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피지기'에 유용한 세 권의 책 잇달아 출간
이공계가 세계 흐름 알고 대비 주도해야 나라 비극 피할 수 있어

연말이다. 올 한 해 과학산업계에도 많은 일들이 있었다. 해방 70년을 맞아 과학계가 무엇을 했나를 되돌아 보기도 했고, R&D혁신안 추진과 임금피크제 등 여러가지 홍역도 있었다. 이웃 나라의 노벨과학상에 진한 부러움도 다시 느꼈다.

세모(歲暮)를 맞이하는 시기. 성찰의 시간에 일간지 주간 서평란에 나온 세 권의 책이 우리에게 생각거리를 던져주는 듯해 간단히 소개하고자 한다.

먼저 중앙일보에서 거론한 중국의 세계 전략에 대한 책.미 워싱턴 D.C.에서 큰 인기를 얻고 있다는 '100년의 마라톤'(The Hundred-Year Marathon).

중국 건국은 1949년. 우리 보다 한 해가 늦다. 그럼에도 제국을 경험한 국가답게 미래를 보는 시각은 우리보다 낫다. 중국 건국 100년이 되는 시점이 2049년. 중국의 모든 정책은 여기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2049년에 미국을 넘어서는 초강대국이 되기 위해 과학 산업 정치 경제 등 모든 부문이 유기적으로 움직이고 있다.

우주개발도, 일대일로를 통한 신실크로드 개척도, 아프리카와 동남아 등의 진출도, 전기차, 고속철, 신약, 반도체 등의 기업 혁신도 마찬가지다.

미국 사람들도 이 점을 모르고 있었는데 이 책의 저자인 마이클 필즈베리가 이를 간파해 알렸다. 올해 70세인 저자는 미국의 대표적 중국통. 완벽한 중국어를 구사하며 중국내 폭넓은 인맥을 갖고 있고, 미 국방성과 정보기관 등의 근무로 통찰력도 있다. 깊이와 울림이 있는 만큼 선풍적 인기를 끌며 미국의 대중국 정책의 변화도 예견되게 한다.

이 책을 통해 우리에게 세가지 질문을 하게된다.

1 대한민국의 건국 1백년이 되는 2048년을 향해 우리는 어떤 비전을 갖고 있고 준비를 하는가?

2 필즈베리 같은 상대 국가에 대한 전문가가 우리에게 있는가?

3 자신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나라에 대해 안테나를 세우는 미국과 같은 태도가 우리에게는 있는가?

'100년의 마라톤'은 중국에 대한 책이면서, 우리에게 큰 영향을 미치는 미국에 대한 책이기도 하다.중국 미국과 함께 우리에게 큰 영향을 미치는 또 하나의 나라인 일본에 대한 책도 신간으로 소개됐다. '제국의 역습 진격의 일본'.

일간지 언론인 출신의 조용택 작가가 오랜 기간 메이지 유신과 그 이후 벌어진 역사에 대해 관심을 갖고 연구한 끝에 펴낸 수작이다.

역사속의 한일관계는 우리의 바램(?) 혹은 상상과는 달리 쌍방 관계가 아니다.일본은 때리고, 한국은 맞는 일방적 관계였다.그럼에도 우리는 애써 상처가 아무려졌다고 사실을 외면 혹은 왜곡해 왔다.

때문에 조상들의 그 엄청난 피 흘림은 후손들에 아무런 교훈이 되지 못했고, 후손들은 과거 조상들이 저지른 잘못을 반복하며 파벌을 나눠 싸우고, 아쉬우면 외세에 의존하려하고, 세상 돌아가는 것은 알려고도 하지 않는다.

그러는 사이에 또다시 이웃에서는 힘을 길러 다시금 때릴 준비를 갖춘다. 그 역사적 과정과 최근 일본의 움직임을 통찰력을 갖고 전한다.

이 책은 우리를 때리는 일본도 잘 한 것은 없지만 습관적으로 맞는 것에 익숙해진 우리를 질타하기도 한다. 이는 거꾸로 보면 이제는 우리도 우리를 냉철하게 볼 정도로 여건이 갖춰졌고 생각도 깊어졌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여하튼 한국은 세계속에서 살아가는 나라가 됐다.그러면 이웃에 대해 늘 신경을 써야한다. 싸워야 하는지 대화를 해야 하는지, 경쟁해야하는지 협력해야 하는지, 상대의 강점은 무엇이고, 우리의 약점은 무엇인지 등등을.

손자병법에서 이야기하는 지피지기를 잘해야 한다. 조선이 망한 가장 큰 이유 가운데 하나는 지피지기를 안했다는 것이다. 지금 한국 사회에 스멀스멀 되살아나는 병도 소중화도 아니면서 마치 자신들만이 존재하는 듯한 유아독존적 자세이다. 삶에는 분명 상대가 있음에도 한국 내부 논리에만 파묻혀 80년대 논리가 아직도 사회를 지배하고 있다. 조선시대 사대부들의 위정척사 사문난적의 도그마가 사회에 표표히 퍼져있는 상황이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현실이다. 중국이, 일본이, 미국이, 유럽이, 러시아가, 동남아가, 아프리카가 어떻게 움직이고 우리의 대비책은 무엇인지가 대부분의 한국 사람들에게 관심 밖이다.

그런 우리를 되돌아 보게 하는 책이 새로 나왔다고 소개됐다. '조선에 온 서양 물건들'.
임진왜란 이후 일본을 통해, 청나라를 통해 서양 물건들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안경 망원경 자명종 양금 거울 등이 그것. 하나같이 지금까지 인간의 한계를 넓혀주고 새로운 세계를 보여주는 물건들이다.

저자인 부산대 강명관 교수는 한문학자로 고서를 자유롭게 읽을 수 있는 전문가이다. 그러면서 고루한 생각에 잠겨 있는 것이 아니라 선조들의 흔적을 통해 우리 사회가 어떻게 변화할 수 있는지를 고민하는 부분이 이 책에서 드러난다. 사물을 통해 우리의 의식을 똑바로 보려는 시도가 새롭고 감사하다.

나를 아는 것, 지기는 정말 중요하다. 특히 조선에 대한 이해는 아주 필요하다. 대한민국의 직전 존재로 우리 DNA의 상당부분은 거기에서 비롯됐다. 그럼에도 우리는 조선을 잘 모른다. 조선왕조실록에서 전해지는 것만으로는 전체를 파악할 수 없다. 조선이라 나라 전체에서 극히 일부에 불과한 집단의 기록이라 전체를 이해하기에는 한계가 크다. 양반과 평민, 노비들도 그 사회 구성원의 대다수이나 그 기록들은 우리에게 잘 전해지지 않는다.

평민과 노비의 기록들은 아예 없을 확률이 높고, 양반들의 기록은 있어도 지금의 세대가 한문과는 거리가 멀어 잠자고 있는 기록일 뿐이다. 게다가 대개는 농경사회 중심의 기록이라면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는 한계가 있을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서양의 새로운 문물에 대해 양반들을 비롯해 지배층이 어떤 반응을 보였는지 알아보는 것은 그 당시를 이해하기에 도움되고, 이는 우리의 DNA를 근원에서 이해할 수 있는 길이기에 소중한 접근이다.

그럼 새로운 문물에 대해 우리가 늘 자랑스럽다고 배운 선조들의 대응은 어떠했는가? 실망 그 자체이다. 현대로 치면 2009년에 처음 접하게 된 애플을 보고도 흥분하지 않고, 무인차가 가져올 미래를 보고도 무덤덤한 젊은이라고할까?

호기심을 보이지 않는 것은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 그것마저도 권위 유지에 방해가 된다고 해 깍아내리고 접근 금지에 가까운 행위를 보였다면 어떻게 해석해야할까?

사물의 원리를 알려고 하지 않은 것은 물론이고, 불경스런 물건 취급했다. 그 결과 청과 조선의 국경을 정할 때 청국은 망원경 등 서양의 측량 도구로 획정했고, 우리는 청나라가 만든 지도를 갖고 협상에 응했다.
여기서 논의된 물건은 망원경. 당시 우리에게 전래된 망원경의 이름은 규일영. 해를 엿보는 물건이란 정도의 해석이다. 조선시대에는 해는 임금을 뜻했다. 이 물건을 본 영조가 자신을 감시하는 용도로 쓰일까 걱정해 쓰지 말라고 했단다.

서양 물건을 그렇게 접한 결과 조선은 나라를 잃었고, 망국이 되며 그 땅에 살던 사람들은 수많은 피를 흘렸고, 살아도 고통을 겪어야 했다.

그 비극을 우리는 얼마나 우리 가슴에 새기고 있나? 어렵다고는 하지만 먹고는 살만하니 알 필요성을 못 느끼고, 지금이 바쁘다보니 옛일을 안다는 것은 호사로 느끼는 것이 현실이 아닐까?

역사는 말한다. 반복된다고.
역사는 형태를 달리할 따름이지 패턴을 갖고 있다. 일본은 660년, 1592년, 1894년, 1905년, 1910년, 1931년, 1937년, 1941년 계속 한반도를 건드렸다. 올 때마다 그 파도는 컸다.

중국도 계속 왔다. 일본이 올때 마다 왔고 따로도 왔다. 삼국시대는 물론이고 660년, 1592년, 1627년, 1636년, 1894년, 1950년. 여기에 지금 힘을 키우며 한반도에 대한 영향력을 더 강하게 행사하고 있다.

역사는 이야기한다. 지난 날에 대한  관심은 사치가 아니라 필수라고.

중국은 제국이다.그 속성을 갖고 있어 멀리보고 크게 본다. 일본도 제국이다.재난으로 단련돼 있어 생존에 강하다. 우리는 틈바구니에 끼어 늘 생존의 위협을 받아왔고, 지금은 파고가 어느 때보다 높다.

우리가 생각할 때 미국 입장에서 중국은 아직 잠재적 위협이지 팩트는 아니다. 그럼에도 미국은 준비하고 대책을 세운다. 그러기에 미국은 우리보다 안전하다.

지금 우리가 해야할 일 가운데 하나는 우리를 알고, 상대를 아는 일이다. 이는 특히 이공계 사람들에게 필요하다. 이공계가 나라를 이끌어야 한다. 원리를 아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이공계가 세상이 돌아가는 정세를 조금만 더 파악하면 훨씬 폭 넓고 장기적 시각을 갖게 되며 이 나라를 제대로 리드할 수 있다.

연말이다. 한 해를 되돌아보며 우리를 알고 상대를 알며 그 가운데 우리의 생존과 번영을 모색해보는 시기가 되면 더욱 의미가 깊을 것이다.

역사는 이야기한다. 척박한 조건이 개척과 창조의 출발점이었다고. 한국, 척박한 나라이다. 다른 나라 사람들이 이 나라를 보살펴 주지 않는다. 우리 운명은 우리가 결정한다는 결의를 갖고 연말연시를 맞이하는 것도 앞으로 3년 대한민국이 죽음의 강에 직면할 것이라는 예언에서 각자의 생존을 좀 더 보장할 수 있는 길이 아닐까? 연말에 시간을 갖고 우리를 되돌아보고 이웃을 살피며 미래를 대비하는 시간을 갖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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