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그레이드 - 연구관계 ①]한국 과학계 왜 글로벌하지 않나?국제연구 활동 태부족…"과학외교, 국가 전략적으로 집중해야""과학자도 외교감각 키우고, 국제활동 평가 반영 목소리 내야"

사례 1. 얼마 전 박근혜 대통령 중동 순방 때의 일이다. 순방 전 정부 부처 담당 부서는 부랴부랴 해당 국가들과의 기존 협력관계가 없는지 파악하느라 정부출연연구기관을 전수조사하다시피 했다. 이런 조사가 연구소들 입장에서는 대통령 순방 때마다 겪는 일이라 크게 대수롭지 않은 일이다. 정부는 현장에 협력사례가 워낙 없으니 대통령 순방 성과를 위해 조금 관계만 있더라도 일단 엮고 보자는 식이다. 부처에서는 연구기관의 해외 협력사례가 없는 것을 아쉬워하고, 연구현장에서는 대통령 순방때마다 매번 반복되는 조사에 어떤 성과를 내놓을 게 별로 없어 애를 태우곤 한다.

사례 2. 해외 과학 협력과 관련, 공무원들의 전문성이 큰 문제다. 무엇이 중요한지 알면 투자할 분야를 결정하고, 다양한 R&D지원 프로그램을 만들고 할텐데 제대로 된 국제 공동연구 프로그램들이 거의 생기지 않는다.

사례 3. 정부연구소의 해외 네트워크 대응 시스템이나 연구 자체도 열악하다. 외국에서 자국의 부족한 부분에 대해 협력을 요청해 오면 꾸준히 대응할 인력도 부족하고, 해외에서 관심을 가질만한 연구도 거의 없는게 사실이다.

고도의 협상과 글로벌 협력활동이 중요해진 과학기술 국제무대에서 우리나라 과학기술 외교수준이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 

과학기술 외교에 대한 정부와 연구현장의 관심이 조금씩 높아지고 있지만 과학자들의 국제사회 진출을 통한 협상과 역할, 국제연구 등에 대한 수준은 여전히 미비한 실정이다.

정부출연연구기관의 경우 국가핵융합연구소 등 일부 상황을 제외하면 국제공동연구 프로젝트를 추진 중인 사례를 찾아보기 힘들다. 상당수 출연연에서 손가락에 꼽을 1~3개 과제 정도 국제공동연구를 추진 중이다.

과학외교 전문가 부재도 과학기술 공동협력의 지속도 모호하게 하고 있다. 국제공동연구에서 한국의 잠재력을 굉장히 높게 평가해 협정을 맺었더라도 후속조치가 미비해 행사치레로 끝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우리나라 해외주재 과학관은 ▲미국 ▲영국 ▲EU ▲독일 ▲프랑스 ▲오스트리아 ▲인도 ▲중국 등 총 12명이 활동하고 있으나, 연구현장에서는 전반적인 협력과 협상을 끌어내기에는 전문성과 역량이 부족하다고 평하는 목소리가 많다. 

미래부에서 국제화사업 관련 활동을 벌이고 있는 한 교수는 "전문성 없고 수시로 바뀌는 정부 관료 문제가 계속되는 한 우리나라의 과학기술 외교가 제대로 실현될지 의문"이라며 "각 부처에 국제협력관들이 있지만 전문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가야하며, 제대로 된 총괄적인 전략 논의와 과학외교 계획을 만들 수 있는 여건이 마련돼야 한다"고 피력했다.

외교정책 관련 연구원 L 박사는 "거대과학일수록 글로벌 무대에서의 과학기술 외교가 필요하고, 점차 국제 과학기술 전략 관계가 중요해지고 있다"며 "겉치레에 치중한 MOU 관계에서 벗어나 실질적인 과학외교를 펼쳐야 한다"고 주문했다.

◆ 출장 눈치 봐야하는 과학자들 "국제 활동 어렵다"

"우리나라는 과학외교 환경조성이 제대로 마련돼 있지 않다. OECD 과학기술 전문가 집단에서도 발언권이 없다보니 과학외교에도 힘이 많이 실리지 않는다. OECD나 국제 무대에서 적극적으로 과학자들이 움직일 수 있는 제도마련이 시급하다."

과학외교는 기후변화, 에너지 안보, 식량안보, 글로벌 보건 등 협력부분에서도 힘을 발휘한다. 1959년 평화적 목적을 위해서만 이용돼야 한다는 남극조약 체결 당시에도 과학자 연합체의 남극조사 결과가 큰 도움이 됐다. 그만큼 과학자간 접촉과 협력은 외교협력을 증진시키는 힘이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과학기술자들이 해외에서 활동할 수 있는 여건과 제도적 분위기가 제한적이다. 수행 중인 연구계획서상에 명시돼 있지 않거나 연구사업과 관련 없는 출장은 감히 엄두를 내지 못한다. 일부 정부출연연구기관의 경우 1년 최대 2회 해외 출장의 제한을 둔 사례도 있다.

국제공동연구 협상 과정에서 국가별 선호도나 인식 차이에 따라 연구현장 과학자들이 어려움을 겪는 사례도 더러 있다. 러시아와 공동연구를 경험한 M 박사는 "GDP가 우리나라보다 상대적으로 낮은 나라와 연구를 할 때엔 말도 안되는 금액으로 협상을 하라고 하는 반면  GDP가 높은 나라에 대해서는 100만원짜리 연구도 300만원을 주라고 하더라"라며 "정부의 이중잣대 협상과정에 낯뜨거워 상대방 연구자들을 보는 것 조차 미안할 때가 있었다"고 토로했다.

M 박사는 "이러한 인식환경 하에서 일시적으로 연구는 가능하겠지만 지속적인 연구는 어려운 구조"라며 "국제공동연구는 신뢰가 중요하다. 연구성과에 대한 가치와 기준을 똑같이 적용할 수 있는 마인드와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OECD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논문과 국제공동발명비율은 OECD국가 중 하위권이다. 과학기술 협력과 외교분야에서 아직 미숙한 부분이 많음을 나타내고 있다.<자료=STEPI>
OECD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논문과 국제공동발명비율은 OECD국가 중 하위권이다. 과학기술 협력과 외교분야에서 아직 미숙한 부분이 많음을 나타내고 있다.<자료=STEPI>

우리나라의 OECD 국제기구 활동비율도 저조한 편이다. OECD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GDP 대비 공공 R&D 비율과 기업 R&D 비율이 OECD 중 상위권이지만 논문과 국제공동 발명비율은 OECD 하위권이다. 국제무대에서 우리나라 과학기술 위상이 많이 높아졌지만 협력과 외교분야에 있어서는 아직 미숙한 부분이 많다는 방증이다.

한 예로 기후변화를 조사하고 연구하는 IPCC(세계기상기구)만 보더라도 소속된 전 세계 800여명 과학자 중 우리나라는 6~8명 수준으로 과학기술 역량에 비해 활동이 더디다.

IPCC에 관심을 갖고 꾸준하게 활동을 지켜본 P 과학자는 "41회 총회가 열리는 동안 우리나라 전문가들이 2~3년씩 돌아가며 바뀌더라"라며 "다른 나라는 10년 이상 참여한 사람이 있는 반면 우리는 전문성보다는 그동안 일어난 일들을 숙지하는 것으로 활동이 종료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보니 발언권에도 힘이 실리지 않아 국제무대에서 한국의 위상이 높지 않은 편"이라고 지적했다.

원자력분야 OECD 국제기구도 마찬가지다. 이 기구에서 5년째 활동하고 있다는 M 박사는 "다른 나라의 경우 10년 이상씩 활동한 60~70세의 전문가들이 의장이나 핵심간부가 되어 발언권을 얻어내는데 우리나라는 길어봐야 3~5년"이라며 "한국에서 보직이 바뀌면 활동도 중단해야 하다보니 우리의 주장에 힘이 실리지 않는다"고 말했다.

특히 그는 "담당 공무원도 자주 바뀌다보니 회의 때마다 이런 활동을 왜 하느냐고 묻고 설득시키는 일의 반복"이라며 "과학외교를 제대로 할 수 있는 제도와 여건이 지나치게 열악하다"고 토로했다.

OECD 전문가 활동이 중요한 이유는 도출된 가이드라인들이 국제과학기술 표준이 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일본이나 미국 등은 국제기구에 많은 전문가들이 활동함으로써 발언권에 힘을 실어주기 위해 투자를 아끼지 않고 있다.

C 과학자는 "일본은 UN이나 OECD 등  국제기구에서 일을 하고 활동을 할 수 있도록 자금을 투자해 전문가활동 수준이 굉장히 높다"며 "이러한 인력들이 다자협력 틀 속에서 과학기술 외교에 유리한 방향으로 끌어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반면 우리나라는 출장가는 것에도 눈치를 보니 과학외교가 제대로 이뤄질리가 없다"고 말했다.

◆ 일본서 배우는 과학외교…"전략갖고 지속적으로 과학외교 펼쳐야"

일본의 경우는 꾸준한 과학 외교를 통해 과학수준을 변방에서 중심국으로 자리매김하게 했다.

아시아 최초로 1949년 노벨 물리학상을 받은 유가와 히데키는 반세기에 걸친 과학 외교의 결과물이다.

일본의 1세대 과학기술자인 나가오카 한타로는 1890년대에 독일로 유학을 간다. 외국에서의 공부 경험과 교류를 바탕으로 일본 과학이 발전하기 위해서는 유럽과의 접목이 필요하다고 판단해 자신의 연구 못지 않게 과학외교에도 공을 들였다. 볼츠만과 퀴리 부부 등을 만났고, 런던 물릭학회 명예회원으로 추대되기도 했다.

나가오카의 바통을 그의 제자인 이시하라 준이 이어받았다. 유학시절 만난 아인슈타인을 일본으로 초청했다. 1922년 아인슈타인은 40일간의 항해끝에 일본에 왔고 그 도중에 노벨물리학상 수상 소식을 들었다.

노벨상 수상자 아인슈타인은 43일간 일본 전역을 돌며 강연했고 이 강연을 당시 중학 4년이던 유가와가 들었다.

3번째 바통은 니시나 요시오가 이었다. 그의 주선으로 좀머펠트, 보어, 하이젠베르크, 디랙 등 노벨물리학상 수상자 및 물리학계 대가들이 잇따라 일본을 방문해 일본의 젊은 과학도들에게 첨단 과학 세례를 퍼부었다.

유가와는 "대학졸업을 전후해 대가들로부터 들은 강의는 행운이었다"고 회고했다. 이런 오랜 투자가 결국은 유가와 히데키를 낳았다.

그 이후에도 일본은 이론 물리학과 유기화학의 두 분야에서 세계 최고 수준을 유지한다는 전략을 갖고 지속적인 투자와 교류를 하고 있다. 그 결과 과학분야 노벨상 수상자 18명 가운데 2000년대 들어 13명이 나왔고 앞으로도 줄줄이 이어질 것으로 전망되고 있기도 하다.

우물안에 갇힌 우리들만의 연구가 아니라 세계 최고와의 교류는 이토록 투자대비 효과가 높고, 전략을 갖고 지속적으로 해야 성과가 나온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고 과학자들은 힘주어 말한다.

◆ 부처 칸막이 허물고 장기적 전략 짜야

미국의 경우 2008년 미국과학진흥협회 내 과학외교센터를 설립했고, 영국은 2009년 외교부에 수석과학자문관을 임명했다. 일본은 2007년 과학외교 정책의 4개 목표를 설정해 과학자들의 국제연구 프로그램 참여 확대와 개발도상국 과학관련 시설설립 원조 등을 추진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국무총리를 위원장으로 하는 국가개발협력위원회에서 '국가협력전략'을 세워 지속가능한 발전과 빈곤감소에 기여하기 위한 개발협력사업을 추진 중이다. 그러나 외교부는 외교부대로, 미래부는 미래부대로 각 부처의 과학외교 논의와 인력교류가 부족하다보니 제도적 장치가 제대로 갖춰지지 못한 상태다.

이공계대학 H 교수는 "각 부처의 협력과 더불어 현장 과학자들의 의견을 담아내는 것이 필요한데 현재는 민간인 전문가보다 관 주도로 과학기술 외교가 진행되다보니 연결고리가 미흡하다"며 "과학외교의 추진동력과 제도적 장치를 만들기 위해 민과 관이 함께 전문가 구심점을 만들어 과학외교에 활력을 불어넣어야 할 것"이라고 주문했다.

정부 뿐 아니라 과학자 스스로가 변해야 한다는 자성의 목소리도 있다. 외교가 사람 대 사람으로 이뤄지다보니 지식전달 뿐만 아니라 외교적 감각을 키워 그 나라의 문화에 맞게 행동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과학기술 외교의 필요성이 점점 대두되는 가운데 기관이나 R&D평가에 반영할 수 있는 제도를 마련하자는 목소리를 과학자들이 모을 수 있어야 한다는 현장 목소리도 적지 않다.

출연연 L 박사는 "외교는 과학기술을, 과학기술은 외교를 서로 모른 채 과학기술 외교가 이뤄지기 어렵다"며 "과학기술 외교아카데미 설립 등을 통해 우리나라 과학기술 외교 거버넌스 측면을 키워나가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KAIST K 교수는 "우리 과학외교는 대부분 미국 중심이었다. 미국의 도움으로 KIST가 설립돼 한국 과학계 기반을 닦았지만, 이젠 시대가 변했다"며 "우리가 돈내고 읍소하는 형태의 과학 외교는 그만하고, 과학기술이 탄탄한 동유럽을 비롯한 제2, 제3국가의 다변화된 과학외교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런 가운데 대덕넷이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4월 20~25일) '한국 과학기술인들의 외국 과학기술자들과의 교류 및 협력연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설문에 부족하다가 45.9%(105명), 활발하다가 42.8%(98명)으로 집계됐으며, 매우 부족하다가 9.2%(21명), 매우 활발하다가 2.2%(5명)으로 나타났다.

 

 

한국과 외국 과기인의 교류 및 협력연구에 대해 부족하다는 답변이 제일 높게 나타났다.<이미지=대덕넷 설문 결과>
한국과 외국 과기인의 교류 및 협력연구에 대해 부족하다는 답변이 제일 높게 나타났다.<이미지=대덕넷 설문 결과>

'한국 과학계의 해외 연구소 및 해외기업 협력이 어떻다고 생각하십니까?'에 대해서는 부족하다가 63.6%(145명)으로 가장 높았으며, 활발하다24.1%(55명), 매우 부족하다 11.4%(26명), 매우 활발하다0.9%(2명)순으로 나타났다.

 

 

한국과 해외 연구소 및 기업 협력에 대해서는 부족하다는 답변이 가장 높게 나타났다. .<이미지=대덕넷 설문 결과>
한국과 해외 연구소 및 기업 협력에 대해서는 부족하다는 답변이 가장 높게 나타났다. .<이미지=대덕넷 설문 결과>

'한국의 과학외교 수준은 주변국에 비해 어떻다고 평가하십니까?'에 대해서는 보통이다가 52.8%(122명), 후진적이다가 43.3%(100명)으로 의견이 갈렸으며 선진적이다에 3.9%(9명)가 응답했다.

 

 

한국 과학외교 수준에 대해서는 주변국에 비해 보통이라는 답변이 가장 높게 집계됐다..<이미지=대덕넷 설문 결과>
한국 과학외교 수준에 대해서는 주변국에 비해 보통이라는 답변이 가장 높게 집계됐다..<이미지=대덕넷 설문 결과>

과학계 한 외교 전문가는 "선진 강국들의 과학기술 외교는 과학계만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의 중요한 외교 자원이자 전략으로 중시된다"라며 "우리나라의 내적 과학기술 역량 축적에 따라 이제 과학기술의 글로벌 외교비전과 전략, 구체적 추진방법들이 체계적으로 정비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 참고도서 - 뉴튼의 무정한 과학(정인경 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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