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한순흥 KAIST 교수

우리나라의 연구개발비는 세계 최고 수준이다. 2003년에는 GDP의 2.64%로 19조원였으나 2014년에는 GDP의 4.29%로 64조원으로 늘어났다. 부풀려진 액수라는 지적이 일부 있기는 하지만 이 규모는 %로는 세계 1위이며 액수로는 세계 6위이다.

하지만 연구개발비 투자에 비해 그 성과가 부족하다는 우려가 있어 정부는 R&D사업의 성과를 높이기 위한 방안을 마련하고 있다. 일본 경제의 '잃어버린 10년'처럼 한국의 경제도 저성장기로 진입하고 있다.

과학기술의 투자로 경제 활성화의 돌파구를 마련하려고 정부가 정책을 추진 중이지만 R&D 결과물에 고부가가치의 우수·유망기술이 부족하고, 기술이전이나 사업화·창업 등 실질적인 성과가 미흡하다는 지적이 있다.

R&D의 생산성을 어떻게 평가할 것인지 쉽지 않은 문제이고 순수문학처럼 기초연구의 결과는 사업화 성과로 판단하기에는 적절하지 않아 보인다. 하지만 장기간에 걸친 정부의 R&D 투자가 국민들의 실망으로 나타난다면 그 반대급부로 과학기술에 대한 비판과 침체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그렇다면 R&D의 성과를 높이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할까? 연구개발 과제의 제안, 선정, 수행, 연구결과의 사업화로 이어지는 일련의 일들이 훌륭히 수행되어야 하겠는데 이 각 단계에서 평가가 중요하다.

현재의 R&D 평가의 중심으로 자리잡고 있는 방법은 동료평가(peer review)이다. 과학기술은 고도의 전문지식을 필요로 하고 그 분야가 넓고 방대하여 해당 기술을 이해하는 전문가를 찾기가 어려우므로 평가하고자 하는 기술을 이해할 수 있는 전문가 들을 평가위원으로 활용하고 있다.

동료평가의 문제점은 해당 전문가 집단이 작기 때문에 전문가들이 서로 아는 사이라는 점이고 이 때문에 집단의 의리에 의해 공정한 평가를 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한국은 집단의 의리를 따지는 학연, 지연, 혈연의 관계가 돈독한 문화를 가지고 있기에 해당 기술을 이해하는 소수의 전문 평가자가 의리와 양심 사이에서 흔들리는 문제가 있다.

이런 문제를 방지하기 위하여 정부에서는 '평가위원 제척기준'이라는 것을 도입하여 사제 관계나 같은 기관에 소속된 전문가들을 평가에서 제외하고 있다. 하지만 이 방법은 기술을 이해하는 전문가 숫자를 더 작게 만들어 비전문가들이 기술을 평가하게 되는 어려움을 가져온다.

2009년에 발생한 도요타 자동차의 브레이크 결함 사고와 대량 리콜 사태는 그 원인이 가속 페달의 스프링 문제로 밝혀졌다. 브레이크 스프링을 제작한 업체는 작은 중소협력업체이지만 사고의 책임과 부담은 도요타의 몫이었다.

자동차와 같은 조립산업의 경우에는 수많은 협력업체를 통한 2만여개의 부품의 공급과 그에 따른 품질과 일정의 관리라는 공급사슬의 관리가 중요하다. 부품의 공급을 위한 계약과 납품에 따른 품질관리 체계가 잘 구축되어 있어야 완성차의 품질과 공급 일정에 차질이 생기지 않는다.

제조업의 부품공급사슬에서 진행되는 평가체계는 철저하게 사용자 중심 평가로 진행된다. 브레이크 스프링이라는 부품의 결함에 의해 대량리콜이라는 막대한 부담을 도요타가 책임져야 하기 때문에 불량부품에 대한 검사는 최종 책임을 져야 하는 도요타에서 담당한다. 이와 같은 부품의 결함과 그에 따른 책임의 문제는 원자력 산업에서 한층 더 그 복잡도와 책임의 중대함이 높다.

제조업에서의 동료평가란 S스프링 회사의 전문가가 L스프링사의 제품을 검사하는 것인데 이는 스프링을 사용할 H 자동차의 검사원보다 S스프링사의 전문가가 기술적인 이해도 면에서 더 높은 이해도를 가지고 있어 평가에서 결함을 찾을 가능성이 높지만, 검사결과에 대한 책임이라는 면에서는 동료평가가 제대로 작동할 가능성이 낮다.

한국은 세계에서 일본, 중국과 함께 제조업 강국으로 인정받고 있다. R&D의 생산성도 제조업처럼 향상시키는 방법이 있지 않을까? R&D에도 제조업처럼 공급사슬이 존재한다면 R&D의 생산성을 높이기 위하여 과학기술의 최종사용자나 중간사용자가 최종결과에 책임을 지고 평가를 하는 것이 필요해 보인다.

연구개발 결과의 중간사용자는 기술트리를 따라 파악할 수 있는데 크게 보면 기초과학의 사용자는 응용공학이고 응용공학의 사용자는 제품개발로 볼 수 있다. R&D평가에서 현재의 동료평가 위주에서 앞으로는 사용자 평가를 더 많이 도입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한순흥 교수는?

한순흥 박사는 KAIST 교수로 활동하고 있으며 해양시스템설계 전공이다. 서울대 조선공학 학사·석사를 취득했고 미국 미시간대 선박CAD 박사를 취득한 바 있다.

한 박사는 1996년부터 1년간 선박해양플랜트설계연구회 부회장을 맡았고 1999년부터 3년간 한국 CAD·CAM 학회 부회장을 역임한 바 있다. 아울러 2004년부터 2010년까지 산업자동화 기술표준심의회 위원장을 맡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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