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아침 강가에서 채집한 카이를 손질하는 라오스 사람들.
이른 아침 강가에서 채집한 카이를 손질하는 라오스 사람들.
라오스에서 지낸 지난 2년의 시간을 돌아본다. 청춘의 한 장을 채워준, 소중함으로 추억될 아름다운 이름. 그 중 유난히 선명하게 기억되는 모습이 있다. 아마 내게는 조금 더 라오스답고 자연스럽게 다가왔던 순간이었을 탓이리라.

나는 제주도가 좋다. 자연의 색감과 바람내음을 고스란히 간직해서 고맙다. 제주도에 가면 물질하는 해녀들의 모습을 한참 바라보곤 한다. 얼마 전 제주도에 처음으로 해녀학교가 생겼다는 소식에 덩달아 가슴이 설레기도 했다. 정작 제주도에 가 본 횟수는 손가락에 꼽지만 모든 만남이 나에겐 기억되는 순간으로 남아있다.

바다가 없는 라오스. 이곳에서 제주도와 해녀를 떠올리는 순간이 있다. 이른 아침, 강가에서 카이(민물조류)를 손질하는 사람들과 풍경이 그렇다. 언뜻 매생이와 비슷하게 보이지만 조금 더 점성이 좋고 촉감이 질기다. 비가 오지 않는 건기, 맑은 강가에서만 한시적으로 채집할 수 있어서인지 채집한 카이를 무두질하는 주민들의 손길이 유난히 분주하고 경쾌하다.

현지에서는 카이를 이용해 카이펜이라는 제품을 생산하고 판매한다. 부각과 김을 섞어놓은 형태라고 생각하면 이해하기 쉽다. 생산시기와 지역이 제한적이기에 라오스 북부지역을 대표하는 특산품이기도 하다. 건기에 도로를 따라 북부지역을 다니다보면 길가를 따라 양쪽으로 널려있는 카이펜을 쉽게 볼 수 있다. 대부분 개인 가정에서 원재료 손질부터 생산, 건조, 포장까지 담당하는 가내수공업 생산방식을 따른다. 물론 예외적인 집단 생산방식도 존재한다.

현장조사 중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카이 서식지가 북쪽으로 이동하고 있다. 자세히 살펴보면 온난화, 기후변화 등 수많은 요인이 있겠지만 수력발전을 위한 댐 건설이 주된 원인이다. 내가 지내고 있는 루앙프라방을 기준으로 예전에는 남쪽에서 주로 카이를 채집했었다. 하지만 댐이 건설되고, 마을이 수몰되고, 수질이 악화되면서 자연스레 카이 서식지 또한 조금 더 맑은 강의 지류를 따라 북상했다.

수력발전 댐 건설로 수몰지역 주민을 위한 마을.
수력발전 댐 건설로 수몰지역 주민을 위한 마을.
지금도 라오스 내 중국자본을 이용한 수력발전 댐 건설은 현재 진행형이다. 루앙프라방에서 차량을 타고 북쪽으로 향하다 보면 20-30분 간격으로 줄지어 건설 중인 댐들을 볼 수 있다. 정확히 알지는 못하지만 아마 콘크리트 기둥이 묻힌 바로 그 자리에 몇 해 전까지만 해도 카이가 서식하고 있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머지않아 카이펜이 지금의 라오스 북부지역이 아닌 국토 최북단을 대표하는 특산품이 될지도 모를 일이다.

새삼 '자연스러움'에 대해 생각해본다. 새벽녘 강가에서 카이를 손질하는 사람들, 자연과 벗하며 살아가는 그들의 삶이 무척 자연스럽게 다가왔었다. 하지만 자연스럽지 못한 손길이 빗어낸 결과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인 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세월이 전해준 변화가 아닐진대, 흐르는 강물이 굽어낸 물길이 아닐진대, 우리가 과연 어느 것 하나 자연스럽다 단정할 수 있을까.

댐이 건설되면서 카이 서식지가 북쪽으로 이동했고 사람들도 마을을 떠났다. 그리고 수몰된 마을주민을 위해 새로운 마을이 조성되었다. 황량하고 을씨년스럽게 늘어선 특징 없는 건물들. 도로를 기준해 마치 양쪽을 데칼코마니로 눌러 찍어놓은 것 같다. 수력발전소 건설을 위해서인지 정비된 흙길 도로가 자로 잰 듯 정확하게 마을을 가로지른다. 라오스에서 처음으로 느껴보는 정적과 이질감이 마을을 감돈다.

섣부른 미숙함일지 모르겠다. 라오스를 이해하기에 나의 경험은 한없이 부족하다. 수력발전이 주는 유용함에 대해서도 할 수 있는 말이 거의 없다. 하지만 나의 시선으로 바라보고, 나의 생각과 언어로 담아낸 라오스의 자연, 사람, 과학기술에 대한 이야기는 미숙함을 성숙으로 향하게 해주는 용기라고 믿는다.

과거 카이가 서식했던 인근지역 사람들은 새로운 마을과 전력을 얻고 고유한 삶의 방식을 잃었다. 현재 북부지역 사람들은 새로운 소득원을 얻고 무언가를 잃었을 것이다. 흔히 잃은 무엇을 기회비용이라 말하지만 우리는 그것을 단지 수학의 계산식으로 담아낼 수는 없다. 무엇보다 시간의 흐름을 반영한 발전(development)과 그렇지 못한 개발(development)은 결코 동의어가 될 수 없다.

라오스의 내일을 위해 보낸 지난 2년의 시간. 나의 앞선 열정이 누군가의 무엇을 잃게 하거나 빼앗지 않았기를 마음을 다해 기도한다. 내가 라오스에서 얻은 것이 무척이나 많기에 나의 풍성함이 다른 이의 궁핍함이 아닌 모두의 풍성함이 되었으면 좋겠다.

마지막으로 이런 생각을 해본다. 칼럼을 여는 글에서 라오스의 맑은 하늘을 이야기했다. 그리고 연재했던 칼럼 구석구석에 라오스 사람들이 전해준 온기와 정을 담아두었다. 현지에서 마음과 뜻을 다해 라오스를 돕고 헌신하는 분들이 도처에 있다. 참 고마운 분들이다. 다만 새로운 무엇을 전하기 위해 노력하는 그분들의 노력이 꽃보다 아름다운 라오스의 하늘과 사람들의 마음을 가리지 않길 바래본다.

귀국과 함께 1년간 연재한 칼럼을 맺습니다. 라오스 이야기를 통해 맺어진 모든 인연에 감사드립니다. 부족한 글이지만 천천히 걸어본 라오스 여정에 동행해주셔서 고맙습니다. 라오스의 하늘을 닮은 맑은 푸름이 모두에게 함께하길 기원하겠습니다.

가장 좋아하는 메콩강 풍경.
가장 좋아하는 메콩강 풍경.
저작권자 © 헬로디디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