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오스의 겨울에 설경은 없다.<사진제공=성철권>
라오스의 겨울에 설경은 없다.<사진제공=성철권>

라오스 루앙프라방에서 8개월. 그전에는 보이지 않던 것이 나타났다.

맨발.

맨발로 다니는 스님들
맨발로 일하는 직원들
맨발로 축구하는 청년들
맨발로 뛰어다니는 아이들

루앙프라방은 제법 큰 도시이며 사람들이 많이 찾는 관광지라 부끄러울만한데도 태연하게 맨발로 돌아다닌다. 때론 주 교통수단인 오토바이의 딱딱한 철제 수동기어도 맨발로 조작하는 것을 보기도 한다. 그들은 동남아 특성 상 더운 날씨로 인해 맨발로 다니는 걸까?
 
전통의상만 보면, 이들은 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신체가 노출되지 않도록 옷과 장신구로 온몸을 치장할 정도로 외모에 민감하다. 그런데 라오스 전통 춤을 추는 여성들을 보면 모두 맨발이다. 전통 연극을 봐도 배우들은 맨발이다. 그럼 신발을 신는 것이 귀찮아서일까?

이유는 이렇다고 한다. '고행의 뜻도 있지만 혹시나 딱딱한 신발로 하여금 미개한 생물을 죽이지 않을까 염려해서다.' 그리고  '우리 몸 중 유일하게 지구와 닿아 하나 됨을 위해서다.' 자연을 사랑하고 보살피는. 실로 아름답기 그지없는 이유다. (출처: '비밀의라오스' 218p-220p_한명규 저)

그러나 요즘, 맨발로 다니는 사람들이 많이 없어지고 있다. 선진문물의 도입과 온갖 NGO(Non Governmental Organization), ODA(Official Development Assistance)를 통해서 점차 신식으로 발전되어 거리엔 딱딱하고 뜨거운 포장도로가 입혀지고, 길가엔 전자제품과 플라스틱조각 쓰레기가 넘친다. 더 이상 맨발로 다닐 수 없게 된 것이다. 자연을 보호하기 위해서 가차 없이 신을 벗던 이들은, 이제 자신들을 보호하기 위해서 신을 신는다.

적정과학기술거점센터에서 일을 하고 있으니 머릿속으로 계속 돌아가던 톱니바퀴가 잠시 멈췄다. 어쩌면 적정기술이니 투자니 하며 이들(라오스인)에게 '지금의 행복은 거짓이니 우리가 진정 행복하게 만들어주겠다'는 선지자적 사고를 하지는 않았나. 진정한 행복은 이미 이들이 알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는데 말이다.

시간이 멈춘다는 라오스. 마음의 신(侁)도 벗어버리고 나서야 비로소 천천히 걸을 수 있는 곳인 것 같다. 모세가 신(神)앞에 모든 것을 내려놓고 나아간 것은, 어쩌면 앞으로 험난한 40년이라는 시간의 긴 여행을 역설적이게도 신(侁)을 벗음으로써 준비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니었을까.

위의 장문의 글이 살짝 기울어져 있는 이유는, 독자들에게 '삽입된 글'이라는 힌트를 전하기 위해서다. 라오스 걷기 칼럼에 관심이 있는 분이라면 첫 문장의 '8개월'에서 고개를 갸우뚱 했을 수도 있다.

지난 연말, 한 해를 마무리하며 라오스의 이야기를 풍성하게 담아보고자 글동무를 청했다. 8개월 전 라오스-한국 적정과학기술거점센터에 합류한 서상원 연구조사팀장이 기꺼이 함께 글을 써줬다. 지나간 시간을 돌아보며 다가올 내일을 기억하게 하는 12월. 라오스에 대한 생각을 글로 담기에 무척이나 좋은 계절이 아니었나 싶다.

서상원 팀장(우측)과는 알고 보니 한국, 같은 도시에서 왔다. 인연이 여기에서 만들어진 것이 가끔 신기하다. <사진제공=성철권>
서상원 팀장(우측)과는 알고 보니 한국, 같은 도시에서 왔다. 인연이 여기에서 만들어진 것이 가끔 신기하다. <사진제공=성철권>

서상원 팀장의 글을 읽으며 이런 생각을 해본다. 맨발로 뛰어 놀던 우리. 맨발로 자연과 벗했을 이들. 자연을 벗 삼던 우리. 자연을 배려했던 이들. 라오스 사람들은 우리의 유년시절과 많이 닮았다. 맨발에 신(侁)을 선물한 문명의 풍요 속에서 동심(童心) 하나 잘 간직했으면 좋겠다. 

라오스에서 어느덧 두 해가 지나간다. 아직은 한국의 늦가을 날씨. 흰 눈이 오지 않는 겨울은 몇 번을 만나도 좀처럼 익숙해지지 않는다. 다만 깊어가는 밤, 주광등 불빛 아래서 겨울이 가까움을 느낀다.

영상의 기온에도 매서운 라오스의 겨울. '동남아의 겨울'이라 생각했던 것만큼 마냥 따뜻하지만은 않았다. 온수와 난방시설을 갖춘 가정이 드문 탓에 새파란 입술로 출근길에 오르는 사람들을 쉽게 볼 수 있다. 오토바이가 주요 이동수단인 이들에게 겨울바람이 더욱 차갑게 느껴지진 않을까.

추운 날씨 탓에 자꾸 어깨가 움츠려 들지만, 누군가의 말처럼 '겨울에 이불 밖으로 나가는 건 굉장히 위험한 행동'일지 모르지만, 그럼에도 우리의 겨울나기는 마음 속 따뜻한 온기 하나 간직한 그런 포근함이길. 나보다 더 열악한 환경에 있지만 늘 나를 걱정하는 사람들 덕분에 감기보다 더 지독한 코찡찡이를 달고 다니는 라오스의 겨울이 고맙다.

라오스의 겨울.<사진제공=성철권>
라오스의 겨울.<사진제공=성철권>

 

 

성철권 라오스-한국 적정과학기술거점센터 기획교육팀장은, 

경희대학교 평화복지대학원에서 국제관계학을 공부한 대한민국의 따뜻한 청년입니다. 지난해 초 사회문제와 사회양극화를 착한 비즈니스로 해결하는 사회혁신 컨설팅·인큐베이팅 전문기관 MYSC의 방문연구원으로 일하면서 ’적정함(appropriateness)’이 무엇인지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제작년 9월, 그 대답을 찾기 위해 라오스에 왔습니다.

그는 만나는 사람들, 더불어 살아가는 사회, 그리고 소복이 쌓여가는 만남과 추억 속에 서로를 통해 서로를 새롭게 발견하고 이해하는 순간을 마주하게 된다고 생각합니다. 라오스 생활여행자의 시선으로 바라본 라오스의 사람과 사회, 그리고 과학이야기를 진솔한 글로 담고자 합니다. 또한 자신의 글이 라오스의 목소리와 현지에서 분투하고 있는 이들의 삶을 전달하는 좋은 통로가 되길 바라는 마음을 담아 글을 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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