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점검]현장 과학자들 "미래 성장동력 안보여" 하소연
과학자 80% "현장 밀착으로 미래 먹거리 창출해야"

"미래창조과학부가 과거 과학자 관리 개념을 벗어나지 못하고, 오히려 이제는 과학계 발전의 큰 걸림돌로 인식되고 있다. 현장에서 과학자의 연구를 진정 지원하는 행정체계 개념은 거의 실종됐다. 과학계가 살기 위해선 기존 미래부 행정 개념은 해체돼야 한다."

과학기술계의 새틀 짜기를 바라는 많은 과학자들의 목소리다. 대다수 과학자들은 과학계 '환골탈태'(換骨奪胎)를 위해 과학기술 주무부처의 개혁을 강조한다. 한국의 과학행정 체계가 50년 가까이 된만큼 과학정책 행정도 세계적인 경쟁력을 확보해야 하는데 오히려 후퇴하고 있다는 주장이 많다.

국가 R&D를 담당하는 정부출연연구소 상태가 곧 과학행정의 현주소다. 뚜렷한 성과를 창출하지 못하는 행정체계로 전락한 지 오래다. 연구자들이 근무태만이어서 성과가 안나오는 게 아니다. 한참 연구해야 할 과학자들이 정부 보고서 작업과 평가·각종 감사 서류 행정에 시간을 소요하고, 연구비 문제를 해결하느라 여념이 없기 때문에 악순환이 반복되는 양상이다.

현장에서는 국가 과학기술의 중추적 역할을 짊어진 미래부가 본래 사명을 잃고 있다는 지적이 봇물을 이룬다. 고질적인 관료적 행정문화와 단기적인 성과 내기에만 급급, 국가 미래에 대한 미래부의 진정한 고민과 노력을 찾아보기 힘들다는 목소리가 높다. 과학기술계 관계자조차도 '차기 정권에서 없어질 부처' 1순위로 미래부를 손꼽는 등 해체설이 공공연히 불거지고 있다.

◆ '현장 멀리한 탁상행정'…"미래부 세종行 서둘러야"

"연구자들이 예산을 타진하려면 과학기술연구회, 미래부, 기재부를 모두 다녀야 한다. 그런데 과천의 미래부만 오고가는데 하루가 걸린다. 미래부가 세종시로 오면 하루에 세 곳을 갈 수 있다. 업무 효율성이 크게 향상될 것이다. 출연연 25개 기관이 과천으로 가는데 많은 시간과 비용이 소모되고 있다."(출연연 B 과학자)

"교과부, 정통부 이후 새로 생긴 조직이라는 인식이 있어서 그런지 안 가도 된다는 생각이 있다. 과천이 대덕을 잘 모른다. 현장의 상황을 모르면서 정책을 펼치니 현장의 불만이 커지는 건 당연한 거 아닌가."(이공계대학 P 교수)

미래부는 연구기관에서 어떤 성과를 내고 그 연구성과를 어느 분야에서 필요로 하는지 꿰고 있어야 미래성장동력을 발굴하고 국부창출에도 기여하는 등 부처로의 역할을 다할 수 있지만, 현장 연구자의 체감은 그저 '탁상공론'으로 정책을 입안하는 곳에 불과하다는 지적이 많다. 

연구자들은 사업 설명과 예산확보를 위해 하루가 멀다하고 '과천행'을 자처하지만, 미래부 사무관을 비롯한 정책 실무자들이 현장에 내려오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미래부와 현장과의 괴리감이 극에 달하면서 미래부의 세종시 이전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어느 때보다도 높다. 과학기술 주무 부처와 연구기관 간의 거리를 좁혀 '교류'와 '소통' 활성화로 그간의 간극을 좁혀 미래부의 본업을 찾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대덕넷(HelloDD.com)이 과학기술계 연구자 100명을 대상으로 한 미래부 관련 심층 설문조사에서도 미래부 이전에 대한 과학자들의 '찬성'이 80%를 차지했다. 10명 중 8명은 '세종행'이 당연하다는 답변이다.

'반대' 의견은 8%에 그쳤으며, 나머지 12%는 미래부의 위치 선정에 앞서 쌍방향 교류와 소통 채널을 확보하는 노력이 우선돼야 한다는 의견을 내놨다.

이처럼 미래부의 세종시 이전이 절실한 데는 과학기술 연구에 있어 관계 부처와의 긴밀도가 중요함을 전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라 연구자들은 설명한다.

미래부 내 소속기관과 산하기관을 모두 합치면 46개 기관에 이른다. 이중 절반이 넘는 25개 기관이 대덕에 자리하고 있다. 이들 기관은 우리나라의 미래 먹거리를 책임지는 핵심 연구기관이 대부분이다. 나머지 기관도 창원, 나주, 대구, 광주 등에 위치해 미래부의 과천 잔류에 명분이 실리지 않는다.

법적 근거에서도 미래부의 세종시행은 당연한 귀결이다. 2005년 3월 국회를 통과한 '행정도시건설 특별법'에 의하면 국무총리실을 포함해 기획재정부·국토해양부·환경부 등 9부와 국가보훈처 등 2처, 국세청 등 2청, 공정거래위원회 등이 세종시로 이전된다고 명시돼 있다.

출연연 한 관계자는 "미래부가 나홀로 과천을 지킬 이유가 어디에도 없다. 많은 인프라가 연구단지에 있고 관련 부처도 세종에 모여있다"며 "가까이에 있으면 전화로 할 것을 얼굴보고 말할 수 있고, 좀 더 긴밀한 전략방향을 설정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밝혔다.

또 다른 연구자도 "현장과의 소통이 부족하니 탁상행정이 나오는 거 아니겠는가. 가까이 있으면서 현장의 소리를 들으면 제대로 된 정책이 나올 것"이라며 "미래부가 장기적 비전을 제시하고 국가역량을 모으는 조직이 되려면 세종시 이전이 우선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 미래부에 '미래'가 없다…"국가 장기적 R&D 실종 우려"

"대통령 임기 중에 성과를 내고자 하는 것은 이해하지만, 미래부 본연의 역할을 잃어서는 안 된다. 중장기적으로 10년 후 20년 후에 무엇을 먹고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을 해야 하는데 지금의 미래부는 이런 고민이 없다."

"창조경제가 부각되면서 정부 스스로 가시적인 성과를 내고자 재촉하고 있다. 과거 정권에서는 다수의 대형사업이 중장기적인 안목으로 실행됐는데, 유독 이번 정권은 중장기 사업이 없고 1~2년 내에 성과를 내도록 강요하고 있다."

미래부를 2년 반 넘게 현장에서 지켜본 과학자들의 평가는 암담하기만 하다. 단기성과만 강조되다 보니 미래부가 펼쳐야 할 기초연구나 중·장기 과제 연구는 부실해 질 수 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현장에서는 미래부에 대해 '과학기술에 대한 장기적 목표와 전략 실종'을 주된 과오로 꼽는다. '창조경제'를 전면으로 내세우면서 엄연히 구분해야 할 과학기술 정책이 뒤섞여, 과기정책은 실종되고 창조경제만 남아 성과 내기에만 급급해졌다는 비판이다.

과학기술은 국가의 백년대계로 장기적 관점을 갖고 문화가 형성되어야 할 분야지만, 현재 미래부의 모습에서는 중·장기적인 미래성장동력 육성이 보이지 않고 있다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과학계 A 인사는 "과학기술은 정보통신과 시간 개념이 다르다. 정보통신은 1년이면 성과를 낼 수 있는 부분이 많지만 과학기술은 그렇지 않다"며 "문화와 성격이 다른 만큼 전략도 달라야 하는데 현재의 미래부는 과학기술이 아닌 정보통신을 중심으로 흘러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미래부 장관, 차관, 수석까지 모두 정보통신 관계자로 과학기술이 많이 죽었다"며 "미래부가 밀고 있는 창조경제 정책이 과학기술 정책인지도 잘 모를 정도로 뒤죽박죽인 느낌이 강하다"고 질타했다.

B 박사는 "과학기술 발전에 대한 중장기적인 비전 제시 없이 정권마다 반복되는 새로운 단기목표의 제시로 인해 정체성의 혼돈을 느끼고 있다"며 "임기 내에서 효과를 내려하니 국가의 장기적인 R&D가 심히 우려 된다"고 덧붙였다.

이에 과학계는 '원점'으로 돌아가자 강조한다. 여기서 원점은 유행을 따라가는 과학기술 정책개발이 아닌 국가의 미래 동력을 위한 과학기술의 본질적인 육성을 말한다. 단기적 성과는 시간과 예산, 에너지 낭비에 불과한 만큼 미래 먹거리 창출과 국가 경쟁력 확보를 위한 중·장기적인 계획이 이뤄져야 한다는 게 핵심이다. 

과학계 관계자는 "단기적인 성과는 산업부나 중기청이 맡아야 할 일"이라며 "미래부는 긴 호흡으로 미래의 성장동력을 연구해야 하는데, 타 부처보다 오히려 더 보여주기에 목매고 있다"고 밝혔다.

대덕넷 설문조사에서도 이같은 연구현장의 분위기가 고스란히 드러났다. '미래부가 출범 이후 제 역할을 잘하고 있는가'에 대한 질문에 과반수 넘게 부정적인 의견을 답했다. '못하고 있다'는 의견이 58%였으며, '보통이다'는 26%를 차지했다. '잘하고 있다'는 6%에 불과했다. 또 평가 하기엔 시기상조라며 '노코멘트'로 응답한 의견도 10%에 달했다.

미래부 정책에 대해 부정적 의견을 답한 대부분의 연구자들은 "미래부가 미래에 대한 비전이 없다. 우리 후손들이 살아가 갈 미래에 성장동력이 과연 있는지 의문"이라고 꼬집었다. 설문조사에서 미래부가 역할을 '못하고 있다'고 지적한 이들도 단기적 성과 강요를 주된 이유라 답했다.

◆ 변치 않는 '관료주의'…"현장형 테크노크라트 육성 절실"

출연연 A 박사는 새로운 연구를 계획할 때나 연구비 수주, 관련 연구에 대한 동향에 대해 일일이 담당부처 사무관에 이해를 구해야하는 상황에 피로감을 느낀다.

'일단 보고하라', '내가 이해할 수 있게 보고해라'는 미래부 업무방식에 연구시간까지 쪼개 서류를 작성하느라 바쁜 나날이 적지 않다. 과학기술부·교육과학기술부· 미래창조과학부 다 겪었지만, 가면 갈수록 그 정도가 심해지면 심해졌지 바뀔 기미가 보이지 않아 답답하다.

행정시스템에 골머리 썩는 것은 연구현장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25개 정부출연연구소를 관장하는 국가과학기술연구회에 파견을 나간 B 연구원은 국감시즌 때 평일, 주말, 밤, 낮 없이 사무실에서 대기하고 있다. 자료를 요청하면 실시간 대응을 해줘야하니 어쩔 수 없다 치지만 국회에 자료를 보내기 전 미래부의 1차 검토, 2차 검토 과정에서 사람에 따라 어감까지 수정해야 하니 보통 시달리는게 아니다.

출연연 L 박사는 "행정보고를 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너무 보고에 치중되다 보면 우리가 무엇을 얻을 수 있겠느냐"며 "과학기술이 발전하기 위해서 부처가 어떤 역할을 강화해야 하는지 고민하고 전문성을 확보해야지 않나"라고 답답함을 토로했다.

과학기술계 한 원로 과학자는 "과학기술 주무부처인 미래부에 현장형 테크노크라트 육성이 시급하다"며 "미래부는 하루빨리 관료주의 환경을 벗어던지고 미래 중장기 연구가치를 추구할 수 있는 연구환경 조성에 힘써야 한다"고 피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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