군이 소통해야 한다. 군의 폐쇄성때문에 현 국방기술은 과학기술자 없이 알아서 기획하고 오더를 내리는 방식으로밖에 진행되지 않는다. 과학기술계가 미래 기획단계에 참여해 전쟁이 어떻게 전개될지 상상하고 향후 10~20년 후 어떤 무기와 기술이 필요할지 함께 논의할 수 있어야 한다."

최근 북핵 도발 위기감이 고조되는 가운데 국내 국방과학 전문가들은 북한이 언제든 핵을 쏠 능력을 갖추고 있으며, 북핵 위협을 단순한 '핵 능력 과시'로 인식하면 안된다고 경고하고 있다.

그러면서 전문가들은 북한의 핵 위협으로부터 어떠한 자위 방어 조치가 필요하고 어떻게 대응할지 과학계가 스스로 위협을 인지하고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체적으로 그동안 체계적인 국방 시나리오를 마련하지 않고, 주변국에만 의존해 왔다는 의견이 적지 않다.

국방 무기연구 분야의 한 과학자는 "북한의 핵실험 이후 우리가 내놓은 대응 시나리오 전무하고 철저히 주변국 의존도만 높아지고 있다"며 "대응책으로 중국을 통한 대북압박 요청과 UN 재개 강화 추진 등이 대부분이다"고 지적했다.

◆ 단계별 군사 대비태세 기술개발 대응 의견···과학자들 사이 '핵무장론'도 고개

그런 가운데 백홍열 前 ADD 소장은 북핵 도발을 대비한 4단계 군사 대비태세 기술 개발을 제안했다. 1단계는 북한의 핵미사일을 24시간 감시할 수 있는 감시체계 개발이다. 2단계는 도발 징후 시 북한 핵미사일을 선제 공격해 무력화시키기 위한 타격체계 개발이다. 3단계는 일부 생존한 핵미사일이 발사될 경우 감시·추적·요격할 수 있는 다단계 대탄도탄 방어체계 개발, 그리고 마지막 단계는 피폭을 당했을 경우를 대비해 핵 방호 기술과 피해지역 복구 관리기술 개발 단계다.

백 前 소장은 "북한의 핵 공격을 무력화시키고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구체적 군사 대비태세가 마련돼야 한다"며 "국제사회가 북한의 핵무기를 반드시 무력화시키도록 외교적인 노력도 필요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북핵에 대응하기 위해 한국의 핵무장론을 주장하는 전문가도 있다. 박창규 前 ADD 소장은 "북핵 대응을 위해 우리도 핵무기를 만들거나, 미국으로부터 핵을 받아 올 수 있다"며 "심지어 북한 핵을 타격해 위협 요인을 제거하는 방법도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스라엘이 지난 1981년 감행한 이라크 원자로 공습이나 2007년 시리아 원자로 공격 등이 대표적 사례"라며 "이스라엘은 이런 공습을 통해 이라크와 시리아의 핵 위협이 자라기 전에 싹을 잘랐다"고 강조했다.

김용환 KIST 안보기술개발단장 역시 우리나라 핵 보유에 찬성하면서 북한의 잠수함 원자탄 발사 기술을 저지할 수 있는 원자력 잠수함 기술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또 국방과학 한 전문가는 자주국방 문제해결 노력을 눈여겨 봐야 한다며 파키스탄을 예로 들었다. 인도는 지난 1974년 첫 핵실험 이후 1998년 5차례 핵실험을 했다. 인도의 라이벌인 파키스탄도 인도의 핵위협을 이유로 핵 개발을 추진, 인도 핵실험 보름 후 총 6차례의 핵실험을 강행한 바 있다. 

이 전문가는 "파키스탄은 핵 강국으로부터 보복을 우려해 나름대로 국방 문제를 풀어가려는 노력을 했다"며 "북한이 핵을 보유했다고 우리도 핵을 보유하자는 의미가 아니다. 북핵 문제를 스스로 풀어가겠다는 주인의식을 깨워야 한다"고 말했다.

◆ "국방 R&D기획, 개방하고 예산 새롭게 정립 시급"···과학계가 뭉쳐야

국방과학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과학기술계가 군을 지원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돼야 함과 동시에 지금이야말로 국방 연구개발 예산이 새롭게 정립될 골든타임이라고 정의한다.

김용환 KIST 단장에 따르면 선진국은 정부 연구개발 예산 중 30% 이상을, 미국의 경우 53~55%를 국방 연구개발에 투자하고 있다. 군에서 자체적으로 연구개발도 하지만 충분한 예산이 뒷받침되기 때문에 대학·연구소와 정부연구소, 민간연구소 등이 국방성 위탁과제에 적극 참여하고 있다. 미국의 대학교수는 정부과제 2건 중 1건이 국방과제일 정도로 민군협력이 자연스럽다.
 
반면 우리나라는 정부 연구개발 예산 중 13%가 국방 연구개발 예산이다. 이 중 80%는 방위산업체로 흘러들어 완제품 조립 등 체계개발에 사용된다. 핵심 연구개발비는 20%뿐이다.

김 단장은 "기초연구비가 500억원도 안되니 우리가 개발했다는 성과의 기초기술 대부분이 해외기술"이라며 "토종 미래 원천기술을 개발해야 방산수출도 활성화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국방 과학기술에 과학기술자가 참여하기 어려운 시스템과 제도적 문제도 적지 않다. 보안상 비밀리에 프로젝트가 진행되다보니 연구개발 성과를 발표할 수도, 국제저널에 실을 수 없어 일반 정부연구소나 대학에서는 좋은 평가를 받기 어렵다.

국방 과학기술 평가시스템이 대학과 출연연의 평과와 다소 동떨어져 있다 보니 불이익을 감수하고 국방과학에 매진할 연구원이 없을 수 밖에 없는 모양새다.

때문에 김 단장은 무엇보다 많은 연구자들이 미래 국방과학기술 기획단계에 참여할 수 있도록 국방부가 미국의 달파(DARPA, 방위고등연구계획국)와 같이 기획단계를 오픈할 것을 제안했다.
 
300여명의 과학자 집단이 모여 일하는 DARPA는 전국에서 국방기술 아이디어를 수집하고 이를 기반으로 매주 한 번씩 모여 향후 필요한 기술들을 논의한다. 최근의 대표적 성과 중 하나가 무인공격기다.
 
그는 "이 기술을 개발할 때 미국의 육해공군 다 반대했지만 달파가 앞으로는 무인전쟁시대가 올 것을 간파하고 민간항공사에 제작 의뢰해 무인폭격기와 정찰기를 만들었다"면서 "반면 우리는 국방기술 기획단계부터 숨어서 한다. 군이 기획을 마치면 과학자들에게 의뢰를 할 뿐이다. 극한기술을 요구하는 것이 국방기술이다. 과학기술계에 미래 요구가 보여야 미래를 대비할 수 있다. 최초 기획단계에서 과학기술인이 역할을 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창규 前 소장 역시 "북핵 도발에 직접적인 대응 시나리오를 구성하려면 과학계 전부가 뭉쳐야 한다"며 "최소한 국방 관련 문제를 함께 고민할 수 있는 협조·협력할 시스템 마련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박 전 소장은 "국방을 위한 과학기술이 따로 있고, 경제를 위한 과학기술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결국 모든 것이 하나의 과학기술"이라며 "국가 안보를 위해 국가의 모든 역량을 모두 동원해야 한다. 국방은 과학기술이 중심돼야 한다"고 피력했다. 

과학계 한 원로는 "북한의 핵무기는 국가 생존이 달린 매우 심각한 문제다. 출연연 과학자들이 냉정하고 단호하게 함께 대응해야 한다"며 "과학자를 비롯한 지식인들이 국방에 대한 위기의식을 고찰해야 한다. 북한 핵무기를 머리에 이고 우리가 한반도에서 살아갈 수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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