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전도입국, 관리‧규제‧연구 교육 수요 증가
원자력협력재단, 한국형 원자력 교육과정 영문핸드북 발간

이제는 무엇이든 하드웨어만으로는 승부를 가릴 수 없다. 소프트웨어를 갖춰야 인정을 받는 시대다. 원자력발전소 수출도 마찬가지다. 전문가들은 원전 자체만 사고파는 시대는 끝났다고 말한다.

원전을 수출하는 것 뿐만 아니라, 원전 도입국의 인력이 직접 발전소를 관리‧규제‧연구할 수 있는 '교육'도 수출되어야 한다는 원자력계의 목소리가 점차 고조되고 있다. 원전 수출 관련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동시에 만족하는 플랫폼을 갖춰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가운데 우리나라에서는 처음으로 '원자력통합교육훈련과정 영문핸드북'이 만들어졌다. 원자력협력재단(사무총장 박진선)이 올해 3월 발간한 이 핸드북은 국내 기관별 원자력교육 프로그램을 총망라해 정리한 지식기반으로, 원전 도입국이 원하는 교육 분야와 수준에 맞는 교육과정을 상세히 제공한다.

핸드북을 검수한 강현국 KAIST 원자력공학과 교수는 "교육에 대한 수요가 올라간 지금, 우리나라에도 잘 세팅된 교육 프로그램이 있다는 것을 다른 나라에 보여줘야 그들도 협력 의사를 보일 것"이라며 "핸드북은 원전 수출 전 초동단계에서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라고 발간 의의를 밝혔다.

◆ '남의 손에 원전 맡길 수 없다'···인력양성에 투자하는 원전도입국

최근 많은 국가들은 원전을 지어주는 국가에 모든 것을 맡기는 턴키(Turn-key) 방식에서 벗어나 주도적으로 원전을 관리하기 위해 교육을 받는데 적극적이다.

UAE(아랍에미리트), 사우디아라비아, 인도네시아 등 원전도입(예정)국가들이 원전 설립을 비롯해 관리 기술까지 자립하려는 인식이 강해지면서 인력교육의 수요가 증가하고 있다. '남의 손에 발전소를 맡길 수 없다'는 생각이 강한 배경이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원자력발전소를 세우기로 결정하면서 인력양성을 제일 먼저 시작했다. 스마트원자로 설계에 참여하는 정도임에도 불구하고 엄청난 돈을 들여 인력교육을 시행하는 것과 더불어 전문 분야별 인력 수요와 필요한 내용을 자세히 분석해 교육 백서까지 만들었다.

인도네시아 역시 선교육 후도입 방식으로 인력양성이 충분히 이뤄졌을 때 원자력발전소를 도입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강현국 교수는 "물건을 사려는 사람이 이런 자세인데 팔 사람이 아무것도 없으면 못 판다"며 "우리에게도 잘 세팅된 교육프로그램이 있는 것을 보여주고 판매 전략으로 삼아야 한다"고 주문했다.

◆ 영문핸드북, 원전 도입 전부터 후까지 필요 종합교육 제시 

하나의 원자력발전소를 건설하고 유지하는 것은 기본적인 교육만으로 이뤄질 수 없다. 원전 운영, 규제기관 설립, 교육기반 구축, 연구·분석, 기계·납품, 행정조직 구축 등을 포함한 넓은 범위의 교육이 필요하다.

영문 핸드북은 국내 원자력 산·학·연 등 유관기관에서 진행 중인 원자력 교육훈련 프로그램 정책결정자, 산업 및 연구개발 인력, 규제인력, 차세대인력 등 대상별, 기술별로 교육 내용을 분류했다.

핸드북을 통해 원자력기술 도입을 위해 정부조직, 대학 및 연구소, 산업계에서 이행해야 하는 사항은 무엇인지 또 구체적인 인력양성 계획수립 시기 및 시기별로 필요한 인력양성 분야는 무엇인지를 알 수 있다. 여기에는 국내 유관 기관별 제공 교육, 강사진, 교육시간, 교육수준 등이 포함돼 있다.

우리나라는 2009년 UAE(아랍에미리트)에 원전을 수출했던 경험이 있기 때문에 그 당시 이뤄진 개설 강좌와 내용이 핸드북 내용의 밑바탕이 됐다.

그동안 통일된 교육체제가 없어 원전 도입국의 주먹구구식 요구를 받아주고 일회성으로 교육을 구성하는 비효율적인 방식이 지속됐으나 이번 핸드북 발간을 통해 이와 같은 문제점들을 해결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원자력통합교육훈련과정 영문핸드북 'Nuclear Education and Training Programme in Korea' 표지(위)와 교육과정 표 일부(아래) <사진=한국원자력협력재단 제공>
원자력통합교육훈련과정 영문핸드북 'Nuclear Education and Training Programme in Korea' 표지(위)와 교육과정 표 일부(아래) <사진=한국원자력협력재단 제공>

핸드북은 현재 원자력 관련 기관에 배포된 상태다.

김긍구 한국원자력연구원 SMART 개발사업단장은 학교와 민간기업 등 외국손님을 자주 만나는데 이들에게 국내 원자력 인력양성 교육을 홍보하기 위해 핸드북을 나눠준다. 김 단장은 "국가마다 교육 수준이 다르고 원하는 교육 분야가 다르기 때문에 맞춤식 내용을 제공하는 핸드북이 유용하다"고 장점을 언급했다.

그에 따르면 핸드북은 원자력 인프라를 갖추지 못한 국가에게 특히 호응을 얻는다. 김 단장은 "개도국은 인프라가 부족하지만, 교육을 하면 원자력발전소 운영이 가능하다는 것을 핸드북을 통해 보여줄 수 있다"고 말했다.

김긍구 박사는 우리나라가 해야 할 다음 과제로 원전건설과 인력양성 프로그램을 연계한 IT 솔루션 구축을 꼽았다.

◆ 선진국, 원전+교육 패키지 수출···한국 다음 과제 통합 IT 솔루션 구축

우리나라는 이제 핸드북을 만드는 수준이지만 원전 선진국들은 이미 원전과 교육·훈련 시스템을 패키지로 수출하고 있다.

가장 돋보이는 선도국가는 러시아다. 러시아는 원전건설 예정국에 건설 시작 10여 년 전부터 필요한 인력수, 행정조직, 기술수준 등에 대한 큰 그림을 제시하고 기술도입 시기별로 필요한 교육훈련 프로그램을 맞춤형으로 제공하는 강점을 가지고 있다.

러시아와 원전 계약을 맺은 국가들은 원자력기술도입 준비, 원전건설, 원전 운영, 안전규제, 원전 유지보수, 원자력 R&D에 이르기까지 원전도입 전주기에 걸쳐 필요한 인력의 수와 이에 필요한 교육과정, 나아가 원전건설을 통한 사회적·경제적 가치까지 독점적으로 제공받는다. 주목할 점은, 이러한 종합적인 정보들을 온라인 IT 솔루션(OCTOPUS: https://octopus-rosatom.ru)) 시스템을 통해 이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러시아는 오랜 기간 구 공산권 국가를 대상으로 교육을 진행해 노하우와 인프라를 바탕으로 영어로 된 교육프로그램을 세팅하고 교육 편람 형태의 원자력 인력양성 별도 홈페이지(ROSATOM HR Solution/ http://www.atomhrs.com)를 만들어 운영한다.

ROSATOM HRS 에는 러시아내 모든 원자력 행정 및 기술 관련 교육과정이 일목요연하게 정리돼 있으며 누구나 방문해 교육 프로그램을 설계할 수 있다. ROSATOM은 원자력 교육·훈련 대상을 5개로 그룹화하고 원전도입국의 인력양성 계획 수립부터 원전 건설 계획, 원자력 교육·훈련 프로그램 등을 제공한다.

이러한 러시아만의 원전 수출 전략을 통해 러시아는 2015년 12월 기준, 전 세계 13개국에 34개 원전을 수출해 1700억 달러이상의 계약을 달성하며 세계 원전 시장을 주도하고 있다.

프랑스는 원전도입 로드맵과 인력양성 계획을 파트너국가에게 제시할 수 있는 수준으로 국가 원자력 통합교육훈련 체계를 구축했다. 프랑스는 원전건설 이전 단계에서도 원자력 교육훈련체계 및 행정시스템을 원전과 패키지로 판매하고 있다. 일본의 원자력인재육성네트워크는 원자력 교육과정의 표준화와 국제화를 추진하며 교육프로그램을 확대·재편중이다.

강현국 교수는 "국가 여러 기관이 적극적으로 나서서 교육을 제공한다는 우리나라의 큰 장점을 활용해 국가가 제공하는 교육을 핸드북으로 발간한 것은 잘한 일이며 한 권의 책자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고 평가했다. 그는 "핸드북에 게재된 교육을 언제라도 실행할 수 있도록 유지하는 것은 물론이고 내용을 발전시켜야 한다"고 덧붙였다.

박진선 원자력협력재단 사무총장은 "이번 영문핸드북이 원전 수출의 기반을 다질 것으로 기대한다"며 "앞으로 통합 IT 프로그램을 개발해 해외 국가들의 원자력 기술도입과 원전건설에 도움이 되도록 할 것"이라고 밝혔다.

러시아의 원자력 인력양성 교육과정 홈페이지 'ROSATOM HR Solution' <출처=www.atomhrs.com>
러시아의 원자력 인력양성 교육과정 홈페이지 'ROSATOM HR Solution' <출처=www.atomhr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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