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그레이드-연구관계③]무관심·탁상공론·구태의연에 익숙과학 선진국들, 과학기술 이용자 '시민이 주체'원로과학자 "문제 해결위해 국민인식 개선과 소통에 주력해야"

# 사례 1. 미국 시카고 대학의 남쪽 미시간 호를 따라 위치한 시카고과학산업박물관. 과학체험 시설의 명소로 꼽힌다. IT와 과학에 관심있는 학생들이 직접 실험하며 체험할 수 있어 학기 중에도 학생들로 북적인다. 운영지원은 평소 박물관을 자주 찾던 지역주민, 과학분야 종사자들이 은퇴후 자원봉사자로 적극 참여한다. 자원봉사자들에게는 직원 상당의 시설 이용권리만 줄 뿐 특별한 보수가 지급되지 않는다. 이처럼 시민들이 지역 과학인프라 살리기에 적극 참여하며 이곳은 전세계에서 매년 400만명 이상이 찾고 있다.

# 사례 2. 독일 중부 니더작센주 괴팅엔시에서 15분 거리에 위치한  윤데마을. 이 곳은 인구 750명의 작은 농촌 마을이지만 바이오매스 기술이 마을에 적용되며 유기농 마을로 재탄생했다. 현재 윤데마을은 마을 이름이 브랜드화되며 많은 이들이 찾는 명소가 됐다. 또 이곳의 농산물은 귀한 대접을 받으며 고가에 판매되고 있다.

시민들이 직접 나서 과학기술과 지역 인프라를 엮어 지역을 새로운 명소로 탈바꿈시킨 대표적 사례다. 과학기술이 더 이상 논문이나 특허 등 이론만으로 평가받는 시대는 지났다.

과학기술이 국민과 소통하며 개개인이 직접 체험하는 생활 속 과학으로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특히 시민들이 직접 참여해 과학기술을 생활에 적용하며 삶의 질을 개선하는 것은 물론 지역공동체를 변화시키는 혁신의 주체가 되고 있다.

◆ 과학선진국들, 과학기술 이용자 시민이 주체로
 

시카고과학산업박물관에서 봉사활동에 참여하고 있는 지역주민들.<사진=시카고과학산업박물관 홈페이지 발췌>
시카고과학산업박물관에서 봉사활동에 참여하고 있는 지역주민들.<사진=시카고과학산업박물관 홈페이지 발췌>

 

앞서 언급한 미국 시카고과학산업박물관과 독일 윤데 마을, 덴마크 에그몬트 리빙랩 등은 과학기술과 지역자산을 결합해 새로운 과학도시의 트렌드로 거듭나며 세계적인 명소로 손꼽히는 곳들이다.

이들 지역이 세계적 명소로 거듭나는데 역할을 한 것은 지역의 시민들이다. 시민들이 과학기술의 이용자로 적극 참여하며 기술의 트렌드를 형성하고 나아가 지역발전의 동력 역할을 한 것이다.

독일 윤데 마을은 당시 마을 이장이 지역주민에게 바이오매스 기술에 대해 설명하며 설득했다. 이후 주민들이 한배를 타며 윤데 마을은 친환경적이고 유기농 마을의 모델이 됐다. 또 신재생에너지 기술에 대해 지역 주민들이 사용해보고 결과를 과학자들에게 적극 피드백하며 새로운 기술을 개발하는 아이디어를 제공하기도 한다.

덴마크 에그몬트 리빙랩은 학교 전체가 실험실이다. 참여기업과 연구기관은 시제품 출시나 제품 혁신에 앞서 학생들에게 제품을 사용하도록 하고 결과를 통해 제품 출시 여부를 결정한다. 사용자와 개발자가 소통하고 협력하며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모습은 어떠한가. 한마디로 국민들은 과학기술에 관심이 없다. 매년 십수조원의 국민세금이 투입되지만, 어디에 어떤 투자가 이뤄지고 있고 그 결과가 어떤지도 무관심하다. 과학자들이 알아서 연구할 일이고, 한국 과학계에서 어떤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지 어떤 기술개발이 활성화되고 있는지 전혀 알고 싶어하지 않는 분위기다.

국민들 뿐만 아니라 정치 사회계 전반에서도 과학계에 대한 관심과 이해가 부족으로 과학계는 계속 이해할 수 없는 집단 내지 사회와 격리된 또 하나의 커뮤니티로만 여기고 있다.

과학기술정책 관련 한 책임연구위원은 "기술을 사용하는 사람이 결국 지역의 시민이므로 신기술을 개발하는데 시민의 역할이 점점 중요해지고 있다"면서 "이는 결국 시민과의 협력과 소통이 필요하다는 의미다. 기술사업화, 과학문화 예술 인프라, 사회적 혁신을 위해 지역 시민들과의 소통이 점점 중요 요소가 되고 있다"고 강조했다.

 

◆ 국가 발전에 과학 필요하지만…"어떻게 하죠?"

"실리콘밸리는 가보셨어요?" "두번정도요."
"대덕연구단지는요?" "이야기는 들어봤는데 아직 못가봤습니다. 폐쇄적이다보니 어떻게 가야할지 몰라서…."

한 오피니언 리더들의 모임에서다. 모임에서는 과학을 모르는게 당연하다는 듯 답변했다. 한국의 수도 서울에서 오피니언 리더로 인정받는 그들은 국가의 미래를 위해 과학기술이 필요하다는 데는 공감을 표시했다. 하지만 실제 연구현장을 방문한 이는 거의 없었고 우리나라 일년 연구개발(R&D) 예산 규모가 어느 정도인가를 묻는 질문에도 현장에 모인 20여명 누구도 답변을 못했다. 

이들은 "과학기술의 중요성은 인식하고 있지만 어떻게 관심을 표시하고 어떻게 알아가야하는지 방법을 모른다. 지금까지 그런 프로그램이 만들어지지 않았었다"고 무관심의 이유를 들었다.

과학도시 대전에 거주하는 시민도 마찬가지다. 음식점을 하는 M씨는 대덕연구단지 거주 20년이 다되어가지만 연구단지내에 어떤 정부출연기관이 있는지조차 제대로 알지 못했다.  

과학자 가정에서도 과학은 없다. 대덕연구단지 내에서 태어나 30년간 거주해온 K씨는 부친이 출연연 과학자지만 연구현장 이야기를 거의 들어보지 못했다. 철이 들면서 K씨는 국내 과학기술 현황 등을 부친에게 묻고 싶었지만 그의 질문에 부친은 불편해 했다. 그러면서 K씨 역시 부친이 무슨 연구를 하는지, 어떤 성과가 있었는지 관심을 두지 않았다.

모든 과학자가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출연연에 근무하는 과학자 중 일부는 가족에게 연구현장 이야기는 대화소재에서 제외할 정도로 소통에 서툴렀던게 사실이다.

출연연과 출발을 같이한 KAIST 학생조차 대덕연구단지에 어떤 정부출연기관이 있는지 정확히 알지 못하는 학생이 태반인게 작금의 현실이다. 과학계의 선배이며 후배이지만 극도의 무관심이 팽배해 있는 상황인 것이다.

정부의 관계자도 과학계에 무관심하기는 다르지 않다. 예산만 늘려주면 된다고 생각, 매년 몇%씩 R&D 예산을 늘리는 것으로 생색을 내며 그에 따른 규제와 제도로 옭죄었고 과학자들은 100% 성공 가능한 패스트 팔로우(Fast-follower)적 성과를 나열하는데 소임을 다했다고 만족해 한다.

◆ 과학계는 물론 한국이 다시 일어설수 있는 비결은…모두의 관심과 소통

최빈국 대한민국을 선진국 문턱까지 끌어올리는데 가장 큰 기여자는 과학계라 할 수 있다. 1970년대 당시에는 '잘 살아야겠다'는 일념으로 국민, 정부, 과학계가 한몸을 이루며 정부는 대통령부터 나서서 과학자를 아꼈고 과학자들은 더 나은 환경을 마다하고 귀국해 연구개발 성과로 보답했다. 국민들은 과학자의 활약에 존경을 표시했다.

국내 출연연의 대부격인 KIST 설립당시 박정희 대통령이 연구원을 수시로 방문하며 과학자를 격려했던 일화는 지금도 과학계에서 전설처럼 회자된다. 리더의 관심은 부처의 정책입안자들에게도 고스란히 영향을 끼치며 정책에 반영됐고 성과를 낼 수 있는 분위기가 만들어졌다.

그 결과 경공업 중심의 우리나라는 중화학 공업 국가로, 최빈국에서 선진국 입구까지 최단기간동안 고속성장하는 신화를 이뤘다.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시간이 흐르며 일정수준에 오른 우리나라는 신화의 주인공으로 우쭐하며 앞으로 나가는 길의 방향을 잃었다.

이런 상황에 대해 원로 과학자는 "초고속 성장속에 우리 모두 자만한 것도 없지 않다. 과학자는 과학자대로 최고라고 우쭐대며 성과를 내지 못했고, 국민들은 삶이 넉넉해지면서 국가의 미래에 대해 관심을 두지 않았다"면서 "정부는 매년 R&D 예산을 증대시켰지만 탁상공론으로 그에 따르는 규제를 강요하며 연구환경은 예전만 못해졌다"고 현재의 국내 상황을 진단했다.

그는 이어 "많은 이들이 문제를 직시하며 변화의 필요성을 이야기했지만 각각의 입장만 내세울뿐 누구도 해결하기 위해 나서지 않았다. 어떻게 되겠지하며 그렇게 시간을 보내면서 오늘의 위기에 직면하게 됐다"면서 "문제 해결을 위해 누구의 탓이라고 질타하기보다는 정부, 과학자, 국민 모두의 관심과 소통이 절실하다"고 역설했다.

과학자들 98%이상 사회·시민과 소통 필요성에 공감

본지 설문결과에서도 소통으로 문제를 해결해야한다는 데 많은 과학자들이 동의했다.

'과학기술자의 사회, 시민과의 소통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매우 필요하다 59.7%(138명) 필요하다 39%(90명)로 집계되며 98%이상의 참여자가 사회와의 소통 필요성에 공감했다. 사회와 소통이 필요없다고 답변한 응답자는 1.3%(3명)뿐이다.

실제 과학자들의 국민과 산업계의 소통 부족도 그대로 나타났다. '산업계 및 국민과의 소통 수준'을 묻는 질문에 매우 부족하다 31.2%(72명), 부족하다 64.9%(150명)로 95%가 소통부족을 절감했다. 우수하다고 답변한 설문자는 3.9%(9명)이었으며 매우 우수하다고 답변한 설문자는 한명도 없었다.

 

과학기술계의 산업계·국민과의 소통 수준을 묻는 질문에 설문 참여자의 95%가 소통부족에 공감했다.<이미지=대덕넷 자료>
과학기술계의 산업계·국민과의 소통 수준을 묻는 질문에 설문 참여자의 95%가 소통부족에 공감했다.<이미지=대덕넷 자료>

또 과학현장의 연구내용을 시민에게 알릴 필요가 있는가 라는 질문에는 93%(213명)가 필요하다고 답변, 사회와의 소통이 시대적 흐름이라는 것을 인정했다. 필요없다고 답변한 응답자는 7%(16명)이다.

 

과학현장의 연구내용을 시민에게 알릴 필요가 있는가라는 질문에 설문 참여자의 93%가 필요하다고 답변했다.<이미지=대덕넷 자료>
과학현장의 연구내용을 시민에게 알릴 필요가 있는가라는 질문에 설문 참여자의 93%가 필요하다고 답변했다.<이미지=대덕넷 자료>

'대중과 소통될 수 있는 정기적인 프로그램이나 활동이 필요한가'라는 질문에도 매우 필요하다 44.5%(102명), 필요하다 53.3%(122명)로 97.8%가 소통 프로그램의 필요성을 인정했다.

그러면서 '대중과 소통할 수 있는 정기적 프로그램이나 활동이 있다면 적극 참여할 의사가 있는가'라는 항목에도 86.1%(199명)이 있다고 답변해 변화된 모습을 짐작케했다. 필요없다고 답변한 응답자는 13.9%(32명)로 나타났다.

 

시민과 소통할 수 있는 정기적 프로그램이나 활동하겠다는 설문참여자는 86%로 과학자들도 소통의사가 있음을 짐작케 했다.<이미지=대덕넷 자료>
시민과 소통할 수 있는 정기적 프로그램이나 활동하겠다는 설문참여자는 86%로 과학자들도 소통의사가 있음을 짐작케 했다.<이미지=대덕넷 자료>
 

소통을 위한 커뮤니케이터의 필요에도 설문자의 대다수가 공감했다. '과학계의 내외부를 소통하는 과학커뮤니케이터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매우 필요하다 50.9%(117명), 필요하다 47%(108명)으로 98%의 참가자가 소통커뮤니케이터의 역할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필요없다고 답변한 설문자는 2.2%(5명)뿐이다.

 

커뮤니케이터 역할은 누가하는 것이 좋을까. '누가 역할을 해야한다고 생각하는가'라는 질문에 정부·공무원 11.4%(26명), 과학자 60.5%(138명) 등 과학자 스스로 소통커뮤니케이터 역할을 해야한다는 의견이 많았다. 언론이 해야한다는 항목에는 17.1%(39명)였으며, 시민이 해야한다는 항목은 3.9%(9명)로 집계됐다.

국민들의 과학기술 인식 수준을 묻는 질문에는 현실을 그대로 반영, 부정적인 답변이 많았다. 국민들의 인식수준이 부족하다 47.2%(109명), 매우 부족하다 16.5%(38명)로 63.7%가 인식개선이 필요하다고 답변했고 매우 좋다 4.3%(10명), 좋다 32%(74명)등 긍정적인 답변은 36.3%로 낮게 나타났다.

과학계의 원로는 "과학자 스스로 소통커뮤니케이터 역할을 하지 못한다. 지금 세계적 흐름은 시민과 함께하는 사회다. 독일 미국 등 과학선진국의 과학도시들이 과학기술 주체와 지역적 자산을 기반으로 매력적인 도시로 성장하고 있는데 그 중심에 시민이 있다. 우리나라도 시민중심의 사회 그런 흐름으로 갈 수 있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는 이어 "시민이 제대로 알아야 정부를 감시할 수 있고 세금이 함부로 낭비되지 않는다"면서 "그러면 정책입안자들도 탁상공론식의 업무 대신 현장의 의견에 귀를 기울이며 연구환경도 나아질것이다. 당연히 연구자들도 긴장하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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