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그레이드 사이언스코리아-해외기획취재]연구관계③선진 과학자들, 연구자율성 극대화·중장기적 롱텀 연구 집중 강조"긴 안목의 과학선진 문화 이해하고 접목해야"

 

 

(왼쪽부터)리챠드 반 아타 미국 IDA 박사, 이경상 NCI 책임연구원, 최의묵 NIAID 연구원<사진=김요셉 기자>
(왼쪽부터)리챠드 반 아타 미국 IDA 박사, 이경상 NCI 책임연구원, 최의묵 NIAID 연구원<사진=김요셉 기자>

"요즘 중국이 NIH의 중국 과학자들에게 아파트 1채씩 주고 유치전을 펼치고 있다. 더 늦기 전에 우리나라도 정부나 젊은 과학자들이 두려움을 가질 시간에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로 덤비는 모험에 나서야 한다."(최의묵 미국 NIH NIAID 연구원)

"한국은 노벨상에 왜 집착하는가. 초기의 노벨상은 세상을 바꾼 사람들이지만 지금 수상자들은 그렇지 않다. 노벨상 수상자 수가 중요한게 아니라 업적이 중요하다. 세상을 변화시킬 업적이 중요하다. 노벨상의 노예가 되는 것은 허영이다. 과학기술이 튼튼하면 그런 허영은 필요없다."(김재일 재독 과학자)

"독일은 엔지니어가 대우 받는 사회다. 사회적 인식부터 전환되어야 한다. 한국은 테크니션이 대우받지 못한다. 인사고과에서도 밀리니 테크니션이 제대로 설 수 없는 구조다."(독일 슈투트가르트 막스 플랑크 연구소 한인 과학자들) 

"문서 작업이 너무 많고 숫자에 민감하며 계획과 실천 사이에 간극이 크다. 연구과제를 수주할 때 내야하는 온갖 계획서를 평가자들이 다 읽어 보는지 궁금하다. 각종 기획들은 어떤 경우 한 주 전에 내용을 공지한다. 회의시 언제까지 하자는 날짜만 정하고 그 사이의 계획은 세우지 않고 있다가 막판에 몰려 진행한다. 한국에 와서 가장 황당했던 점이었다."(케이코 KIST 연구원)

외부에서 보는 한국 과학의 미래는 결코 밝지 않다. 선진 과학강국의 연구자들은 미국과 유럽 열강들 속에서 일본·중국이 치고 나가며 점점 외톨이로 전락하는 한국 과학계를 걱정한다.

한국의 과학기술 역사는 산업화에 맞춰 패스트 팔로워(Fast Follower)적 기술개발이 중심이었지만 오늘날은 퍼스트 무버(First Mover)형 기술개발이 요구되는데 여전히 과거의 방식의 정책과 시각에 젖어 있다는 관측이 많다.

◆ 정부의 역할? "연구현장 개방과 독립 극대화해야"

DARPA 전문가 리챠드 반 아타 IDA(Institute for Defense Analyses) 박사는 "한국 과학계가 추구해야 할 정책적 방향타는 연구현장의 개방과 독립을 극대화시키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반 아타 박사는 기자에게 이메일을 보내 "한국은 관료주의적인(형식적인) 과정에서 벗어나 위험을 감수하고 연구자들과 연구과제를 지원하길 바란다"고 피력했다. 새로운 아이디어를 가진 연구자들이 실패로 인해 무능하게 여겨지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탐구할 수 있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반 아타 박사는 무엇보다 "한국은 연구에 집중할 수 있고 방향을 제시해 줄 수 있는 리더십이 필요하다"며 "혁신을 이루기 위해서는 조직이 의사결정을 해나갈 때 하나의 연구실에 바탕을 두지 않고, 여러 연구조직들이 가진 다른 생각들에 대해 열려 있어야 한다"고 주문했다.

이경상 NIH 국립암연구소(NCI) 책임연구원은 "연구자들이 연구소를 떠나지 않고 연구에 집중할 수 있는 마음이 들도록 문화를 만들어야 한다"며 "정부가 연구자율성에 기반을 두면서 예산을 이왕 쓰는거 PBS처럼 과제경쟁하지 말고, 국가적 연구가 가능하도록 디렉팅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이 박사는 정부의 역할도 중요하지만 연구자들의 자세도 변화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이 박사는 "한국 연구자들은 책임연구원이 되면 연구를 놓아버리는 경향이 있는데 NIH나 미국의 연구풍토는 전혀 그렇지 않다"며 "연구원이 직급이 올라가도 천천히 꾸준하게 연구에 집중하는 문화가 만들어질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이 박사는 아울러 R&D평가와 관련, NIH의 연구평가 그룹이 글로벌하게 구성되는 것처럼 한국도 가까운 일본과 중국 연구자 그룹을 포함시켜 평가풀을 구성해 봐도 좋을 것이라고 제안하기도 했다.

준 태니 KAIST 교수는 한국의 비합리적 R&D평가 체계를 우려했다. 그는 "한국은 연구교수를 노동자 취급하고, 6개월마다 무슨 성과를 자꾸 내라고 독촉하는지 모르겠다"며 "평가를 할 때도 연구에 대한 설명을 수십 페이지로 정리했으면 그에 합당한 피드백이 없는 것이 이해가 안된다"고 꼬집어 말했다.  

 

 

과학 선진국에서 만난 한인 과학자들은 지금의 한국은 위기라고 말하며 과학기술계 전반의 재정립을 주문했다. 사진 위 왼쪽부터 시계방향 박재환 재영 과학자, 최경일 재불 과학자, 김재일 재독 과학자, 사진 아래는 슈투트가르트 막스 플랑크 한인 과학자.<사진=길애경 기자>
과학 선진국에서 만난 한인 과학자들은 지금의 한국은 위기라고 말하며 과학기술계 전반의 재정립을 주문했다. 사진 위 왼쪽부터 시계방향 박재환 재영 과학자, 최경일 재불 과학자, 김재일 재독 과학자, 사진 아래는 슈투트가르트 막스 플랑크 한인 과학자.<사진=길애경 기자>

◆ 정부·연구자들 모두 각성 촉구…"씨가 발아하려면 긴 안목 필요"

 

최의묵 NIH 국립알레르기·전염병연구소(NIAID) 연구원은 얼마 전 한국에서 NIH를 방문한 이공계 대학생들을 마주하면서 암담하고 한심한 마음을 금할 길이 없다고 털어놨다. 연구에 대한 호기심을 갖고 질문하는게 아니라 연구자의 봉급이나 생활형편을 질문하는 학생들을 보면서 최 연구원은 "이대로 가면 한국 과학의 미래 밝지 않다"고 단언한다.

최 연구원은 "NIH에 있는 중국이나 독일 연구자들을 보면 근면하고 냉철하면서 조직적인 사고와 끈기가 대단하다"며 "그런데 한국 과학계 젊은 과학도들은 우물 안 개구리로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전혀 모른다. 각성해야 한다"고 일갈했다.

최 연구원은 "자동차, 로켓, 잠수함, 디지털 PCR 장비 등 우리가 누리고 있는 과학문명은 모두 독일 과학자들이 해낸 것이다. 엄청나게 무섭다"라며 "한국이 독일이나 선진국을 왜 이기지 못하냐면 국가 시스템 뿐만 아니라 개인들도 뒤처지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연구환경과 정책에서 긴 안목이 필요함을 강조하는 과학자들도 많았다. 과학기술은 기다려주고 실패해도 인정하는 문화가 필요한데 한국에서는 이런 배려가 전혀 없다는 것이다.

류이치 KIST 연구원은 "한국 사회와 정부는 작은 잠재력을 성장시키는 것을 기다리지 못한다. 씨가 발아하려면 물을 잘 주어야 하고 자랄 때까지 보살펴야 한다"며 "한국에 씨가 분명 많은데 정책이나 관료가 자꾸 바뀌는 바람에 씨가 싹을 틔우게 전에 죽는 느낌"이라고 표현했다.  

막스 플랑크의 한 한인 과학자는 "한국의 과학은 미국의 장점을 많이 받아들였는데 우리 것으로 만드는 과정이 없어 우리만의 과학문화가 없다"면서 "지금은 독일을 따라하려는데 교육기반부터 다른 그들을 그대로 따라하려니 문제가 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그는 "우리나라는 과학 역사가 짧으니 과도기라 할 수 있다. 초반에는 어쩔수 없이 실패를 반복했더라도 이젠 잘 풀어가야한다"며 "무엇보다 젊은 연구자들이 찾을 수 있는 연구환경과 정책이 마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재독 과학자들의 말을 종합해보면 독일의 저력은 보이지 않는 기술에서 시작된다. 예전엔 일본산 제품이 독일 백화점을 장악했지만 핵심 부품은 독일제품이다. 지금은 일본이 보이지 않는 것에 집중하고 있는데 한국은 여전히 보이는 부분에 치중하는 상황.

한 재독과학자는 "한국은 어느 나라에서도 볼수 없을만큼 빨리 발전했다. 특히 물질사회 과학기술 분야에서 앞서고 있다"면서 "하지만 지나치게 보여지는 것에 치중하는 분위기이다 보니 성과에 매몰되며 앞으로 나가지 못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그는 이어 "사람들이 독일 자동차를 선호하는 것은 보이지 않는 엔진에 있지만 그렇게 되기까지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면서 "과학도 마찬가지다. 한국 과학도 그런 방향으로 가야한다"고 조언했다.

 

또 다른 과학자는 합리적 절차의 문화가 필요함을 역설했다. 그는 "한국에서는 포닥으로 있다가 기관 채용이 확정되면 정리할 시간을 따로 주지 않고 바로 오라고 한다"면서 "그런데 연구하는게 진행되는 과정이 있어 금방 정리되지 않는다. 막스 플랑크에서는 최소 6개월의 유예기간을 줘 잘 마무리할 수 있게한다. 우리도 그런 합리적 절차와 문화를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문했다.

 

 

류이치 KIST 연구원(사진 왼쪽)과 준 테니 KAIST 교수는 과학기술이 발아하기 위해서는 기다림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사진=이은미 기자>
류이치 KIST 연구원(사진 왼쪽)과 준 테니 KAIST 교수는 과학기술이 발아하기 위해서는 기다림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사진=이은미 기자>

◆ "외톨이 한국, 문제 인식하고 글로벌 교류 적극 나서야"

영국과 프랑스 거주 한인 과학자들은 "외국에 나와서 객관적으로 한국을 보니 위기감이 더 크게 보인다"고 입을 모았다.

최경일 재불 과학자는 "지난해 세월호 사고와 올해 메르스 사태는 한국의 위기를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라고 지적하며 "지금은 공동체를 이루는 글로벌 마인드가 필요하다. 영국과 프랑스처럼 해저터널을 만들어서라도 일본과 섞이고 중국과 적극 교류하며 공동체를 만들어 가야한다"고 말했다.

박재환 재영 과학자는 한국의 성과 중심의 과학정책에 대해 우려했다. 그에 의하면 4~5년전까지만해도 유럽 과학자들이 한국에 관심을 가졌다. 하지만 현재 유럽 과학자들의 관심은 중국이다. 중국의 막대한 투자와 시장성 때문이다.

박 박사는 "중국이 블랙홀이다. 고교진학시 중국어 시험을 봐야하는 정도로 중국의 위상이 커지고 있고, 일본은 유럽문화와 같은점이 있어 관심이 있다"며 "하지만 한국에 대해서는 삼성과 LG 등 기업정도만 인식할 뿐"이라고 걱정스럽게 말했다.

이어 그는 "그런 상황에서 단기성과 중심의 한국 과학정책을 그대로 유럽의 과학계에 적용해 상대하려 한다. 예산이 조금만 지급되면 바로 보고서를 요구하니 유럽의 과학자들이 외면하며 공동연구의 폭이 점점 줄어든다"고 지적하며 "과학선진국들과 협업하기 위해서는 그들의 문화를 이해하고 접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준 태니 KAIST 교수는 "한국 내 외국인 교수나 연구원이 적지 않으나 그들이 가르치고 연구하는 것 말고 한국인과 함께 할 수 있는 것이 없다"며 "강의를 영어로 하는 것 외에 모든 회의는 한국어로 진행하기 때문에 내가 가진 경험을 나누고 다학제 연구 등 협업이 쉽지만은 않다"고 토로했다.

준 태니 교수는 아울러 "한국의 연구원들이나 교수들이 해외 학회 등에서 키노트 스피치 하는 모습을 거의 본 적이 없다"며 "개인이 좀 더 활발하고 적극적으로 글로벌 교류 활동에 나서야 한다"고 충고했다. 

글로벌 교류를 위해 연구기관의 외국인 인사 등용도 중요한 대목이라는 제언도 나온다. 일본 미래과학관의 사이언스 커뮤니케이터들 중 외국인이 적지 않게 포진해 있다. 이화학연구소(RIKEN)의 국제협력 담당자와 미래과학관 국제조정 실장은 일본 본토 출신이 아닌 다른 나라 태생이다.

미국 NIH의 한 중견 과학자는 "한국 과학계는 전략 부재와 연구자율성 부족, 단기과제 중심, 미흡한 평가행정체계 등 전반적인 시스템이 취약하다는 점에서 분명 위기의식을 가져야 한다"라며 "한국의 과학기술 DNA를 바꿔야 한다. 연구자들이 진정 연구하는 즐거움을 갖고 연구에 집중할 수 있는 문화와 시스템을 하루 빨리 구축해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저작권자 © 헬로디디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